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1)
신인인데 천만배우 21화
소속사
“아. 좋습니다! 컷!”
사진작가가 만족스럽게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쉬는 시간 없이 연달아 다섯 벌의 옷을 소화해 낸 엔빈이다. 출국 일정이 잡혀 있으니, 시간 늦춰지지 않게끔.
“엔빈 씨. 한번 보시죠.”
대표와 작가 그리고 엔빈이 화면에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확인했다. 무영과 준호 역시 어깨너머로 훔쳐보는 중.
“이거 마음에 드네요.”
“자연광 때문에 느낌이 훨씬 사는 것 같아요.”
“여기 보정으로 좀 살릴까요? 버리기엔 좀 아쉽죠?”
전문가들 눈에는 A컷과 B컷의 차이가 보이는가 보다. 무영과 준호가 보기에는 모두 당장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인데. 엔빈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꼼꼼하게 모니터링했다.
“그럼 이대로 가는 거로?”
“네. 그럽시다. 수고 많으셨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세 명의 의견이 일치되자, 주위 스태프들이 가볍게 박수 쳤다.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매니저 형. 다들 촬영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엔빈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대표님. 다 끝났어요?”
준호가 제 형을 깍듯하게 대표라 부르며 물었다. 공과 사는 확실히 지키는 모습. 그가 이를 꽉 깨물며 미소 지었다. 튀어나오는 환호성을 감추기 위한 제스처였다.
“너어-무 잘 나왔어. 미쳐.”
본투리가 추구하는 감성을 엔빈이 찰떡같이 소화해 냈다. 디자이너로서, 사업가로서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뒷정리 돕고 밥 먹으러 가자. 무영이도 배고프지?”
그는 두 친구의 어깨를 감싸며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절로 흥이 터지는 듯, 으쌰으쌰!
드르륵.
그때, 옷을 갈아입은 엔빈이 셔츠를 잡아끌며 나왔다. 더운 날은 아니었으나 야외에서 조명 판까지 받다 보니 열이 오른 것이다.
“무영아. 나 이거 먹는다?”
그는 아까 무영이 사 왔던 음료수 봉지를 뒤적이며 물었다.
“아, 근데 그거-”
무영이 손을 뻗으며 멈칫거리는 사이, 엔빈이 캔 뚜껑을 따버렸다. 그리고 시원하게 터지는 탄산. 흰옷이었던 엔빈의 티셔츠가 갈색으로 물들었다.
치이익!
“으앗!”
“조, 조심하라고 말하려 했는데…….”
“뭔데, 오면서 떨궜냐?”
“아니. 먹으려고 보니까 바닥이 찌그러져 있더라고.”
무영은 물티슈를 뽑아 엔빈에게 건네주었다. 끈적끈적한 건 둘째치고, 옷이 엉망이었다. 그는 낭패라는 눈빛으로 매니저를 불렀다.
“형. 혹시 이거 협찬이야?”
“그런데? 헉! 뭐여!”
“큰일 났다.”
닦으면 닦을수록 얼룩이 번진다. 매니저는 멍하니 옷을 내려다보다 시계를 확인했다.
“바로 공항 가야 하는데. 안 그럼 퇴근 시간이라 백퍼 막혀.”
하지만 이 꼴로 어떻게? 둘 다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그의 옷을 닦아주던 무영이 준호에게 말했다.
“아까 촬영하던 옷, 엔빈이 입고 가라 하면 안 돼?”
“응? 안 그래도 매니저님 챙겨 드리려고 싸놨어.”
“빈아. 일단 그거 입고 가고, 협찬사에 공항 쪽으로 새 옷 보내 달라고 해. 길 막혀서 늦는 것보다 차 안에서 대기 후 나가는 게 나을 거야.”
차에서 내리지만 않으면 기사 사진은 안 찍히니까. 거기서 픽업 후 갈아입고 나가는 게 안정적이었다.
“그래. 그게 낫겠다.”
“아- 미안해 형.”
“아니야. 형 전화 좀 하고 올게. 옷 받으면 바로 나와. 차 빼놓을 테니까 가면서 갈아입자.”
무영은 생수를 따서 그의 손에 부어주었다. 그 틈에 준호는 재빨리 포장해 뒀던 종이 백을 가지러 갔고. 대표와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힐끔거렸다.
