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7)
신인인데 천만배우 17화
반응이 온다
용산경찰서 정문으로 들어오는 승용차 한 대.
끼이익-!
차가 멈추기 무섭게 뒷문이 열리며 엔빈이 내달렸다.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 따위로 얼굴을 가린 채. 누가 봐도 수상한 모습에 문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이 힐끔거렸다.
“빈아! 같이 가!”
“무영아. 빨리 쫓아가 봐라. 일 치르겠다.”
“야아! 뛰지 말라니까!”
매니저는 주차를 위해 차를 안쪽까지 몰았고, 그 대신 무영이 엔빈의 뒤를 쫓았다.
“여기 형사과가 어디에요?”
“이 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으어어! 힘들어!”
역시 매일 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애는 다르다. 어쩜 저렇게 몸이 재빠르단 말인가. 엔빈은 쉬지도 않고 위층으로 뛰어갔다.
-범인이 잡혔습니다.
신고한 지 고작 이틀 만에 들려온 희소식.
동영상을 보내 달라는 엔빈의 요청에, 협박범은 답장이 없었다. 두 시간 뒤 다시금 같은 사진만 보내올 뿐.
타앙!
“여기 김민철 형사님 어디 계세요?”
영원 같은 두 시간이었다.
답장이 오지 않자, 엔빈의 불안은 점점 분노로 바뀌었고 사진 답장은 그 분노를 폭발시켰다. 마치 기름처럼 말이다.
-사진밖에 없어.
그것도 누가 누구인지 흐릿한 사진. 아무리 애정 깊은 팬들이 본다 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니까. 남은 것은 신고뿐이었다.
“여깁니다.”
머리가 까진 한 형사가 구석에서 손을 들었다. 그 앞에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는 여자. 엔빈의 얼굴이 굳어졌다.
“피해자 정운빈 씨죠?”
엔빈의 본명. 그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며 여자를 내려다봤다. 익숙한 뒤태다. 그녀가 자신을 쫓아다닌 만큼 엔빈 역시 그녀가 익숙했으니.
“……고개 들어.”
그의 낮은 목소리에 피의자가 얼굴을 보였다.
그 스토커! 엔빈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멱살을 붙잡고 말았다.
“이 X발-!”
“야야! 안 돼! 안 돼!”
“어허. 이러시면 안 됩니다!”
무영이 엔빈의 허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지만, 경찰서에선 꽤 드물지 않은 풍경인지 생각보다 침착한 분위기.
“미안해요. 오빠. 흐윽…….”
스토커가 멱살 잡힌 채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형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오빠는 거참, 나이가 스물 아홉이더만.”
“잘생기면 다 오빠라니까요!”
심각한 상황과 맞지 않은 발언. 무영은 뜨헉하며 엔빈의 표정을 살폈다. 이성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임이 틀림없다.
“오빠. 미안해. 내가 돈이 필요해서 그랬어. 한 번만, 우리 그간 봐온 시간을 봐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 주라. 응?”
스토커는 두 손을 싹싹 빌며 울기 시작했다. 점점 엔빈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굳어지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갔다 해야겠지. 그간 봐온 시간이라니? X발!
“사실 별생각 없었어. 집에서 오빠는 뭘 하나 궁금했을 뿐이라고. 만나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은 했는데…….”
설마 그런 게 찍힐 줄은 몰랐다.
당혹스러움과 배신감이 들기도 잠깐. 어쨌거나 엔빈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묻어두려 했다. 정말 화재만 안 났어도.
“……캡처는 왜 했는데?”
“여자 얼굴이 안 보여서 누군지 보려고. 밝기 조절했는데 결국 못 알아냈어.”
스토커의 진술에 엔빈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그래. 몰라야 할 것이다. 들키지 않으려고 만나는 걸 꾹꾹 참아가며 살아가고 있는데.
형사가 여자에게 앉으라는 듯 손짓하며 말했다.
“그래서 원본 영상은 USB에 넣어두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었고, 캡처본은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었답니다. 피의자가 찍, 찍 뭐라더라?”
