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06)
신인인데 천만배우 206화
포스터
“…….”
무영이 시선을 좌우로 굴렸다. 유사하는 연신 생글거리며 차은성을 쳐다봤고, 차은성은 미간을 희미하게 찌푸린 채 맞섰다.
그의 입에 물린 딸기 라떼가 아니었다면, 좀 험하게 보였을 것이다.
“칼날궤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대표님이 드라마도 보세요? 영광이네.”
“당연하죠. 소속 배우가 나오는 작품은 거의 빼놓지 않고 보려 합니다. 전부터 팬이었는데, 이상하게 연이 닿질 않았네요.”
유사하는 싱긋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명함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상당히 편한 분위기를 가장하고 있지만, 알게 모르게 두 사람 사이에는 신경전이 살벌했다.
차은성도 질세라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명함을 들었다.
“아아. SJ. 그래서, 무영이가 저보고 뭐래요?”
별로 관심 없다는 듯. 차은성이 본론을 꺼냈다.
내가 은성이 형에 대해 뭐라 한 적이 있었나?
무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사하를 돌아보자, 그는 능청스럽게 눈썹을 까딱거렸다. 지금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좋은 형이라 하던데요.”
“흐음. 좋은 형.”
“무영 씨는 저에게 별말 안 하던가요?”
“안 하던데요?”
“……아하.”
유사하는 그의 이유 없는 경계를 감지한 것처럼 보였다. 평소 성격이 개차반이라고 하더만, 그것과 별개로 조금 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고 있었다.
“차기작은 정하셨어요?”
하지만 유사하다. 재벌계에서 이런저런 가식과 맞부딪히고 살았던 세월이 한평생이었다. 더욱더 화사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아니요. 쉬고 싶어서.”
“그러고 보니 이후 스케줄 대부분이 무영 씨랑 하는 거네요.”
방구석 예능부터 시작해서 자잘한 광고 그리고 홍보대사까지. 칼날궤의 두 주인공이니, 세트로 오고 가는 건 당연했다.
유사하는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차은성 계약이 얼마나 남았더라? 2년이었던가? 1년이었던가?
“둘이 워낙 인기도 좋고 합도 좋아서 그런가 봐요. 차기작도 같이하면 좋았을 텐데.”
반쯤 관심 빼놓고 라떼만 먹던 차은성이 멈췄다. 그리고 유사하 또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사실 차기작 언급은 직원 사이에서 떠도는 우스갯소리였다. 개떡 같은 차은성이 하무영만 있으면 그나마 사람 같아진다며.
“근데 이것저것 좀 안 맞았죠?”
“하무영이 홀라당 촬영 들어가서.”
하무영은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한지, 하겠노라 결정한 것을 번복 없이 진행했다.
차은성의 중얼거림에 무영이 웃었다.
“특별출연은 싫으시다면서요.”
“당연하지. 내가 미쳤어?”
김우리 나온다며. 덕분에 커피차 하나 못 보내는 신세였다.
뒷말은 삼켰지만, 무영은 뜻을 알아채고 웃었다. 유사하가 말을 덧붙였다.
“회사가 같았으면 조율하기 훨씬 쉬웠을 텐데요.”
“그러니까요. 회사만 같았으면.”
차은성은 하무영의 계약을 자신이 가져가겠노라 생각했다. 회사도 마찬가지.
쌍수 들고 환영하는 건 당연하고, 차은성을 통해 무영과 접선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내년 상반기 중요 프로젝트 중 하나를 ‘하무영 계약’ 건으로 잡고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차은성 씨는 지금 회사에서 몇 년째 하고 계시죠?”
그의 말에 차은성이 눈을 깜빡였다.
잔잔한 웅덩이에 돌이 던져진 것 같은 일렁임이었다. 이적을 내포한 질문인지라, 전혀 생각도 못 한 걸 깨달은 것이다.
“하무영 씨랑 한솥밥 드시면 좋겠다고 하시니. 생각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렇네. 하무영이 아니라 자신이 옮겨도 되는 거잖아? 아. 물론 아직 그럴 생각은 없는데……. 이러나저러나 방법은 여러 개라는 걸 깨달은 거다.
“저는 아직 기간이 남아서.”
