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8)
신인인데 천만배우 18화
왔다!
서울시 미튜브에 웹드라마가 게시되던 그 시각.
무영은 피곤한 발걸음으로 기숙사 계단을 올랐다. 개강한 지 벌써 보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야 오게 되다니.
‘참 바쁘게 살았구나.’
촬영하느라 일주일. 엔빈의 옆을 지키느라 일주일. 이대로 가다간 장학금은 물 건너갈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휴학이라도 해야 하나?
딸깍.
무영의 어깨처럼 힘없이 돌아가는 501호 손잡이. 그러나 그 틈으로 들리는 소리는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아니! N30이라고!”
“보급 떨어진다. 먹으러 갈래?”
“미쳤네. 자기장 오는데 무슨! 악! 나 맞았다!”
“살려! 살려! 뚝배기!”
각자의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는 세 남자. 무영이 들어온 줄도 모른 채 열중이었다.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무영은 자신의 책상에 잡동사니가 쌓인 것을 발견했다.
‘뭐지?’
전공 서적과 온갖 종이도 함께.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상을 살폈다.
‘아하. 기숙사에서 나눠준 거구나. 좋네.’
기본적인 비누와 칫솔 등등. 무영이 없어서 룸메이트들이 대신 받아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주인 없는 책상을 그들의 여분 자리로 쓰는 듯싶었다.
“안녕하세요?”
다들 게임 화면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빛. 헤드셋에서 나오는 빵빵한 사운드에 무영의 인사가 씹혔다. 표정을 보아 곧 막바지인 모양이다. 비장, 그 자체.
“이거 못 이기면 아이디 삭제하자.”
“당연하지.”
“다 죽여어어!”
건들면 안 되겠구나, 무영은 의자에 앉아 발만 까딱거렸다. 그때, 자신의 책상에 놓여 있던 종이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도란 Dohran 창작극: 인간 홈쇼핑]도란이라 하면 오리엔테이션 날 봤던 연극 동아리잖아? 무영은 룸메이트들을 기다릴 겸, 종이를 뒤적거렸다.
‘아직 시놉시스에 가깝네? 근데 왜 이렇게 두꺼워?’
[은둔형 외톨이인 중년 여성. 집 밖에 안 나간 지 어언 십 년째. 가족들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낙은 홈쇼핑. 편안하게 손가락만 까딱거리면 세상의 모든 것이 집으로 배송되니까, 이 얼마나 편하단 말인가? 집에는 포장도 안 뜯은 상자가 쌓여만 가고, 더는 살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채널에서 방영되는 홈쇼핑을 보게 되는데- 사람도 팝니다?]홈쇼핑에 ‘상품’으로 나온 사람은 젊은 남녀와 늙은 남녀, 총 네 명. 중간중간 생략되어 있으나, 마지막에 스포일러성 멘트가 적혀 있었다.
[이들은 어린 시절의 주인공, 아들, 남편 그리고 노년의 주인공이었다. 홈쇼핑의 상품 소개로 그들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허무한 인생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는 내용으로 기획.]‘어디에 내려고 하는 건가?’
일목요연하게 극의 목적과 방향성 그리고 시사점 등을 적는 칸이 나누어져 있었다. 아직 전체적으로 미완성이지만, 무영이 느낀 점은…….
‘재미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소재도 소재이거니와, 일단 글을 잘 쓴다. 초반부의 짤막한 대본으로도 극의 분위기와 연출 따위가 생생하게 그려지니까. 게다가 줄거리 자체가 연극으로 풀기 딱 좋은 내용이다.
“우아아아! 치킨! 치킨!”
“일등이닭!”
“11킬이나 했다. 미쳤네. 캐리 인정?”
월드컵 골이 들어간 것처럼 우렁찬 환호성. 무영은 깜짝 놀라 시놉시스 뭉치를 놓치고 말았다.
차라락-
종이가 부드럽게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제야 룸메이트들은 무영을 발견했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 다들 꽤 즐거워 보이는군.
“흐억! 누, 누구세요?”
“앗 깜짝이야!”
