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05)
신인인데 천만배우 205화
피팅
무영은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낚시 의자에 앉아 화면을 쳐다봤다. 추수안 역시 마찬가지.
쿵쿵 뛰는 심장을 달래기 위해 연신 마사지 대해는 와중, 시선은 카메라에 고정되어 있었다.
“갑니다! 레디!”
감독의 우렁찬 목소리에 두 사람과 똑 닮은 스턴트맨 둘이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멀리서 보면 금발의 도경과 정장의 김 비서가 앉아 있는 것 같다.
“액션!”
감독의 지시에 자동차는 시원하게 가속했다. 그리고 이내 가드레일을 긁듯 바짝 붙였다. 아슬아슬하게 부딪힌 자동차가 크게 흔들렸다.
“붙어!”
“더! 더더!”
추격하는 검은 세단이 조수석 쪽으로 붙으며 압박했다. 앞바퀴가 살짝 뜨고, 자동차는 금방이라도 튕겨 엎어질 것처럼 보였다.
끼이이익!
끼익!
쾅! 쾅!
굉음이 사방에서 터졌다. 자동차가 제 자리에서 수 바퀴 돌며 인도를 덮쳤고, 엉긴 차들에서는 검은색 촬영용 연기가 솟구쳤다.
“좋습니다! 컷!”
“다들 괜찮으세요? 현장 확인!”
“확인! 괜찮답니다!”
“바로 이어서 다음 폭발 장면 갈게요!”
“뒤로 더 물러나세요!”
스턴트맨들이 차에서 빠져나와 몸을 털어댔다. 그들은 문제없다는 듯 팔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신호를 받고서,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이고. 어지러워라.”
흐트러진 머리와 옷을 털며 터덜터덜 걸어오는 스턴트맨들. 무영이 물과 수건을 들고서 후다닥 달려 나갔다. 그들은 고맙다며 물을 단번에 비웠다.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네. 괜찮아요. 영상은 어찌 잘 나왔나 모르겠네.”
“……아주 멋졌어요.”
추수안 역시 한마디 거들며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다행이라는 듯 환히 웃는 스턴트맨들.
얼굴이 잡히는 장면은 무영과 추수안이 했지만, 이렇게 전체적인 와이드 샷은 전적으로 스턴트맨들의 역량이었다.
특히, 위험하다 싶은 부분은 두 배우를 대신해서 투입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근데 아까 앞바퀴 뜬 거는 계산에 없던 거죠?”
“어. 맞아요. 생각보다 힘이 세게 들어와서.”
용케 알아챘네? 그들은 수건으로 얼굴 먼지를 털어내며 끄덕였다.
스튜디오 현장도 그렇지만, 특히나 이렇게 바깥에서 부닥치는 작업을 할 때면, 무영은 굉장히 많은 걸 느꼈다.
“……진짜 대단하세요.”
목숨을 걸고 연기한다는 말이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들.
짧은 장면이 주는 극 전체의 퀄리티를 위해, 감히 자신의 안전을 내던지는 사람들.
무영이 진심으로 경외를 담아 전하자, 그들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인데요. 뭘.”
“일이라고 해서 대단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현장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나?
글쎄. 모르겠는데.
스턴트맨들은 눈짓만 살짝살짝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이제 차 통으로 날릴게요!”
“한 번에 문제없이 가야 해요! 알죠?”
“네에! 마무리합시다!”
드디어 하이라이트였다. 억대의 스포츠카가 펑- 하고 터지는 장면.
스태프들의 말에, 무영 역시 휴대폰을 꺼내며 촬영을 준비했다. 추수안이 의아하게 눈썹을 까딱거렸다.
“유사하 대표님 보내드리려고요.”
“……차 터지는걸요?”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사람에 따라서는 속이 쓰릴 수도 있지 않을까?
추수안의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왔지만, 그는 그냥 삼켜 버렸다. 대표와 친한 것은 무영이니 그보다 더 잘 알 것 아닌가.
이내 다들 숨죽이며 도로 위의 스포츠카를 주시했다.
“갑니다!”
“레디! 액션!”
싸움구경, 불구경이 제일 재밌다더니만. 인근의 구경꾼들 역시 기대하며 숨을 죽였다. 혹시 몰라 대기 중인 소방대원들도 벽에 기대어 집중했다.
“터뜨려요!”
콰앙-! 쾅!
펑!
“우아아앗!”