“시간 금방 가지 않습니까.”
“오빠?”
그때, 듣기 좋은 목소리에 세 남자의 시선이 돌아갔다. 단발에 부드러운 눈매. 온화한 분위기가 유사하와 똑 닮아 있었다.
“유라민 씨?”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누군데?”
“유사하 대표님 사촌동생이요. 이번에 [면죄부>도 같이 들어가요.”
유라민의 시선은 차은성에게 닿아 있었는데, 그가 앉은 곳이 그녀의 자리였나 보다.
그것보다, 하무영이 올 줄은 알았지만 어째서 차은성까지 와 있는지 궁금한 눈치다.
“앉아요. 어차피 우리 갈 거라.”
차은성은 잘됐다는 듯 일어서며 무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영문모를 상황에 그녀가 반사적으로 몸을 비켜줬다.
“디자이너가 기다리다 쓰러지겠어.”
“어어……. 그, 리딩할 때 다시 뵐게요. 반가웠습니다아.”
질질 끌려가다시피 사라지는 무영. 유라민은 어이없이 웃으며 남은 잔들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야 대체?”
“그러게 말이다. 이게 무슨 일인지.”
유라민은 유사하의 도움 요청을 받고 온 것이었다. 재계약을 앞두고 자주 만나야 하는데, 명분이 딱히 없지 않은가?
사촌 동생이자, [면죄부>에 출연하는 유라민이 아주 적격이었다.
“계약 얘기는 좀 했어?”
“하긴 했지. 근데…….”
유사하는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의미 모를 미소만 지었다.
“무영 씨가 진짜 복덩이네. 붙들고 있으면 차은성도 굴러오겠어.”
“차은성? 힘들걸? 그쪽은 데뷔부터 같은 소속사 아닌가?”
“그건 해봐야 알지.”
소문이 맞았다. 소문대로 성격은 더러워 보이는데, 좀 단순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무영만 잘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을 것 같았다.
“볼일 끝났으면 나 갈게. 친구 만나려고.”
“그래. 나도 회사 들어가야 해.”
유라민의 말에 유사하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한편, 무영은 차은성과 함께 디자인숍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평소답지 않게 차은성이 조용했다.
“형?”
“……엉?”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니. 그냥. 아까 유사하 대표.”
정확히는 유사하 대표가 말한 이적에 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막상 생각하니까 영 구미가 당기는 것 같기도 했다.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형, 대표님 마음에 안 들죠?”
티가 너무 났어요.
“난 돈 많은 사람 싫어.”
어이없는 발언이다. 명실상부 S급 배우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차은성이 쓸어 담은 돈만 해도 강남에 빌딩 세우고 남았다.
“주위에서 내가 제일 잘나가야 하거든.”
“와. 심보 너무 이상해.”
“그리고 평일 카페 오는데 쓰리피스 정장 입는 사람은 더 싫지. 아 몰라. 그냥 마음에 안 듦. 별말 안 했는데 실실 웃는 것도 그렇고.”
상극이어도 이렇게 상극일 수가 있나.
무영은 차은성이 유사하와 한솥밥 먹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SJ라. SJ……. 나쁘지는 않은데…….’
차은성이 SJ와의 미래를 그려내고 있는 것도 모르고서.
가게에 도착하자, 디자이너와 고경민 그리고 차은성의 매니저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 왔어? 대표님은?”
“뵙고 왔어요. 유라민 씨도 얼굴도장 찍고. 근데 대표님이랑 똑같던데요? 성격도 비슷해 보였어요.”
“아니야. 유라민 씨가 훨씬, 그, 착하고 맑아.”
“……대표님도 착하신데?”
얘가 뭘 모르네. 세상에 착한 상사가 어디 있냐? 고경민은 뭐라 대꾸하려다가 다물고 디자인을 넘겼다.
* *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무영 씨.”
포스터 촬영 현장은 단출했다. 검은색 배경에 놓여 있는 의자 두 개. 총이나 담배 따위의 소품도 준비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인물 중심으로 작업하는 거라 그렇다.
“추수안 선배는요?”
“안에서 분장 중이요.”
연채 작가가 카메라 렌즈를 바꿔 끼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더 성숙해 보였는데, 프로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미국 가신다면서요?”
