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17)
신인인데 천만배우 217화
가족의 죽음
“오빠!”
아이의 시간은 분명 어른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제 6학년이 된 유나는 해가 지났다고 키가 훌쩍 커 있었다.
사무실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던 무영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 안녕하세요, 어머니.”
“오랜만이에요. 무영 씨. 잘 지내셨어요?”
유나의 어머니도 함께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이의 코트를 여며주며 인사했다.
“대상 축하해요. 유나가 무영 씨 연락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대상을 기뻐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차기작 제안을 기뻐했다는 건인지 모를 말이다. 하지만, 유나라면 분명 둘 다 방방 뛰어다니며 좋아했을 터.
유나가 무영의 팔을 잡아당기며 웃었다.
“이제 초등학생 때 하는 마지막 작품이잖아. 뭐로 할까 진짜 고민 많았는데, 그때 오빠가 딱 문자 보내서 진짜 놀랐다? 텔레파시 통한 줄 알았어.”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연기가 따로 있고, 청소년이 되면 또 그만의 연기 영역이 펼쳐질 것이다.
유나는 간단한 줄거리를 듣고서 마음에 든다며 단번에 주말 시간을 비웠다.
“그럼 들어갈까? 슬슬 시간 다 됐다.”
“가자! 가자가자! 오빠 매니저 삼촌은?”
“늦어진다 해서 밥 먹고 오라 했어.”
유나는 오랜만에 무영과 함께할 생각에 들떠 보였다. 어머니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무영에게 속닥거렸다.
“유나가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아 보여요. 학교 끝나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니까요. 애들이랑 논다고.”
“아. 진짜요?”
무영이 놀란 듯 되물었다.
학년이 올라가서 그런가? 그날 연극 이후로 교우 관계가 원만해진 모양이다.
유나라면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지만,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안심이다.
“연기 학원에서도 친구들 많이 사귀고, 노느라 잠도 못 자요. 쟤가.”
“잘됐네요. 재미있겠다.”
“중학교 올라가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하는데.”
“유나는 똑똑하니까 잘할 거예요.”
유나 어머니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무영에게 뭔가 조언을 바라는 것 같았다.
유나의 엄마로서, 무영은 롤모델과 같았으니까.
“무영 씨가 가끔 다그쳐 주세요. 쟤가 내 말을 잘 안 들어도, 무영 씨 하는 말은 곧잘 듣는 것 같아서.”
서연대에 들어가고, 성품이 바르며, 연기 활동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멋진 업적을 쌓고 있지 않은가.
무영이처럼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제가 유나 말 잘 들어야죠. 아하하. 선배님인데.”
“못 살아요. 정말.”
그들은 웃으며 감독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그가 지금껏 제작했던 영화 포스터가 주르륵 붙어 있었다.
무영은 직원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오디션 보러 왔는데요.”
“아아. 안녕하세요.”
“저는 유유나요. 같이 왔어요.”
“어머. 유나 양. 반가워요.”
직원은 잠시 기다리라 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데스크를 톡톡 두드리는 아이의 손이 들뜬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긴장된 상태. 그건 무영이도 마찬가지였다.
“두 분 다 이쪽으로.”
“엄마. 다녀올게!”
“그래. 잘하고 와.”
유나는 씩씩하게 앞장서서 걸었다.
빈 회의실에는 카메라테스트용 기계 두 대가 놓여 있었고, 카페에서 봤던 착장의 감독이 앉아 있었다.
그는 종이를 넘기다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와요. 유나 양도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처음 뵙겠습니다.”
“같이 보게 해달라고 했을 때 이렇게 둘이 올 줄은 몰랐는데. 음. 아무튼 앉아봐요. 어쨌거나 두 사람 같이하고 싶어 하는 거잖아요.”
그는 카메라를 세팅하며 안내했다.
직원이 간식거리와 차 따위를 쟁반에 가져와 내놓았다.
무영이 차를 나눠준 다음, 자연스럽게 초콜릿 껍질을 까서 유나에게 건넸다.
“유나가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땡큐.”
팔짱 낀 채 화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박차일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둘이 굉장히 닮았네요.”
“저희가요?”
그의 말에 무영과 유나가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그런가? 하지만 이목구비 하나 닮은 것 같지 않은데? 그뿐도 아니다. 풍기는 분위기도 영 반대이지 않은가.
