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00)
신인인데 천만배우 200화
중고차
국내에서 차량 스턴트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손에 꼽혔다.
그것도 예전에는 대부분 카레이서 출신이었고, 연습 자체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아주 열악할 때는, 전날에서야 의뢰를 받고 부랴부랴 스턴트하러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끼이익!
추수안은 자동차 핸들을 시원하게 꺾으며 8자를 그렸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양새가 부드러웠다.
“오케이! 좋아요! 다음에는 반대로!”
확성기로 액션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자, 팔을 현란하게 바꾸며 핸들을 반대로 돌렸다.
액션이라는 게 볼거리가 핵심인지라, 이렇게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주는 맛을 살려야 했다.
끼이이익!
“좋네요! 천천히, 천천히!”
추수안이 몰고 있는 것은 폐차 직전에서 건져 올린 자동차였다. 연습용이자, 가능하다면 촬영에도 쓰일 물건이었다.
속도감을 위해 필요 없는 장비를 떼어내고, 안정장치를 덧붙이는 등 개조를 진행했거든.
보닛에는 작은 액션캠까지 달려 있었는데, 추수안이 연습하면서 스스로 확인하는 용도였다.
“오케이! 잠시 쉬었다 하겠습니다!”
“수안 씨 운전 되게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스턴트가 들어가는 부분은 저기, 보자 34번 씬이랑 35번 씬이었죠? 아까 8자 도는 부분이 36번 씬 두 번째 줄이고, 다음이 순차적으로 나가는 겁니다.”
실제 촬영은 도심 한복판에서 이뤄진다.
워낙 스케일이 큰 작업인지라, 경기 외곽의 한적한 곳까지 내려와 동선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곳 도로는 촬영지와 거의 흡사하면서도, 인적이 드물었다. 물론, 그래도 바리케이드와 사람으로 통제하긴 했지만.
“이 부분 지나가면 뒤에서 차량 두 대가 연달아 뒤집힐 거니까 속도 줄이면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추수안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감독의 말을 경청했다. 이제 곧 진짜 촬영해야 하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안전이 달려 있는 터라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
“선배애애!”
그런 그의 신경을 와장장 깨뜨리는 무영의 목소리. 추수안이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모자를 뒤집어쓴 무영이 손을 붕붕 흔들고 있었다.
“어? 하무영 씨 왔다.”
“……아.”
온다고 하더니 진짜 왔구나. 바쁠 텐데 마음 써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무영이 다가와 감독과 스턴트맨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어어. 무영 씨! 오랜만. 촬영 잘했다면서요?”
“네. 덕분에요. 감사했습니다.”
살인 장면 찍기 전에는 액션 스쿨에서 합숙하다시피 같이 먹고 잤다. 안면이 익숙한 터라, 다들 살갑게 무영이를 반겼다.
“오늘 저도 연습 맞춰보려고요.”
“옆에 타게요?”
“네. 앉아서 총만 쏜다고 하지만, 그래도 같이하는 게 맞잖아요. 현장에서는 시간이 금일 거고.”
그 도심 한복판을 몇 시간이고 전세 낼 수가 없다. 보탤 것 없이 딱 한 번에 끝내야 하니 무영이도 미리 감각을 익혀두려는 거다.
“그럼 잠시만요. 조수석 한번 볼게요.”
무영의 말에 감독과 스턴트맨들이 흰색 고급 스포츠카를 확인했다. 세계 최고의 천재 화가 설정답게 재벌이나 탈 법한 자동차였다.
“와. 저 이런 거 처음 타봐요.”
“저도 처음 몰아봤습니다.”
“차 되게 멀쩡한데 어찌저찌 고치신 건가? 폐차 직전인 걸 겨우 구했다고 하시던데.”
추수안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관심도 딱히 없어서 그런지, 물을 생각 자체를 안 했다.
무영이가 차를 이리저리 뜯어보는데, 스턴트맨 한 명이 보닛을 퉁퉁 두드리며 물었다.
“그럼 한 바퀴 돌고 오실래요?”
“여기 액션캠 달려 있으니까 표정이랑 자세 확인하시면 됩니다. 트랙 도는데 한 2분?”
“무영 씨 소품 총 없죠?”
“아하하. 네!”
“그러면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잡아요.”
“첫 번째 우회전 때 계속 쏘고, 이어서 직진할 때 다시 한번 쏘면 됩니다.”
감독이 내민 것은 작은 부메랑이었다. 잡는 느낌이 손에 딱 맞았다.
