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62)
신인인데 천만배우 162화
미친자에겐 도른자
변화가 생겼다.
그날 이후, 그러니까 무영이 차은성에게 헛소리를 시전한 날 말이다.
-술…… 을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닐걸요?
무영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임을 알았다.
하지만 어쩌겠어?
스모그에 대해 얘기할 수도 없고.
황당한 표정의 차은성에게 음주의 나쁜 점을 줄줄이 읊어대는 동안, 무영이도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었고, 차은성도 얼빠져서는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너, 너, 미쳤어?
-아니, 그게 아니라요…….
-이거 완전 개또라이네.
그런데 그 순간, 무영이는 확인했다.
차은성 주위에 슬그머니 피어오르던 스모그가 다시 옅어지는 것을.
아주 작은 사건이었지만, 두 사람의 무게추를 움직이기엔 충분했다.
“차 선배는요?”
“아까 왔는데? 대기실에 안 보여?”
“아아. 또 어딜 가신 거람.”
전에는 차은성이 대놓고 무영에게 면박과 짜증을 부려대면, 그는 부드럽게 흘려듣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반대였다.
무영이 차은성을 쫓아다니며 귀찮게 하고, 차은성은 미친놈 대하듯 그를 피해 다니는 것이다.
“내버려 둬. 또 어디서 담배 태우고 있겠지.”
고경민이 무영의 옷깃을 펴주며 중얼거렸다.
좀 웃기긴 했다.
미친자에겐 도른자가 약이라더니, 딱 그 상황 아닌가.
차은성은 하무영이 범상치 않은…… 또라이라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덕분에 옆에 붙어다니는 고경민은 몸과 마음이 편하게 촬영장을 오갈 수 있었다.
스태프들도 차라리 이 관계가 낫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영이 당하는 것보단 차은성이 당하는 게 보기도 좋다, 이거지.
“어! 선배님!”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차은성이 매니저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무영을 보자마자 자연스레 뒤돌아서 방향을 틀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제 갈 길 가는구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선배님~!”
그는 매니저에게 뭔가를 부탁하며 도망쳤다.
가까이 다가간 무영의 앞을 막아서는 매니저. 그가 난감하게 웃으며 부탁했다.
“저기, 무영 씨. 은성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아 진짜요?”
“응. 그러니까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네. 부탁해요.”
무영 역시 난감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차은성에게 스모그가 피어난 이후, 색이 점점 짙어지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그나마 촬영할 때나 같이 붙어 있을 때 좀 희미해져서 이러는 거라고.
‘이상하단 말이지. 음음. 진짜.’
며칠 후면 [칼날의 궤> 첫 방영인데, 이러다 문제가 생기면 진짜 큰일이었다.
터질 거면 차라리 방영 전에 터지든가! 무영은 팔짱을 끼며 고민하다가 매니저에게 물었다.
“근데요. 차은성 선배랑 임 감독님 많이 친해요?”
사실 임 감독이 누군지 모른다.
그냥 미끼 던지듯 던져본 거다. 매니저는 하무영을 어떻게 막을까 고민하다가, 화제가 바뀌는 것에 안도했다.
“그렇지. 데뷔 감독님이니까.”
“아아. 그렇구나.”
데뷔작이면 영화 [방어적 공격>이었다. 임구용 감독님을 말하는 거였어. 음음. 그렇구먼. 매니저가 어색해하며 무영의 눈치를 봤다.
하무영 쟤는 생긴 건 멀쩡해서, 하는 짓은 영 괴짜란 말이지. 차은성이 욕 오지게 박아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것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그러면요.”
“응?”
“……아니다. 알겠습니다아.”
무영은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빙글- 뒤돌아 사라졌다.
그 술자리, 진짜 안 가면 안 되겠냐고 말하려 했는데…… 의미 없지. 매니저한테 말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무영아! 분장!”
“네에! 가요!”
무영은 고경민의 부름에 총총 걸어가며 휴대폰을 뒤적거렸다. 임구용 감독님…… 임 감독님이라.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드디어-
차은성은 편안한 옷차림으로 강남의 술집에 도착했다. 룸으로 칸막이가 겹겹이 쳐 있는, 프라이빗한 곳.
사실 그는 왁자지껄한 곳에서 먹는 걸 더 선호했으나, 데뷔한 이후로 그렇게 먹은 적이 없었다.
아니, 못 했다는 게 맞을 거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가게에 도착하자, 종업원이 그를 안내했다. 맨 안 쪽의 룸에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드르륵-
“저 왔어요.”
“어어. 차은성이.”
“아오. 강남은 이래서 짜증 나. 차 졸라 막혀요.”
“오자마자 한 사바리네. 하하. 앉아앉아.”
데뷔 감독님과 제작사 사장 그리고 당시 친하게 지냈던 연출팀 몇몇이 앉아 있었다. 차은성에게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었다.
연예계의 더러운 때가 묻기 전에 만나서 그런가, 데뷔작이라 그런가. 아니면 사람 자체가 좋아서? 잘 모르겠다.
“뭐 시켰어요?”
“응. 네가 좋아하는 짬뽕.”
