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07)
신인인데 천만배우 207화
김 비서
끼익.
낡은 건물에는 작은 교회가 들어서 있었다. 버려진 지 꽤 되었는지, 십자가에는 먼지가 잔뜩 쌓였고, 바닥에는 온갖 잡다한 쓰레기가 널렸다.
그곳은 도경의 수많은 재산 중, 처음으로 매입한 건물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자신을 길러주었던 고아원이자, 교회.
“관리라도 좀 할 것 그랬습니다.”
“딱히.”
목사가 성폭행으로 잡혀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박살 났다.
도경은 소파에 풀썩 주저앉으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가 붙였던 야광 스티커가 그대로였다.
치직.
김 비서는 라디오로 바깥 상황을 주시했다.
차가 전복되고 터지면서, 두 사람의 교통수단이 완전히 묶여 버렸다.
“비행기 출국금지령 떨어졌다 합니다.”
“그렇겠지. 어느 멍청한 새끼가 그걸 그대로 둬?”
아마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하늘에서 기내식을 먹고 있을 터였다. 도경과 마찬가지로 김 비서도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그들은 어둠에서 잠시 침묵하며 바깥을 바라봤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즐비했다. 아무리 봐도 교회가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닌데, 시작부터가 잘못되었구나 싶다.
“새벽에 인천항으로 움직이죠. 러시아 말고 중국으로. 중국에 윈첸 부부가 있지 않습니까.”
“걔들이 도와줄 것 같지는 않은데.”
중국공산당의 간부이자 현 중국 재계 서열 10위권에 드는 회장의 둘째 부부였다.
돈과 허영심이 넘치는 자들이라, 도경의 그림을 사재기하듯 산 적이 있다. 물론 그는 질색하며 거절했지만.
“그래도 그쪽이 제일 쓸 만합니다.”
겉으로는 정재계의 꽃이지만, 뒤로는 온갖 음습한 자들과 손을 잡고 있었다.
개중에는 중국의 흑사회는 물론이고 다국적 마피아 기업도 포함해서.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전세기쯤은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X 같네 진짜…….”
도경이 담배를 물자, 김 비서는 익숙하게 그의 팔을 걷었다. 전복 사고로 살이 죄다 까진 상태다. 그는 생수를 들이붓더니 붕대로 도경의 상처를 감았다.
“김 비서.”
“네.”
“너도 갈 거지? 중국.”
“……중국어 못하시지 않습니까.”
“영어는 잘하잖아. 그래도.”
도경이 손끝을 까딱까딱, 기분 좋게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담배를 그에게 건넸다. 이번에는 먹으려나? 마치 먹이를 거부했던 개를 살피듯, 시선이 조심스럽다.
김 비서는 한숨을 삼키며 담배를 받았다.
“잠이라도 자두십시오.”
그리고 반대쪽 소파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도시의 소음만이 둘 사이를 채웠다. 담배가 타들어 가듯, 김 비서의 의식 역시 흐트러졌다.
부스럭.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낯선 인기척에 김 비서의 눈이 슬그머니 떠졌다.
시간은 새벽 네 시. 밤하늘이 점점 밝아지며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슬슬 움직여야…….’
시간에 맞춰 부하 중 한 명이 데리러 오기로 했다. 김 비서가 도경을 깨우려고 하는데, 그의 가슴팍에 종이 한 장이 얹어져 있었다.
스윽.
김 비서가 자는 모습이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종이와 볼펜으로 낙서하듯 그린 그림이었지만,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김 비서는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렸다.
“몇 신데…….”
“일어나셔야 합니다.”
“하아암-”
도경은 권총을 쥐고 자느라 팔이 저리다며, 기지개를 켰다.
그는 부스스한 눈길로 김 비서를 올려다봤다.
손에 들린 종이 쪼가리가 어렴풋이 흔들리는 것 같다.
“왜?”
“……왜 그리셨습니까?”
어허? 이것 봐라? 도경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인상을 찌푸렸다. 잠 깨자마자 헛소리를 들은 게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림 그리는 것도 네 허락 맡으면서 해야 해?”
“저도 죽일 생각이십니까?”
도경은 그제야 잠이 완전히 깨는 기분이었다.
김 비서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묘하다. 긴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 충격적인 것 같기도 하다.
“대답해 주세요.”
도경은 말없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솔직히 그를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 김 비서가 없으면 곤란할뿐더러, 그냥,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짜증 나잖아. 개새끼 주제에.
“알아서 뭐하게.”
“…….”