‘찍덕.’
조심스럽게 입 모양으로 알려주는 무영. 형사가 코를 긁적이며 웃었다.
“아무튼, 그거 한다고 사진만큼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자동저장했대요. 영상은 용량을 너무 잡아먹어서 안 했다 진술했습니다. 조사 후 진짜인지 확인할 예정이고요. 아, 그리고 예상대로 드론이 맞았습니다.”
“돈은요?”
무영의 물음에 여자가 움찔거렸다.
“일단 먹고 자고 입는 데 좀 썼답니다. 한 600 정도 쓴 것 같군요. 피의자가 호텔에서 체포되었는데 그 비용으로 다시 150 정도-”
“이런 씨-”
“미안해! 오빠, 정말 미안해!”
“오빠 소리 집어치워-!”
엔빈이 옆에 놓인 의자를 집어 들려 하자, 여자가 다시 두 손을 싹싹 빌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1억 중 750만 원만 썼다 하니. 무영은 엔빈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아. 좋게좋게 생각하자. 응?”
“너, 내가 그 돈 끝까지 받아낸다.”
“오빠…….”
“닥치라고! 역겨우니까!”
그때 합류한 매니저가 아니었으면 진짜 주먹이 날아갔을 것이다. 무영은 다시 엔빈의 허리에 매달리며 안간힘을 써댔다.
“무영아. 데리고 나가!”
“이리 와! 이 X발-!”
“경찰서에 기자 많은 거 몰라? 진정하고, 여긴 형이 정리할 테니까 나가 있어. 어서!”
콰앙!
문이 세차게 닫히자, 엔빈은 겨우 숨을 골랐다. 여전히 흥분해서 거칠긴 했지만, 이성의 끈은 겨우 붙잡은 듯 보였다.
“빈아. 뭐라도 마실래?”
“하아. 저거, 어떻게 하지? 씹어 먹어야 분이 풀릴 것 같은데.”
“이제 법대로 하면 되니까 너무 그러지 마. 그럴수록 네 몸만 아파. 어차피 죗값 치를 거.”
무영의 말에 엔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찌 말하는 투가 꼭 스님 같지 않은가. 세상 모든 시련을 통달한 것처럼,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일세!
“짜증 나. 너.”
“으흥. 하지만 진짜인걸.”
무영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녀의 뒤에 엉켜 있는 검은 스모그. 리딩에서 봤던 것보다 짙고 어두웠으며 거대했다.
그녀의 어머니인 잡귀는 삼켜져 보이지 않을 정도.
“……말은.”
엔빈은 그렇게 대꾸하며 휴게실로 향했다.
그와 마주 앉아 캔 커피를 따니,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다. 조용한 공간. 바깥으로 경찰들이 왔다 갔다, 듣기 좋은 소음만 들렸다.
“고맙다.”
한참의 침묵 후, 엔빈이 입을 열었다.
정신없어서 하지 못했던 말. 무영은 그저 방긋 웃을 뿐.
“그러게. 수업 있는 거 다 못 갔어.”
그날 이후, 무영은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그의 숙소에서 함께 지냈다.
멤버들이 다 같이 쓰는 집이라고 하나, 다들 독립한 데다 상황이 워낙 긴박했으니까.
“서연대라고 했지? 공부 잘 했나 보네.”
“불가항력이라고 하지 뭐.”
“……정말 고맙다. 그때 리딩장에서도 그렇고, 나 찾아와 준 것도 고마워.”
동료는 있지만, 친구가 없는 아이돌 생활. 엔빈이 유별난 걸 수도 있지만, 너무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해온 터. 쉽게 마음을 열 만한 상대가 없었다.
“내가 뭘 해주면 될까?”
“해주긴 뭘 해. 밥이나 사.”
“1억 그거 되찾으면, 너 줄까?”
그의 말에 무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 뜻밖의 말에 입으로 들어갔던 커피가 코로 나올 뻔했다. 장난인가 싶지만, 엔빈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미쳤어? 그걸 내가 왜 받아?”
