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66)
신인인데 천만배우 166화
계약
“월병이요?”
“응. 못 봤어? 박스째 왔던데.”
“왜요?”
“PPL 들어오려고 하는 거지.”
“……왜요?”
“……얘가 왜 이러니?”
코디는 살짝 웃으며 무영의 머리를 매만졌다.
마치 호기심 많고 말 안 듣는 아이를 달래듯. 하지만 무영은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리 질문한 것이었다.
조선에 월병이 대체 말이야, 막걸리야?
“다 됐다.”
코디가 메이크업 수정을 마치자마자, 무영은 그녀가 말한 월병 박스를 찾아 나섰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몇몇 스태프들은 스모그를 감고 있었다.
“혹시 월병 드셨어요?”
“네? 네네. 맛있더라고요.”
“어디 있는데요?”
“아까 입구 쪽에 두는 것 같던데.”
쓰레기통에 잔뜩 쌓여 있는 월병 비닐.
무영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세트장 입구에 쌓인 상자들을 발견했다.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 하나.
“어디 식품이에요?”
“글쎄요. 처음 들어본 곳이었어요.”
붉은 바탕에 흰색으로 한자가 멋들어지게 적힌 패키지였다. 이국적인 디자인뿐만 아니라, 틈으로 새는 스모그가 무영의 시선을 끌었다.
딸깍-
뚜껑을 열자마자 넘실거리는 연기.
마치 드라이아이스가 퐁퐁 솟아오르는 것 같다.
무영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중 하나를 꺼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돌아버리겠다.
차은성 사건 해결하고 나니까 이런 일이라.
상자 아래쪽에 적혀 있는 ‘동손식품’.
무영은 쪼그려 앉아 휴대폰으로 회사 정보를 검색했다. 스태프는 멀뚱히 서 있다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손, 동손…….”
“무영 씨. 왜 그래?”
아. 마침 화장실 다녀오던 감독님이 그를 불렀다. 무영이 인상을 찡그린 채 상자를 툭툭 건드렸다.
“감독님. 이거 진짜 PPL이에요?”
“월병? 아아. 저기 동손식품에서 묶음으로 받는다고 하더니, 그것도 들어 있나 보네. 왜 그래요?”
“왜라니요…….”
맨날 헤실헤실 웃던 애가 정색을 하며 되묻자, 감독의 심장이 살짝 내려앉았다.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는 기분. 그는 무영의 앞에 함께 쪼그려 앉았다.
“조선에서 중국 음식인 월병을 왜 먹어요? 중국 사신이 가져왔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본에 그런 내용은 없었잖아요. 수라상에 올리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어…… 그렇긴 한데, 이게 팩션(Faction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장르)이니까.”
“선이라는 게 있잖아요. 요즘 동북공정 굉장히 민감한데, 분명 문제 여지 다분해요.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임금이 먹는 음식인데.”
“음…….”
감독이 난감하게 뒷목을 긁적거렸다.
그가 하는 말이 뭔지는 잘 알겠다. 그런데 PPL 받기로 한 걸 당일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
“무영 씨가 걱정하는 게 뭔지는 알겠어요. 근데 동손식품에서 월병만 온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많이 왔거든요. 묶음으로 들어온 거라 빼기는 곤란해요.”
묶음으로?
무영은 굳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는데요?”
“음? 잠시만요.”
그는 휴대폰을 뒤적거리더니, PPL 목록과 함께 계약 내용을 알려줬다.
“동손식품에서 나오는 4가지 식품 회당 노출 1회 이상. 묶어서 계약 들어온 거고, 으음. 노출 시간은 안 정해져 있네요.”
무영의 눈썹이 더욱 휘었다.
노출이 생명인 PPL인데, 계약할 때 시간을 안 정하는 경우가 있나? 게다가 음식 PPL인데 배우가 먹어야 한다는 조건도 없었다.
“그럼 편집할 때 최대한 빼는 쪽으로 할게요. 상을 위에서 아래로 쭉 훑고 오다가 월병 걸리면 바로 전환. 어때요?”
“아니요. 더더욱 안 돼요.”
“응? 왜?”
“의도가 너무 불손하잖아요. 노출도 제대로 안 되는데 굳이 PPL을 왜 넣어요? 상 위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목적 아니에요?”
아직 음식 때문에 역사 왜곡 논란이 난 적은 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려는 게 아닐까?
이번에는 화면에 등장, 그다음에는 요리, 그리고 이어서 먹는 것까지…….
“초장에 끊어야 해요. 선례를 만들어서도 안 되고.”
무영의 말에 피디가 멈칫거렸다.
