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69)
신인인데 천만배우 169화
기름
“둘이 뭔 일 있어요?”
소품을 정리하던 스태프가 무영과 은성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평소에는 실없는 장난을 끊이지 않고 치던 두 사람이, 냉랭하게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버려 둬. 오늘 찍는 장면 때문에 그래.”
조연출이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중종과 조광조의 관계에 실금이 나는 장면.
한배를 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걸 은연중에 깨닫는 씬이 기다리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중요 포인트인지라, 두 사람은 텐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예열 중이었다.
“촬영 전에 감정 좀 제대로 잡겠다나 뭐라나.”
“그런 거 없이 지금껏 잘만 했으면서?”
‘레디, 액션!’만 떨어졌다 하면 빙의한 것처럼 조선 시대 인물을 끄집어내던 두 사람이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다가도 위엄 있는 조정의 군자와 사대부의 기운을 뿜어내던 미친 천재들이…….
“그러게 말이다. 아까 본부장님 오셨던데, 무슨 말을 들었나? 자극받은 것 같더라고. 아, 참. 이것 좀 저쪽에 치워줘.”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무영과 차은성은 서로의 눈동자만 쳐다봤다. 시선이 공중에서 날카롭게 맞물리며, 대사를 속으로 곱씹었다.
“야. 그거 아니지. 아직 그 정도 배신감은 아니야.”
“아아. 잠시만요. 그럼 이렇게는요?”
감정선이 굉장히 핵심인지라, 두 사람은 대본이 원하는 포인트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차은성이 무영의 표정을 샅샅이 뜯어보더니, 만족스러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아까보다 훨씬 좋아.”
“형도 해주세요. 대사 칠까요?”
“어. 들어와 봐. 근데 이게,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게 있거든? 앞부분에 호흡을 끊을지 아니면 뒤에 끊을지. 둘 다 입에 착착 감겨서 뭐로 할지 모르겠어.”
“어…… 저는 전자가 나을 것 같긴 한데. 피디님께 여쭤봐요. 피디님!”
뭐라고 해야 할까.
천재들이 본능적이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왔다면, 이제는 뭔가 악에 받친 것처럼 대본을 씹어먹으려 했다. 본부장을 배웅하고 돌아온 피디가 흠칫거리며 둘에게 다가왔다.
“갔어요? 본부장님?”
“방금 막 떠나셨어요. 본부장님이 뭐라 하셨어요?”
피디의 질문에 차은성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
“그냥. 시청률 잘 뽑아달라고. 그래서 말인데요. 이 부분…….”
현장에서 차은성이 이렇게 열심히 하던 경우가 있었나?
피디는 분에 찬 본부장과 갑자기 열의를 보이는 차은성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 * *
화원의 앙상한 가지에 눈이 소복히 쌓인 계절.
전날 밤의 눈바람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사로운 햇살이다. 중종은 턱을 괴고 가만히 바깥을 보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전하. 조광조 들었사옵니다.”
아아. 그럴 줄 알았다.
해가 중천에 걸리면 짐을 찾는 자가 또 있는가?
중종은 옷깃을 가볍게 매만지며 명을 내렸다.
“들라 하라.”
드르륵-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조광조가 한기를 끌고 들어왔다. 바깥이 많이 찬 것이 분명했다. 중종은 친히 찻잔을 내밀어 그에게 건넸다.
“얼굴이 얼었소. 이것 좀 마시시오.”
“황공하옵니다. 전하.”
따뜻한 오미자차에서 김이 일었다.
조광조는 가만히 그걸 내려다보더니, 이내 얼굴을 들어 중종과 마주했다. 중종은 별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시오?”
“전하. 혹 어제 올라간 상소문을 보셨습니까?”
“성균관 권전이 올린 것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현재 조정에서는 정몽주, 성삼문, 박팽년 등의 성리학자들의 문묘 배향(사당에 모시는 일)에 관한 말이 나고 있었다. 대부분 정몽주만 인정하는 분위기긴 하나…… 중종은 그마저도 마뜩잖았다.
“권전이 그러더군. 정몽주뿐만 아니라 김굉필도 문묘에 올려야 한다고.”
배향 자체가 국가가 인정한 영예였으며 후손들에게도 큰 혜택이 돌아갔다. 따라서 권력 강화의 용도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했지.
특히나 김굉필은 조광조의 스승.