“오오오!”
버섯 같은 화염 덩어리가 치솟으며 차가 뒤집혔다. 이걸로 인해 도경과 김 비서의 도주에 제약이 걸릴 터.
불길이 거세지고, 점점 소강상태가 될 때까지 컷 사인은 내려오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김산 감독이 박수치며 일어섰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뒷정리합시다!”
“고생했어요! 자자! 다들 빨리!”
이제 남은 건 도로를 이전 상태로 복구시키는 것. 불씨를 완전히 죽인 다음, 견인차가 찌그러진 자동차들을 끌어 날랐다. 무영은 바로 유사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띠링!
[하무영 : (동영상)] [하무영 : 대표님 차 날아가는 중^0^ 촬영 덕분에 잘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무영 씨! 매니저분! 잠시 일정 공지 좀 할게요!”
“앗 네넵!”
조연출이 무영과 추수안을 부르며 스케줄표를 뒤적였다. 일단 큰 고비는 넘겼으니, 나머지는 조율하는 데 있어 문제가 없을 터.
“좀 이르긴 하지만요. 포스터 촬영을 먼저 해야 할 것 같거든요.”
“어? 왜요? 보통 후반부 지나서 하잖아요.”
무영의 질문에 고경민이 대신 대답했다.
“이번에 사진 촬영을 연채 작가가 해주기로 하셨거든. 연말에는 미국 나간다고 해서 스케줄 조정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본투리 첫 SNS 촬영할 때 만났던 금손 사진작가. SJ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와중, 무영의 포스터를 찍겠노라 나선 것이었다.
“어차피 컨셉은 정해졌으니 후반부로 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네.”
“그래요?”
메인을 장식할 사람은 무영과 추수안이었다. 김우리 역시 함께하겠지만, 정식 포스터에도 나올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마케팅팀이 정할 일이지.
“알겠습니다. 그럼 미용실 가서 뿌리 한 번 더 빼야겠네. 그것 외에는 특별할 것 없죠?”
“네. 나머지는 저번에 공지한 대로 갈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뒷정리를 위해 다들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계속 있어 봤자 오히려 걸리적거리기나 하지, 도움 될 것 하나 없다.
무영은 스태프들에게 인사하며 뒤쪽에 세워진 밴으로 걸어갔다.
띠링!
그때 들어온 메시지 답장.
[유사하 : 와 잘 날아가네요. ^^] [유사하 : 촬영 막 끝났으면 잠깐 볼래요? 사촌 동생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얼굴 봐두면 좋을 것 같아요.]무영은 차에 올라타며 고경민에게 물었다.
“형. 우리 다음 스케줄 뭐예요?”
“너 연말 시상식 의상.”
“아아. 맞다.”
J사는 타사처럼 연기대상 혹은 연예대상이 따로 없고, 대신 ‘연말 시상식’이라고 해서 축제처럼 한 번에 열렸다. 그때 입을 의상을 봐두려는 것이다.
“거기 위치가 어떻게 돼요? 대표님이 잠시 보자고 하시는데. 강남이시래요.”
“음. 잠시만.”
고경민은 내비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무영과 차은성은 대상 부문 유력 후보자다. 아마 공동으로 수상하지 않을까 싶지만, 아무튼. 덕분에 차은성이 드레스코드를 통일하자고 제안해 왔다.
-코트 대신 두루마기 입을래?
정장 위에 검은 두루마기를 걸치자는 것이다.
드라마가 사극이기도 했고, 서울시 홍보대사 컨셉 회의에서 나온 말이기도 했다.
요즘 한복 디자인이 현대적으로 잘 나온다며 보여준 것이 무영의 마음에 쏙 들었다.
“가깝네. 바로 근처야.”
“그럼 대표님 먼저 뵙고 가요. 거기 가면 치수 재고 시간 오래 걸리니까.”
신진 디자이너의 맞춤복이라, 가서 피팅할 것이 많았다.
고경민은 알겠노라 하며 내비게이션을 새로 찍었고, 무영은 유사하에게 곧 가겠다 답장했다.
“오늘 그럼 서울시 홍보대사용 한복이랑 시상식 때 입을 두루마기 정하는 거 맞죠?”
“응. 디자인은 대충 추려놨으니까 가서 입어보고 정하면 될 듯.”
요즘은 홍보 대사도 흰색 배경에 엄지 척 하는 사진이 아니라 화보처럼 미적 감각을 최대한 살리는 추세였다.
