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82)
신인인데 천만배우 182화
종방연
“전하.”
서릿발이 서는 1월이었다.
중종은 따끈한 차 한 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를 부르는 소리에 말간 눈을 들어보였다.
“조광조가 사사하였다고 하옵니다.”
승지는 제 군주의 얼굴을 살폈다. 필시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기뻐하시려나, 아니면 일말의 추억이라도 남아 아쉬워하시려나.
“그래.”
하지만 중종의 대답은 그것이 다였다. 되려 승지가 못다 한 말이 있다는 듯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마지막은 어떠하였는가?”
그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건가. 중종은 차를 입에 머금으며 물었다.
“예. 전하. 금부도사가 전하기를 자신이 죽으면 먼 길 가기 어렵지 않게 관을 얇게 만들라 하더이다.”
승지의 말에 중종이 가볍게 웃었다. 실로 그에게 잘 어울리는 마지막이었다.
창문 틈으로 글 쓰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리 후, 사약을 연거푸 마셔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허고?”
“전하의 편지를 찾았다고 하옵니다.”
“……내 친히 보내주지 않았는가.”
“송구하옵니다.”
중종이 보낸 것은 편지라기보다 쪽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즐거웠노라고, 쉬이 거닐다 가시라고.
하나, 조광조의 아쉬움을 달래주기에는 너무 짧았나 보다.
“물러가게.”
승지가 조용히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조용한 방에서, 중종은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그때와 같은 날이다. 조광조에게 처음으로 배신감을 느꼈던, 그날의 겨울.
‘조금 더 길게 써줄 걸 그랬다.’
그날은 조광조가 있었지만, 이날은 혼자였다.
소복소복. 송이 눈이 다시 세상을 덮으려 하고 있었다. 중종은 무던한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뒤로 그날과 같이, 햇빛 담은 눈 가지가 흩날렸다.
따라라-
구슬피 우는 현악기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왕은 시선을 돌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진짜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고생하셨습니다!”
“우아아아! 끝났다!”
마지막 화까지 완벽하게 마친 무영. 진짜 끝이라는 생각에 시원섭섭한 기분이 몰아쳤다.
스태프들이 죄다 달려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감사와 위로를 전했다. 향기 가득한 꽃다발은 덤이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우리야말로 고맙지. 무영 씨 덕분에 얼마나 좋은 일이 많았어? 안 그래?”
“그럼요. 그럼요.”
“이구. 여름에 겨울 장면 찍느라고 진짜 힘들었지?”
이제 [칼날의 궤> 촬영은 없다.
뒤풀이가 남아 있긴 하지만 현장 스태프가 모두 참여할지는 모를 일이다. 무영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아가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감사했어요.”
“어머! 계탔네! 무영이랑 안아도 보고!”
“실장님도 안아드릴게요.”
“아이구. 간지러-!”
“아하하하! 감독님 부끄러워하시네.”
세상에 이런 배우가 또 있을까?
스태프들은 무영이와 헤어질 생각에 괜히 코가 찡해졌다. 아직 연차가 얼마 되지 않아 때가 덜 탔는지, 아니면 원래 이런 건지 모를 일이다.
다만,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무영아. 언제나 이렇게 지내. 알았지?”
변하지 말 것. 무영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현장이 정리되고, 무영은 옷을 갈아입으며 고경민에게 물었다.
“형. 종방연 날짜는 잡혔어요?”
“응. 마지막 회 방송되는 날 저녁. 회식하면서 같이 챙겨볼 것 같아.”
“오오. 그거 좋다.”
차은성은 극 중에서 먼저 죽었기 때문에 무영보다 일찍 마지막 촬영을 마쳤다. 화장까지 대충 지운 무영이 옷가지를 챙겼다.
“이번 달까지만 좀 바쁘고 다음 달은 뭐 없죠?”
“그렇지? 아. 차은성 쪽이랑 예능, 광고 조율은 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어서. 확정 나는 대로 알려줄게.”
[칼날의 궤>가 워낙 초대박인지라 여기저기서 콜이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인터뷰를 제외하고서 딱히 뭔가를 한 게 없었다.후반부의 쪽대본과 사극이라는 장르 특성상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주에 아시아 영화제 가면 끝. 보라랑 둘이서 갈 것 같아. 그 외에는 푹 쉬어. 고생 많았어.”
“알겠습니다앙. 형도 고생 많았어요.”
둘은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퇴근 발걸음을 옮겼다.
오고 가는 사이 쏟아지는 스태프의 인사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화답해주는 무영.
덕분에 건물 빠져나오는 데만 삼십 분이 넘게 걸렸다.
“후아.”
“집으로 가면 되지?”
“넵.”
무영은 시트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좀 잘까 고민하던 차, 휴대폰이 울렸다.
