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20)
신인인데 천만배우 220화
합류
“리딩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무영은 앞머리를 가볍게 넘기며 물었다.
드디어 [후회와 상실> 리딩 날이 잡혔다.
구멍 난 강치건의 역에는 들어본 적 없는 신인 배우가 캐스팅됐고, 지체된 만큼 빠르게 스케줄 조정이 이어졌다.
“기자들 많이 온다니까. 차은성 씨는 샵까지 다녀온다며?”
동료 배우들끼리 얼굴을 트고, 감독과 전반적인 작품 흐름을 공유하는 것 외에 리딩은 홍보용으로 아주 좋은 이벤트였다. ‘곧 이런 영화가 나옵니다! 우리가 찍고 있어요!’라는 걸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차은성, 하무영, 유유나 조합이니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이만한 것도 없지.
“그럼 슬슬 들어갈까요?”
“그래. 시간 다 됐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코디였다.
무영은 약속 건물로 들어섰고, 미팅룸과 가까워질수록 어수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꽤 많은 기자가 온 것이다.
“오빠. 여기.”
“유나아. 안녕.”
“오늘 사람 진짜 많다. 그치?”
먼저 도착해 있던 유나가 무영이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기다란 회의용 테이블 상석 가까운 자리에 무영의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은성이 삼촌은?”
“곧 온다고 하는데…….”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차은성이 들어왔다. 완벽하게 세팅된 머리와 메이크업, 옷은 또 어찌나 화려한지 가죽 재킷에 액세서리가 치렁치렁. 선글라스도 빼놓지 않았다. 커튼 쳐진 실내인데 말이다.
“어여. 다들 일찍 왔네?”
“형. 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기사 찍히잖아.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완벽하게. 몰라?”
마인드는 멋있네. 좀 과하긴 해도, 어쨌거나 직업 정신 아닌가.
무영과 유나가 가볍게 손뼉 쳐주자 차은성은 훗- 하고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헉!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속속들이 도착하는 다른 배우분들. 예전에는 무영이 달려가서 인사하는 처지였는데, 이제는 뒤에서 달려와 인사하고, 옆에서 달려와 아는 척해서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하무영 씨!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번에 우유 CF 나오신 분 맞죠?”
“저 아세요? 와. 영광이네요.”
대세이자 주연인 것이 확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차은성과 유유나 역시 이리저리 인사하느라 바빴다.
“자. 그럼 이제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직원의 안내에 다들 자리에 착석했다.
그들 앞에 놓인 대본. 아직 강치건의 이름이 그대로 적혀 있지만, 딱히 바꾸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필기며 손때가 잔뜩이었기에.
“인사 먼저 할까요? 반갑습니다. 감독 박차일입니다.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하죠.”
찰칵! 찰칵!
벽면을 가득 채운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울렸다.
“예. 주인공 정한 역을 맡은 차은성입니다.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유나입니다. 원혼령이자 강아라 역을 맡았습니다.”
두 사람이 먼저 하고, 이어서 무영의 차례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순간이었다.
찰칵! 찰칵!
펑-!
맨 앞줄, 무영이 정면으로 보고 있던 기자가 과도하게 셔터를 누르며 플래시를 터뜨렸다.
무영은 반사적으로 놀라서 얼굴을 찡그렸고, 어리둥절해하며 기자를 쳐다봤다.
“아 미안합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굉장히 영혼 없는 사과. 그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사진이 잘 나왔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유유나와 차은성이 동시에 의자 뒤로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차갑다 못해 살벌했다.
“뭐야…….”
“대낮 실내에서 누가 플래시를 그렇게 터뜨려요? 얼굴도 가깝구먼.”
둘이 동시에 으르렁대며 한 마디씩 던졌다.
기자가 우물쭈물 당황해하자, 무영이 웃으며 정리했다. 아직 인사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이런 분위기면 곤란했다.
“이제 조심해 주세요.”
“예에. 뭐……. 큼.”
그러면서도 무영은 카메라에 붙은 소속을 확인했다. ‘한밤TV 연예부’라 붙어져 있는 스티커. 무영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아라의 오빠이자 정한의 동료 의사 역을 맡은 강우연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다음은-”
인사가 끝나자, 무영은 유유나와 차은성이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는 괜찮다는 듯 눈을 크게 끔뻑였다.
“안녕하세요. 동료 의사 역을 맡은 임하늘입니다.”