그가 문묘에 배향된다면, 조광조는 성인(聖人)의 제자요, 사림의 대표로서 더욱 큰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하. 실로 많은 유생이 김굉필을 성인이라 인정하고 있사옵니다. 사람됨을 세상이 알고, 소인이 아오니, 배향해도 괜찮지 않겠사옵니까?”
조광조의 말에 중종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본인도 모르게 저절로 구겨진 것이었다.
어찌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어째서 중종이 사림을 밀어주고, 조광조를 신뢰했는지 모른단 말인가?
‘왕권 강화로 인한 안정된 나라.’
그것이 두 사람의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조광조는 사림에 더 힘을 실어주길 바라고 있었고, 그렇게 되면 균형이 깨진다. 사림이 아닌 훈구파를 끌어와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짐과 그대 역시 저울 위에서 칼을 겨눠야 하는데…….
“아니 될 말이오.”
“전하.”
“김굉필이 생전 모범적인 유학자라 할 수는 있겠소. 하나 뚜렷한 성과도 없이 배향될 수는 없는 노릇이오. 이쯤 하시오.”
그만하시오.
균형을 깨지 마시오.
사림의 권력은 그만하면 되었소.
더 이상 힘을 실었다간 내가 그대를 견제해야 하오.
중종이 말 없는 시선을 보냈으나, 조광조에게 닿지 않았다.
사악-
눈이 높게 쌓인 나뭇가지가 휘었다.
아슬아슬한 두 사람의 관계처럼.
“전하. 하면 정몽주만이라도 배향해 주시옵소서.”
“그 또한 불허하오. 정몽주는 우왕을 섬기지 않았는가.”
파삿-
더더, 휘었다.
조광조가 입을 열 때마다 위태롭게 나뭇가지가 아래로 쳐졌다.
“당시에는 우왕의 소생을 몰랐을뿐더러, 그가 부귀영화를 위해 그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하. 정몽주만큼은 문묘를 배향하여야 하옵니다.”
조광조는 사림이었고, 사림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모인 학파였다. 정몽주가 조선 성리학의 기틀을 세웠으니, 그를 배향한다면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권력을 갖게 될 게 분명했다.
사아악-
결국, 나뭇가지의 눈이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햇빛에 반짝이는 흰 눈이 중종의 뒤쪽으로 흩날렸다.
“……재고하겠소. 일단은 물러나시오.”
‘이자는 선을 넘을 생각이다.’
중종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
조광조가 조아린 뒤통수를 보며 이상한 감정이 치솟았다.
허탈하기도 하면서, 배신감이 느껴지고, 어쩐지 슬프기도 했다. 친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걸까?
중종은 한 모금도 먹지 않은 차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뒤쪽으로는 계속해서 맑은 눈발이 휘날렸다.
-아니ㅠㅠㅠ슈바 왜 여기서 끝나는데요? 담주까지 어떻게 기다림? 누가 나 기절 좀ㅠㅠㅠ
-이거 보면서 공부한다고 하니까 엄마가 암말도 안 함ㅋㅎㅋㅎ그러다 같이 보고 있음ㅋㅎㅋㅎ
-오늘 하무영 연기 미쳤네요 보고 있는데 내가 더 애틋하고 안쓰러웠음 그래서 정몽주 배향하나요?
-스포 당할까봐 역사 공부 안 하는 중ㅋㅋ
-차은성도 명불허전 역시는 역시 역시다!
-중종 캐릭터 해석이 신선하고 좋아요bb 그나저나 저거 다 PPL 맞죠? 너무 맛있어 보이고 좋네요. ㅅㄹㅇㅆㄷ는 갑분 마라탕 나와서 읭스러웠는데… 역시 한식 최고! 색감도 예쁘고 좋네요
-방송 타고 상주 곶감 매출 3배로 늘었대요ㄷㄷ
-연기 구멍이 없어서 너무 좋음 레알 시간 순삭!
-이렇게 연출이 트렌디한 사극은 처음임 배우들 연기 미쳤고, 일단 [칼날의 궤>가 두 사람 지금까지의 필모 정점인 건 확실한 듯ㅇㅇ
-윗댓 인정 어제 6화에 시청률 20퍼 뚫었던데
-아니 근데, 같은 방송사 맞아? 사랑을 쏘다 지금 하고 있는 거 봐봐. ㅅㅂ 내가 잘못 봤니?
-뭔데? [사랑을 쏘다> 피디 누구임? 대가리에 총 맞음?
* * *
“무영아. 다 왔다. 내려.”
“하아암-”
무영은 찢어지라 하품하며 밴에서 내렸다. 고경민이 짐을 한가득 든 채로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앞도 못 보고 터덜터덜, 무영은 잠결에 걷는 듯 보였다.
