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94)
신인인데 천만배우 194화
굿판
고사에 진심이라고 하더니, 진짜였구나.
무영은 차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돌담길을 쳐다봤다.
경복궁에서나 볼 법한 긴 담이 쭈욱 뻗어 있었다.
“여기서 하는 거 맞아요? 진짜?”
“응. 맞아. 제대로 왔어.”
무영의 물음에 고경민은 내리라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거대한 한옥 저택과 그 앞에 펼쳐진 잔디밭. 잘 가꾸어진 소나무와 인공 연못은 사시사철 싱그러운 기운을 뿜어낼 것 같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니! 실로 놀랍다.
“우리 제작사 조그만 곳 아니었어요?”
아무리 봐도 고사에 이런 장소를 턱턱 빌릴 만큼 여유로운 곳이 아닌데.
주차장까지 따로 마련된 것으로 보아 일반 주택이 아닌 특별 모임 장소로 쓰이는 곳 같다. 예컨대 결혼식 같은.
“제작사는 작지. 근데 투자사는 크잖아?”
SJ가 하무영과 함께 밀어 넣은 투자금만 해도 상상을 초월했다. 어차피 그 돈 다시 무영의 출연료로 받아먹을 거긴 하지만.
“여기 소유자가 유사하 대표님이래. 평소에 파티 장소로 쓰는 곳이라 하더라.”
“와우. 대박.”
“고사 장소가 마땅치 않다고 하니 흔쾌히 내주셨어. 비용도 좀 보태주시고.”
[면죄부>에서 도경의 저택으로 나올 장소는 낙점되었다.바로 경주에 있는 대저택이었는데, 한옥과 서양식 디자인이 현대적으로 접목한 곳이었다. 외국의 유명 건축가가 지어서 별장으로 쓰는 중이란다.
하지만 고사 때문에 거기까지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
“무영아!”
“우리 누나!”
먼저 와 있던 김우리가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는 추수안이 함께였다. 추수안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게 다 뭐니 진짜. 살다 살다 이런 고사는 또 처음이네. 감독님이 꼭 오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김우리가 웃으며 정원을 둘러보자, 무영 역시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가든 파티를 연상하게 하는 테이블과 의자도 준비되어 있었다.
“무당까지 왔네요?”
“응. 어디 용한 무당인데 고사 전문이라 하더라고.”
그리고 상다리가 휘어질 것 같은 제사상. 웃고 있는 돼지머리와 함께 술, 과일, 고기 온갖 반질반질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병풍과 오색찬란한 끈, 대나무, 방울 따위도 마찬가지.
일반 영화도 사고 없이 찍을 수 있게 기도하는 마당에, [면죄부>는 피와 비명이 낭자한 거친 영화였다. 거하게 상 올리는 게 당연했다.
“으음. 그렇구나.”
“이거 끝나면 우리가 저거 다 먹을거래.”
“누나 밥 안 드셨어요? 저 간식 있는데!”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단 것을 찾으려 하는데, 김우리가 웃으며 거절했다.
“고맙지만 됐어. 난 간식 안 먹어.”
그런 그녀 옆에서 무영을 빤히 내려다보는 추수안. 뭔가 말하고 싶은데, 머뭇거리며 못 하는 눈치였다. 무영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수안 선배도 드릴까요?”
“……초코렛.”
“오오. 있어요. 있어.”
무영이 건네준 초콜릿을 쑥스럽게 받아먹은 추수안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김우리가 걱정스레 웃으며 물었다.
“수안 씨. 그래서 마이크 잡을 수 있겠어?”
고사를 진행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주연배우의 인사였다. 추수안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청심환 먹었더니 입이 써서요.”
“어우.”
김우리는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사람이 연예인을 하다니, 제 수명 깎아가며 연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들 왔네요?”
그때 김산 감독이 세 사람을 알아보고서 다가왔다.
옆에는 무당으로 보이는 여자가 함게였는데, 쥐 잡아 먹은 것처럼 붉은 입술이 유독 도드라졌다.
“이쪽은 오늘 고사 지내주실 신녀님이세요.”
“안녕하세요오.”
