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03)
신인인데 천만배우 203화
복수
그날, 흰색 스포츠카가 홀로 움직였던 날.
긴가민가했던 사람들은 입 모아 바로 폐차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영이 반대하고 나섰다. 뺑소니 차량이면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증거물이 될 테니까.
“이게 자동차등록원부라고요?”
무영은 서류를 받으며 뒤적였다.
종이를 건네주는 무술 감독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전 소유주들 이름이랑 주민 앞번호, 그리고 주소까지 나와 있어. 이거면 될까?”
“네. 감사합니다.”
액션 스쿨에 차를 둘 수 없다 하자, 무영은 자신의 오피스텔로 가져갔다.
귀신을 달래 놓았으니 직접 몰아도 상관없지만, 다들 하도 걱정해서 견인을 통했다.
“무영 씨.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네? 뭐가요?”
“아니. 그냥, 그 갑자기 차를 감싸고 도니까.”
“아하하하. 저 멀쩡하다니까요?”
차를 갖고 가겠다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특히 추수안은 세상이 멸망한 것처럼 절망했는데, 더듬거리며 내뱉는 그 한마디가 어찌나 웃기던지.
‘……무영 후배님. 혹시 귀신 쓰이신 건 아니죠?’
무영은 희미하게 웃으며 서류 앞장을 확인했다.
첫 번째 소유주의 이름, 김경식. 주소지는 서울이구나. 가까워서 그나마 다행이다.
자동차등록원부에 연락처가 없는 게 아쉽지만, 이만하면 충분했다.
“딜러분은 연락 왔어요?”
“응. 캐물으니까 우리가 겪었던 거랑 비슷하대.”
뒷좌석에 누군가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길 가다 몇 번이나 사고 나는 환각을 보았다. 앞바퀴에 뭔가 걸린 것 같았다. 악몽과 가위에 눌렸다. 백미러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등등. 사고는 없었지만 끔찍한 경험을 했노라 털어놓았다.
“그렇구나…….”
무영은 김경식의 정보를 휴대폰에 저장하며 중얼거렸다. 귀신에게 도와주겠다고 말은 했는데, 솔직히 좀 막막했다.
제일 이상적인 건, 가해자가 법적인 처벌을 받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것이다.
하지만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귀신은 원한에 잠식해 자신이 누구인지도 까먹은 듯 보였다.
게다가 차 주인이 여섯 번이나 바뀔 동안, 아무도 차량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흔적이 없다는 뜻이지.
‘그리고 네 번이나 피해자를 뭉갰어.’
단순한 운전 미숙이 아니라면, 고의성이 다분한 살인이다. 피해자가 살아 있는 것보다 죽어서 묻히는 게 이득이라 판단한 행동.
그런 자에게 반성과 용서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양심이란 게 있으면 진작에 자수했을 터.
“근데 어떡하려고?”
감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모레가 촬영인 건 알지?”
“그럼요. 사격 연습 많이 했어요.”
“아니. 음.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무영은 스포츠카와 함께 원소유주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사고 장소가 어디였는지만이라도, 그래서 귀신이 누구였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가해자 처벌이 어렵다면 제사를 통해서 달래는 쪽으로 가야 했다.
* * *
“아아니! 평범한 소시민한테 연차가 얼마나 귀한 건지 알기나 해? 엉?”
준호는 툴툴대며 온갖 짜증을 부려댔다.
보라랑 놀려고 아껴둔 건데 하무영이 다 망쳤노라, 어찌나 노래를 부르는지.
무영은 그의 입에 과자를 넣어주며 달랬다.
“알았어. 고맙다니까? 진짜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임준호 님. 준호님 없었으면 나는 어우, 뭘 할 수가 없네!”
“그랜절 박아. 젠장.”
“나중에 연습해서 박아볼게.”
그는 입을 비죽이면서도 운전에 집중했다. 둘은 지금 문제의 스포츠카를 타고 첫 번째 소유주 등록 주소지로 가는 중이었다.
“근데 전 주인은 왜 찾는 건데? 이거 어차피 회사 등록 차량이라며. 그쪽에서 처리하게 두지.”
“음. 물어볼 게 있어서.”
아무도 뺑소니라는 걸 모르니까.
무영의 모호한 대답에도 준호는 혀만 한번 찰 뿐, 토를 달지 않았다.