무영은 웃으며 종이를 주웠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리키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 하무영입니다.”
“하무영? 오오! 막내! 드디어 왔다!”
“난 퇴소한 줄 알았네. 언제 왔어?”
“아까 왔는데 다들 집중하시길래.”
최환과 박문성은 무영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하지만 봉군은 눈만 게슴츠레 뜨며 그를 뜯어본다.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으니 분명 어디서 봤는데?
“도란 부스에서 홍보하시던 분 맞죠?”
“아!”
무영의 말에 번개처럼 내려꽂히는 기억. 오리엔테이션 때 봤던 그 멀끔한 신입생 아닌가! 봉군은 너무 놀라 벌떡 일어섰다.
“이야! 이렇게 보네?”
“뭔데? 둘이 아는 사이?”
“오티 때 얼굴 봤지.”
참 신기한 인연이었다. 꽤 인상 깊다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같은 기숙사를 쓰게 될 줄이야! 무영 역시 동감하는지 머쓱하게 웃었다.
“이거 봐서 죄송해요. 책상 위에 놓여 있길래.”
“응? 아아. 괜찮아.”
“미안. 자리 치워줄게. 책상 수납이 은근 부족해서, 좀 빌려 썼다. 아 참. 거기 생필품은 학생회에서 나눠준 거야.”
“네. 감사합니다.”
셋은 부산하게 무영의 자리에서 짐을 뺐다.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시놉시스를 쳐다보던 봉군. 넌지시 무영에게 물었다.
“근데 이거 다 읽었어?”
뭐랄까. 운명의 계시라고 해야 하나. 지금 쓰면서 문제가 되는 젊은 남자, 그러니까 주인공의 아들 역 캐릭터가 안 잡히는 참이었다.
그런데 인물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인상의 그가 다시금 제 눈앞에 나타났으니!
“네. 역시 곤란하시죠?”
“아니아니. 그런 건 아닌데. 어떻디?”
“어떻냐고 물어보시면…….”
“그냥 개인적인 감상.”
봉군이 왜 저러나, 최환과 박문성은 서로 힐끔거리며 눈치를 주고받았다. 본인들에겐 감상은커녕 내용도 말 안 해주는 녀석이.
“재미있던데요?”
“그게 끝?”
“소재가 연극에 최적화되었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인물들의 비밀 역시 흥미로운 편이고요. 근데…….”
무영은 옷가지를 정리하다 멈칫거렸다.
주인공을 비롯해 다른 인물은 개성이 뚜렷한데, 어찌 젊은 남자만 무채색처럼 흐릿한 느낌이었으니까. 무영은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봉군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고 에둘러 말했다.
“아들 역은 설정을 덜 짜셨나 봐요.”
“……어. 티가 나?”
무영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첫 만남인지라 그의 성격을 파악할 수 없었으니.
“홈쇼핑이라는 분위기가 밝고 활기차다 보니 그걸 누르려고 인물들이 무거운 건 느껴졌거든요. 근데 반대로 유쾌하고 희극적인 걸 살리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아들이 비어 있으니 그쪽을 활용해 보면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활짝, 눈매가 가늘어지게 웃었다.
봉군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객석 위에 서 있는 무영이 상상되었다.
팔려가면 어떻게 될 줄도 모르고, 홈쇼핑 프레임 안에서 순수하게 자신을 PR하는…….
“막내 혹시 국문과야? 봉군 후배?”
“아니요. 전 글로벌문화학과요.”
“근데 말하는 게 짬바가 좀 있다?”
“책을 좋아하긴 해요.”
최환의 말에 무영은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오디션에서도 그 얘길 들은 적 있는데, 혹시 이쪽으로도 재능이 있는 걸까? ‘인물’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느 정도 감각이 있는 걸지도.
“그러지 말고, 저녁 안 먹었지?”
“네. 방금 들어와서요.”
“나가자. 후문에 치킨 맛있는 데 있어. 오늘은 치킨이닭! 소맥 거하게 말아보자고! 막내 너 오는 거 얼마나 기다렸는데!”
