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12)
신인인데 천만배우 212화
결말
“말도 안 돼!”
사실 둘이 사귀는 건 그리 놀라울 게 아니었다. 김우리와 추수안 모두 좋은 사람들 아닌가. 게다가 촬영 내내 붙어 있지, 스케줄 없어도 리딩한다면서 따로 본다.
이만하면 없던 마음도 생기는 게 정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영이 놀란 것은 스튜디오 경비도 알 만한 일을 자신이 몰랐다는 데 있었다.
고경민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찌 보면 신께서는 참 공평하신 것 같다.”
“형 불교잖아요.”
“말이 그렇다고. 말이.”
애가 빠릿빠릿하고 다 좋은데, 이쪽으로는 영 감각이 없네.
고경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김우리와 추수안이 걸어간 쪽으로 향했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언제부터였는데요?”
“오래된 건 아닌데…….”
끼익.
“안녕하세요!”
“무영 씨! 어서 와요!”
“대상~ 최연소 대상~”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하무영 씨 도착하셨어요!”
고경민은 세트장 문을 열며 스태프들과 인사했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무영에게 대상 축하와 대기실 안내를 소홀히하지 않았다.
“어. 저기 있네. 봐봐.”
고경민은 김우리와 추수안을 턱으로 가리켰다. 두 사람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조잘조잘.
“아이참. 수안 씨. 소매 좀 제대로 걷으라니까.”
“……이, 이상한가요?”
평소대로, 김우리는 추수안의 옷매무시를 봐주며 다정했다. 하지만 저게 왜? 포스터 촬영할 때도 김우리는 추수안을 저리 대했다.
무영이 더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하하하! 진짜? 그거 웃긴다!”
“그래서 제가 바로 나왔습니다.”
“잘했어. 괜히 있다가 오해받아.”
역시 평소대로, 두 사람은 조잘조잘 떠들며 스탠바이를 기다렸다. 아무리 봐도 연인 간의 특별한 분위기는 못 느끼겠단 말이지.
추수안 선배가 말을 좀 덜 더듬는 것 같긴 하지만…….
“저도 저러는데요? 옷 봐주고 수다 떨고.”
“봐도 모르면 됐다. 나 화장실 다녀올게.”
고경민은 포기한다는 듯 손을 들어버렸다. 두 사람은 여전히 눈을 맞추며 웃고 떠들었다. 그러고 보니, 일반적인 대화 간격보다 훨씬 좁다. 서로 손끝이 닿아 있기도 하고, 간질간질 웃음소리가…….
“으아아!?”
무영이 저도 모르게 소리치자, 김우리와 추수안이 돌아봤다.
“앗. 깜짝이야.”
“……오, 오셨어요?”
“거기 서서 뭐 해?”
우리가 옆에 앉으라는 듯 의자를 툭툭 두드렸다. 넋 빠진 것처럼 그들 가운데 앉은 무영.
표정이 심상치 않자, 김우리와 추수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나. 선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우리가 자못 걱정스러운 손길로 무영의 앞머리를 넘겨줬다. 추수안 역시 찬 커피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둘이 사귀어요?”
“응? 응.”
망설임도 숨길 것도 없이 들려오는 대답. 김우리가 화들짝 놀라며 추수안의 어깨를 팡팡 때렸다.
“미쳐! 대박! 무영이 너 이제 알았어?”
“네. 방금. 그것도 고작 몇 분 전에.”
“어머. 얘는 와……. 어떻게 몰랐지? 팔짱 끼고 껴안고 별별 거 다 했는데?”
김우리의 말에 추수안의 얼굴에 벌게졌다. 꾹 다문 입을 벌리면 김이 새어 나올 것 같다. 무영은 그가 준 커피를 쪼록 마시며 변명했다.
“저는 그냥 뭐, 음, 평소 성격이신 줄 알았어요.”
“그것도 맞는데 수안 씨랑은 좀 다르지.”
실제로 우리는 무영이와도 스킨십이 잦았다. 컷을 성공적으로 따내거나, 역경을 이겨냈을 때, 혹은 축하하는 의미로 거리낌 없이 그를 안아주었으니까.