하무영이지 않은가. 분명 특별한 사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쯤인 것 같은데?”
“아. 저쪽 오피스텔이다.”
역세권에 들어선 고급형 오피스텔 건물이었다. 외부인이 제한되어 들어갈 수 없다.
무영이 고민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준호는 망설임 없이 주차장 입구 쪽으로 차를 몰았다.
삐익.
“방문 차량이십니까?”
경비가 창문을 열며 물었다. 준호 역시 느긋하게 얼굴을 빼며 대답했다. 바로 앞에 보안용 CCTV 카메라가 운전석을 찍고 있었다.
“네. 204동 2302호요.”
“방문 세대 성함이요?”
“김경식.”
“확인 감사합니다.”
준호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찍혔을 것이다. 무영은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몸만 바짝 눕혔다. 차단기 바가 올라가고, 자동차는 유유히 지하로 들어갔다.
“너 연기 잘한다?”
“이러려고 부른 거 아니야?”
“맞아. 고마워.”
무영이 배시시 웃으며 인사했다.
구석에 주차까지 완료하자, 준호가 무영을 돌아봤다. 이제 뭘 어떻게 하면 되겠냐는 듯.
“204동 2302호 올라가서 띵동 함 할까?”
무영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전벨트를 풀었다. 과연 어떻게 나올까. 발뺌하겠지? 아니면 어떻게 알았냐고 놀랄 수도 있어. 온갖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으로 돌아가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23층에 멈췄다.
띵동- 띵동-
준호가 대신해서 초인종을 눌러줬다.
하지만 안쪽은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지, 작은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없는 모양인데? 쪽지라도 두고 갈래?”
“음. 아니면 주차장에서 좀 기다렸다가 다시 와보자.”
무영의 제안이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무영이 부탁으로 다 빼놓은 터라, 할 일도 없었다.
둘은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먹으며 김경식을 기다렸다. 얼굴도 모르지만, 나타나면 귀신이 반응할 게 뻔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형사물 찍는 것 같다.”
“얼씨구. 나는 허리 배겨 죽겄다.”
“앗. 임 형사님. 뒷좌석에 좀 누워계시죠?”
“됐습니다. 뒷좌석 좁아서 누울 곳도 없어요.”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기다린 지 몇 시간.
해가 어둑해지고 밤이 되었다. 준호가 하품을 쭉 하며 무영에게 말했다.
“오늘 안 오려나 본데. 그냥 연락처 두고 오자.”
“응. 그래야겠다.”
어쩔 수 없지.
무영이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주차장으로 노란색 스포츠카가 거칠게 들어왔다.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다.
끼이이익.
주차선이 의미 없을 정도로 대충 주차된 자동차. 준호가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미친 새끼. 술 처먹었나. 차를 왜 저따구로 운전해? 주차선은 폼이에요. 아주.”
그때, 망부석처럼 앉아 있던 귀신이 움직였다. 홀린 것처럼 차에서 떨어져 바닥을 기었다. 짓눌린 아랫도리를 쓸 수 없어, 팔로 짚으며 노란색 스포츠카로 향했다.
“어?”
본능적으로 감이 왔다.
무영은 준호의 어깨를 닦달하며 마스크를 찾았다. 모자와 선글라스까지 후다닥.
“뭐야? 저 사람이야?”
“그런가 봐.”
“그런가 봐는 또 뭔데?”
끄어어억.
피 토하는 소리가 주차장에 울렸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둘. 두명 다 비틀거리며 입구로 걸어갔다.
무영이 후다닥 뛰어가 두 사람을 붙잡았다.
“저기, 김경식 씨?”
“엉?”
왼쪽 남자가 돌아봤다. 반쯤 풀린 눈. 불콰한 얼굴. 숨결로 느껴지는 술 냄새. 만취한 상태가 분명했다. 방금 차에서 내렸는데? 이 상태로 운전했다고?
“누구?”
“경식아. 아는 사람?”
“저 차 아시죠?”
무영의 손짓에 김경식의 시선이 움직였다. 익숙한 흰색 스포츠카. 남자가 꿈을 꾸고 있나 싶어 눈을 비볐다. 술이 확 깨는 표정이다.
“어?”
“저 차에 대해 할 말이 있어요.”