“언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바칠 것처럼 굴더니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까 X 같아? 아니다 싶어?”
도경이 웃음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김 비서는 대답이 없었다.
저 머리통 속에 무슨 생각이 얽히고 얽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가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위이이잉-
위잉-
끼익!
조용한 골목에 소란이 일어났다. 필시 경찰 사이렌 소리였다. 화들작 놀란 김 비서가 가방을 챙기며 도경의 팔을 잡아 끌었다.
“뒷문으로 먼저 나가시죠.”
“아니. 대답부터 해.”
“그럴 시간이-”
“내가 널 죽인다면, 죽어줄 수 있어?”
철컥.
김 비서의 뒤통수에 권총 부리가 닿았다.
지금 진심인가?
김 비서가 천천히 뒤돌았으나, 도경은 거두지 않고 이마에 총부리를 지그시 눌렀다.
“내가 묻잖아. 죽어줄 수 있냐고.”
위이잉-
위잉-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지금. 사이렌의 붉고 푸른 빛 역시 울룩불룩한 창문에 얼룩졌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만이 형형하게 빛났다.
“역시 그럴 생각이셨군요.”
“대답이 좀 이상한데.”
김 비서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죽어줄 수 없습니다.”
담담했던 도경의 시선이 흔들렸다.
조금 충격받은 듯 보였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의 입에서 나온 부정. 도경이 희미하게 웃었다.
“나를 위해 사람은 죽여도, 죽을 수는 없다?”
“원한다면 건물 빠져나가는 건 도와드리죠.”
“X발 지금 뭐라는 거야…….”
도경이 권총을 더욱 세게 눌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네가? 감히? 나를? 배신감인지 뭔지 모를 분노에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타닥타닥-!
쿵! 쿵!
“없습니다! 이층!”
“2팀은 다음 층으로!”
아래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경찰들이 치고 올라오는 건 시간문제다. 도경은 잠시 고민했다. 김 비서 역시 마찬가지.
“이대로 잡히면 난 죽겠지?”
“……아마도요.”
사형 선고를 받기 전, 그러니까 도경에게 죄가 있음이 밝혀지기 전 회장이 죽일 것이다.
미술품 가격을 날개 삼아 날던 그가, 그 무게에 짓눌려 추락할 게 뻔했다.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일 거고.”
“저를 죽이면 당신은 끝이에요.”
보호해 주고, 도와줄 사람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분명 김 비서가 없으면 도경은 광장 한복판에 떨어진 나약한 존재가 될 터.
“알아.”
“세상 모두가 당신을 죄인으로 만들겁니다.”
“그것도 알아.”
철컥.
도경은 뭔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마지막 질문.”
“…….”
“넌 네가 죽으면 어디로 갈 것 같아?”
정말 뜬금없는 물음 아닌가. 천국과 지옥 혹은 전혀 다른 세상. 도경은 그리 충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기에, 망설였다. 일단 천국은 아닌 것 같지만-
“천국.”
“……양심없는 새끼네.”
그냥,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어차피 가지 못할 거, 말만이라도. 하지만 의외의 대답에 도경이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천국, 갈 겁니다.”
“그래. 잘됐다. 꼭 천국 가. 거기서 다시 보자.”
주인은 개를 버려도, 개는 주인을 못 버려.
도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너 그린 거.”
타앙!
총성과 함께 김 비서의 목이 꺾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살인이었다. 김 비서는 천장의 야광 스티커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뒤로 쓰러졌다.
“아…….”
“예뻐서 그렸어. 예뻐서.”
주인이 강아지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쓰다듬으며 예뻐하는 것이 무엇 그리 특별한 일이라고.
도경은 피로 흥건해진 바닥을 보며 웃었다.
“역시.”
생각보다 더 색이 좋구나.
그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십자가를 쳐다봤다. 빛을 완전히 바래 버린 종교의 상징은 초라했다.
콰앙! 쾅!
그때, 잠긴 문이 뜯기고 경찰특공대가 들이닥쳤다. 우두두 하는 발소리로 보아 이 작은 건물에 수십 명이 들어섰나 보다.
“젠장! 뭐야?”
“송도경! 손 들어! 총 내려놔!”
회장과 달리 경찰은 그들을 살려서 데려가려 할 것이다. 대국민 앞에서 죄를 시인하고, 목을 쳐냄으로 분노를 달래줘야 하니까. 그들은 아직 헐떡거리는 김 비서의 몸과 도경을 번갈아 보며 당황해했다.
“총 내려!”
“송도경!”