그 때문에 김우리와 추수안이 껴안아도 그저 저처럼 동료 사이구나 싶었던 거다.
아니,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둔했던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축하드려요. 두 분 잘 어울리세요.”
“고마워. 아하하하. 재미있다. 나는 당연히 네가 아는 줄 알았어.”
“근데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얼마 안 됐지? 워낙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자연스럽게. 뭐.”
“……하, 한 달 반 지났습니다.”
따지고 보자면 무영이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영화를 출연하겠다 한 것부터 시작해서, 리딩, 액션 연습 등등. 모두 무영이를 중심으로 뭉쳐야 했으니까. 그가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했겠지.
무영은 배시시 웃으며 다시금 둘을 축하했다.
“좋아요. 좋아. 보기 좋아요.”
“무영 씨! 의상 갈아입을게요!”
“네에! 아, 참. 유라민 씨는요?”
“분장실에서 머리 붙이는 중.”
“알겠습니다. 저 그럼 먼저 준비할게요!”
“오케~ 고고~”
짜악!
무영과 우리, 수안은 손뼉을 가볍게 맞부딪히며 파이팅했다. 마침 분장실에서 나온 유라민이 수녀복 소매를 걷은 채 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네에. 저도요.”
분명 카페에서 만났을 때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강했는데, 분장하고 나니 고결한 수녀님 그 자체다.
무영은 스태프가 건네준 죄수복을 갖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 * *
“현재 확인된 피해자는 총 마흔다섯입니다. 피의자 송도경의 DNA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며, 저택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 역시 입건하여…….”
“정부에서 정식 발행한 면죄부가 있다고 하던데요?”
“재판에 서봤자 뻔한 결과 아닙니까?”
“면죄부를 발행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횟수와 피해자의 수를 대조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일차 목표입니다.”
“사람을 죽였는데! 장난해!?”
“교황청의 정식 입장은요?”
“면죄부 판매로 인해 마흔다섯 명이나 죽어 나갔습니다! 제대로 된 입장 발표해주세요!”
“면죄부 판매 수익금이 현재 건설 진행 중인 대교회 예산으로 잡혔다던데, 사실입니까?”
“송도경은 정부 인사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것 아닙니까? 송도경의 남은 작품들은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당신들이 살인자야!”
브리핑 회장은 온갖 고성과 물건이 날아다니며 아수라장이었다.
눈을 내리깔며 정해진 대본대로만 입장을 발표하는 경찰청장.
이어서 화면이 바뀌며 아나운서가 패널들과 토론을 진행했다.
“앞으로의 추이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교황청의 공식 입장이 아직 안 나왔습니다만, 아무래도 면죄부가 있는 만큼 법적인 처벌은 불가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입 수와 피해자 수가 거의 일치한다고 하죠?”
“계속 조사 중입니다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정부에서는 면죄부 발행이 과도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관련 책임자를 조사하고 있다 하는데요. 이게, 좀 모순인 것이 책임자는 결국 교황청이거든요.”
“음. 그렇다면 송도경을 처벌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군요?”
“네. 모두 ‘선언’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선언.
법적인 처벌과 다른 종교적인 처단이었다.
도의적 책임을 회피한 자들에게 내리는 주홍글씨이면서도, 사안이 심각하면 독단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도 있었다.
그중 최고는 단연-
“대한민국 역사상 악마로 선언된 사례가 없는데요.”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각각 두 번씩 선포된 사례가 있었습니다만, 확실히 한국에서는 송도경이 처음일 것입니다.”
대상을 악마로 간주하여 종교 재판을 여는 것. 그 끝은 오직 사형뿐이다. 이는 교황청이 내밀 수 있는 최후의 카드였으며,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 도달했다는 걸 의미했다.
띡.
도경은 심드렁한 시선으로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텅 빈 다목적실. 뒤에서 지키고 있는 경찰 두 명을 제외하고는 인기척이 없었다.
똑똑.
“수녀님 도착하셨습니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파리한 얼굴의 수녀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하루에 한 번 있는 기도시간이었다.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아직 공소 제기를 당한 건 아니었고, 특히나 그가 죽고 나서 남길 수많은 재산이 주는 편의였다.