“이거 들고 12층 먼저 올라가 있어.”
“형은요?”
“나 출입증 받아둘 게 있어서. 금방 갈게.”
“알겠습니다아.”
엘리베이터에 애를 밀어 넣고 어디론 가로 달려가는 고경민. 무영은 대충 숫자를 누르고 멍하니 벽에 기대었다. 그리고 이내 열리는 문.
띵!
“어?”
“형!”
여유롭게 커피를 들고 들어오는 차은성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무영은 몽롱한 와중에도 히죽 웃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형 어제 방송 봤죠? 진짜 연출 멋지더라고요. 6화만에 시청률도 22.8% 뚫어버리고! 진짜진짜 너무 좋아요! 그쵸?”
그의 호들갑에 차은성 역시 피식 웃었다.
“이거 마실래? 말하는 게 웅얼웅얼, 잠이 덜 깼네.”
“아뇨. 괜찮아요. 근데 형 이제 와요? 분명 촬영 먼저 있다 했으면서?”
“……너 기사 못 봤어?”
“기사요? 어떤? 저는 우린 것만 챙겨봐요.”
차은성이 음료를 쭉 빨아 마시며 웃었다.
굉장히 고소해 보이면서도 상쾌한 미소.
“어제 [사랑을 쏘다> 드디어 터졌거든.”
“뭐가요? 시청률이?”
“……마라탕부터 찜찜하던 게 결국 사달을 냈어. 연인 커플이 경복궁 데이트한다고 한복을 입었는데 그 디자인이 치파오랑 비슷하더라.”
“어? 진짜요?”
한복인 듯 아닌 듯, 치파오와 흡사한 모습.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탕후루를 사 먹지 않나, 대사 중에는 ‘8이 좋아. 예전부터 복을 뜻하는 숫자잖아’ 따위의 중국 풍습이 묻어난 부분이 많았다.
“……동, 동 뭐?”
“동북공정.”
“시청자들이 그거 아니냐면서 엄청 난리래. 폐지하라 뭐 어째라 말 많던데. 그래서 피디님 급하게 회의 갔거든. 촬영 미뤄졌어.”
“[사랑을 쏘다>랑 우리 피디님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방송사 불매운동으로 번지면 [칼날의 궤>도 타격 있으니까, 의견 건의하러.”
“아. 폐지될 것 같아요?”
“글쎄다. 돈이 돈인데, 그렇게 쉽게?”
무영은 그제야 정신이 좀 또랑또랑해지는 것 같았다. 본인 작품만 챙겨본다고 다른 걸 못 봤네. 메인 포탈에 들어가 보니, 사회면에 대문짝으로 쓰게 관련 뉴스가 걸려 있었다.
[차이나머니의 함정? [사랑을 쏘다> 논란 (종합)] [J사 드라마, 치파오 입고 경복궁을? 선 넘었다] [역사왜곡 논란 드라마, 시청자들이 뿔났다] [[사랑을 쏘다> 폐지 주장, J사 입장은 아직……] [방송사 불매까지 번질 조짐, [사랑을 쏘다> 화제]“맞네. 선 넘었네.”
무영은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막 문제가 제기되는 시점이라, 동손식품과의 접점은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밖에 기자들도 많더라.”
“기자들이라…….”
무영이 대기실에 짐을 풀며 뭔가를 고민했다.
[사랑을 쏘다>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 될까?아무래도 중반까지 진행된 작품이라 폐지하기에는 손해가 막심할 것이다. 게다가 드라마본부장 태도를 봐서 이번에 넘어간다고 해도 다음번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뿌리를 뽑아버리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자꾸 작품에 헛된 색을 칠하려는 무리를.
불씨가 일기 시작했을 때 기름까지 들이 붓고 싶었다. 무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차은성을 돌아봤다.
“근데 형, 형 아는 기자님 많죠?”
“기자? 많지.”
연예계에서 구르고 구른 고인물 아닌가.
회사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친한 기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형 본부장님 싫어하죠?”
“존나 싫지.”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대답하는 차은성.
하지만 거기까지 말해도 그는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무영은 방긋 웃으며 은근슬쩍 그를 찔렀다.
“형이 저번에 본부장님한테 그랬잖아요. 동손에 친척 있냐고. 기자님들도 그걸 굉장히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기름을 콸콸 들이부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잘라내야 하지 않을까?
문제가 된 작품이든, 사람이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