“아. 들으셨구나. 혹시 AEONY라는 잡지 알아요?”
“아니요.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라.”
“사진에서는 권위 있는 곳이거든요. 매년 공모를 여는데 도전해 보려고요. 찍고 싶은 게 다 미국에 있는지라. 그렇게 됐네요.”
연채가 카메라를 들어 무영을 담았다. 방긋 웃으며 미소를 짓는 무영. 그녀가 셔터를 가볍게 누르며 말했다.
“더 일찍 출발하려 했는데, 무영 씨 포스터만큼은 제가 하고 싶어서요. 일정 조율해줘서 감사해요.”
“저는 뭐 한 거 없어요. 수안 선배랑 우리 누나가 맞춰줬죠.”
“그날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둘 다 신인이었을 때. 데뷔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졌다. 연채는 계속해서 테스트하듯 셔터를 찰칵거렸다.
“조명 좀 내려줘요!”
“거기 소품 부탁합니다.”
어둠 속에서 무영의 얼굴만이 말갛게 빛났다. 조명을 담아내는 각도에 따라, 그의 얼굴은 순수하게 보이다가도 섬뜩하게 느껴졌다.
“음. 오늘 컨디션 좋네요.”
“어제 팩 하고 잤어요.”
무영은 찹쌀떡 같은 볼을 주물럭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정장으로 갈아입은 추수안이 넥타이 두 개를 들고서 나왔다. 머리는 포마드에, 오늘따라 눈매가 더욱 매서워 보였다.
“……작가님. 넥타이 선택을…….”
“검은색이 낫죠?”
그의 뒤를 쪼르륵 따라 나오는 김우리. 그녀 역시 세팅을 완벽하게 마친 상태였다. 무영이 웃으며 손을 흔들자, 김우리가 다가와 넥타이를 보여줬다.
“무영아. 빨리 검은색이 낫다고 해줘.”
“검은색이 낫네요!”
“거봐요! 내 말 좀 믿으라니까?”
그들은 추수안의 넥타이 색을 두고서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무영이 역시 목덜미에 타투를 붙이고, 도경이 작업할 때 입는 맨투맨으로 갈아입었다.
“슬슬 슛 들어가 볼까요?”
“세 명이서 먼저 찍어볼게요.”
“수안 씨 앉아서 다리 벌리고, 그 앞에 무영이, 그리고 또 그 앞에 우리 씨 누워보겠습니다.”
“팔 각도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자세 잡아볼게요!”
셋은 서로 얽히고 얽힌 자세를 취하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세 사람의 분위기 합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렌즈로 전해오는 매력에, 연채는 눈 깜빡할 생각도 못 하고 셔터를 눌러댔다.
찰칵! 찰칵!
“시선! 무영 씨만 정면 봐주세요!”
“좋습니다! 좋아요!”
베테랑들이라 그런지, 막힘이 없다. 셋이서 담배를 물고, 총을 겨누며 연기한 지 한 시간. 연채가 이만하면 되었다는 듯 다음을 지시했다.
“이번에는 무영 씨랑 추수안 씨, 둘만 가볼게요.”
“에구구. 힘들다.”
“우리 씨는 좀 쉬고 계세요. 단독 컷 따로 딸 거니까.”
우리는 비틀대며 세트장 밖으로 나와 털썩 주저앉았고, 구두를 벗어버렸다. 무영이 그런 그녀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누나. 괜찮아요?”
“으응. 이만하면 뭐. 근데 둘이야말로 괜찮아? 비흡연자 둘이서 연기를 얼마나 마시는 거야.”
김우리의 말에 추수안과 무영이 웃었다. 벌써 한 갑이나 태운 상태다. 숨으로 들이켜진 않았지만, 냄새를 참기 점점 어려워졌다. 무영은 슬그머니 입에서 뺀 다음 턱을 괴었다.
‘어?’
순수하면서 묘하게 능글맞은 느낌이 확 살았다.
“그대로! 멈춰요!”
찰칵! 찰칵!
연채는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고, 이내 카메라 화면만 빤히 확인했다.
우리 역시 고개를 빼꼼 내밀고서 웃었다.
“이걸로 가면 되겠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