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71)
신인인데 천만배우 171화
협상
“무영 씨! 은성 씨!”
속닥속닥, 계략 아닌 계략을 나누던 두 사람.
조연출이 부르자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땀에 쩔어있는 그가 머쓱하게 웃었다.
“와서 동선 좀 맞춰줄래요?”
“아! 네네!”
“커피 들고 해도 되죠?”
“편하신 대로요. 오늘 날씨 진짜 더워요. 하하.”
두 사람은 조연출의 안내에 맞춰 카메라 동선을 확인했다.
군사훈련 참관을 위해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감독님이 배경으로 커다란 소나무를 잡고 싶어 해서,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여기서 한 번 더 왼쪽이요.”
“이렇게 걷는 거 맞아요?”
“아하하. 뭔가 좀 웃기당.”
“편집 염두에 두신 거라 괜찮을 겁니다. 네에. 됐습니다. 슛 들어가면 이렇게만 해주세요.”
빠앙! 빵!
“이거 옮겨주세요!”
“현장팀 사람들 다 어디갔어~”
무영이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 두꺼운 갑옷이 잔뜩 쌓인 트럭이 다가왔다. 물건을 옮기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그 역시 자연스레 손을 거들었다.
“와, 갑옷 멋있다. 다 새 거 같네요?”
“소품실에 있던 게 아니라, 싹 새로 제작했거든요. 한번 입어 볼래요?”
장난스러운 스태프의 말에 무영이 용포 위로 갑옷을 올렸다. 세상에나, 무거워도 너무 무겁지 않은가?
안 그래도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데, 이런 걸 입고 뛰어다니려면 진짜 힘들 것 같았다.
[역병> 찍을 때 유나 들쳐 안고 뛰었던 게 자연스레 생각날 정도.“이거 괜찮겠어요?”
“어쩔 수 없죠. 금방 찍을 수밖에. 그러니까 NG 안 나게 조심해 줘요. 하하하.”
“다들 대단하시다.”
물론 무영이 NG낸 적은 거의 없다.
스태프의 말이 닿는 곳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차은성이었으니.
“조금 있으면 엑스트라 올 겁니다!”
“네에. 실내로 옮길게요!”
무신들이 경합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무영과 은성은 그들에서 그들을 지켜보면 되지만, 다른 조연 및 엑스트라 분들은 땡볕에서 더위와 싸워야 했다.
“조연출님! 저번에 받았던 12번 소품 어딨을까요?”
“아. 그거 경애 팀장님한테 내가 줬는데.”
“팀장님도 없다 하시던데요?”
“에이. 무슨 소리에요?”
방송국과 [사랑을 쏘다> 쪽은 난리가 났지만, [칼날의 궤> 팀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스태프들은 촬영에 지장이 없게끔, 평소보다 더 열심히였다.
“조명 선 좀 봐주세요! 여기 전기 안 돌아요.”
“그거 쭉쭉 빼면 될걸요? 조명 감독님~”
“어어. 맞아. 그렇게 하면 돼. 근데 오늘 날씨가 좋아서 그거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음. 정확히 말하면 안팎으로 시끄러우니, 정신 뺏기지 않게 몰아친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아아아아.”
그런 그들과 달리, 차은성은 손풍기에 입을 대고 뻘짓 중이었다. 재수 털린 왕광구 잘려, 추가편성에 출연료까지 오를 예정이니, 세상 근심 걱정 없다는 표정이다.
무영이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으나…….
유독 오늘따라 스태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고서 차은성을 불렀다.
“근데 형.”
“응?”
“출연료 협상이요. 오늘 스케줄 끝나면 할 거죠?”
“그렇겠지? 최대한 빨리 기사 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퇴근을 소속사로 할 듯.”
“이런 거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어요. 혹시 몇 퍼센트 정도 올려 받으실 거예요?”
순진하게 눈만 껌뻑껌뻑.
출연료는 좀 민감한 내용인지라, 쉽게 묻고 답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기정사실이고, 차은성이 먼저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웃었다.
“잘 모르겠는데? 왜? 협상되면 슬쩍 알려줄게. 아마 우리 회사 둘이서는 이미 입 맞췄을 수도 있어. 이런 경우는 우리가 갑이라 어지간하면 맞춰줄걸? 내가 먼저 하면 너도 대충 언저리에서 받아.”
일단 대선배이자 주연인 차은성이 길을 닦아 놓으면, 무영은 별 문제 없이 따라 붙으면 된다.
‘차은성 측이랑 같은 조건’으로 하겠다 하면 되니까.