“판 지 2년이나 됐는데, 뭔 솔. 난 할 말 없어요.”
“사고 있었죠?”
“아이 X발 뭐라는 거야. 진짜. 당신 누구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경비! 경비이이!”
김경식의 친구가 무영의 어깨를 팍 밀치며 소리쳤다. 그러자 준호가 그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경비가 아니라 경찰을 불러야겠네. 이러고 운전을 했어?”
“넌 또 뭐야?”
“나도 몰라 X발.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
“아이. 별 이상한 새끼들이-”
“친구는 친구끼리. 응? 당사자는 당사자끼리.”
준호가 남자의 친구를 질질 끌어가며 떼어냈다.
그가 막아주는 동안, 무영은 다시 김경식을 설득했다. 귀신이 계속 기어오고 있었다. 지나온 자리가 피눈물로 흥건했다.
“자수하시고 피해자랑 가족분들에게 사과하세요.”
“듣자 듣자 하니 짜증 나네. 나 모르는 일이라니까? 너 뭐 하는 새낀데 자꾸 그딴 소리를 해? 나 알아?”
“피해자 살아 있었어요.”
무영의 말에 김경식이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근데?”
그가 웃으며 되물었다.
그러자 귀신이 멈칫거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참으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다.
“뭐 어쩌라고?”
“사람이 어떻게…….”
“난 모르는 일이라 했다. 정 그러시면 경찰에 신고하시든가. 응? 계속 붙잡으면 내가 할라니까.”
그가 껄껄대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영의 뒤쪽으로 검은 스모그가 느껴졌다.
귀신이 자신을 태워내며 뿜어내는 스모그였다.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
“함부로는 그쪽이 하고 있고!”
“그러면 사고 장소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어엉?”
이것 봐라, 하는 시선. 사고 장소도 모르는 새끼가 어떻게 알았지? 싶은 거다.
그는 진정으로 이상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야! 뭐해? 가자.”
“아이, 새끼가…….”
“됐어. 그냥 와.”
김경식이 제 친구를 부르며 건물로 들어섰다. 준호에게 붙잡혀 있던 남자가 짜증스럽게 침을 뱉었다. 그리고 준호와 무영을 노려보고서 그 뒤를 따랐다.
“어떻게? 따라가?”
“……아니.”
무영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귀신은 그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굳어, 남자가 사라진 쪽을 쳐다봤다.
“저기-”
뭐라 위로하려고 하자, 귀신은 무영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목에 자신의 핏자국을 남겼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상하게 불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기까지 함께해서 고맙다는 듯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뭐지?’
손목에 스며든 귀신의 피는 이내 증발되듯 사라졌다. 그녀는 노란색 스포츠카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뿜어내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무영아?”
“우리도 가자.”
“끝?”
“응. 끝.”
그 모습을 본 무영이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영이 타고 온 차에 올라타자, 준호도 머리를 긁적이며 운전석에 앉았다.
“출발한다?”
“응.”
무영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노란색 스포츠카를 쳐다봤다.
이 차를 타고 왔던 것처럼 그녀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스모그로 가득 찬 내부로, 귀신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졌다.
부아아앙-
자동차는 무영의 오피스텔로 돌아왔고, 준호는 그 일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궁금할 법도 한데 말이다.
혹시 신기(神氣)를 눈치챈 게 아닐까, 무영은 힐끔거리며 친구의 표정을 살폈으나-
“아아! 연차가 이렇게 갑니다! 저 부유한 연예인은 이 심정을 알랑가! 모르겠지!”
준호는 투정부리며 침대에 풀썩 쓰러질 뿐이다.
* * *
그렇게 날이 지나고, 드디어 추격씬 촬영 당일.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회도로로 가주세요! 감사합니다!”
“영화 촬영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4차선 도로가 통째로 통제되며 시끌벅적했다. 무영과 추수안은 긴장되는 표정으로 스탠바이를 기다렸고, 경찰과 스태프들이 마지막 점검을 끝내고 있었다.
“아, 참. 그 얘기 들었어?”
“뭐요?”
무영의 눈썹을 정리해 주던 코디가 중얼거렸다.
“서울에 교통사고 크게 났다는데? 노란색 스포츠카가 별안간 가로수를 들이박았나 봐. 급발진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운전자는 즉사했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