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65)
신인인데 천만배우 165화
PPL
위엄이 깃드는 대전.
영의정 정광필, 병조판서 이장곤, 무신 유담년을 포함한 조정 신하들이 중종과 함께 회의를 이어갔다.
북방에서 속 썩이는 여진족 토벌에 관한 안건이었다. 서너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러 의견이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해서. 말하는 바가 대체 무엇인고?”
중종이 피곤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선대부터 계속 이어져 오던 골칫거리 아닌가.
완전히 토벌할 수 없다면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가져가야 할 문제였다.
“이동 경로를 보아 적군의 보급품이 서서히 떨어져 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산맥과 이어진 가장 가까운 초소가 목적지로 보입니다.”
“이번에 내려온 수가 만만치 않은 지라, 지금이 기회라 한들 전면으로 덤비면 필시 아군의 피 역시 만만치 않게 흘릴 것으로 사료됩니다.”
“기습을 하자, 이 말이군.”
“예. 전하. 산을 끼고 있는 터라 해가 빨리 집니다. 아래에서 위로 몰아 한 번에 토벌하면 승산이 높아질 것이옵니다.”
“흠. 상당히 그럴 듯한 계책이오.”
“시간이 별로 없는지라 속히 결단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현재로 보면 닷새 안으로 산맥을 지날 것으로 보입니다.”
의견이 점점 모아졌다.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토벌의 효율은 극대화하는 기습작전. 중종이 그에 필요한 병력을 차출하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 그의 앞에 철퍼덕 엎어졌다.
조광조였다.
“전하. 아니 될 말이옵니다.”
“……무어가 말이오?”
“기습은 왕도의 도리가 아니옵니다. 여진족 추장 속고내에게 왕명의 지엄함을 설파하고, 그때도 차도가 없을 시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셔야 하옵니다.”
조광조의 말에 무신들의 얼굴이 띠용? 하고 변했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생과 사의 기로에 선 전투에서 왕도의 도리가 대체 무엇인데? 듣던 정광필이 헛웃음을 흘렸다.
“전하. 조광조의 말도 일리가 있사옵니다만, 오랑캐에겐 통용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말이 안 통하는 자들이옵고, 그들과 맞서는 군사들은 백성이요, 백성의 가족이옵니다.”
“조광조의 말이 참으로 허무맹랑하옵니다. 화살이 왕도 따져가며 날아간답니까?”
“어허. 자네. 말을 삼가게.”
“그렇지 않사옵니까?”
조광조에게 호의적이던 정광필 역시 편을 못 들어줄 만큼 난감한 의견이었다. 순식간에 조정이 소란으로 물들었다. 중종은 조광조와 눈을 빤히 맞출 뿐이다.
“…….”
그리고 말없이 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해바라기가 그려진 찻잔에 찰랑거리는 물.
그는 신하들에게 방긋 웃으며 권했다.
“다들 진정하시고 숨을 돌리시오. 꽤 긴 회의였소. 해바라기 씨로 우려낸 차인데, 짐이 요즘 이것에 푹 빠졌다오. 혈과 기를 맑게 하여 생각을 바로잡게 하지. 놓쳤던 부분 역시 상기시킨다오.”
그리고 이내 위엄 있게 잔을 내려놓았다.
조광조의 말이 허상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바로 내칠 수는 없는 노릇.
저자가 끌고 있는 신진 세력이 훈구를 견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현재 중종의 오른팔이요, 그의 기둥이었다.
그뿐인가?
마음으로도 잘 맞아, 하루에 세 번 이상 얼굴을 맞대며 정사를 논의하는 친우이기도 했다.
무신들은 중종의 뜸에 불안함을 느꼈다.
“조광조의 말에 일리가 있소.”
“아니, 전하!”
“끝까지 들어보시오. 오랑캐와 조선의 근본이 다른 이유가 무엇이오? 저들은 혈과 육으로만 이뤄진 집단 아니오? 우리는 도(道)를 지키는 집단입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오나,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
무신들이 조광조를 노려보며 다시 간청했다.
“전하! 종이 할 일은 종에게 물으시고, 무신이 할 일은 무신에게 물으소서! 조광조 저자가 무얼 압니까?”
안다. 그의 이상이 헛되다는 것을.
하지만 중종 역시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이 조광조를 내칠 수 없다는 것을.