“맞아. 무슨 일을 하기에 기숙사에 안 들어와?”
“안 돼! 말하지 마! 자세한 건 술 먹으면서 들을 거니까. 으흐흐.”
박문성이 신명 나게 스텝을 밟으며 웃옷을 챙겼다. 게임에서 이긴 게 그렇게 좋은 일인가?
“봉군. 너도 갈 거지? 막내 환영식.”
“아니. 너희끼리 먹어.”
“아 왜애-!”
“글 쓰고 싶어졌어.”
봉군은 그렇게 말하며 헤드셋을 다시 꼈다. 이번에는 게임 소리가 아닌 홈쇼핑 오프닝 음악이 빵빵하게 울렸다.
“어…….”
“괜찮아. 쟤 자주 저래. 삘 받으면 샤워하다가도 맨몸으로 나와서 글 쓰거든. 우리끼리 가자.”
무영이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빡이자, 최환은 막내의 등을 밀며 웃기만 했다.
타악!
기숙사 문이 닫히고, 봉군은 끝없이 솟아오르는 영감에 집중했다. 물론, 그 영감의 원천은 무영의 미소.
그날 밤은 특별했다.
타닥타닥-
‘대한대학문학상’의 19회 수상작이며 훗날 대학로에서 메가 히트 치는 연극의 탄생일. 그리고 무영의 첫 영상이 업로드된 밤이었기 때문이다.
“자자! 마셔! 막내!”
“와따. 꿀떡꿀떡 잘 마시네.”
“웹드라마 촬영? 그래. 어쩐지 때깔이 곱다 그랬어. 키도 크고. 앞으로 배우 할 생각인 거?”
무엇보다, 무영의 인생 처음 고주망태가 된 날이기도 했다.
* * *
“우욱-”
무영은 강의실 복도 코너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올렸다. 미친 사람들 같으니라고. 어떻게 이틀 연달아 술을 퍼마실 수 있단 말인가.
‘형들은 막학기라 수업도 별로 없으면서.’
무영이 기어서 겨우 등교할 동안, 그들은 여전히 침대에서 꿀잠을 자는 중이었다. 그래도 뭐…….
‘재미는 있었어.’
술이라는 게 그렇게 사람 기분을 좋게 하는구나, 처음 알았다. 후폭풍이 심해서 그렇지 아주 색다른 경험인 건 틀림없다.
끼익-
무영은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붙잡으며 강의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이거 봤어?”
“어. 걔 맞지?”
“대박이네. 이런 쪽으로 나가려는 건가?”
“연기 잘하더라. 엔빈이랑 같이 있어도 전혀 안 꿀리던데?”
웅성웅성. 소란스럽다기보다 뭔가 묘하게 들떠 있는 공기. 무영은 이상함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했다. 신경 쓸 체력이 없었거든.
“하무영!”
그때, 과대와 그 무리 친구들이 무영을 불렀다. 순식간에 강의실에 있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너 뭐야?”
“왜? 아직도 냄새나?”
술 냄새 뺀다고 뺐는데…….
무영은 소매를 들어 킁킁거렸다. 얘가 무슨 헛소리인가, 싶은 과대의 표정, 그는 흥분해서 제 휴대폰을 보여줬다.
“미튜브 실시간 인기상승 동영상 1위! 이거 너잖아!”
서울시 계정으로 올라간 웹드라마.
엔빈과 무영의 얼굴이 썸네일로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다.
이틀 연달아 술 마신다고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 무영이 깜짝 놀라 웃음을 터뜨리자, 과대가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뭔데! 너 뭔데!”
“아 잠깐만 나 속이-”
“이거 벌써 70만 조회수 찍은 거 알아? 그나저나 엔빈 실물은 어때? 아 빨리 말해봐!”
휘청휘청, 과대가 흔들자 무영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우욱-!”
“하무영! 얌마!”
궁금해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무영은 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러니까 흔들기는 왜 흔드냐고! 무영이 속을 게워내는 동안 울리는 휴대폰.
지이잉. 지이잉.
스퀘어필름사의 팀장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