그러자 도경은 두 손을 가볍게 들며 흔들었다.
“고막 찢어지겠네. 알았어. 나 안 죽어.”
타악.
그리고 권총을 경찰 쪽으로 던지며 대답했다.
“자살하면 천국 못 가잖아.”
김강우가 천국으로 간다고 하니, 자신도 응당 그쪽으로 가야지 않겠는가? 어이없는 말에 경찰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저택에서 타다 만 시체가 수십 구나 발견됐다. 그런 자가 감히 천국을 입에 올리다니.
“넌 지옥행이야. X신아.”
* * *
“오케이! 컷!”
“좋습니다!”
감독의 지시에 추수안이 슬며시 일어섰다. 얼굴 전체가 피로 흠뻑 젖은 상태다. 무영은 수건을 건네주며 웃었다.
“선배님 뒤로 넘어가는 거 예술이던데요?”
“……고맙습니다.”
“근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도경이 진짜 또라이 같다. 하는 짓 보면 정상이 아니에요. 아하하하.”
“……무영 씨는 좀 괜찮아요?”
“저요? 저는 피 한 방울 안 묻었는데용?”
무영이 제 옷을 이리저리 살피며 대답했다. 추수안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 뒷말을 잇지 않았다.
처음 살인하는 장면에서는 역할에서 쉬이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촬영을 거듭할수록 그 경계가 뚜렷해졌다.
물론, 무영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지만.
“화면 확인해 볼게요!”
“무영 씨, 수안 씨! 잠깐만.”
“네엥!”
여러모로 숙련되고 있다는 뜻이겠지.
무영은 감독과 함께 피드백을 나누며 영상을 확인했다.
세트장의 하늘은 여전히 새벽빛이었고, 그들은 만족스러운 장면이 나올 때까지 수십 번을 반복해서 작업했다.
“아! 이제 끝!”
“진짜요? 한 번 더 해도 될 것 같은데.”
“아니! 끝! 만족스러워. 진짜 좋아요.”
참다못한 김산이 손으로 슬레이트를 쳐대며 퇴근을 선언했다. 무영은 코만 훌쩍거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감독님이 괜찮다 하시는데, 뭐…….
“오늘은 그만 정리하고. 아참. 포스터 촬영은 잘 끝났어요? 얘기 들어보니까 다른 소품 없이 그냥 담배만 썼다면서요?”
“네. 연채 작가님이 아주 멋지게 작업해 주셨어요.”
“다행이네요. 디자인팀에서 마무리 잘해줄 거예요. 그리고 다음 주에 유라민 씨랑 촬영 있는 거 알죠?”
“네네. 들었습니다!”
도경이 구치소에 수감 되어 있을 때, 그를 위해 국가가 보내준 수녀였다.
기도하며 회개하라는 일종의 복지였지.
하지만 피해자 중 한 명이 그녀의 제자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김 비서가 천국으로 갔을지, 지옥으로 갔을지, 도경을 혼란하게 만드는 역할이었다.
“조연출이랑 저기, 스케줄 맞추고 오늘은 퇴근!”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스태프들이 박수를 짝짝짝 쳐대며 인사했다. 추수안 역시 붉게 물든 머리카락을 털고서 허리를 꾸벅꾸벅. 조연출이 수첩을 가져오며 물었다.
“변경사항 있으신 분?”
“없습니다!”
“저는 보름 뒤에 J사 연말시상식 있는 거 아시죠?”
“네네. 알죠. 그 주간은 아마 스태프들 다 쉴 것 같아요.”
다들 [면죄부> 들어오기 전 다른 작업을 했던지라, 그들도 연말에는 나름대로 바쁠 것이다. 조연출이 수첩을 뒤적거리더니 웃었다.
“무영 씨는 시상식에서 김우리 씨 만나겠네.”
“네? 우리 누나요? 누가 J사에서 뭐 하셨어요?”
“응? 그건 아닌데. 저기 특별 MC로 초청됐다 하시던데요?”
“아하…….”
포스터 촬영할 때만 해도 듣지 못한 얘기인데. 김우리는 차은성과 연인이었다는 걸 무영에게 말하지 않았다.
차은성이 말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몰라도, 아무튼 영 불편해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쪽으로는 의아할 정도로 입을 꾹 다무니.
“무영 후배님. 차은성 선배님이랑 같이 가는 거 아닙니까? 칼날궤요.”
“네. 맞아요.”
“……재미있겠군요.”
전혀 재밌어하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무영은 어설프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설마, 뭐, 에이.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