“미안해. 음료수 치워둘 걸 그랬다.”
“아니. 내 잘못이지 뭐. 그나저나 넌 이제 뭐 하냐?”
“나? 여기 정리하는 거 돕고 밥 먹으러 갈 듯?”
엔빈은 휴지로 물기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서 알려줘. 웹드라마 회식 어땠는지.”
“그래. 너도 잘 다녀오고. 어디 간다 그랬더라?”
“태국. 그리고 너 소속사 정하는 게 나을 거다. 연기만 해도 좋다고는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냐. 게다가 좋은 작품은 뭐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줄 알아? 그런 거 따오는 게 회사 일이니까-”
마치 엄마가 잔소리하듯 조잘조잘.
물론 오디션을 봐야겠지만, 회사에 따라 어느 정도 융통성이란 게 발휘될 것 아닌가. 흐름을 탔을 때 밀고 나가야 했다.
제안이 쏟아지는 지금, 잡아야 한다는 말씀.
“필요하면 말해. SN 레이블이 있는데 거긴 배우 영입도 하거든. 아직 신생이지만 이름값 어디 안 가.”
“고마워.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할게.”
준호가 옷과 수건 따위를 담은 종이백을 가져오자, 엔빈은 웃으며 그걸 받았다.
“고맙습니다.”
“아니요.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그럼. 가볼게요. 수고하셨어요!”
엔빈은 스태프들에게 인사하며 무영에게 눈짓했다. 따로 연락하자는 눈빛. 그는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벤에 올랐다.
부아앙-
“공항에서 옷 잘 받으려나.”
무영의 중얼거림에 준호가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쪽 일까지는 자신의 상관이 아니었으니까.
“아 참. 준호야.”
여유롭게 전선을 정리하려던 준호. 무영이 방긋 웃었다.
“그랜절 하셔야죠?”
“…….”
뭔지 몰라 인터넷 쳐보니까 아주 어마무시하더만? 준호는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이래서 입이 문제야 문제.
“그랜절!”
“미쳤냐? 목 부러지게?”
“보여준다며-?”
둘은 카페 마당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쳐댔다. 그 모습을 보던 직원과 대표. 내버려 두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뒷정리 마무리를 이어갔다.
“작가님. 촬영 보정본은 언제 나오나요?”
“최대한 갈아 넣으면 보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그들은 런칭에 온 정신을 쏟느라 알지 못했다.
엔빈이 이날 결국 공항에서 협찬 옷을 다시 받지 못했으며, 어쩔 수 없이 본투리를 입고 기자들 앞에 섰다는 것을.
* * *
그리고 며칠 후.
무영은 후드티를 뒤집어쓴 채 한 고깃집에 당도했다. 골목 깊숙이 있어 헤매기를 몇 번. 입구에서 익숙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팀장님!”
“오호! 무영이!”
벌써 한잔 걸쳤는지, 얼굴이 꽤나 얼큰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죄송해요. 과제가 밀려서.”
“밥 아직 안 먹었지?”
그는 재빨리 담배를 비벼 끄고 무영을 안으로 안내했다. 아예 전체 예약을 한 모양이다. 삼삼오오 붙어있는 테이블엔 죄다 아는 얼굴들뿐.
“무영이 왔다!”
“와아- 뭔데! 왜 이제 와?”
“엔빈 씨도 안 오고, 우리끼리 다 먹을 뻔했다고!”
현장 스태프보다 스퀘어필름사 직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촬영 마무리 회식이라더니…… 프로젝트 성공 축하 회식이 더 맞는 자리 같군.
“자자. 이쪽으로 앉아.”
첫 화의 선풍적인 인기로 추가 제작까지 무리 없이 잡힌 촬영. 아직 편집과 업로드가 남아있었지만, 그건 편집팀에서 할 일이지!
“대표님! 무영이 왔어요.”
“오오! 어서 와.”
직원들의 소란에 고기를 양껏 먹던 조미영 대표가 손을 들었다.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있는 모습. 무영과 팀장이 그녀 앞에 앉았다.
“술 괜찮지?”
“네. 근데 조금만요. 저 잘 못 마시더라고요.”
