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21)
신인인데 천만배우 221화
기사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감독이 펜대를 굴리며 기지개를 켰다. 그와 동시에 확 밝아지는 사람들의 얼굴. 모두 일어서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짝짝짝!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잘해봅시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여섯 시간이다. 여섯 시간.
한 시간 사십 오 분짜리 영화 대본을 읽는 데에 여섯 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테이블 위에는 구겨진 김밥 봉지와 빈 음료수병들이 나뒹굴었다.
차은성은 의자 뒤로 널브러지며 중얼거렸다.
“하얗게 불태웠다…….”
까이고, 또 까여서 가루가 된 느낌.
팔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안 아픈 곳이 없다. 다들 화기애애하게 현장을 마무리하는 동안에도, 그는 꼼짝없이 천장을 보며 멍 때렸다.
“형.”
그의 시야로 무영이 불쑥 들어왔다.
천장 불빛을 뒤로 머금고 있어서 그런지,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대본 들고 다 같이 기념사진 찍자는데요?”
“아. 진짜 쉴 틈을 안 줘.”
“일어나세요오.”
“이럴 줄 알았으면 출연료 더 받는 건데.”
꿍얼대면서도 무영이 일으키는 대로 잘 일어났다.
무영과 은성, 유나는 흰 벽을 배경 삼아 엄지를 치켜들고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네! 좋습니다!”
“그럼 진짜 끝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무영이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꾸벅꾸벅 인사했다. 소지품을 챙긴 차은성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폼을 보아하니 또 놀자고 할 것 같은데…….
“하무. 다음 주에 시간 돼?”
“안 될 것 같은데요.”
“이게 언젠지도 모르면서 안 된다 하네.”
그 말에 무영이 빵 터졌다. 그렇네. 날짜도 정확히 모르면서 안 된다고 했어.
“근데 진짜예요. 다다음 주가 [면죄부> 개봉이라서 내일부터 홍보 스케줄이 풀로 잡혀 있거든요. 당분간 집에도 못 들어갈 것 같아요.”
인터뷰에 시사회에 뭐 이것저것 자잘하게 따지자면 끝도 없었다. 무영의 말에 차은성이 입을 쩝 다셨다. 참으로 아쉽다는 듯.
“그럼 다다음 주 지나면 널널해지는 거지?”
“그렇겠죠? 왜요? 또 카페 갈까요?”
무영이 유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유나는 외투를 입은 채 감독님과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원혼령 연기에 있어서 좀 더 디테일한 부분을 잡는 것 같다.
“유나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뭐, 그러시든가.”
담담하게 대꾸하는 것치고는 표정이 굉장히 밝다. 아마 원했던 대답이었나 보다.
“그럼 먼저 갈게요. 형.”
“그래. 나는 저기, 주말에 따로 보려니까.”
“편한 대로 하세요.”
무영이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김우리 때문에 촬영장에 커피차도 못 보냈는데 시사회는 무리지.
무영은 거의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나왔고, 밴에 올라타려는 순간이었다.
“저기.”
뒤를 돌아보니 임하늘이었다. 강치건을 대신해서 들어온 배우. 자신을 불렀나 싶을 정도로 무표정이라,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요?”
“네.”
그가 한 발자국 다가왔다. 주차장이라서 그런지, 그의 위험한 분위기가 한층 더 짙다. 고경민이 창문을 내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임하늘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무영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가방에서 뭔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고경민은 경계하는 듯했으나, 무영은 호기심 어린 눈만 반짝일 뿐이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잖아요.”
매니저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임하늘이 입을 열었다.
“싸인해 주세요.”
그가 내민 것은 종이와 펜이었다. 그것도 [칼날의 궤>가 프린팅 된 종이.
고경민은 긴장이 탁 풀렸는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싸인이요?”
“네. 팬이에요.”
“와아. 감사합니다. 앞으로 같이 작업할 건데, 영광이네요. 아까 쉬는 시간에 말씀하시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요.”
무영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에게 싸인을 해줬다. 그의 손짓 하나하나에도 임하늘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다 하고서 넘겨주려 하니, 그가 담담하게 요구했다.
“아래에 하트도 그려줘요.”
“하트? 아아. 네넵. 별도 그리고~ 꽃도 그릴게용!”
원하는 대로 다 해주자, 임하늘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은 싸인지를 건네주고 밴 차 문을 열었다.
“그럼 들어가세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차는 출발했지만, 임하늘은 망부석처럼 서서 무영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백미러로 그걸 확인한 고경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임하늘이라고 했나? 쟤 좀 이상하네.”
“제 팬분이세요.”
“그전에 사람 분위기가 싸하잖아. 음침한 것 같기도 하고. 연기는 곧잘 하더니만, 뭐라고 해야 할까…….”
고경민은 핸들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적당한 단어를 찾으려는 듯했다.
“갑자기 칼 꺼내서 막, 막 이렇게 저렇게-”
“에이. 그게 뭐예요. 너무 실례다.”
“몰라. 아무튼 나 조금 쫄았다.”
