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83)
신인인데 천만배우 183화
학교 생활
조용한 오후 즈음.
민정초등학교 안으로 검은색 밴이 들어섰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지만 워낙에 훤칠한 키인지라, 경비가 고개까지 내밀며 그들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동생 보러 왔어요. 간식 배달이요.”
“몇 학년 몇 반이요?”
“5학년이던가?”
“고학년은 반대쪽 동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더운데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무영은 경비에게도 시원한 음료와 간식거리를 건넸다.
두 손 가득 간식거리를 든 고경민이 낑낑대며 앞장섰다. 무영 역시 양손에 짐이 한가득이었다.
“문화제는 이틀 후라면서 왜 오늘 와?”
“그냥요. 유나 얼굴 빨리 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때는 학교에 손님이 많다니까 정신없을 거 아니에요.”
무영은 경비가 알려준 방향을 따라 걸었다. 사립초등학교답게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였다.
학군 좋은 데라더니, 교정이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남달랐다.
“진짜 친오빠도 이렇겐 안 챙긴다.”
“친오빠가 아니니까 이렇게라도 얼굴 봐야죠.”
“유나네 어머님은 뭐라셔?”
“그냥, 고마워하시죠. 뭐.”
유나에게만 비밀인 서프라이즈였다. 어머니는 간식비를 보태겠노라 말했지만, 무영은 거절했다. 온전한 자신의 선물이고 싶다며.
“어머!”
“어? 유나 담임 선생님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어머어머. 세상에!”
유나의 담임 선생님 역시 연락을 받고서 미리 나와 있었다. 그녀는 무영이를 알아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드라마 정말 잘 봤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가족도 다 무영 씨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제가 괜히 방해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아뇨. 무슨 말씀을요. 요즘 문화제 준비한다고 다 애들끼리만 진행해요. 학교가 자율성을 추구하는 터라. 방학처럼 편하죠. 저희는.”
그녀는 교실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조잘조잘, 학교에 대해 소개하면서도 유나가 얼마나 똘똘하고 야무진 아이인지 칭찬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사회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참 달라요. 워낙 똑똑하기도 하고요.”
“유나 부모님이 들으시면 좋아하시겠어요.”
“조만간 학부모 상담주간이라, 그때 뵐 것 같네요. 여기에요. 5학년 2반. 잠시만요.”
담임은 장난스러운 눈짓을 보인 다음, 교실로 쏙 들어갔다. 작은 창으로 보이는 안쪽 풍경은 굉장히 시끌벅적했다. 책걸상이 뒤로 싹 밀린 다음, 넓은 공간에서 애들끼리 무대 소품을 만드는 중이었다.
“자! 다들 잘하고 있었어요?”
“선생님! 김민찬이 자꾸 박스 잘라요!”
“이것 보세요. 색깔 진짜 예쁘죠?”
“와아. 잘했네. 자자. 오늘 여러분에게 온 선물이 있어요.”
담임이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동안, 무영과 고경민은 유나를 찾았다. 고작 스무 명 남짓인 아이들 사이에서, 이상하게 유나의 존재감이 희미했다.
‘그럴 애가 아닌데.’
현장에서 어른들도 휘어잡던 유나 아니던가.
눈에 띄어야 할 터인데, 어찌 된 일인지 쉽지 않았다. 무영은 잠시 헤맨 다음에야 교실 맨 뒤 구석에서 가위질하는 유나를 발견했다.
친구들이 신나서 떠들든, 담임이 뭐라 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무덤덤하게, 기계적으로 손을 놀리고 있었다.
“우리 5학년 2반이 문화제 준비 너무 잘한다고 소문나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 간식을 사 오셨지 뭐예요?”
드르륵-
담임이 박수까지 치며 호응을 유도했다. 무영은 쑥스럽다는 듯 문을 열고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어? 하무영이다!”
“하무영이다!”
“와아아아!”
“헐! 대박!”
바로 알아챈 몇몇 아이들이 까무러치며 소리쳤다. 일순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란이 가득 차올랐다. 신기하다는 듯 모여들어 자신을 구경하는 아이들. 고경민이 간식 봉투를 내밀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유나야. 안녕.”
무영은 아이들을 대하는 와중에도 유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놀래서 가위를 툭, 떨어뜨리는 유나. 무영은 제 몸통으로 기어오르려는 한 아이를 떼어내며 말했다.
“유나야.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먼저 왔어.”
그러자 애들이 단박에 반박했다.
하도 소리 질러대는 통에 귀가 조금 아플 정도였다.
“유유나 친오빠 아니잖아요?”
“음? 그래도 그만큼 친한데?”
“진짜 유유나랑 친해요? 연기하는 거 아니에요?”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해?”
“그거야 유유나가 연기하는 애니까!”