확실히 다른 조건보다, 수라상 혹은 궁중에서 차려지는 게 계약 내용이었거든. 동손에서 들어오는 다른 식품들로 상을 차릴 예정이었다.
“흐음.”
솔직히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드라마 찍으면서 PPL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니까.
이번에도 그저 어떻게 녹여내면 좋을지 생각했을 뿐, 그 외의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피디만 그런 게 아니었다.
“피디님. 이거 안 돼요.”
기계적으로 PPL을 찍어내던 다른 스태프들 역시 의아하긴 하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주인공이 죽어가면서도 ‘SIRY야 지금 몇 시지?’ 따위를 묻는 게 PPL 아니던가.
“무영 씨 걱정은 잘 알겠어요. 그런데 드라마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상품이에요. 우리는 계약을 맺었으니 이행할 의무가 있고요.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피해를 볼 수는 없어요. 해야 할 건 해야죠.”
무영은 가만히 그와 눈을 맞췄다. 안심시키려는 눈빛과 함께 은근히 어리게 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혜성처럼 등장해 방송계를 휩쓸고는 있지만, 이제 겨우 데뷔한 지 2년 차인 햇병아리.’
무영의 위치는 딱 그것이었다.
몇십 년 동안 그 판에서 굴렀던 베테랑으로서는 괜한 기우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시간과 경험에 무뎌져 버린 걸까?
그는 무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일어섰다.
“너무 걱정 마요. 금방 촬영 들어가니 좀 쉬어요.”
감독의 발치가 닿는 곳마다 스모그가 피어올랐다.
아아. 저걸 어쩐담.
무영은 가만히 앉아서 머리를 굴려댔다.
회사에 말해봤자 도움이 안 될 게 분명했다.
분명 감독과 같은 입장이겠지. 편을 들어주는 듯하면서 무영을 설득하려 들것이다.
‘생각하자. 생각…….’
무영은 쪼그려서 벽을 짚은 채 끙끙댔다.
그러자 목덜미에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우우웅-
“뭐 하냐.”
차은성의 손풍기. 반대쪽에는 대본이 들려 있었다.
무영이 하도 안 들어오자 찾아 나선 것이었다. 역광으로 빛나는 그의 뒤쪽으로 꽃잎이 떨어졌다.
“아아아!”
“아. 깜짝이야.”
무영이 벌떡 일어나며 그걸 눈으로 담았다.
저거, 꽃가루다! 분명히!
차은성이라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배우이자, 실력도 있고, 잔뼈도 굵고, 무엇보다 성격이 개판이라 제작진에서 쩔쩔매는 사람이 문제 제기를 한다면?
생각보다 해답은 가까이 있었구나.
“뭐 해? 더위 먹었어?”
“형. 우리 큰일 났어요.”
“왜? 뭐가?”
무영이 속삭이며 그를 끌어 앉혔다. 그리고 보여주는 월병 박스.
차은성은 눈만 껌뻑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우리가 먹는 다과상에 월병이 올라간대요.”
“PPL이래? 난 월병 싫은데. 맛 대가리 없음.”
“……그것보다요. 월병은 중국 음식이잖아요. 조선에서, 그것도 왕이 신하와 궁중에서 먹는 다과상에 그게 올라갈 리가 없죠.”
무영이 속닥속닥, 차은성을 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긴 하지?”
“동북공정이라고 알아요?”
“들어는 봤어.”
“이거 방송되면 진짜 뒤집힐 거예요. 장담해요. 감독님이랑 스태프들이 왜 의식을 못 하는지 모르겠는데, 형 매국노 소리 들을 수도 있어요.”
“매국노? 우리 할아버지 국가유공잔데?”
“오오오. 대단하시네요. 최고최고! 근데 손주는 매국노, 역사 왜곡 배우가 될 수 있겠어요.”
얘가 농담하나, 싶은 얼굴이다.
하지만 무영은 확신하듯 계속 쫑알댔다.
스모그가 이렇게까지 피어오른 거 보면, 진짜 최악을 가정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꼬리표처럼 따라붙을걸요? 뭘 하든 역사 인식이 부족한 배우. 얼굴은 번지르르한데 머리는 텅텅. 잊을 만하면 다시 끌올 또 끌올. 그뿐이에요? 사극으로 논란 터졌으니, 형 이제 시대극 못 찍어요.”
“……오버는.”
“오버 아닌데? 재수 없으면 한국에서 활동 못 할 수도 있겠네요. 이미지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인 거 알죠?”
무영이 그의 상상력을 자극해댔다.
긴 세월 동안 얼마나 애지중지해서 세워 둔 이미지인가?