“다른 분이 오셨네.”
“…….”
“난 저번 신부님도 괜찮다니까.”
수감 시설 안에서도 도경은 끊임없이 살해 위협을 당했다.
그가 악마로 선언당하기 전 죽이려는 회장의 손길이 다급했기 때문이다.
도경은 수녀에게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아예 맨손이시네.”
신부는 성경 안에 단도를 숨겨 들어왔다가 제압당하고 말았다. 도경은 바싹 마른 수녀의 손을 가만히 쳐다봤다.
“기도해 주세요. 수녀님. 오늘도 아주 시끄러운 하루였습니다. 하느님이 저의 고난을 보고 계시겠죠?”
“……물론입니다. 형제님.”
수녀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기도했다. 단조롭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끊임없이 갈구했다. 노을이 창문으로 짙게 쏟아지는 순간. 그녀가 기도를 멈추고 도경을 쳐다봤다.
“도경 형제님은, 천국으로 가고 싶으세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리 할 거고요.”
“갈 수 있다 생각하시나 봅니다.”
수녀의 말에 도경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인가 싶어서.
“당연하지요. 면죄부라는 것이 교황의 이름으로 발부된 것인데, 교황은 하느님과 제일 가까우신 분 아닙니까.”
“그래서 죽으려고 하는 거죠? 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당신을 악마로 선언하면, 그때는 정말로 지옥에 떨어질 테니까.”
수녀의 말에 도경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회장이 보내는 살인자를 거리낌 없이 받았던 이유가 그것이다. 악마로 선언당하기 전 죽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자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김 비서…….”
수녀는 그의 이름을 꺼냈다.
듣기로는 도경의 충실한 개였으나 체포 직전 그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를 위해 면죄부를 사신다고요?”
그리하여 그는 천국으로 갈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역시 천국으로 갈 것이다.
도경은 남은 재산을 모두 정부에 환원하는 조건으로 마지막 면죄부를 구했다.
수녀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조소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그자는 천국으로 갔을지언정, 당신은 지옥으로 갈 터인데.”
뜻밖의 말에 도경이 멈칫거렸다. 수녀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높낮이 없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투는 기이하다 못해 소름 끼쳤다.
“안타깝게 됐군요. 발 닦던 개는 천국으로 가는데, 주인은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히 울부짖는 꼴이라니. 악마에게 사지가 잘려나가 그 피로 갈증을 해소하며 끝없는 고통에 잠식당할 겁니다.”
“네가 뭔데-”
“혹시 김연우라고 아나요?”
김연우. 수녀가 아끼고 아끼던 사람이자, 도경의 손에서 무참히 죽어갔던 여인.
도경의 얼굴로 핏빛 노을이 드리웠다. 두 사람의 시선이 날카롭게 맞물렸다. 도경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입매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모르겠는데.”
그 순간 깨진 수녀의 눈빛.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경찰에게 문을 열어달라 부탁했다.
“저는 매일 올 겁니다. 와서 당신이 천국으로 가길 기도하겠어요. 신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요.”
죽여달라 애원해도 소용없어.
너에게 남은 길은 악마가 되거나, 자살하거나. 무엇이 되었든 지옥밖에 없으니까. 도경은 그녀가 사라진 문을 빤히 보다 눈을 내리깔았다. 까딱까딱. 발끝이 가만히 움직였다.
‘김강우.’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도경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죽어서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벽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도경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는 지금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이 완벽하고 문제없는 계획이라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균열이 생긴 기분이다. 수녀는 회장이 보낸 자가 분명했다. 하지만 지시를 받는 척만 하고, 자신의 숨을 거둬가지 않는다면…….
“아. X 됐네.”
이럴 줄 알았으면 체포당할 때 총이라도 맞을걸.
그의 말에 경찰 둘이 힐끔거렸다.
“야.”
도경은 경찰을 부르며 이마를 짚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저도 지옥으로 가고, 김 비서도 지옥으로 보내는 것.
“가서 전해.”
죽어서 만나려면 그 수밖에.
“재산 기부랑 면죄부 구매 철회라고. 개짓거리 하기 전에 나 좀 빨리 죽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