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197)
신인인데 천만배우 197화
살인
난장판이 된 도경의 작업실. 여기저기 흐트러진 캔버스와 물감들이 어지러웠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소품들은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다 설탕으로 만든 거라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위압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오늘따라 분위기가 영 가라앉네.”
“그러게요. 찍는 게 어두워서 그런가.”
“무영이랑 우리 씨는 벌써 몰입했더라고요.”
조명팀 직원들이 속닥거리며 촬영 준비를 이었다.
안쪽 분장실에서 무영은 머리를 매만지며 거울 속 자신을 쳐다봤다.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이지만, 손에 들린 소품용 나이프를 끊임없이 만지작거렸다. 필시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무영아. 릴렉스.”
“네?”
“너 어깨 너무 굳었어.”
머리를 매만지던 코디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주물러줬다. 그제야 희미하게 웃는 무영.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드디어 첫 살인 장면을 찍는 날이니까.
“시간이 좀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서요.”
“걱정하지 마. 너희 정말 열심히 했다며?”
“매니저님들이 한탄하는 소리 다 들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주일 동안, 무영은 거의 학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습을 거듭했다. 김우리와 추수안 역시 동참하여 강당 한쪽에는 셋의 이부자리가 늘 깔려 있을 정도였다.
달깍-
“하이하이. 우리우리 왔어용.”
분장을 마친 김우리가 옷을 추스르며 다가왔다. 안쪽에는 특수분장용 용액을 찬 상태였다. 분장팀이 무영의 옆으로 다가와 설명했다.
“심장이랑 허벅지에 하나씩 찬 상태거든요. 소품용 나이프니까 손잡이로 좀 세게 누르셔야 해요. 그래야 터집니다. 심장은 혈액량이 많아요.”
날이 무디기도 했지만, 일단 닿으면 쏙 하고 들어가 절대 다칠 일 없는 칼이었다. 무영은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서 알겠노라 답했다.
“분장 다 되셨어요?”
“네. 거의 끝나갑니다.”
“스탠바이 들어갈게요. 마무리해 주세요.”
연출팀에서 배우들을 불렀다. 이제 진짜 해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무영은 금빛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김우리를 쳐다봤다.
“누나.”
“응.”
얼마나 서로 뒹굴고 싸웠던지, 김우리의 몸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액션 감독님이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라고 했으나,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잘 죽여줘.”
김우리의 말에 무영이 마음을 다잡으며 대답했다.
추수안 역시 완벽한 정장 차림으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영은 칼을 가볍게 돌리며 세트장에 올라섰다.
* * *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안방.
도경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다리를 꼬고 있었다. 방금 잠에서 막 깼는지, 머리는 흐트러진 채 나른한 표정이었다.
“김 비서. 나 물 좀.”
그의 지시에 김 비서가 물을 따르려는 순간이었다.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며 부하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도경이 제일 싫어하는 작태였다. 정신없고 산만하며 품위 없는.
“무슨 일이야?”
김 비서 역시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하지만 그만큼 사안이 다급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저기, 인터넷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작품에서 피가 나왔다고-”
“숨 고르고 천천히 말해.”
“작가님 미발표작 한 점이 외신에 입수되었는데, 쓰인 물감 중 일부에 혈액 성분이 검출되었다 합니다. 근데 그게 실종신고 된 사람 DNA라…….”
도경의 살인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언론과 경찰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면죄부로 인해 침묵해 왔다. 헛소문으로 치부하고, 혐의없음으로 조사를 거부하길 수십 번.
국민의 불만과 의구심이 시기를 기다리는 활화산처럼 달구어진 상태인데, 신호탄이 터진 것이다.
“미발표작?”
미발표작은 도경이 가끔 VIP들에게 선물로 주거나, 은밀하게 사고파는 경우가 있었다. 뭔지 감이 안 온다. 도경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확인했다.
“기억하십니까?”
“아아…….”
드르륵.
김 비서가 물었으나, 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일어나 서랍에서 칼을 빼 들 뿐. 김 비서는 재빨리 지시하고서 주인의 뒤를 따랐다.