“맞아. 거짓말 잘하잖아요~”
좀 혼란스러웠다. 담임이 책상 위 종을 치며 아이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경민이 간식을 나눠주자 겨우 흩어졌다.
타닥-!
유나는 말없이 무영에게 뛰어와 안겼다.
[역병> 찍을 때보다 확실히 더 큰 것 같다. 눈 깜짝하면 큰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유나는 무영의 허리춤에 머리를 비비더니 굉장히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빠. 너무 보고 싶었어.”
“응응. 나도.”
그리고 유나는 뒤를 휙 돌며, 불특정 다수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봤지? 나 무영이 오빠랑 되게 친해.”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말투였다. 이들은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고, 유나는 더더욱 무영의 팔을 세게 붙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무영이 기대한 유나의 학교생활과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다.
“……유나도 간식 먹어. 유나 좋아하는 거로 사왔어.”
“삼촌, 싸인해 주세요!”
“우리 할머니가 엄청 팬이에요. 맨날 사극 본다고 리모컨 안 줘요!”
“사진 찍어도 돼요?”
“야! 너 휴대폰 안 냈냐?”
다시금 무영을 에워싸는 아이들. 유나는 뭔가 분한지 입술을 잘근거렸다. 무영은 유나에게 손짓하며 신호를 보냈다.
‘끝나고 같이 가자. 데려다줄게.’
그의 말을 알아챈 유나가 얌전히 뒤로 물러섰다.
자유롭게 문화제를 준비하는 시간이라, 옆 반 아이들까지 조금씩 가세했다.
무영은 선 자리에서 어린 팬들에게 싸인과 사진을 찍어줬고, 종례를 해야 한다는 담임의 말에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자자! 그만!”
“아, 쌤 저 아직 사진 못 찍었어요!”
“여기까지! 하무영 씨도 굉장히 바쁜 사람이라서 이제 가셔야 해요. 그렇죠?”
찡긋찡긋. 담임의 말에 무영이 두 손을 흔들었다.
“네에. 미안해요. 문화제 때 또 만나요. 그럼 간식 맛있게 먹고~ 다들 파이팅!”
“파이팅!”
“와아아!”
드르륵-
탁!
교문을 닫은 무영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고경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들이 떼거지로 덤비니 진짜 속수무책으로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형 피곤하시죠?”
“응? 아녀아녀.”
“먼저 차에 가서 쉬세요. 유나 집 근처라고 하니, 데려다주고 갈게요.”
“그, 그럴까?”
고경민은 식은땀을 닦으며 웃었다.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 주차장으로 향했고, 무영은 조용해진 교정을 거닐며 학교를 구경했다.
띵동- 댕동-
참으로 정겨운 종소리였다.
무영이 교정에 앉아 유나의 연락을 기다리는데, 뒤에서 아이들이 조잘거리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아까 2반에 하무영 왔다?”
“헐! 진짜? 나 못 봤는데! 왜 왔대?”
“유유나 보려고 왔나 봐.”
“와. 친하다고 하던데 진짜였네.”
“그러니까. 이새임이 거짓말이라면서 대놓고 뭐라 했었잖아. 쪽팔리겠다.”
무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영이랑 유나가 영화를 같이 찍은 건 학교 친구들이면 다 알 텐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둘이 똑같지 뭐. 유유나 걔도 맨날 상 받을 거라 해놓고 하나도 못 받았잖아. 어디 드라마 나온다고 자랑하더만 그것도 거짓말이고.”
드라마 캐스팅 단계에서 엎어지는 건 밥 먹듯 일어나는 일이었다.
유나는 일상을 얘기했는데, 친구들이 받아들이기엔 거짓말처럼 들렸나 보다.
“어쨌거나 난 유유나 싫어. 맨날 얘기할 때 사람 깔보듯이 말하잖아. 지가 뭐 얼마나 잘났다고.”
“이번에 연극도 주인공 하고 싶은 애들 많았는데 선생님이 유유나 시킨 거래.”
“짜증. 유유나랑 같은 반 안 된 게 다행이다. 진짜.”
무영은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현장과 달리 아이의 학교 생활은 별로 순탄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담임도 모르는 눈치고, 혹시 부모님은 아실까?
지이잉-
[오빠. 나 지금 끝났어. 어디야?] [뒷문 근처 개수대에 앉아 있어.]무영이 답장하자, 얼마 안 가 유나가 가방을 맨 채 달려왔다. 교실에서 봤던 얼굴이 아니었다. 생기가 가득 돌고 언제나 반짝이는 유나로 돌아왔다.
“오-빠!”
와락 안기는 모습이 변함없다.
무영은 유나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물었다.
“다 끝났어?”
“응응. 원래 엄마가 맨날 데리러 왔는데!”
“오늘은 내가 데려다줄게.”
“오예!”
