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14)
신인인데 천만배우 214화
도장 꽝
잠깐의 침묵. 무영은 포스트잇을 가져와 유사하가 못 보게끔 손으로 가렸다.
장난스러우면서도 당혹스러운 눈길이 여실했는데, 유사하는 여유롭게 무릎을 꼬며 무영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대표님 그러다가 제가 100억 쓰면 어떡하시려고요?”
“잘됐네요. 계약 기간 한 30년 잡죠.”
그 말에 무영이 끄응- 하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스스로가 가치를 매기려고 하니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던 일 아닌가.
“저 진짜 100억 써요?”
“그럼 저도 여기 쓸까요?”
무영이의 농담 섞인 협박에 유사하가 계약서 앞면을 톡톡 두드렸다. 계약 기간과 계약금 따위를 적는 칸이 공란이었다.
그러자 무영이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니요!”
재미있다는 듯 웃는 유사하. 평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진짜 계약이라는 업무가 끼어들자 사람이 바뀐 것 같다.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굉장히 호전적이고……. 사업가는 다르구나, 싶은.
“오케이. 알겠어요. 저 진짜 쓸게요.”
“네에. 천천히 하세요. 어차피 방금 회의 끝나서 시간 비거든요. 우리 차라도 한잔할래요? 비서님?”
똑똑.
유사하의 말에 비서가 들어와 지시사항을 받았다. 문틈으로 보이는 응접실에 고경민이 앉아 있었다. 안쪽이 궁금한지, 고개를 빼꼼.
“녹차랑 커피 부탁해요.”
“네. 대표님.”
하지만 바로 닫히는 문에 상황파악도 못 하고 시야가 가려졌다. 무영은 여전히 포스트잇을 붙들고 있었는데, 진심으로 어느 정도 금액을 써야 맞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솔직히 계약금 그거 별로 중요한 게 아닌데.’
돈이 당장 급한 게 아니다. 먹고 자고 입는 데 전혀 문제가 없거니와, 솔직히 공백기가 길어진다 한들 걱정이 없을 정도다.
이제껏 찍은 드라마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재방에 삼방, 사방까지 사골처럼 우려지고 있었으니까.
“음.”
무영은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빈 포스트잇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렇게 주도권을 넘겨줬는데 ‘못 하겠어요’ 하고 포기하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무영이 결심한 듯 펜을 놀리려고 할 때였다.
“무영 씨.”
“넹?”
유사하가 그의 앞에 초콜릿을 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듯 아주 진지하게 얘기를 꺼냈다.
“무영 씨 데뷔하면서 찍은 작품을 모두 봤어요. 저는 특히 [역병> 작품이 정말 좋았는데,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연기도 연기지만, 인물과 동화되는 장면의 순간순간이 강렬하더라고요.”
무영은 계속 말하라는 뜻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 뒤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예요. 무영 씨는 연기를 뛰어넘는 또 다른 능력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욕심내는 걸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회사 대표로서 이건 욕심이라기보단 진가를 알아봤다고 말하고 싶어요.”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굉장히 부끄럽네요.”
“다른 곳에 가도 무영 씨는 분명 잘할 겁니다.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뒤를 우리가 지켜주고 싶어요. 사실 거래할 때는 을이어도 갑인 척하는 것이 맞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안 되겠네요.”
희미한 미소가 살짝 걸렸다 사라졌다. 저것 또한 영업하는 처지에서 전략일 수 있으나, 무영은 상관하지 않았다.
반짝-
시야에 들어오는 작은 반짝이를 확인했기 때문.
오. 드디어!
무영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웃어 보였다.
유사하는 그것이 제 말의 화답인 줄 착각했지만.
“그러니까, 저는 무영 씨가 빅윈에, SJ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네. 그렇게 할게요!”
“네?”
“오예. 잠시만요.”
무영은 신난다는 손길로 포스트잇에 뭔가를 써재꼈다.
반듯한 글씨로 적힌 숫자 ‘10억, 7년, 전체 8 대 2’.
은성이네 회사에서 부른 금액의 딱 두 배 되는 금액이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은성이에게 변명하기도 편할 것 같아서.
“하실래요?”
“하죠.”
담담한 물음에 담담한 대답. 유사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듯 고개까지 갸웃거렸다.
이렇게 깔끔하게, 앉은 자리에서 무영의 오케이를 들을 줄 몰랐다.