“포털에 연락해서 관련 게시글 싹 다 내리라고 전해. 그리고 언론이랑 검찰 쪽도 언질 넣어.”
“네.”
뒷모습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곧이어, 그는 도경이 향하는 곳이 작업실임을 알아챘다.
달각-
문을 열자 김우리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유화로 얼룩덜룩한 수많은 캔버스를 침대 삼아. 도경은 그 모습을 좋아했는데, 작품 위의 작품이라며 희롱하는 농담을 서슴지 않았다. 하나, 오늘은 좀 분위기가 다르다.
“굿모닝. 김우리 씨.”
도경의 담담한 인사에 김우리가 눈을 떴다. 순식간에 팔과 다리를 덜덜 떠는 모습.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그거 알아?”
“……뭐, 뭐가요?”
“당신 요즘 안 운다는 거.”
도경은 성큼성큼 다가가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가녀린 여자의 상체가 떠올랐고, 이내 도경은 이마를 맞대며 중얼거렸다.
“익숙해졌나 했더니 아니었네. 희망을 품은 거였어.”
“아윽! 이, 이러지 마세요.”
“내가 등신이었지.”
김우리는 작업실에 널브러진 수많은 스케치 중 피에 얼룩진 종이를 발견했다. 분명 이전 피해자의 흔적이었다. 작업실에는 그런 것들이 생각보다 수두룩했다.
“예쁘다고 오냐오냐했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쳐?”
“아아아악!”
도경은 망설임 없이 왼쪽 허벅지에 칼을 찔러넣었다. 끔찍한 비명이 울리고 피가 터졌다. 아찔하도록 붉은빛깔은 도경이 봐왔던 어느 색보다 아름다웠다.
“어떻게 빼돌렸어?”
“……흐윽…….”
도경이 물었지만, 김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이 새어나갈까 봐 입술을 꽉 깨물 뿐이다. 도경은 무표정으로 그녀의 뺨을 세게 갈겼다.
짜악!
짜악!
무자비한 폭력이 이어졌다. 김 비서는 담백한 시선으로 창문을 쳐다봤다. 방 밖으로 나갔다는 보고를 받은 적 없다. 그렇다면 외부로 통하는 길은 저쪽뿐인데…….
“죽여! 차라리 죽여! 이 악마 새끼야!”
김 비서가 뒤도는 순간, 피떡이 된 김우리가 울부짖었다. 그녀의 위에 올라타 있던 도경이 여자의 목선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깊이 들이쉬다 내뱉는 숨. 피 냄새와 함께 섞인 물감 냄새가 황홀했다.
“하아. 진짜…….”
죽이기에 너무 아쉬운데.
“……분명 너는 지옥에 갈 거야.”
도경의 귓가에 속삭이는 김우리의 저주. 도경이 희미하게 웃으며 바닥을 더듬었다. 손끝에 칼손잡이가 닿았다.
“무슨 소리. 나는 천국에 갈 거야.”
“개새끼…….”
“세상에 나만큼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어? 갓난아이마저도 제 어미 배를 아프게 한 죄가 있지. 하지만 난? 신께서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다고.”
“죽어. 처참하게 모욕당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은 채. 그것도 너한테는 과분하니까.”
“쯧쯧. 그렇게 나쁜 말을 하면 지옥에 가요.”
도경이 그녀의 턱을 매만지더니 위로 들어 올렸다. 김우리의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주인님. 죽이면-”
안 된다고 말리려 했는데, 도경의 손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심장을 뚫어버렸다. 몇 번이고, 같은 곳을 찔러 넣는 손길은 자못 숭고해 보였다. 악을 처단하기 위해 내려온 천사의 현신처럼 묵묵히, 하지만 제 할 일을 하는 것처럼 의연하게.
“하아…….”
피를 뒤집어써서 금빛 머리는 피로 물들었다. 도경은 다시금 김우리의 목에 얼굴을 비볐다. 마지막 죽음의 냄새 또한 특별했으니까. 그가 일어나지 않고 고개만 돌리자, 김 비서가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여기 정리해야겠다.”
“모두 버립니까?”
“응. 싹 다.”