“그럼 다시 돌아볼까요?”
“쉬시려던 거 아니었어요?”
“쉬었잖아요. 뭐 몸을 직접 쓰는 것도 아니라서. 여기 해 지면 나가는 게 곤란하거든요. 빨리빨리 해야 해요.”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버려진 길처럼. 양옆으로 펼쳐진 파릇한 갈대밭이 광활했고, 가로등은 저 먼 곳 하나만 세워져 있을 뿐이다.
감독의 말대로 해가 지면 귀찮아질 게 분명했다.
“넵. 그러면 잘 부탁합니다. 수안 선배.”
무영이 으쌰으쌰 몸을 풀며 조수석에 쏙 들어갔다. 추수안은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핸들을 잡았다.
“……확실히.”
“네?”
“맞네요. 옆에 사람이 타니까 좀 긴장돼요.”
“멀리서 보니까 잘하시던데요? 편하게 하세요!”
“……대사 하실 거죠?”
“네. 천천히 해봐요. 우리.”
안전벨트를 맨 무영이 창밖으로 손을 걸쳤다. 감독이 깃발을 흔들며 신호를 내리자, 추수안은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
부아아아앙!
“오오오. 대박.”
스포츠카라 그런가, 배기음이 귀를 찢을 것 같다. 차는 순식간에 갈대밭 중앙을 가로질렀고, 감독과 스턴트맨이 깨알처럼 멀어졌다. 첫 번째 우회전 코스였다.
“아이 X발!”
무영은 창밖으로 몸을 쭉 뺀 다음 뒤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사정없이 총 갈기는 것처럼 행동했다.
반동까지 표현하는 세심함에, 추수안이 슬쩍 그를 힐끔거렸다.
“저 새끼들 다 뭔데?”
왜 경찰차랑 검은 세단이 섞여서 둘을 쫓아오는지 묻는 말이었다.
“회장이 보낸 애들 같습니다.”
“나 따라오지 말고 니들끼리 붙어먹어 새끼들아!”
손가락 욕까지 차지게 올려준 다음 자리에 앉았다. 그는 바람 때문에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흥얼거렸다.
무영이 사이드미러로 얼굴을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어?’
뒷좌석에 뭔가가 느껴졌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으나, 비어 있다. 추수안은 운전에 집중한다고 무영의 행동을 알아채지 못했다.
스으윽.
열린 조수석 창문으로 긴 손가락이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는 게 아닌가.
손톱이 죄다 빠져 흉물스러운 건 차치하고, 그들은 지금 시속 60㎞ 이상으로 달리고 있었다.
‘뭔데?’
무영이 창문 밖으로 아래를 확인하니, 귀신이 차 밑에 매달린 채 기어오르고 있었다. 아마 안쪽으로 들어오려는 것 같다.
“무영 씨?”
추수안이 문제 있냐는 듯 그를 불렀다. 다시 직진 코스였다. 무영은 대답 없이 창문으로 몸을 뺐다.
기괴하게 매달려 엉킨 머리를 휘날리는 귀신과 눈이 마주쳤다.
끼아아아악!
괴성을 내지르며 차 안으로 들어오려는 귀신. 무영은 총 쏘는 연기를 하며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었다. 어디서 들러붙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니까 가시라고요.
아아악!
그런데…….
“어라?”
귀신이 무영이 옷자락을 잡고 안 놔주는 게 아닌가? 힘이 어찌나 센지, 무영은 반대쪽 손으로 창틀을 붙잡고 버텼다. 내가 못 들어간다면 네가 나와라, 라는 귀신의 의도가 분명했다.
“선배! 선배!”
무영이 다급하게 추수안을 부르자, 그가 옆을 힐끔거리더니 이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동시에 무영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쥐어 끌어당겼다.
끼이이익!
차가 반 바퀴 반원을 그리며 돌았다.
주위에 워낙 뭐가 없다 보니 부딪힌 건 아닌데, 반작용 때문에 몸이 크게 흔들렸다.
“무영 씨!”
“에구…….”
무영은 아프다는 듯 갈비뼈 부근을 매만졌다. 다행히 안전벨트와 추수안의 행동 때문에 창밖으로 튕겨 나가지는 않았다.
“괜찮아요? 아니, 근데 방금…….”
추수안이 사색이 된 채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 친 거 아니죠?”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방금 어떤 여자가 앞에…….”
그는 차에서 내려 보닛과 주위를 둘러봤다. 부딪힌 흔적 없이 깨끗하다. 무영이도 내려서 귀신을 찾아봤지만, 기척을 숨겼는지 조용해졌다.