무당은 대답 없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 명을 훑었다. 워낙에 강렬한 시선인지라, 김우리, 추수안은 속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그저 무영이만 방싯방싯 웃으며 무당을 구경할 뿐이다.
‘아기를 머리에 이고 계시네.’
두어 살 되어 보이는 귀여운 아기가 무당의 머리에 얹혀 있었거든. 흐물흐물 몸에 힘이 없는지 찹쌀떡 같은 엉덩이가 참으로 귀여웠다. 아기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무당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런 일 하시다 보면 귀신도 보시겠어요.”
김우리가 살갑게 말을 붙이자, 무당은 소리 없이 웃었다.
“가끔 봅니다. 대부분은 기척만 느끼지만요.”
“오늘도 꼭 귀신 봐주세요. 고사 지낼 때 그런 거 보면 영화 대박이라는 속설이 있거든요.”
가끔 본다라. 무영은 그게 아기 귀신이 눈을 가리고 있어서임을 알아챘다. 아기가 손을 뗄 때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거다.
무당에게 말해줄까, 하다가 괜히 문제 생길 것 같아서 입 다물기로 했다.
“…….”
무당은 김우리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연신 무영을 힐끔거렸다. 낯빛이 영 불편해서 모두가 알아챌 정도였다. 보다 못한 무영이 웃으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하무영 씨는 언제 시간 내서 저희 신당에 오시는 게 좋겠어요.”
무영은 고개만 갸웃갸웃.
무당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으며 주위 눈치를 봤다. 그리고 이내 최대한 목소리를 죽이며 속삭였다.
“죽다 살아났나……?”
오오! 오!
찐이다. 찐! 찐 무당 맞네.
무영이 감탄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동안, 김우리와 추수안은 인상을 찡그렸다. 영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으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무영 씨 건강해요…….”
추수안은 슬그머니 무영의 팔까지 잡아당겼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 무당은 서늘한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팔자가 참 희한합니다. 무영 씨.”
“앗. 그런가요?”
“오늘 고사 드리면서 치성도 같이 올려야겠어요. 굿이 성공적이면 저쪽 대나무 가지가 흔들릴 것이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병풍 옆으로 뻗은 대나무를 말하는 거였다. 진짜배기 신이 내려오면 바람 없이도 가지가 흔들린다, 무당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말이었으니. 무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알겠습니다.”
“신녀님 준비 다 됐습니다.”
직원의 부름에 무당이 허리춤에 단 방울을 들며 뒤돌아갔다. 김우리가 괜히 무영의 등을 털어주며 위로했다.
“무영아. 너무 신경쓰지 마. 저 사람들 맨날 하는 말이 그래. 나도 점보러 가면 맨날 물조심해라, 불조심해라 똑같아.”
추수안도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
다들 착해서 그런지, 무영의 안색을 살피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무영이 괜찮다 해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진짜 죽다 살아난 거 맞는데요?
지잉-! 징!
무당은 징을 침으로서 고사의 시작을 알렸다. 감독이 마이크를 잡고서 첫 인사를 땠다.
“아아. 안녕하세요. [면죄부> 감독 김산입니다. 오늘 고사에 와주신 분들게 감사드리며, 촬영 하는 동안 사고 없이, 모두 안전하게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에 이어서 주연배우 삼인방도 마이크를 잡았다.
“도경 역을 맡은 하무영입니다. 무탈한 촬영을 기원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추수안과 김우리 역시 적당한 인사치레를 남겼다.
특히 추수안은 청심환의 위력인지, 얼굴이 달아오른 것 외에는 말실수 없이 잘 넘어갔다.
지잉-! 징!
쨍쩽!
이내 무당의 굿판이 시작됐다.
꽹과리가 귓가를 사정없이 때리고, 신당 사람들이 양옆에 서서 치성드리듯 손을 빌었다.
새빨간 천을 뒤집어쓴 무당이 제자리에서 뛰며 무어라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방울이 까랑까랑하게 울자 무당의 손끝에 달린 흰 천이 어지럽게 휘날렸다.
“오…….”
김우리와 추수안은 신기한 광경을 보는 것처럼 넋을 빼놓았다. 무영 역시 마찬가지. 잔디에 쪼그려 앉아 무당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당의 머리 위를 구경했다.