“아참. 사장님. 이번에 개봉한 거 뭐였더라? 그 [열애>였나요? 성적 좋던데요? 축하해요.”
“응. 나쁘지 않지. 너도 드라마 잘 되가고 있는 것 같더만. 바쁜 와중에도 시간 내주시고~ 감읍하옵니다~ 전하~”
“저는 조광조예요. 뭐야, 대체.”
“아 그래? 하하하! 그래서, 어떤데?”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안부를 나눴다.
드라마였지만 영화판에서도 꽤 주목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가 차은성이랑 하무영이잖아.
“뭐 그럭저럭이죠.”
“첫 방영이 언제지?”
“오늘 밤 10시. 재방 보고 SNS 인증하세요.”
“안 돼. 바빠. 아하하. 근데 사람들 진짜 많이 기대하는 것 같더라. 커뮤랑 연예 기사 보면 죄다 [칼날의 궤> 얘기뿐이야. 하무영이는 좀 어때?”
“하무영이요?”
그 이름을 말하는 것과 동시에 인상이 굳어졌다.
“미친새끼던데요.”
“아하하! 미친놈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찐인가 보네.”
“비교하지 마세요. 걘…… 됐다. 술맛 떨어져요.”
차은성은 그만하자는 듯 손을 내저었다.
워낙 오랜만에 모인 자리인지라 서로 안부만 물으면서도 몇 시간씩 훌쩍 흘렀다. 그럴수록 점점 붉게 달아오르는 차은성의 얼굴.
“어? 벌써 다 마셨네.”
“하나 더 시켜.”
테이블 옆에는 빈 소주병이 주르륵 놓였다.
알딸딸하니, 기분이 참 좋았다. 일만 하다가 이렇게 사람 만나서 얘기하니까 숨통 트이는 기분도 들고…….
“아참, 그때 그거 말이야-”
남자 너덧이 취해서는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던 참이었다. 그때 갑자기 열리는 문. 역시 취한 남자가 눈만 천천히 뻐끔거리며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뭡니까?”
“아. 여기가 아니네.”
방을 잘못 찾아온 모양이다.
그는 사과도 없이 등을 돌리려다, 차은성을 알아보고 멈칫거렸다.
“어어?”
“문 닫고 나가주세요.”
“차은성이네?”
X발 진짜 짜증 나게 하네.
다들 허허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은근히 차은성의 눈치를 살폈다. 애가 성격이 불같아서 좀…….
“아아. 팬이에요. 팬.”
“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나가세요.”
“연예인이 이런 데서 술을 다 먹네. 대-박. 돈 많아도 사는 건 똑같구나? 응?”
남자가 연신 감탄하며 차은성의 얼굴을 뜯어봤다.
저쪽도 술이 어지간히 취했는지, 쉽게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감독은 호출벨을 눌러 직원을 불렀다.
“네. 부르셨어요?”
“여기 손님 잘못 들어왔는데, 안 나가시네요.”
“아아. 네. 손님. 몇 번 방이세요?”
“아니, 저거 차은성이라니까? 얼굴 좀 보자아.”
“무슨 일이야?”
“여기 손님이 방 잘못 찾아와서…….”
“아이고. 죄송합니다.”
드르륵! 탁!
사장까지 와서는 사과하며 남자를 밖으로 내보냈다. 문이 닫혔지만, 흥이 깨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차은성이 소주를 마시며 입을 다물자, 감독이 그의 잔을 채워줬다.
“참 힘들어, 그치?”
“세상에는 X새끼들이 너무 많아요.”
“참아라. 참아. 저쪽도 술 많이 취했더라.”
흥에 취해 떠들던 분위기가 가라앉고, 이제는 직업적 애환을 담은 내용이 오고 갔다.
그저 작은 해프닝 같았다.
그들은 다시금 소주병을 비우는 것에 열중했고, 다시 문이 열린 것은 한 시간 정도 후의 일이었다.
드르륵-
“아 씹…….”
이번에는 반사적으로 쌍욕을 날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취객이 아닌 하무영.
“뭐야? 너?”
어이가 없어 술기운이 다 날아갈 지경이었다.
방금 씻고 온 것인지, 머리끝이 축축하게 젖어 있고 후드를 뒤집어쓴 모습이다. 임 감독이 폭소하며 박수쳤다.
“아니, 하무영 씨 대체 어떻게 알았대?”
“감독님?”
차은성이 임 감독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 당장 제대로 설명 좀 해보라는 듯이.
“어젠가 그제 연락이 왔더라고. 술자리 끼워주면 안 되겠냐고. 근데 스케줄 확인하더니 그날 광고 촬영인가 뭐가 늦게까지 있다며?”
“그래서요?”
“강남에서 마신다 하고 그렇게 연락 끊어졌지 뭐. 못 올거라 생각했는데, 왔네? 광고 끝나고 바로 온 거야?”
무영이 방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앉으라는 말도 안 했는데.
“네. 안녕하세요 감독님. 저희는 초면이죠?”
“응응. 근데 진 감독한테 많이 들었어.”