“여자가 있었어요?”
“네. 너무 놀라서 브레이크 밟았지 뭐예요.”
아니었으면 당연히 천천히 속도를 줄였겠지.
사람이 창밖에 몸을 빼고 있는데.
“뭐지…….”
추수안은 귀신에게 홀렸다는 눈빛이었다. 멍하니 주위의 갈대밭만 둘러봤다.
무영이 역시 마찬가지. 지금까지 만났던 귀신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악독했다.
‘나 죽이려고 한 거지?’
창밖으로 끌어내려는 거나, 추수안이 갑자기 브레이크 밟게 하는 거나. 의도가 영 사악하기 그지없다.
저 멀리 자동차 한 대가 급하게 다가왔다. 멀리서 보던 스턴트맨들이 이상을 감지하고 달려오는 것이다.
“무영 씨! 수안 씨!”
“왜 그래요? 문제 있어요?”
“어디 다쳤어요?”
다들 헐레벌떡 뛰어오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다행히 차가 반바퀴 돈 것 외에는 크게 문제없었다.
“무영 씨 갈비뼈가…….”
“아니요. 괜찮아요.”
두 사람 역시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스턴트맨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런 거예요? 갑자기 멈추던데.”
“그러니까. 직진 들어오기 전에는 잘했잖아요?”
“차 점검 좀 해봐.”
“아, 그게 아니라요.”
추수안은 얼굴을 쓸어내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사람이 보였어요.”
“사람?”
“행인 치는 줄 알고 멈춘건데, 정신차리니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다들 표정이 묘해졌다. 벌건 대낮에 그게 무슨 기괴한 소리냐는 듯. 바람에 갈대 흔들리는 소리만 조용히 떠돌았다. 추수안의 얼굴이 달아오르자, 무영 역시 말을 덧붙였다.
“저도 봤어요.”
“……!”
“무영 씨도?”
추수안의 눈이 뎅그래지더니, 이번에는 새하얗게 질렸다.
자신만 본 게 아니라면 진짜 사람을 친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귀, 귀신.’
추수안은 몸을 쪼그려 말며 주저앉았다. 너무 무서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무영은 엎드려서 차 아래까지 확인하며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이 차 어디서 구하셨어요?”
“잘 아는 딜러 통해서. 저기, 폐차장에 들어갔는데 워낙 멀쩡해서 그쪽 직원이 빼놨다 하더라고. 촬영용 구한다고 하니까 바로 연결해 줬어.”
무영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거 못 쓸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출시가만 억대인 스포츠카였다. 그걸 중고로 구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못 했는데, 정말 운 좋게 폐차를 얻지 않았는가.
새로운 차량을 구해서 작업까지 새로 하려면 돈이고 시간이고 손해가 막심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같이 서울 올라가요. 가서 대책 회의 좀 해야겠어요.”
트렁크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며 귀신을 찾는 무영.
다들 의아하다는 듯 시선을 주고받았지만, 주연 배우 둘이 저러니 어쩔 수 있나?
“그럼 둘은 먼저 올라가고, 스턴트만 연습을-”
“아니요. 안 돼요.”
풀샷으로 찍는 액션씬은 스턴트맨이 운전할 것이라, 역시 연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영이 딱 잘라서 손으로 엑스자를 그리자, 난감해졌다.
“아니, 무영 씨…….”
“안 돼요. 진짜 이상해서 그러니까, 제 말 들어주세요.”
사람을 죽이려는 귀신이다. 실수했다가는 진짜 촬영 중에 초상 치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무영은 휴대폰을 찾아 김산 감독 번호를 찾았다. 미신을 맹신하는 사람이니,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면 무영의 편을 들어줄 게 분명했다.
“감독님께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무영은 턱을 매만지며 무술 감독에게 부탁했다.
“그 딜러분이랑 연락 좀 해주세요.”
차에 대해 좀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무영은 멍하니 서 있는 추수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선배. 정신 차려요.”
“…….”
추수안은 말없이 무영의 소매만 꼭 붙잡았다. 거참, 해병대 나와서 귀신 때려잡게 생기신 분이……. 많이 놀란 모양이다.
“괜찮아요. 배우가 귀신 보면 대박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는 주연 둘이서 동시에 봤으니, 이거 끝장났다! 음음!”
무영의 장난스러운 위로에 추수안의 표정이 묘해졌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이상한 얼굴.
갈대밭 위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더더욱 거세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