임하늘. 강치건이 맡으려다가 불발된 역이다.
세 사람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쪽으로 향했다. 신인 배우라고 하더니만, 진짜 처음 보는 얼굴이다.
듣기로는 감독님 독립 영화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라고 하던데…….
“잘 부탁드립니다.”
전반적으로 묘한 분위기의 남자였다. 차분하면서도 쌀쌀맞은 눈매와 머리 스타일. 신인인데도 떨거나 긴장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무영은 의사 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잘 부탁합니다.’
그걸 받은 임하늘은 무표정이었다.
이내 짧게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답인사를 보냈다.
길고 긴 인사 행렬이 이어지고, 현장의 팀장님들까지 소개가 끝나자 감독이 대본을 뒤적거렸다.
“자. 그러면 한번 봅시다.”
“4번 장면부터 들어가는 게 좋죠?”
“음. 그러죠. 앞은 어차피 전경씬이니까. 앞부분은 아. 이쪽 3번은 지금 현장답사를 보고 있는데, 허가가 떨어지는 게 오래 걸려서 뒤로 늦춰질 것 같다네요.”
감독은 작품 진행되는 상황을 간단하게 얘기해 주며 그가 원하는 각 장면의 포인트를 짚기 시작했다.
펜을 쥔 무영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스윽.
“……그럼 처음은 저기, 차은성 씨?”
“네.”
“갑시다.”
“네. 가겠습니다.”
남의 시선에서 사는 것을 즐기는 정한. 그는 좀 더 완벽한 대외 이미지를 위해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로 한다. 은성이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첫 대사를 떼었다.
“어. 나? 주말에 시간 안 될 것 같은데.”
그리고 잠깐 호흡. 상대역은 단역이라서 리딩에 참여하지 않았다.
뒤에 서 있던 직원이 대신해서 받아줬다.
“왜? 주말에 알바 안 가잖아.”
“봉사 활동가거든. 세인트 병원.”
“잠깐만. 은성 씨.”
뭔가를 빠르게 적어 내리던 감독이 차은성의 말을 끊었다.
“좀 더 담담하게 대사를 쳐줬으면 좋겠어요. 사회적인 연기를 완벽히 해내는 캐릭터인데, 방금 건 너무 잘난 체하는 뉘앙스가 강해서.”
무영이 눈을 살짝 들어 차은성을 쳐다봤다. 그뿐만 아니었다. 리딩장의 모두가 차은성을 힐끔거렸다. 대배우라 불리는 차은성이 지적받는 모습은 귀하면서도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차은성은 미간을 잠깐 긁더니, 다시 대사를 읊었다.
“봉사활동 가거든. 세인트 병원.”
말의 속도가 조금 줄어들면서 완벽한 일상어로 표현했다. 감독이 별말 하지 않자, 은성은 계속 이어서 대사를 쳐댔다.
‘와. 오늘 오래 걸리겠네.’
중간중간 들어오는 코멘트가 상당했다. 박차일 감독의 스타일이었다. 자신의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장면을 최대한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
“거기는 대사 의도가 좀 달라요. 방금 건 거절하듯 돌려 말하는 것처럼 하셨는데, 저는 숨기는 분위기를 원하거든요. 좀 더 톤도 낮추고, 표정도 어둡게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비단 차은성에게만 날아드는 지적이 아니었다. 아무리 작은 배역이고, 짧은 대사라도 감독이 원하는 게 아니면 칼같이 끊고 수정 요구가 들어왔다.
“다음. 계속 갑시다.”
무영은 가슴이 조금 뛰는 걸 느꼈다.
분명 혼자 분석하고 연습할 때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 이렇게 하니까 낫다 등등. 근데 감독이 건네는 디렉팅은 그를 한층 더 높은 곳으로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무영 씨. 다시 해주시겠어요?”
무영은 필기를 휘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감독의 지시에 맞춰서 대사를 천천히 곱씹었다.
“제 동생이요. 고작 열 살 때 교복 샀어요. 나중에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침대 위에 그걸 펼쳐서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애 심정을 알아요? 당신이?”
감정에 몰입하자 저도 모르게 말끝이 달달 떨렸다.
무영은 일부러 맞은편의 유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호흡이 더 떨릴 것 같아서.
“그쪽은 아라 같은 애를 많이 봤겠죠. 그래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는데!”
콰앙!
그는 책상을 짧게 내려치며 애원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잖아요……. 우리 아라는 저한테 하나뿐인 가족이란 말이에요.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말고, 어떻게 좀 해줘요…….”