“유나는, 음, 따지고 보면 은성이 형이랑 많이 닮지 않았나요? 성격도 그렇고.”
“차은성? 말도 안 되지.”
“아하하. 감독님 그 말 들으면 형 놀라겠어요.”
단호하게 아니라 하는 말투가 재미있었다.
유나는 차은성이 나온다는 얘기는 안 해서 그런지, 잠깐 놀란 눈치였다.
“오빠. 오빠랑 같이 [칼날의 궤> 했던 그 차은성 선배님 말하는 거 맞아?”
“선배라고 하니까 이상하네, 삼촌이라고 불러.”
“대박. 엄마 완전 팬인데. 진짜 좋아하겠다.”
담담한 유나의 중얼거림에, 무영은 문득 차은성이 대단한 배우였음을 깨달았다.
맨날 헐렁헐렁하게 다녀서 그렇지, 물었을 때 차은성 팬 아닌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니까.
“그러면 시작해 볼까요?”
딸깍.
카메라의 불이 켜졌다. 감독이 종이를 내밀었고, 무영과 유나는 빠르게 글자를 훑었다.
이미 차은성의 집에서 한번 봤던 무영과 달리, 유나는 완전 처음 접하는 대본이었다.
“숙지하면서 들어주세요. 하무영 씨. 유유나 양.”
“네. 감독님.”
무영은 예의 바르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둘의 연기력은 뭐 볼 것도 없죠. 사실 [역병>에서 둘이 보여준 화면 합도 그렇고. 카메라 테스트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궁금한 건요, 두 사람이 작품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거든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많다. 소화를 잘하는 사람 역시 많다.
하지만, 배우가 현실로 구현하는 인물이 감독의 생각과 일치하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먼저, 유유나 양.”
“네. 감독님.”
“역할이 백혈병 걸린 아이예요. 머리를 중간에 밀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유나의 머리카락은 길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스타일. 아이는 잠시 머리칼을 매만지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머리카락은 또 자라지만, 기회는 두 번 안 오잖아요.”
당차다더니, 진짜네.
감독은 표정 없이 놀라며 알겠노라 답했다.
놀란 것과 별개로 아쉬움이 든다. 이런 애가 병약한 그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
차라리 다른 캐릭터였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캐스팅했을 것 같은데.
“유나 멋지다.”
무영이 가볍게 엄지를 들며 웃었다. 유나는 머리를 가볍게 넘기며 대답했다.
“엄마랑 얘기했는데요. 머리카락 기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자르는 걸 촬영하면 못 하겠지만요. 아무튼, 저는 준비 됐습니다.”
“후반부에는 귀신 특수 분장도 있어요. 한 번 할 때마다 몇 시간씩 걸리는 힘든 작업이에요. 그것도 괜찮고요?”
“저는 앉아만 있는 건데요. 뭘.”
“좋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분장팀에서 고마워하겠네요.”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촬영이 힘들 것이라는 건, 누구나 짐작 가능했지.
하지만 아역 배우들은 보호자 아래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당연한 것들은 인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독은 그걸 미연에 방지하고자 말한 것이다.
“그럼 다음으로 무영 씨.”
“네.”
“가족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 어떡하시겠어요?”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감독은 무영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눌렀다.
무영은 ‘가족’이라는 말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렸다.
“저는-”
감독이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영은 누구보다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죽음이 다가왔음을 눈으로 보고서 그들을 떠나보냈으니까.
검은 스모그가 부모님을 잠식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무력감과 공포를 느껴야 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
예상 밖의 대답에 감독이 눈을 들었다. 무영은 무표정이었으나, 이상하게 처연해 보였다.
“말하면 가족이 불안해하고, 힘들 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평소와 같은 나날을 보낸 거예요. 그저 평소처럼 안기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맛있는 걸 입에 넣어주는 거죠. 그리고 계속 웃어요. 그게 그들이 보는 내 마지막 모습일 테니까.”
말이 묘하게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갔으나, 감독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가끔 배역에 몰입하다 보면, 배우의 시점과 본인의 시점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할 것이라…….”
그리고 무영이의 상태와 별개로, 대답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작품 내에서 오빠의 분개가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하루하루를 최선으로 살아가던 남매.’