아아아-
조그만 아기가 콩콩 뛰는 게 기묘했다. 있는 힘껏 소리치며 굿판을 즐기는 모습에, 무영은 저도 모르게 박수 치며 박자를 맞춰줬다.
짝- 짝짝!
‘되게 신났네.’
아기신은 무영의 호응이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이내 폴짝 뛰어내려 대나무 가지에 매달렸다. 살짝 휜 이파리가 서서히 좌우로 움직였다.
“……!”
그걸 본 김우리가 손가락에 침을 묻혀 바람이 부는지 확인했으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저거 진짜 흔들린 건가?”
“…….”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다들 그걸 목격하고 말았다.
놀란 듯 혀를 차며 한 마디씩 보탰다.
“뭔데? 방금 대나무 흔들린 거 맞지?”
“아이고. 나 못 봤다!”
“신빨 쥑이네. 저 무당 연락처 좀 받아야겠다.”
“이번 촬영도 무사히 넘어가려나 봅니다~”
다들 하하호호 떠드는 동안 무영은 계속해서 호응하며 아기 신의 기분을 맞춰줬다.
무당은 거의 한 시간 가깝게 뛰어다녔고, 이내 땀에 품 절어서 고사를 마무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많았어요. 감독님.”
“고기 먹자! 고기!”
“술도 먹어도 되나요?”
“2차 안 갑니까?”
참석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접시를 들고 몰려들었다. 고사로 모인 돈은 뒤풀이용으로 쓰일 것이다. 그렇게 다들 친해질 기회도 얻고, 첫 촬영 전에 영차영차하는 거지.
“저기. 하무영 씨.”
무영이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사과를 와작거리고 있는데, 무당이 다가와 그를 불렀다. 조용히 얘기하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만요.”
무영은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추수안과 김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택 뒤쪽으로 돌아간 무당이 땀을 닦아댔다.
“오늘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신령님 기분이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아하.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당연하지. 무영이가 계속 눈 맞추며 우쭈쭈해줬으니까.
“그래서 특별히 경고해 주셨어요. 믿는 건 하무영 씨 의지지만, 부디 어리석게 흘려보내지 마세요.”
“넵. 새겨듣겠습니당.”
무당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머리에 얹힌 아기가 검은 눈동자로 무영을 똑바로 내려다봤다.
“조심-”
“물조심 불조심이요?”
“아니요. 현장에서요.”
무당은 좀 어이없다는 듯 되받아쳤다. 대체 자신을 뭐로 보고? 그딴 돌팔이성 발언은 취급하지 않았다.
“큰 굉음과 함께 피를 보셨다고 하니. 각별히 유의하세요.”
무당의 용건은 거기까지인 것 같았다. 별 미련 없이 돌아가려는데, 이번에는 무영이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신녀님, 아기 신령님께 말 좀 잘해보세요. 그, 머리에 얹혀 있으니까 눈이 가려지는 거거든요. 차라리 업고 다니시던가.”
……? 무당이 눈만 깜빡이며 놀라고 말았다. 모시는 신이 아기인 건 어떻게 알았지? 주위에서 들은 건가? 무영은 고개만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그럼. 수고하세용!”
무영이 테이블로 돌아오자, 추수안과 김우리가 걱정스레 바라봤다.
“뭐래? 부적 하래?”
“아뇨. 그냥 팬이라고, 열심히 하라 하셨어요.”
“으응? 거짓말!”
“진짜에요. 걱정마세요.”
김우리와 추수안이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왔지만, 무영은 딱히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현장에서의 불길한 일은 자신이 처리하면 된다. 굳이 동료들까지 끌어들일 필요 없다.
“수안 선배. 저 좀 봐주세요.”
“……네?”
무영은 대신 추수안의 어깨를 잡으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반짝반짝, 꽃가루는 여전했다.
어디 가지 않는 행운의 상징.
“음. 역시. 선배 얼굴 보니 안심이 되네요.”
“……?”
무영이 활짝 웃으며 어깨를 놔주자 추수안은 부끄럽다는 듯 멋쩍게 웃었다. 올 테면 와라! 어쨌거나 옆에는 꽃가루가 있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