[유나: 오빠 뭐 해?]“오잉?”
유나네? 무슨 일이지?
뜻밖의 발신자에 무영은 고민 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유나!”
-오빠?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
오랜만에 듣는 아이의 목소리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고경민 역시 무영이 편히 통화할 수 있도록 음악 소리를 줄여줬다.
“나 이제 퇴근해. 무슨 일이야? 밥은 먹었고?”
-시간이 몇 신데, 먹었지. 바로 전화를 다 하네. 안 바빠?
“[칼날의 궤> 드라마 곧 있으면 종방연이거든. 이제 좀 널널해. 왜?”
아이는 잠시 뜸을 들였다. 무영은 참을성 있게 유나의 말을 기다렸고, 이내 조심스러운 초대가 들려왔다.
-다음 주에 우리 학교 문화제 하는데 놀러 올래?
“다음 주? 무슨 요일?”
-수요일.
“형. 아시아 영화제 무슨 요일이에요?”
“금토일.”
시간이 겹치지 않는다. 다행이었다.
무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 갈게. 유나도 뭐 하는 거야?”
-반 애들이랑 연극해. 내가 주인공이야.
“와. 역시 대단하네. 꼭 보러 갈게. 문자로 장소랑 시간 좀 남겨줘.”
-……응. 고마워. 그럼 끊을게.
“어? 유나야?”
무영은 반사적으로 아이를 붙들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유나의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응. 아니야. 오빠도 어서 쉬어. 나도 숙제 하던 중이었어. 문자 바로 보낼게.
뚝.
이상하다…….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꺼진 휴대폰 화면을 쳐다봤다. 고경민이 백미러로 그를 힐끔거렸다.
“유유나 무슨 일 있대?”
“학교에서 문화제 한다고 놀러 오라는데, 목소리가 영 안 좋네요.”
“그래? 밤이라 피곤한 거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가서 직접 물어봐야겠다.
무영은 그렇게 다짐하며 창가에 이마를 대었다. 기분 좋게 시원한 감각이 피부를 통해 스며들었다. 옆에 놓인 꽃다발에서 꽃냄새까지 솔솔 올라왔다.
부우웅-
단번에 잠에 빠져든 무영. 고경민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도시의 밤을 가로질렀다.
* * *
그렇게 종방연 날이 성큼 다가왔다.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무영이 바깥을 보고 굳어버렸다.
“……와. 사람 엄청 많네.”
[너는 별, 나는 별> 때도 만만치 않다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교통이 마비될 정도여서 경찰들이 차선 정리를 하고 있었으니까.“다들 어떻게 알았지? 제작사 측에서 종방연 장소 안 알려줬다 하던데.”
“괜히 기자들이겠냐? 다 알음알음 오는 거지.”
“알음알음치고는 너무 많아요.”
기자들뿐만 아니었다.
팬분들 역시 좌우로 군중을 형성해 출연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운 날인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모여서들…….
“완전 감동.”
무영이 눈을 초롱거리며 중얼거렸다.
사실 드라마 인기를 크게 체감하지 못했었다. 인지도야 원래 사람들이 곧잘 알아봤으며, 예능이나 광고도 촬영 때문에 미뤘으니까.
수치화된 시청률 외에는 이렇다 할 지표가 없었던 것이다.
“무영아 저것 봐라.”
고경민의 시선을 따라 무영이 대로변 반대쪽을 쳐다봤다. 종방연이 있을 건물 맞은편 전광판에 큼지막이 박혀 있는 무영과 은성의 얼굴.
[[칼날의 궤> 드라마 종영을 축하합니다. 새로운 역사가 그대들의 손에서 피었습니다.]‘은성나라X무영문화재’의 이름으로 걸린 광고였다. 무영은 황홀하게 그것만 올려다봤다.
진짜 좋은 작품을 만났구나, 싶은 생각이 넘쳐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무영아. 이제 우리 나가야 할 차례.”
“아. 네. 잠시만요.”
무영이 전광판을 사진으로 남기는 동안, 옆에 앉은 코디가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리해 줬다. 다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무영이 차 문을 열었다.
드르륵-
찰칵-! 찰칵!
“어! 하무영이다!”
“하무영 도착했습니다!”
“무영아아앍-! 나 죽는다아아!”
“칼날궤 종방연 축하드립니다. 소감 말해주세요!”
“뒤에 그만 좀 미세요! 진짜 숨막히니까!”
“오늘이 마지막 방송인데 시청률 40% 넘을 것 같습니까?”
“어이없네.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냐!?”
“무영 씨~ 여기 봐주세요!”
찰칵-! 찰칵!
펑! 퍼엉!
기자와 팬분들의 소란이 뒤섞여 혼잡했다. 무영은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건물 안쪽으로 들어섰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영은 거의 눈을 감은 채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무영아! 이거 받아줘!”