죽음이라는 최악의 가정을 뒤로 물리며 애써 외면했건만, 기증자의 등장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
강해지는 희망, 그리고 그럴수록 더욱 짙어지는 절망. 감독은 이 두 차이를 강하게 담고 싶었다.
“좋습니다. 그럼 대본 들어가 보죠.”
“네. 잠시만요.”
“레디- 액션.”
무영과 유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대본을 훑고서, 종이를 덮었다. 말간 시선이 맞물렸다.
무영과 유나는 동시에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
“오빠.”
“……응.”
두 사람에게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난 직후의 장면이다. 감동과 환희 그리고 희망에 젖는 남매.
유나가 목소리를 꾹꾹 누르며 웃었다.
“나 비밀 하나 말해줄까?”
“……뭔데.”
“사실, 나 죽는 줄 알았어.”
“네가 죽긴 왜 죽어.”
“몰라. 아무도 나한테 그런 말 안 했는데, 나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오빠가 맨날 학교 얘기할 때마다 너무 미웠어.”
그 말과 함께 유나의 눈물이 도로록 흘러내렸다. 하지만 무영은 담담하게 아이의 눈가만 닦아줬다. 그는 아이의 보호자였으니까. 함께 우는 것보다 닦아주는 것이 역할일 터.
“봐봐. 누가 맞았는지. 학교 갈 준비하라고 누누이 말했지? 안 듣더니 쌤통이다. 너 이제 학교 가면 바보라고 놀림당해.”
“그러게. 진짜, 오빠 말 좀 들을걸.”
아이가 눈물을 참기 위해 숨이 거칠어지자, 무영이 가볍게 팔을 벌렸다.
유나가 안기며 왈칵 눈물을 쏟아냈고, 무영은 아이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오빠. 고마워. 나 진짜 산다. 나 이제 진짜 병원 나갈 수 있어.”
엉엉 우는 유나를 끌어안고, 무영은 고개를 숙였다.
콧잔등을 타고서 투명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서 그 역시 배운 게 있었다. 바로 소리 없이 우는 법.
“그래. 가자. 나가자. 이제 예쁜 옷 입고 밖에서 놀자.”
무영은 연신 유나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감독은 빵모자를 슬그머니 밑으로 내리더니, 이어서 지시했다.
“다음 장면이요.”
“네. 다음은…….”
코를 훌쩍이며 다음 장면을 확인하는 무영. 두 사람 다 감정에 젖어서 감독의 표정을 볼 새가 없었다.
* * *
오디션 오래 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장장 다섯 시간. 말도 안 되지만, 중간에 쉬는 시간 삼 십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연기와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다.
마지막에 다다르자, 유나가 지친 듯 몸을 뒤로 젖혔다.
“으아아…….”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둘 다 수고 많았습니다.”
그제야 무영은 기지개를 켜며 감독의 안색을 살폈다. 포커페이스가 어마무시해서, 좋았는지 나빴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딸깍.
“끝나셨어요?”
“응. 여기 정리 좀 해줘.”
“밖에 손님 오셨는데요. 감독님.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계세요.”
“손님? 누구?”
감독이 종이를 정리하며 되묻자, 문이 활짝 열리며 직원 뒤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차은성이었다.
“대체 뭐 해? 오디션 아니에요? 감독님? 난 나 빼고 영화 찍는 줄 알았어!”
“거참. 여긴 어쩐 일이야?”
“미팅하자면서요. 아, 근데 하무영이랑 있는 줄은 몰랐네!”
뻥 치시네. 어디서 거짓말을.
감독이 혀를 끌끌 차며 비키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차은성이 회의실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끝났냐?”
“네. 아, 형. 여기는 유유나.”
유나는 새초롬하게 눈가를 닦으며 차은성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차은성.
“안녕하세요. 유유나입니다.”
“어……. 그래.”
인상이 좀 험상궂다. 진짜 애 싫어하는 게 맞나 봐.
무영이 속으로 걱정하며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따, 따!”
“……?”
“딸기라떼 먹으러 같이 갈 사람?”
아주 근엄하게 묻는 표정. 시선은 허공으로 향해 있었다. 유나와 무영이 어이없다는 듯 서로를 쳐다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