“왜요? 제가 얼마 쓸 줄 아셨어요?”
“……100억이요.”
“에이. 말도 안 돼!”
무영이 손을 내저으며 깔깔 웃어댔다. 유사하는 포스트잇의 숫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쇳뿔도 단김에 빼라고, 빠르게 도장 찍으시죠.”
“좋아요!”
서로 손을 맞잡으며 나누는 악수.
무영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서자, 긴장해 있던 고경민이 벌떡 일어섰다.
그의 표정이 복잡 오묘한 것이, 일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궁금해하는 듯싶었다.
“형. 다음 스케줄 가요.”
“어? 어어.”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재계약이 성사되었노라, 무영의 뜻을 알아챈 고경민이 온 몸으로 기뻐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나도 잘 부탁한다, 무영아.”
“와아. 대박! 재계약한다!”
“무영 씨. 이번 주 중으로 다시 자리 잡을게요?”
“네! 대표님! 그럼 전 일하러 갑니다!”
무영이 손을 붕붕 흔들며 인사하자, 유사하도 흔들어주었다.
비서가 쟁반을 든 채 조용히 물었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물리세요.”
대답이 시원시원하고 기분 좋았다.
겉으로는 침착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그도 쾌재를 부르고 있으리라. 비서가 알겠다 답하며 몸을 빙글 돌리는 순간.
“아차, 혹시 말입니다.”
“네?”
유사하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딸기라떼 먹어 봤습니까? 그거 맛있어요?”
“……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고, 유사하 입에서 딸기라떼라는 단어가 언급되다니? 당황스러운 비서와 달리, 유사하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손을 내저었다.
“됐습니다. 됐고, 무영 씨 계약서 도장 찍을 날짜 조율해요.”
* * *
[하무영 : 형 저 재계약…….] [차은성 : ?] [하무영 : 하려고 하는데요오..] [차은성 : (-᷅_-᷄)] [하무영 : (・∀・) 빨리 오세용]무영이는 분장 거울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오늘은 서울시 홍보대사 촬영이 있는 날이다. 현대적인 한복에 동그란 안경까지 준비 완료다.
“머리색이 이래서 좀 그렇긴 하다. 그쵸?”
“괜찮아. 요즘에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아이돌 애들 머리 무지개색인데 뭐.”
아직 여분 촬영이 남아 있는 터라, 금발인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서울시 측에서도 문제없다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무영이 스타일리스트와 조잘조잘 떠들어대던 때.
콰앙!
“하무영!”
“형 왔어요?”
차은성이 아주 요란하게 등장했다. 거의 홍길동처럼 날아드네.
“옆에 앉으세요. 조금 늦으셨네요?”
“스케줄 때문에…… 가 아니라! 너 진짜 재계약해?”
“오오오. 형. 여기 있는 분들 다 듣겠어요.”
차은성이 씩씩대며 입을 앙 다물었다. 그러자 코디들이 슬금슬금 눈치 보며 부산을 떨어댔다.
“아. 다했네. 감독님 어디 계시더라?”
“여기 물건 못 봤어? 아이참. 밖에 뒀나?”
“가, 같이 가지러 갈까?”
“으응. 빠, 빨리 나와!”
썰물 빠지듯 후다닥 나가는 모양새가 다급했다. 차은성은 그의 옆에 앉아서 하나하나 캐물었다.
“너 진짜 재계약했어? 아직 도장 안 찍었지?”
“내일 찍을 것 같아요.”
“야아. 왜애애애- 우리 회사 오라니까? 계약금 그거 조정 가능해. 당연히 여지 두는 거지. 협상해야 하니까.”
차은성이 무영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무영은 하하 웃을 뿐 꿈쩍도 안 했다.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딸기라떼를 그의 입에 물려주며 달래줄 뿐.
“그렇게 됐어요. 소개해 주셨는데, 죄송해요. 하지만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하게 됐어요. 감사합니다. 형, 제가 밥 살게요.”
“이씨! 밥 사! 백 번 사!”
“네에. 천 번도 살게용.”
“아아아아. 진짜.”
차은성은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 널브러졌다. 흐물흐물,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이 여간 상심한 게 아닌 듯싶다.
무영은 그의 옆에 쪼그려 앉아 다시 딸기라떼 빨대를 건넸다. 누워서 쪽쪽 빨아먹는 모습이 꼭 수혈하는 것 같다.