“무영씨! 저 지킴이에요!”
사람들 사이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손들. 무영은 가볍게 하이터치를 해주거나 팬레터를 받았다. 아쉽지만 너무 큰 선물은 받을 수가 없었다.
“죄송해요. 손이 없어서.”
“받아줘- 아아아-”
“형! 잠시만!”
그의 뒤를 따라오는 고경민이 매니저인 것을 알아챈 팬들이 그쪽으로 선물을 넘겨줬다.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현장이었다. 무영은 한가득 꽃다발과 편지를 들고서 포토라인에 섰다.
“무영 씨! 왼쪽 보실게요!”
“정면, 오른쪽!”
“소감 한마디 해주세요!”
이쯤 하니 민망하기까지 했다. 무슨 국가대표가 환영받는 것처럼 열광해주시니 말이다. 무영은 마이크 더미를 들고서 간단히 인사했다.
“[칼날의 궤> 중종을 맡은 하무영입니다. 많은 사랑 정말 감사드리고, 좋은 경험 선사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들 좋은 저녁 되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경호원들 사이에 끼어서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도착한 상태였다.
“아이구. 드디어 다 왔네.”
“제가 마지막이에요? 헐. 죄송합니다.”
“아냐아냐. 다들 막 도착했어.”
넓은 고깃집을 통째로 빌려 벽에는 프로젝터까지 설치해 뒀다. [칼날의 궤> 본방 사수를 다 같이 하기 위해서 가져온 것 같다. 무영은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차은성 맞은 편에 앉았다.
“형. 밖에 전광판 봤어요?”
“내 사진이 너무 못나게 나왔어.”
“엥? 엄청 잘 나왔던데?”
오랜만에 만났지만 마치 어제도 만난 것처럼, 두 사람은 인사를 생략하고 떠들어댔다. 잠시 후 고기와 술이 테이블에 세팅되고, 피디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이렇게 나서서 말하는 재주는 없지만, 명색이 종방연인데 시작은 정식으로 해야겠죠?”
“와아아아!”
스태프들이 분위기를 띄어주며 환호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들 너무 잘 해줘서 좋은 작품 만들 수 있었어요. 피디로서 일생일대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때, 무영은 맞은편 대각선에 앉아 있는 유찬과 눈이 마주쳤다. 일단 먹고 나중에 만나자는 무언의 눈빛이 오갔다.
“그럼 주연배우 두 사람 인사도 들어봐야죠?”
“차은성! 차은성!”
그런 건 질색이라는 듯 차은성이 손을 내저었지만, 어쩌겠는가. 분위기가 이런데.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다들 잘 지내세요.”
“저도요! 다들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좋은 기회가 있다면 또 뵙고 싶네요. 은성이 형이랑 저 이끄신다고 고생 많으셨어요.”
사회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차은성의 인사에 무영이 불쑥 끼어들어 마무리했다. 다들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고, 본격적인 회식이 시작됐다.
“무영 씨 술 먹어? 술 약하다며?”
“감독님이 주시는데 당연히 먹어야죠! 오늘은 괜찮아요.”
“한잔해!”
“또 드릴까요?”
주거니 받거니, 소주잔을 서로 비워가며 아쉬움을 달래는 사람들. 테이블 옆으로 빈 병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불판의 열기와 더불어 그들의 얼굴이 죄다 붉어졌다.
다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랐을 때쯤.
드디어 [칼날의 궤> 마지막 방송이 나왔다.
드라마를 배경 음악 삼아, 그들은 술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직 차은성만 가만히 집중해 화면을 지켜봤다.
“은성 씨. 한 잔……!”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치던 피디가 놀라서 멈췄다.
무영이 역시 사이다로 목을 축이다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헐! 형 운다!”
“뭐? 차은성 울어?”
“아니거든? 돌았냐? 술 취했어?”
“술은 형이 취했네. 와! 은성이 형 운다!”
“차은성이 운다고?”
“시상식에서도 안 울던 사람이? 오늘 로또 사자.”
눈가가 벌게져서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건수 물었다는 듯, 무영이 이리저리 소리쳤다.
다들 그가 우는 걸 구경하러 모여들었고 차은성은 씩씩대며 숟가락을 휘둘렀다.
“뭘 봐들! 가서 마저 먹어!”
“운데요~! 운데요~!”
“하무영 너 이리 와.”
“앗. 죄송합니다.”
다들 왁자지껄하게 술자리를 즐겼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새벽이 가도록 꺼질 줄 몰랐고, 구석에 박힌 피디의 휴대폰으로 시청률 집계가 날아온 것도 아침이 돼서야 발견되었다.
J사 역사상 처음으로 시청률 40%가 돌파한 드라마의 탄생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