아무리 눈과 귀를 막는다 하더라도 치워야겠지. 작업실은 물론, 뒷마당도 갈아엎어야 할 것이다.
김 비서가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얼굴을 닦아주자, 도경은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 격렬한 운동 후 오는 해방감과 비슷했다.
* * *
“으아아아! 오케이! 좋다!”
“좋습니다! 컷컷!”
“다행이네. 한 번에 가서.”
“무영 씨 걱정 많이 하더만, 역시 겸손이었네!”
“와. 합 좋다. 김우리 씨 연기 진짜 좋았어.”
“옷 남은 거는 어떡하죠?”
“혹시 모르니까 보관해 주세요.”
김산 감독이 만족스럽게 컷 사인을 내렸다. 혹여 NG가 날까 봐 같은 옷을 대여섯 벌씩 준비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연기는 깔끔했고, 호흡은 완벽했다. 김우리가 축 처진 손을 들어 무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영아?”
이제 좀 내려와 줬으면 싶은데?
하지만 무영은 여전히 김우리의 몸에 올라타서는 얼굴을 묻고 있었다. 추수안 역시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후배님?”
무영은 멍하게 정신이 빠져 있었다. 마치 열기에 취한 사람처럼 몽롱한 눈빛. 김우리가 그의 볼을 잡으며 다시금 이름을 불렀다.
“하무영.”
“무영 후배님.”
이제 도경이 아닌 하무영으로 돌아와.
도경이라는 캐릭터에 정신을 빼앗긴 것처럼 시선이 어두웠다. 하지만 이내 점점 맑아지는 눈망울. 무영은 붉은 피를 잔뜩 뒤집어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어…….”
잘했나요? 저 잘했나요?
소리 없는 질문이었지만, 김우리와 추수안은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여줬다.
“완전 잘했어!”
“……가, 감독님 표정 좀 보세요…….”
흥분해서는 배우들이 세트장에 누워 있든 말든 조연출과 화면에 코를 박고서 모니터링 중이었다. 무영의 얼굴이 조금씩 환희로 차올랐다.
“와.”
진짜 했구나. 성취감에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면서 붉은 핏물이 씻겨 나갔다.
“아이구. 잘해놓고 왜 울어?”
“어, 어어…….”
추수안이 허둥지둥, 소품용 손수건으로 무영의 얼굴을 닦아줬다. 김우리는 누운 채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위로했다.
“고마워요. 누나, 선배.”
첫 촬영날처럼, 셋은 옹기종기 모여서 머리를 맞대었다.
그날의 울음이 안타까움에서 나온 거라면 이번에는 즐겁고 행복해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아니. 다들 왜 그러지?”
김산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촬영 감독이 혀를 끌끌 차며 웃었다.
“액션 스쿨에서 일주일 동안 합숙하며 살았다잖아요. 고생 오지게 했응께 후련한가벼~”
“우아아아! 했다!”
무영이 벌떡 일어서서는 환호성을 외치며 방방 뛰었다. 만약 꼬리 달린 강아지였으면 프로펠러 단 것처럼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아이구. 무영아. 나 좀 일으켜줘라.”
“누나 다치신 곳 없죠?”
“없어. 아주 멀쩡해.”
그의 말에 무영은 다시금 웃으며 그녀와 어깨동무 후 빙빙 돌았다. 추수안이 멀뚱히 서 있자, 팔을 끌어와 함께했다.
피로 흠뻑 젖은 사람들이 저렇게 웃고 춤추다니. 거참, 묘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어색한 저 추수안의 몸놀림.
“다들 수고했어요. 모니터링 좀 해봅시다.”
“네에!”
무영은 난생처음으로 누군가를 해하는 제 모습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손이 떨리거나 무섭지 않았다. 화면 속 남자는 누가 봐도 무영이가 아닌 것 같았거든.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참고로 나는 너무 마음에 드는데.”
김산의 질문에 무영은 황홀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너무 좋아요.”
눈빛이 더욱 빛을 발했다. 벽을 깨고 나온 새끼 새처럼 총총하고 맑은 시선. 무영은 자신에 차서 중얼거렸다.
“저 정말이지,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