“우리 회사 오면 내가 진짜 잘해줄 건데.”
“지금도 잘해주시잖아요.”
“계약금 맞춰보라고 얘기해 볼게.”
그가 치근덕대자, 무영은 웃으며 장난스레 대꾸했다.
사실 상세한 얘기는 비밀이었지만, 좋은 대우를 위해 이리저리 힘써주었던 차은성이다.
약간 흘리는 것 정도는 예의일 터.
“100억이요.”
“……?”
차은성의 눈썹이 휘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무영은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러니까요. 진짜 말도 안 되죠.”
“100억?”
“대신 30년. 아하하! 농담이긴 한데요,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음, 다른 데서 오퍼 받는 것보다 무조건 두 배로 주신다고 했어요.”
무영은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가며 말했다. 차은성의 멀끔한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안 봐도 그의 머릿속에 누가 떠오르는 지 알 것 같다.
“아. 재수없네.”
“유사하 대표님이요?”
“개재수. 왕재수. 재벌 나가 뒤져라.”
“어어어.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퉤퉤퉤.”
하지만 차은성은 소파에 얼굴을 비벼대며 짜증 섞인 절규를 해댔다.
‘평일 한낮 카페 오면서 쓰리피스 정장 처 입는 재수탱이 재벌’. 차은성의 머릿속에 유사하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몇 퍼센트 단위면 몰라도, 두 배라니!
“……패배다.”
“뭐래요. 둘이 싸웠어요?”
차은성이 쓰게 중얼거리자, 무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대기실 문을 열고서 도망친 스타일리스트들을 찾았다. 곧 있으면 촬영 들어가야 하는데, 다들 어딜 간 거람.
“으아아아!”
“앗. 깜짝이야.”
“일 열심히 해야지! 암!”
“갑자기? 형? 괜찮죠?”
혹시 아픈 건 아닐까. 무영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패배감으로 불타는 차은성을 말릴 수는 없었다.
“돈 많이 벌어서 유사하 제껴야지.”
“그건 좀…….”
무리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무영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신경 써 줘서 고맙다고. 어쨌거나, 그쪽에서 꽤 큰 금액을 불러줘서 많은 계약금을 받게 되었다고.
“아쉽지만, 진짜 감사해요. 형.”
“……그래. 잘됐으면 됐지. 됐는데, 한솥밥 진짜 맛있는데. 그거, 같이 먹으면 진짜진짜 맛있는데.”
“아니면 형이 우리 회사로 오세요!”
무영의 말에 차은성이 입만 쩝쩝 다셨다. 하무영은 좋은데 유사하가 영 싫어서리. 그가 침묵으로 대답한 다음, 분장 거울 앞에 앉았다. 그러자 슬금슬금 도망갔던 스태프들이 다가와 머리에 삔을 꽂아줬다.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두 분 다 준비됐나요?”
“네. 무영이는 먼저 끝났어요!”
“그럼 하무영 씨 개인샷 들어가죠. 차은성 씨는 천천히 해주세요!”
“네엥!”
무영이 안경을 챙기며 밖으로 나서자, 차은성이 그의 뒷모습을 거울로 쪼르륵 쫓았다.
그래. 아쉽지만 뭐 어쩔 거야. 더 좋은 대우 받고 가겠다는데.
“에효.”
차은성은 턱을 괸 채 못마땅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다음 날. 하무영의 재계약 기사는 보란 듯이 쏟아져 내렸다. 7년간 SJ 전속이니 눈독 들일 생각 말라며.
[하무영 현재 소속사와 의리 지켜…… 재계약 7년] [억 소리 나는 스타들의 계약금? 하무영은?]-소문으로는 하무영 오퍼 100억 받았다카더라ㅋ 물론 엎어졌지만ㅋㅋ SJ쪽에 소문 쫙 났던데ㅋㅎ
-응 방구석 망상~ 100억이 뉘집 개 이름이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ㅋㅋㅋㅋㅋ
-재계약 했으니까 다음 작품도 문제 없이 진행되겠네, 다행이다. 무영아 축하해^0^
-오 차은성X하무영 서울시 홍보대사 화보 떴다!
-차은성 따라갈 줄 알았음 워낙 친해 보여서
-그런데 [면죄부> 언제 개봉하는 지 아는 사람?
-촬영 거의 끝나간다고 하던데요?
-아마 여름 전에는 나오지 않을까 궁예질 중,,,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