그냥 그러면 되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차은성은 무영의 표정이 조금 어색한 것을 눈치챘다. 그의 물음에 무영은 더더욱 환히 웃었다.
“아뇨. 마음에 들죠. 감사하고요. 근데, 그때 되면 한여름이잖아요?”
“그렇겠지? 얼마나 더 늘어날진 모르겠지만.”
“더우면 스태프들 진짜 힘들겠다 싶어서요.”
아아아.
무영은 차은성의 손풍기를 가져와 똑같이 소리 냈다.
그걸 빤히 보던 차은성. 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걸까,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탄성을 내질렀다.
“아. 너? 설마?”
“형은 원하시는 대로 협상하세요. 그냥, 제가 어떻게 할지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뒤에서 들으면 그것도 좀 이상할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고서 총총총, 용포 휘날리며 실내로 뛰어갔다. 차은성은 어이없이 팔짱 끼며 무영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스태프 임금 인상.’
저 깜찍한 것이, 그걸 추가편성 조건으로 내밀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 차은성은 차은성대로 협상하라고?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대선배인 자신이 돈이란 돈은 다 챙겨 받는 동안, 한참 후배인 하무영이 스태프들을 챙겨?
그거 모양새가 진짜 이상하잖아.
이상하다 못해 잘못하면 차은성만 돈독 오른 배우로 찍힐 수 있었다. 현장 분위기는 물론이고, 잘못하면 기사까지 날 수도.
그는 화들짝 놀라며 무영의 뒤를 쫓았다.
“야야야! 잠깐만!”
쫓아올 줄 알았다는 듯, 무영이 빙글 뒤돌았다.
“너 임마. 신인이 왜 그래?”
“저 이제 2년 차 넘어가는데용.”
“아니. 그때는 몸값 튀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알아요. 그래서 형한테 말한 거예요.”
“뭐, 뭐를?”
초롱초롱, 그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협상과 도박 둘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모르겠는데.”
“성공하면 대박이라는 것. 바람잡이가 있다는 것.”
무영은 차은성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우리가 입만 잘 맞추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 * *
“아니. 뭐라고? 돌았어?”
“아 몰라.”
차은성은 귀만 후비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소속사 팀장과 실장, 그리고 매니저까지 모인 자리.
추가편성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이었다.
“그렇잖아? 벌써 차기작 잡아 놨는데, 갑자기 8회나 늘이는 게 말이 돼? 작가님은 그게 가능하대?”
“얼씨구나 좋다 하시더라. 안 그래도 못 쓴 내용이 많았다면서. 방송국 사정 모르냐? 국장님이 직접 연락 왔어, 임마! 그것도 세 번이나!”
“아는데, 내 알 바 아니지.”
“이런 미친놈이!”
“아이고, 팀장님. 진정 좀…….”
버럭버럭, 혈압 올라가는 팀장과 달리 차은성은 여유로웠다. 그를 말리던 실장 역시 차은성을 질책했다.
“근데 은성아. 너도 그건 좀 아니다. 30%가 무슨 똥고집이야. 너 회당 출연료 몰라서 그래?”
자그마치 2억이었다.
그걸 8회 더 하는데 30%를 더 달라?
말이 안 되지. 회사 측에서 생각한 적정 협상 비율은 진짜진짜 높아 봤자 10%였다.
차기작을 미루거나 취소해야 했으니까.
“차기작이 지금처럼 잘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뭔 소리? 나 차은성이야. 내가 하는 건 다 잘돼.”
“아니, 말이 그렇다고! 우리 쪽에서도 감사합니다, 인사할 판국에 왜 그렇게 버티냐 이 말이야.”
“저거저거, 오늘 야외촬영하고 더위 처먹었어.”
“10% 안쪽 선에서 합의 보자? 응?”
차은성은 콧방귀만 끼더니 소파 뒤로 엎어졌다. 뒷목을 잡으며 휴대폰을 찾는 실장. 빅윈 쪽에서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하무영 역시 뭔 일인지 몰라도 차질이 생긴 게 분명했다.
지이잉- 지이잉-
그때, 방송국에서 전화가 들어왔다.
회신주기로 해놓고 연락이 없으니, 참다못해 건 것이다. 실장은 눈을 질끈 감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 네네. 국장님.”
-어떻게 됐어요?
“지금 은성이랑 얘기 중인데요, 애가 아무래도 차기작을 너무 기대하고 있었나 봐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아 안 돼, 절대 안 돼. 실장님. 걔 좀 바꿔봐요.