아마 현재 활동하는 톱스타 중에서는 커리어나, 평판으로 봤을 때 차은성이 독보적일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성격은 차치하고서…….
“그렇게까지?”
“되고도 남죠. 심각하면 폐지까지 될 수도 있어요. 형 저는요, 시청률 역사 새로 쓸 만한 작품이 고작 PPL 잘못해서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아요.”
무영이 차은성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눈을 반짝반짝.
제발 머리 좀 제대로 굴려서 이 심각성을 깨우쳐 달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왜 출연료 많이 받는지 아시죠?”
“……얼굴이니까.”
“맞아요. 만드는 건 제작팀이지만, 그걸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건 배우잖아요. 문제가 생기면 다른 무엇보다 얼굴 내건 우리에게 피해가 클 거예요.”
차은성이 그저 눈만 찌푸리며 무영을 쳐다봤다. 소설을 쓰고 앉아 있네, 하는 표정.
하지만 영 개운한 건 아닌지, 재차 묻는다.
“이게 진짜 그렇게 심각한 일이야? 그냥 음식 하난데?”
“의식주만큼 그 나라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건 없어요.”
무영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그는 말없이 무영을 쳐다봤다. 위이잉- 손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앞머리가 살랑거렸다.
“아. 몰라.”
덤덤하던 그가 별안간 머리를 털어내며 등을 돌렸다.
“형아아-”
“시꺼. 너 옷 갈아입으래. 코디가 너 찾더라. 빨리 갈아입고 와라. 더워서 대기 길어지면 빡치니까.”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쏙!
무영은 망연자실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꽃가루니까, 돌파구일 텐데, 어찌 차은성 반응이 저런지 모르겠다.
“무영 씨!”
문으로 빼꼼 얼굴을 내미는 스태프.
무영은 울상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에. 가요오-”
터벅터벅. 발걸음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했다.
한편, 대기실에서 딸기 라떼를 쭉쭉 마시던 차은성.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매니저를 불렀다.
“형. 그 계약서 말이야.”
“계약서? 어떤 거?”
“지금 찍는 거.”
“응? 아아. 출연 계약서? 그게 왜?”
“그거 지금 볼 수 있나?”
갑자기?
하지만 여기서 ‘왜?’냐고 토 달면 그가 짜증을 쏟아낼 것이다. 오랜 시간 옆에 있어서 체득한 생존법이었다.
“네가 한 부 갖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회사에 있으니까 지금 볼 수는 없지.”
“회사에 연락해서 사진 좀 찍어 보내라 해봐. 그, 뭐였더라. 그런 게 있었는데…….”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뭔가를 떠올리려 애쓰는 차은성. 매니저 역시 덩달아 인상을 찡그리며 애썼다. 뭔지도 모르고.
“아!”
차은성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 서로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자는 조약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맞지?”
출연자의 병크 방지가 주된 목적이었다.
상호협력 및 의무사항과 책임 및 권리관계에 거쳐 두 번이나 언급되는 사항이었다. 매니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버렸다.
“있긴 있지. 근데 왜?”
* * *
“스탠바이 들어갈게요!”
촬영 재개를 알리는 스태프의 말.
세트장에는 작은 다과상 두 개가 차려져 있었다.
약과를 비롯해 수정과, 그리고 월병까지.
무영이 감독을 쳐다봤으나, 그는 애써 무시했다.
‘이제라도 회사에 말해볼까?’
으으으.
무영은 죄 없는 음식만 가만히 노려봤다.
그런 그의 뒤통수를 가볍게 두드리는 차은성.
“뭐 하냐? 눈으로 밥 먹냐?”
“아. 시작하자마자 걍 한입에 다 넣어버릴까요? 화면에 안 잡히게.”
“헛소리도 신박하게 하네.”
차은성은 한복을 정돈하며 방석에 앉았다.
그리고 맞은편의 무영이 턱을 괸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분주한 스태프들이 촬영 준비를 마무리했다.
“들어갈까요?”
“아아. 잠깐만요.”
“네?”
차은성이 우아하게 손을 들며 말했다.
감독과 스태프들이 멈칫거리며 긴장했다.
왜, 왜 저러지?
“나 이거 안 먹어.”
“아…… 월병이요? 안 드셔도 되는데.”
“상에서 치워줘요.”
“그거 PPL…….”
스태프가 난감하게 감독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차은성은 기품 있는 미소를 지으며 살벌하게 대답했다. 눈은 웃고 있는데, 아우라는 날것 그대로였다.
개지랄 개진상이 그대로 느껴지는.
“PPL이고 자시고 모르겠으니까 치워달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