“그래? 간 쌩쌩할 나이 아니야?”
조미영은 소주잔을 내주며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런데, 영 신경 쓰이는 한 남자. 그녀 옆에 앉은 낯선 남자가 무영을 빤히 쳐다봤다.
‘뭐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혹시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 턱 부근을 매만져 보지만, 별거 없다. 그는 조미영에게 뭔가를 속닥거렸다.
“푸하하하!”
그리고 빵 터지는 그녀의 웃음. 팀장만이 그만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무영이 놀라잖아요. 대표님.”
“아니. 미안해. 선배가 완전 주접떨잖아. 미튜브에 달렸던 댓글, 선배가 쓴 거지?”
“실물이 훨씬 괜찮아서.”
남자는 웃으며 무영에게 명함을 건넸다. ‘실링엑터스’ 실장 박철문이라 적힌 글자.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링엑터스?’
낯이 익은 이름. 문외한인 무영이 이럴 정도면, 어느 정도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는 회사란 뜻이다. 조미영이 잔을 들며 설명했다.
“미안. 놀랬지?”
“아니요. 명함 받은 게 놀랄 일은 아니죠.”
“듣자 하니 아직도 소속사 안 정했다면서?”
그녀의 말에 무영은 팀장을 빼꼼 쳐다봤다. 별별 얘기를 다 하셨군요? 민망하게 머리만 긁적이는 팀장.
“중간고사라 바빠서요.”
다른 에이전시는 그냥 연락처만 전달해줬다. 하지만 실링엑터스의 박철문은 조미영의 대학 선배. 자리 좀 마련해달라는 끈질긴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초대한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인맥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낫긴 하지. 어차피 우리가 못 물 거면.’
훗날을 대비해서, 아는 회사라면 캐스팅이 더 쉬울 것 아닌가. 무영은 명함을 만지작거리더니 그저 웃기만 했다.
“이렇게 실물로 받는 건 처음이네요.”
인터넷상에 무영이 누구인지 추측하는 글만 난무할 뿐. 실제로 찾아올 만큼 정보가 풀린 게 아니었다.
“그래? 영광인데?”
박철문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연기가 참 인상적이었어. 나이도 아직 어린데, 깊이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물론 외적인 요소도 상당히 가능성 있고. 우리가 이런 식으로 캐스팅은 잘 안 하는 편인데, 영 놓치기가 아까워서.”
반면 무영은 젓가락을 집었다.
온종일 과제 한다고 쫄쫄 굶다시피 했으니. 물론, 돈 없어서 굶은 건 절대 아니다. 진짜로.
“계약금도 어지간하면 맞춰 줄 수 있어요.”
“계약금이요? 얼마나요?”
멈칫. 무영이 관심 있어 하자, 박문철이 비밀이라는 듯 눈만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이런 자리에서는 좀 그렇고, 신인 중에서는 진짜 잘 받았다는 말 나올 수 있게 할게요. 약속해요.”
그러자 조미영 역시 옆에서 거든다.
“실링엑터스가 돈이 좀 많아. 잘 나가는 배우들이 많거든. 박지민, 로이, 해준 그리고 또…….”
그녀 입에서 나오는 익숙한 이름들. 인지도가 꽤 탄탄한 배우들이었다. 오호! 무영은 감탄하며 고기를 우물거렸다.
“다령! 이번에 MBV 미니시리즈 여주인공 있지? 걔도 실링엑터스 소속이야.”
“아. 진짜요?”
MBV 미니시리즈라 하면 보라가 캐스팅된 그 드라마잖아?
“학원 친구가 거기 조연으로 캐스팅됐어요.”
“그래? 누구?”
“강보라라고-”
와앙- 무영이 입을 벌리며 다시 고기를 먹으려 할 때였다. 박문철의 입가에 검은 연기가 서렸다.
“강보라? 잘 모르겠는데. 무영이 친구라고 하니까 관심이 가네. 한번 알아봐야겠어?”
꿀꺽-
무영은 깜짝 놀란 나머지 고기를 통째로 삼키고 말았다. 하하, 웃으며 뿜어내는 스모그. 마치 악마가 인간의 탈을 쓴 채 입김을 내는 것 같았으니. 박문철의 얼굴 전체가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