“지, 직접이요?”
개망나니랑 다이렉트로 통화라니.
영 못 미더웠지만, 실장은 마지못해 그에게 휴대폰을 넘겨줬다.
“네. 차은성입니다.”
-은성 씨! 아니, 대체 뭐가 문제야? 우리 쪽에서 가능하면 다 맞춰준다니까? 사정이 있는 만큼 서로 양보합시다. 응? 하무영이 걔는 차은성 씨가 한다고 확답을 줘야 하겠다고 하니까. 이게 진전이 없잖아?
혹시나, 혹시나 차은성의 계약 연장이 불발되면 조광조가 죽고 난 이후의 중종 얘기를 위주로 진행하려 했다. 근데 하무영도 저렇게 나오니 답답할 수밖에.
“무영이가 그래요?”
-우리 허심탄회하게 말해봅시다. 응?
“저는 솔직히 돈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고요, 차기작이 너무 아쉬워서 그런 거거든요.”
-알지알지.
“그래서 회사 쪽에 30%를 불렀어요.”
-…….
전화 너머로 말이 없다.
차은성은 스피커를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끊겼나?”
-아, 아니. 잘 듣고 있어요. 말해요. 근데 은성 씨. 30%는 좀…….
“네에. 근데 국장님이 이렇게 전화까지 직접 주시면서 말씀하시니까 저도 마음이 흔들리네요. J사는 제 고향 같은 곳이잖아요. 첫 드라마도 거기서 찍었는데.”
쟤가 저렇게 말을 잘했던가?
노심초사 불안하게 옆에서 지켜보던 회사 직원들이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꼭 누군가 대본을 쥐여준 것 같다.
“그럼 5%로 조정하고, 음. 조건을 좀 달죠?”
-어떤 조건?
“스태프들 임금도 5% 올려주세요.”
“……?!”
“아니, 차은성 저 새끼 왜 저래? 진짜 더위 처먹었어?”
“호,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닐까요? 병원 데려갈까요?”
그의 말에 세 남자가 속닥거리며 질겁했다.
듣다듣다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
평소 스태프에게 살가운 사람이 전혀 아니었거든.
하지만 차은성 역시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이렇게 안 하면 하무영이 먼저 출연료 동결에 스태프 임금으로 선수 친다 했다고. 나는 뭐 이러고 싶어서 이래?’
“그 정도는 괜찮죠? 드라마 저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고. 다 스태프들의 노고가 있어서 지금 작품이 있잖아요. 저만 쏙 올리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기네요.”
“……차 대기시켜. 병원 데려가자.”
“네. 실장님.”
국장은 잠시 멈칫거렸다.
최대 10%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5%라.
세이브한 5%로 스태프들 임금을 올리기에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30%는 정말 말이 안 되잖아!
“국장니임~?”
-아. 내부검토 후 바로 연락해 줄게요.
“네. 그러세요!”
차은성은 꺼진 휴대폰을 실장에게 던지며 기지개를 켰다. 그 순간 무영에게 메시지가 날아왔다.
띠링!
[형 잘했어요! 저도 형 의견 따라서 하겠다고 할게요! 형이 잘 설득해서 결정했다고:P]대외적으로는 차은성이 주도해서 스태프 임금을 올린 것으로 알려질 것이다. 물론 이런 훈훈한 미담 자체 역시 방송국 쪽에는 이득이었다.
[칼날의 궤>로 이미지 메이킹 해야 하니, 착한 잡음은 언제나 환영이지.“뭘 봐?”
차은성이 뚱한 표정으로 세 남자를 노려봤다.
하무이랑 짰더니 결국 원하던 대로 되긴 됐다.
출연료 상승이랑 스태프 임금 상승 그리고 이미지까지. 그런데 영 기분이 낚인 것 같단 말이지.
“너 괜찮아? 많이 아파?”
“다들 할 일 없네. 빨리 가서 기자들한테 보도 자료나 뿌려. 국민배우 차은성이가 출연료 깎아서 스태프들 임금 챙겨줬다고.”
“…….”
따지자면 출연료 떼 준 건 아니지만…….
순간 회사 직원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쟤가 죽을 때가 됐거나, 아니면-
‘하무영이 시켰나? 어쩐지.’
‘하무영이랑 짰나 보네. 30% 부를 때부터 알아볼걸.’
‘하무영이구나. 와. 걔도 진짜 대단하다.’
뒤에 누군가 있다고.
물론 회사 직원들뿐만 아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스태프들도 속으로는 무영이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