중종은 단호히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조광조. 기억하시오. 짐이 당신의 이상을 들어주었으니, 당신도 나의 이상을 들어주어야 하오.’
‘전하. 전하의 미래가 곧 신하의 미래이옵니다.’
둘이 시선을 부딪치며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내, 결정을 내리는 중종.
“이 안건은 다음에 다시 논하겠소. 경들은 시간이 늦었으니 물러나시오.”
회의를 마무리하고 미련 없이 대전을 나섰다.
조광조 역시 뜻을 이루었으니 머물 이유가 없다.
둘이 사라지자, 무신들이 분에 차서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전하도 참으로 너무하시옵니다!”
“다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병판 어르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옵니까? 조광조를 싸고 돔이 지나치오! 이러다가 홀랑 용포까지 벗어줄까 두렵소.”
“어허! 경망하오!”
병판은 차를 홀짝이며 시선을 멀리했다.
사사로운 인연도 아니고 군주와 신하였다.
닿고자 한 미래가 다른데, 어찌 함께 걸을 수 있단 말인가? 분명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독이 될 터인데…….
* * *
“오케이! 컷!”
감독의 컷 신호와 동시에 신하들이 긴장을 풀고 허허 웃었다. 뒤쪽으로 돌아갔던 무영 역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나가도 돼요?”
“네에. 나오세요.”
“후하! 옷이 좀 덥네요.”
용포를 바스락거리며 세트장을 가로지르는 무영.
차은성은 먼저 구석에서 화장을 수정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자, 차은성이 손풍기를 무영이 쪽으로 돌려줬다.
“대사 톤 점점 좋아진다?”
“진짜요? 다행이다. 연습 계속하고 있어요.”
“근데 나 쳐다볼 때 시선이 좀 더 강렬했으면 좋겠어. 감독님. 찍은 거 얘 좀 보여줘 봐요.”
“모니터링~ 오예~”
차은성과 무영이 쪼르륵 감독에게 달려갔다.
분칠하던 코디가 도구를 정리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옆에 있던 다른 스태프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차은성 요즘 왜 저래? 좋은 일 있나?”
“몰라요. 죽다 살아난 건지, 곧 죽을 때가 된 건지.”
“매일 스탠바이 들어갈 때나 돼서 얼굴 보이던 사람이 요즘에는 잘만 돌아다녀요. 무영이도 안 피하고.”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무영이 찾던데.”
“푸하하! 진짜? 대박.”
“아까는 무영이가 차은성보고 형이라 부르더라.”
“아무래도 주간 1위 먹어서 그런 거 아닐까?”
진짜 메가톤 히트의 조짐이 보였다.
이전의 주간 1위 시청률도 케이블에선 나오기 힘든 수치라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는데, [칼날의 궤>가 그걸 단 1화 만에 탈환한 것이다.
다음 날 2화에서는 1.8%가 더 올랐다.
이대로만 간다면, 진짜 계산대로만 간다면…….
종영할 때쯤이면 J 사의 시청률 역사를 새로 쓰고도 남을 터. 히트작 다수 보유 중인 차은성에게도 제2의 전성기를 가져오겠지.
“시청률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나 봐.”
“하하하. 그럴 수도.”
“뭐. 우리야 편하고 좋다.”
“성질부리는 것도 확실히 줄고.”
“원래도 무영이 때문에 좋았지만, 요즘은 진짜 할 맛 나. 안 그래요?”
“맞아요.”
게다가 이상하게 무영의 말이라면 고집 피우지 않고 잘 들었다.
고작 일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날’의 사건을 모르는 스태프들은 ‘시청률’ 때문에 차은성의 성질이 죽은 것이라 단정지었다.
“확실히 시선 처리가 더 깔끔하면 강렬해 보이겠네요.”
한편, 차은성과 무영은 모니터링하며 감독과 꼼꼼히 의견을 주고받았다.
화면 속 그가 찻잔을 드는 순간이었다.
“아. 그런데요, 탁상이 낮아서 잔 드는 게 좀 어색했거든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마셔야 해요?”
“보자. 한 다섯 번 정도?”
“높이를 조절해 주시면 좋겠는데…….”
해바라기 차 PPL이었다.
투자사에서 특별히 해바라기 모양을 박은 찻잔까지 헌정했다.