[역병>의 진경문 감독을 말하는 것이었다.영화판, 그것도 일을 오래 한 감독들끼리는 어지간하면 아는 사이여서 쉽게 전화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근데 잘 찾았다. 시나브로라고만 말했는데.”
시나브로 술집은 체인점으로, 강남에만 세 곳이었다. 무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충 말을 돌렸다.
“별일은 없었어요?”
“응? 무슨?”
어떻게 여길 찾았냐고? 화재라도 난 줄 알았어요.
검은 연기가 계단까지 타고 내려오더이다.
그걸 밟으며 지나갈수록 옅어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오늘이 확실히 그날이었다.
차은성에게 일이 터질 그날.
스윽-
차은성은 외투를 뒤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붙잡으며 묻는 무영.
“어디 가세요?”
“……담배. 맞담할 거 아니면 따라오지 마.”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오히려 화도 안 나는구나.
차은성은 비틀거리며 룸을 나섰다. 흡연실을 찾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어깨를 거세게 움켜줬다.
“아.”
“봐봐. 차은성 맞다니까?”
아까 그 취객이었다.
그리고 제 친구들에게 확인이라도 하듯, 그의 팔을 잡아끄는 게 아닌가.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처럼, 취객 무리가 차은성을 구경했다.
“진짜네? 구라인 줄 알았는데.”
“아니, X발, 내가 왜?”
“너 입만 열면 구라잖아. 아빠가 촬영장에서 봤는데 어쩌구 저쩌구, 찌라시만 뿌리면서.”
“와 진짜 신기하다. 나 싸인 좀, 아니, 사진 찍자.”
파앗!
차은성은 거칠게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안 찍어.”
너 같으면 찍겠냐? 다짜고짜 반말 찍찍에 옷이랑 팔을 잡아당기는데? 그의 대꾸에 분위기가 묘하게 날섰다.
“X발 존나 비싸게 구네.”
“야야. 됐다. 가자.”
“티비랑 영 딴판이잖아? 싹바가지 없는 새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그중 유독 거칠게 나오며 신경 긁는 남자가 있었다. 방을 잘못 들었던 그놈이었다.
“내가 뭐라 그랬냐? 방금? 와, 연예인이 사람 치겠네. 눈깔 부라리는 것 봐라.”
그는 너스레를 떨며 차은성을 비웃었다.
아슬아슬하게 달린 이성의 끈이, 술에 젖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남자는 계속해서 차은성을 도발했다.
“하긴 몸 팔아서 돈 버는 새끼가 평범할 리 없지.”
영화에서 몇 번 나왔던 베드씬을 말하는 거였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차은성이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와장창!
“아아악!”
“야! 이 미친 새끼가!”
“다들 왜 그래 진짜?”
“사장님! 여기, 손님들 싸워요!”
쿠웅!
차은성은 남자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벽에 밀어 박았다. 그리고 인정사정없이 얼굴을 후려갈겼다. 코피가 뭉근하게 터지고, 남자가 쓰러지자 놈의 친구들이 그를 떼어 말렸다.
“야! 괜찮아?”
“아…… X발, 피…… 경찰 불러! 차은성이가 사람 팬다고 X발! 기자도 부르고, 다 불러! 미친 새끼, 너 두고 보자. 뒤졌어, 내가…… 아, 존나 아프네…….”
씩씩대며 눈물을 머금는 남자. 차은성은 분이 덜 풀린 듯, 이를 아득거렸다. 그때였다.
“어? 무슨 일이에요?”
기어코 따라 나온 무영이 그들을 발견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차은성은 아주 살짝 반가웠다. 제 편이 아무도 없는 지금, 하무영이라면 이해는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어어? 하무영도 있었네? X발 둘이 아주 골로 가봐라! 다 뒤졌어어어!”
“아이고. 화통을 삶아 드셨나. 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인지는 네 친구한테 물어봐! X발! 왜 갑자기 사람을 패는지! 술을 처먹었으면 곱게 처먹지!”
무영은 가만히 차은성을 보다가 다시 남자를 돌아봤다.
“뭔지 몰라도 차 선배가 빡쳤네요. 이유 없이 성질부리긴 해도,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었는데. 뭔 짓 하셨어요?”
“하! 친구라 이거지? 끼리끼리네 X발. 부모 없이 큰 거 티 내냐? 어?”
“오마이갓…… 점점 더 이해가 됩니다.”
차은성의 스모그가 이거였구나.
사고 한번 거하게 치셨어.
무영은 일단 매니저를 부르기 위해 휴대폰을 찾았다. 그때, 남자의 무리가 말하는 게 귀에 들어왔다.
“야. 일단 운민수 이 새끼 병원부터 보내자.”
“병원? 그 정도는 아니잖아. 경찰이 먼저 아니냐?”
운민수?
운 씨 성이 흔한 건 아니잖아. 내가 아는 운 씨라면…… 무영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혹시 운정길 씨 아세요?”
“운정길?”
그리고 무영이 그 이름을 뱉는 순간, 뿌옇게 주위를 가득 채우던 스모그가 휘몰아치며 사라졌다.
사아아악-
시야가 맑아지며 남자의 놀란 표정이 뚜렷하게 보였다.
“……우리 아빤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