절절하게 끊어치는 감정선이 감질났다. 무영이 감독을 힐끔 봤지만, 그는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만족한다는 신호였다.
“네. 좋습니다.”
짤막한 칭찬까지 받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싱긋 웃는 것도 잠시. 맞은편의 차은성에게서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턱을 괸 채 미친 듯이 필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우씨. 하무한테 절대 못 지지.’
명색이 선배고 형인데! 그 옆에서는 유나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종이를 넘겼다.
“유나 양.”
“네.”
감독의 지시에 유나가 두 손을 싹싹 빌기 시작했다. 뭐에 홀린 것처럼 시선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유나는 애원과 절규 그 사이의 어떤 감정으로 바락바락 소리쳤다.
“오빠, 오빠 나 좀 살려줘……. 나 죽기 싫어……. 살려줘, 나 살려줘……. 내가 왜 이렇게 죽어? 나 죽기 싫어…….”
빠르게 비벼지는 손바닥 사이에서 사악사악, 마른 마찰음이 들려왔다. 기묘한 살 소리에 대본을 보고 있던 배우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도 모르게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와. 유유나 장난 없네.’
‘애 맞아?’
주고받는 시선에서 모두가 같은 생각인 듯싶다. 이어지는 유나의 절규와 괴성에 리딩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무영 역시 상기되어 얼굴이 벌게질 정도였다.
“자. 여기까지 하고 십 분 쉬죠.”
감독은 시계를 확인하더니만, 쉬는 시간을 알렸다. 이제 기자들도 빠지고, 진짜 관계자들끼리만 남을 시간이다.
“와. 대박. 유나야. 너 점점 는다.”
“오빠도. 발성이 더 좋아졌어.”
“나는 계속 쉬지 않고 했으니까.”
쉬는 시간이 되자, 무영과 유나는 가까이 모여 앉아 과자로 당을 충전했다.
차은성만 팔짱을 낀 채 감독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형. 왜 그래요?”
“……나는?”
“형이요? 형도 잘하셨죠.”
뚱해서는 별로 만족스러운 얼굴이 아니다. 하지만 진짜인데? 명불허전 그 실력 어디 가겠냐고요.
다른 배우들 역시 차은성, 하무영, 유유나 세 명의 기세에 눌려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감독님이 너랑 유나만 칭찬했어…….”
“저희야 고칠 부분이 워낙 많아서 그렇구요. 형은 원래 잘하니까.”
무영이 위로했으나 차은성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을 부라리며 적었던 메모를 읽고 또 읽을 뿐.
“근데 오빠 눈 괜찮아? 아까?”
“응. 놀랐던 거지 뭐 문제 되고 그런 건 아니었어.”
“진짜 웃기는 아저씨. 사람 얼굴에 대고 갑자기 플래시를 터뜨리네.”
유나가 걱정스레 물었지만, 무영은 괜찮다는 듯 어깨만 으쓱거렸다. 둘은 과자를 먹으며 가볍게 수다를 떨었고, 무영은 화장실 겸 환기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어? 감독님.”
화장실 옆 휴게실에서 박차일 감독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무덤덤하니 언제나와 같은 표정. 무영이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자 담배 연기를 뒤로 내뿜는다.
“무영 씨도 담배 해요?”
“아니요. [면죄부> 할 때 피우긴 했는데, 영 몸에 안 맞아서요.”
“아아. 맞다. 그거 곧 개봉이죠?”
“네. 이제 2주 정도 남았나?”
“많이 바쁘겠네.”
그가 가볍게 웃으며 꽁초를 비벼 껐다.
“연습 많이 한 티가 나더라고요.”
“저요? 앗. 칭찬 감사합니다. 헤헤.”
“확실히 개인적으로도 친해서 그런지, 차은성이랑 유유나 양이랑도 호흡이 찰떡같고. 내가 캐스팅을 왜 그렇게 반대했는지 의아할 정도였어요. 혹시 그때 기분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아주 깔끔한 사과였다. 꼬장꼬장해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 성격인 듯싶다.
무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뭘요. 그러지 마세요.”
“그럼 먼저 들어갑니다?”
“아. 근데 은성이 형이요. 조금만 칭찬해 주셔도 될 것 같아요. 풀 죽을까 봐.”
무영의 말에 감독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안 돼요. 걔는 좀 굴려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