유나가 무영의 손을 힘차게 흔들며 웃었다.
“문화제 준비는 좀 어때? 내일 잘 할수 있겠어?”
“……그냥 뭐. 애들 하는 게 그렇지.”
“너도 애인데요?”
“…….”
문화제 얘기를 꺼내자 눈에 띄게 아이의 텐션이 꺾였다. 조용히 하굣길을 걷던 두 사람. 유나가 드디어 입을 뗐다.
“간식은 왜 사 왔어?”
“원래 학교 올 때는 그런 거 사 오는 거야.”
“괜히 걔들 배만 불리고.”
“걔들? 친구들?”
“친구 아니야. 그냥 같은 반 애들이지.”
아이가 물끄러미 무영을 올려다봤다.
“오빠가 사준 간식 걔들이 먹는 거 싫어. 짜증 나.”
부정을 넘어 적대적인 감정까지 느껴졌다.
무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려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그리고 유나에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 우리끼리만 뭐 먹을까?”
유나 앞에는 초코파르페가, 무영의 앞에는 아메리카노가 놓였다. 아이가 그걸 보더니 물었다.
“오빠 원래 커피 안 마시잖아.”
“그랬는데, 일하다 보니 안 마실 수가 없더라.”
“……바쁜데 와줘서 고마워.”
“유나 못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못 참겠더라.”
둘은 또 한참이나 침묵했다. 아이는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고, 무영은 뭔가를 듣고 싶어 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애들이랑 사이좋아?”
어쩔 수 없이 무영이 먼저 물었다.
유나의 고개가 단박에 가로 저었다.
“아니. 다들 바보 같아서 말도 섞기 싫어.”
“왜?”
“먼저 이것저것 물어봐 놓고 말해주면 나중에 꼭 뭐라 해. 거짓말쟁이라면서. 드라마 캐스팅된 거 진짠데…… 제작만 뒤로 밀렸단 말이야.”
“알지. 그런 경우 많지.”
“그리고 내가 너무 잘나가서 싫나 봐.”
훅 들어온 말에 무영은 뭐라 대꾸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아이는 대답 따위 관심 없었는지, 담아뒀던 울분을 토해냈다.
“내가 못생겼대. 그래서 앞으로 배우 못 할 거래.”
“누가 그래?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러니까! 운 좋게 뜬 거라 조금 있으면 퇴물 소리 들을 거라 그랬어. 아직 학교도 졸업 안 했는데 그게 무슨 헛소리인지! 문화제 주인공도 내가 연예인이라 특혜받은 거라고.”
유나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씩씩하게 입술을 깨물며 막아보려 하지만, 한 번 틀어진 감정의 수도꼭지가 쉬이 잠기겠는가.
“나보고 연기 못 한대.”
“말도 안 돼.”
“자기들이 그렇게 나오는데 내가 제대로 할 수 있겠어? 그리고 김민재가 나 좋아하는 게 내 탓이야? 그런 띨띨이는 줘도 안 가져!”
“오오. 인기 많구나, 유나.”
“실내화 숨기고 쓰레기 가방에 넣어놓고…… 유치해서 못 봐주겠어. 오빠랑 친하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믿고…… 우리 엄마보고 돈독 올랐다 하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결국 굵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아이는 끅끅 참으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런 일에 우는 것 자체가 수치라는 듯. 무영은 다정하게 파르페를 떠서 유나의 입에 넣어줬다.
“울지 마. 괜찮아.”
“바보들-! 똥멍청이들! 으아앙!”
“에구. 예쁜 얼굴 엉망된다.”
차라리 어른들만 잔뜩 있는 현장이 낫다.
학교에서는 제 또래 아이들과 한나절을 같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유나라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하루 이틀인가?
“빨리 졸업하고 싶어. 중학교는 엄마가 홈스쿨 하자 그랬거든.”
무영은 말없이 계속해서 아이의 등을 토닥여줬다. 유나는 형형하게 빛나는 눈을 부라리며 중얼거렸다.
“바보들 사이에 있으려니 나까지 바보가 되는 것 같아.”
힘들긴 하지만 기는 안 죽은 모양이다.
무영은 그런 아이의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다시금 파르페를 먹여주며 물었다. 눈물 뚝뚝 흘리면서도 야무지게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거 계속 끙끙 앓고 지냈지?”
“말해서 뭐 해? 바보들인데.”
유나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바보들일수록 말 안 하면 모른다? 유유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지 그랬어. 답답했겠다.”
“……심장이 콱 막혀서 숨도 못 쉴 것 같았어.”
그렇게 말하고 유나는 전투적으로 파르페를 없애기 시작했다.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보던 무영이 넌지시 물었다.
“내일도 학교 올까? 와서 문화제 준비 도와줄까?”
“……어떻게?”
아이의 말에 무영이 웃었다.
“비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