시대극인데 플라스틱 용기를 쓸 수는 없잖아? 감독은 스케줄 표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팀한테 말해놓을게요. 화면상으로는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난 무영 씨가 말 안 했으면 몰랐겠어.”
“그럼 다행이구요.”
무영은 방긋 웃으며 남은 차를 홀짝였다.
그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차를 마시는 차은성.
별말은 없지만, 역시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맛 괜찮죠?”
“응.”
“먹다 보니 빠져서, 두 박스 주문했어요.”
“아이고. 무영 씨. 우리한테 말하지. 받아다 줄 건데. 메인 PPL이라 자주 나올 거예요. 시청률이 예상보다 훨씬 잘 나와서 추가 계약할 것 같거든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시청률도, 현장 분위기도, 배우끼리의 화합도.
감독은 자신의 커리에서 이게 역작이 될 거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떠올렸다. 엄청난 행운을 누리게 되어, 모두에게 고마울 뿐.
“무영아. 화장!”
“아. 네엥!”
“그럼 다음 씬 갈게요. 은성 씨랑 무영 씨는 분장하고 쉬고 계세요. 아마 3씬 연달아 들어갈 것 같으니까.”
대신들끼리의 회의 장면이었다.
점점 유착되어가는 중종과 조광조를 걱정하는 내용이면서, 기승전결 중 승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차은성은 무영과 나란히 앉아 대본을 확인했다.
“다음에 같이 보는 건 48번이랑 49번이네요.”
“어. 근데 너 술 먹냐?”
“술이요? 먹죠?”
“실장님이 너 맛있는 것 좀 먹이고 싶다는데.”
무영이 덕분에 합의는 원만히 진행되어 사건 종결 도장까지 빠르게 찍을 수 있었다.
실장뿐이겠는가. 회사 대표와 사장까지 나서서 하무영 얼굴 좀 보자고 난리다.
“아아. 그래서 그랬나?”
“뭐가?”
“우리 쪽 회사 사장님이랑 대표님도 그쪽이랑 자리 만들면 같이 끼겠다고 하시던데. 비즈니스 파트너 어쩌구저쩌구.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공치사 하는 자리라지만, 타 소속사 고위 관계자와 배우를 개인적으로 만나게 할 수 없다는 의지였다.
그러다 홀라당 채가면 어쩌려고?
차은성의 소속사 역시 역사가 깊은 회사인 데다, 무영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었다.
무영만 그 의도를 모른 채 헤실거렸다.
‘오예. 꽃가루~’
이제는 완전히 스모그가 걷혔다.
걱정 없이 꽃길만 밟으면 되겠어!
“무영아. 그만 좀 웃어.”
“죄송해요.”
“근데 뒤쪽 대본 좀 바뀔 거라는 말이 있던데.”
“네? 왜요?”
코디가 무영의 눈썹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
“PPL이 자꾸 들어와서. 립 바르는 장면이 추가될 거래.”
“네? 누가? 왕이?”
무슨 개똥같은 소리에요? 라는 표정이었다.
코디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고. 설록화라는 브랜드에서 마침 조선시대 패키지를 내놓았거든. 장경왕후 입에 연지 발라주는 장면이 들어갈 수도 있대.”
장경왕후는 중종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스토리상 크게 달라질 건 없지만…….
어찌 화려한 꽃에 벌들이 달려드는 것처럼 PPL이 달라붙는 것 같다. 적당히 하면 참 좋을 텐데…….
‘돈 벌어야지.’
제작사와 방송사의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덕에 이렇게 좋은 세트와 의상으로 작품의 퀄도 높일 수 있고.
무영은 인지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조연출님이랑 얘기하면서 알았지. 그때 컬러 맞춰야 하니까.”
차은성은 별로 관심 없어 보였다.
이미 이골이 날대로 난 터라, 뭐든 상관없다는 태도.
“또 뭐 있어요?”
“음. 문방사우랑 액세서리 쪽? 아무래도 사극이라 제약이 많잖아. 먹는 거 위주로 받는 것 같더라.”
그 순간 코디의 입을 타고 나오는 뿌연 연기.
무영이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코디가 민망해하며 입을 가렸다.
“어머. 미안. 아까 월병 주워 먹긴 했는데. 냄새나?”
……월병? 그게 왜 여기 있어요?
아니, 스모그는 또 왜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