독특하고 세련된 한국의 미를 보여주겠노라고, 서울시 홍보팀이 열을 올리고 있다 들었다.
“근데 대표님이 왜 보자셔?”
“사촌 동생분 있다고 소개해 주신대요.”
“아아. 그래? 유라민?”
“이름이 유라민이에요? 예쁘다.”
예쁘다는 말에 고경민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유사하랑 똑 닮았다고 하던데. 성격은 정 반대지만.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약속 장소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띠링!
[차은성 : 어디?]느닷없이 메시지가 들어왔다. 무영은 별생각 없이 주위를 둘러보며 답했다.
[하무영 : 카페 가는데용] [차은성 : 카페 어디?]이 형이 또 왜 이러나…….
무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호를 알려줬고, 이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간대가 애매해서 그런지, 안쪽은 한산했다. 창가에 앉아 있던 유사하가 손을 흔들었다.
“무영 씨. 여기요.”
“이 시간에 회사에 안 계셨네요?”
“동생이랑 미팅하려고 뺐죠.”
“아하. 근데 동생분은요?”
“화장실 갔어요. 친구랑 전화하러. 매니저분은요?”
“그, 음, 몸이 좀 피곤하다 해서요.”
고경민은 차에서 한숨 자는 걸 택했다. 대표량 마주 앉아 커피 마시는 게 편할 리 없으니까.
“아! 영상 보셨죠? 그거 폐차할 거래요.”
“그래야죠. 보니까 바퀴 네 짝이 다 날아갔던데. 하하.”
둘은 촬영 얘기를 시작으로 수다를 떨었다. 쿠키도 먹고, 이것저것 주전부리로 배를 채우며 놀고 있는데…….
“야! 하! 무영!”
“엥?”
누군가 입구로 들이닥치며 무영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큰 목소리. 카페가 한산해서 다행이지, 사람이 많았다면 곤란해졌을 거다.
“형?”
하무영뿐만 아니라 차은성도.
그는 카페 사람이 없는 걸 보고 목소리를 높인 듯싶다. 피팅을 하다 왔는지 정장에 핀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뭐 하냐? 바로 앞 카페 간다고 해서 커피 사 오는 줄 알았잖아. 근데 지 혼자 마시고 있네.”
“형 오늘 피팅 못 온다고 했잖아요?”
“스케줄 바뀌는 거 한두 번이야?”
차은성이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서 당당하게 대꾸했다. 어이없네. 그러면 말이라도 해주던가!
“기다려도 안 와서 친히 데리러 왔다.”
무영은 손에 든 쿠키를 와작거리며 유사하를 돌아봤다. 그는 연신 방긋방긋 미소 지으며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영은 차은성이 실수하기 전, 먼저 선수 쳤다.
“그전에 형. 이쪽 인사부터요. 저희 회사 대표님이세요. 유사하 대표님.”
“안녕하세요. 유사하입니다. 차은성 씨 맞으시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차은성이 의아한 시선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대박이네요. 우리 대표는 내일모레 쉰인데.”
“하하. 그게 보통 일반적이긴 하죠.”
“그래서, 너 오늘 피팅하러 안 와?”
“아뇨. 이거 먹고 갈 건데요.”
“괜찮으시면 같이 앉으시죠.”
유사하는 한껏 우아하게 빈자리를 가리켰다. 당황했지만, 곧 기회임을 깨달은 것이다. 연예계 S급 배우 차은성과 안면 틀 기회.
언젠가는 그도 계약이 끝날 것이고, FA시장에 나올 터인데 이렇게 친분을 쌓아두면 훗날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는가?
“디자이너가 기다리고 있어서.”
“무영 씨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차은성은 별로 개의치 않아 보였지만, 하무영이 뒤에서 뭐라 했는지는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커피 한잔하시죠. 날도 좋은데.”
유사하의 권유에 차은성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경계하는 기색은 지우지 못했는데, 의아하다 싶을 정도로 날을 세우고 있었다.
“형. 커피? 라떼?”
“……딸기.”
“오케오케.”
무영은 차은성을 대신해서 주문하러 카운터로 갔고, 두 남자는 조용히 시선을 나눴다. 무표정의 차은성과 방긋방긋 웃고 있는 유사하.
‘왠지 재수 없네.’
‘소문대로군.’
둘은 각자 속으로만 생각하며, 무영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