“너 아니었으면 날렸을 돈이며, 내 커리어, 여자친구, 사생활. 뭐 하나 안 중요한 게 없어.”
친구가 없었기에, 그래서 모든 행동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깊었다. 그저 호의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어버린 거지. 무영은 난감하게 볼만 긁적거렸다.
“아니. 친구끼리 무슨…….”
무영의 말에 엔빈이 눈만 깜빡거렸다.
친구라니? 네가? 내 친구?
“나 너보다 한 살 많아.”
“여태까지 말 잘 놓았잖아. 그리고 너 빠른이더만. 뭐 여차하면 지금이라도 올려드릴까요?”
“……어이없네.”
“네네. 저도 그렇네요. 1억은 무슨! 뉘 집 개 이름이 1억이야, 1억이! 그거 통장에 잘 넣어두었다가 노후에 쓰시고요. 활동이나 멈추지 말고 해.”
계약 해지한다고 모든 일정이 멈춘 상태였다. 메인 활동인 음반 발매부터 콘서트 연습까지.
당연히 웹드라마 제작 역시 올스톱. 스퀘어필름사와 서울시에선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골머리 썩고 있겠지.
“원래 금요일 업로드인데 밀렸다.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회사 분들도 다 출근 안 하셨겠지?”
“미쳐. 넌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말했잖아. 첫 작품이라고.”
엔빈은 무영의 말에 웃음만 터뜨렸다. 진짜 이상한 놈이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고, 꼭 그곳으로 가려는 듯 애쓰는 모습. 그때, 매니저가 둘을 불렀다.
“빈아- 무영이!”
“저희 여기 있어요.”
“어. 그래. 뭐 좀 마셨어? 진정 좀 했니?”
엔빈은 남은 커피를 탈탈 털어 마시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
“절대 선처 없다고 못 박았고, 앞으로는 회사 법무팀이 붙어서 처리할 거야. 이제 신경 쓸 거 없다. 다행히 찌라시도 안 났어.”
협박범 얼굴을 꼭 봐야겠노라, 길길이 날뛰던 빈이였다. 매니저는 진땀을 닦으며 그의 눈치를 살살 봤다.
“그러니까 이제-”
“가자.”
팅!
엔빈은 빈 캔을 쓰레기통에 명중시켰다. 그리고 벌떡 일어서며 매니저를 지나쳤다.
“미안해 형.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회사에도 내가 따로 말할게. 그러니까 밀린 스케줄 다시 잡아줘.”
“어? 진짜?”
“응. 진짜.”
매니저의 얼굴이 화악 밝아졌다. 엔빈은 무영에게 어서 따라오라는 듯이 눈짓했다. 무영이 동글동글한 미소를 지으며 캔 커피를 치웠다.
“멈춘 시간만큼 더 열심히 할 거니까.”
“그래. 빈아. 마음 잘 잡았다!”
“엄마 아빠한테는 절대 알리지 마.”
“그럼.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경찰서 정문을 나서기 전, 무영은 엔빈을 붙잡고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 따위를 다시 확인해 줬다. 귀만 보이니, 그가 누구인지 절대 모를 것이다.
“좋아. 이제 나가자.”
“하무영.”
“응?”
“너 1억 필요하면 말해.”
“아 좀. 입 좀 다물래?”
“아니면 다른 거로 때워줄게. 나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이래 봬도 이 판에서 알아주니까.”
“네네. 알겠으니까요. 어서 가시죠.”
무영은 대충 그렇게 대답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다른 거로 때운다 해도, 뭐 필요한 일이 있겠는가? 연기만 하고 살 건데…….
부아아앙-
엔빈의 승용차가 시원하게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엔빈의 활동 재개 소식을 들은 스퀘어필름사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서울시 미튜브 담당자에게 영상을 보냈다.
띠링.
[서울시 홍보 웹드라마-청춘의 아픔을 달래주는 야밤의 포차! 근데 사장님이 엔빈? 한밤포차 01화]무영의 첫 작품이 업로드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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