무영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웃었다. 스모그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걱정할 사람은 아닌데. 고경민이 알 턱이 없다.
“…….”
그리고 무영이 역시 알 턱이 없었다.
임하늘이 지킴이 팬클럽에 공식으로 가입했다는 사실을.
그는 밴이 사라질 때까지 싸인지를 뚫어지라 보다가, 플라스틱 케이스에 넣고, 다시 노트북 카우치에 보관했다.
몇 번을 싸매고 나서야 안심이 되는지,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 * *
[면죄부> 기자간담회.무영은 거울 속 자신의 금빛 머리칼을 힐끔거렸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다시 검은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
“관리하기 힘들어서 덮고 싶었는데, 막상 하려니까 섭섭하네요.”
“눈에 익어서 그런가 봐.”
코디가 머리를 매만져주며 맞장구 쳐줬다. 공식적인 금발 하무영의 마지막 스케줄. 작품 캐릭터에 맞게 모두 드레스코드를 올블랙으로 맞췄다.
“무영무영! 하무영!”
“안녕하세요. 누나. 수안 선배.”
두 사람은 여전했다. 분위기도 그렇고,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 김산 감독은 긴장했는지 청심환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
“잠시 후 올라가시겠습니다!”
현장 스태프의 말에 손까지 덜덜 떠는 김산 감독.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작품만 해오다가, 이렇게 많은 관심 받는 건 처음이라 그런 것 같다.
“포토존에서 사진 찍으신 다음 바로 착석하시면 됩니다. 앞에 마이크 확인하시고 문제 있으면 바로 알려주시고요. 시간은 총 한 시간이니까, 질문이랑 답변 신경 써서 해주세요.”
시사회 이전에 열리는 기자간담회.
작품 구성과 내용 및 촬영 소감 따위를 주고 받으며 진행되는 이벤트였다.
무영은 바깥에서 흐릿하게 음향이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 감독과 배우가 등장하기 전, 메인 예고편을 계속해서 틀어 놓은 것 같다.
“이제 입장하실게요!”
“나가겠습니다!”
스태프들의 말에 김산, 하무영, 추수안, 김우리 순으로 줄지어 복도를 걸었다. 극장 문을 여니, 기자들이 빼곡하게 앉아서 카메라를 잡고 있었다.
찰칵! 찰칵!
“감독님이랑 출연진 포토존 서겠습니다!”
“포토존!”
배급사 마크와 개봉 날짜가 빼곡하게 적힌 포토월이었다. 다들 호흡 좋게 왼쪽, 정면, 오른쪽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자리에 앉으실게요.”
“감독님. 마이크 확인.”
긴 테이블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들은 순서대로 앉고서 기자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면죄부> 감독을 맡은 김산입니다.”
그녀를 시작으로 인사가 줄줄이 이어졌고, 이제 본격적인 간담회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면죄부>는 가상의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범죄액션드라마입니다.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 살인마를 종교와 결부하여 풀어냈는데, 가톨릭교의 역사에…….”
청심환의 힘인가.
김산 감독의 손은 떨렸지만,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간략한 작품 소개와 제작 배경을 말하니,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낮티비입니다. 주인공을 하무영 씨로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무영 배우의 어느 부분을 보고 영감을 얻으신 건지, 그리고 그게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궁금합니다.”
“네. YN연예입니다. 도경 캐릭터가 금발로 설정되어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촬영 중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반대로 생각보다 너무 쉽게 찍힌 장면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예고편만 봐도 미장센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은데요. 관객이 영화를 봤을 때, 이런 걸 특히 느껴줬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있나요?”
질문들이 생각보다, 그리고 의외로 수준급이었다.
보통은 작품 얘기보다 가십거리로 소비될만한 걸 주로 원했는데 말이다.
무영은 자신에게 질문이 들어오면 성심성의껏 대답하고, 나머지는 경청하며 집중했다.
“에. 음.”
그때, 한 기자가 안경을 고쳐매며 머뭇거렸다. 무슨 질문을 하려고 저리 뜸 들이지? 무영이 다정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세 분이서 이번이 첫 작품인데, 호흡이 잘 맞으셨나요?”
무영과 우리, 추수안이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누가 대답할래? 라는 뜻이다. 무영이 대표로 마이크를 잡았다.
“네. 처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특히 어떤 부분이요?”
“촬영 현장에서는 두말할 것 없고요, 음. 개인적으로도 자주 만날만큼 잘 맞았어요. 좋은 동료를 얻음과 동시에 친구까지 얻게 되어 기뻤습니다.”
“근데 아무래도 김우리랑 추수안 씨가 더 친하시죠? 무영 씨는 나이가 좀 어리니까.”
무영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르르 사라졌다. 혹시 둘이 사귀는 걸 떠보려고 하나? 무영이 걱정스러운 눈치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우리가 머리를 넘기며 대신 끼어들었다.
“아니요. 그런 거 없이 다 친합니다.”
“네에. 그러시구나. 알겠습니다.”
“다음 기자분, 질문받을게요.”
기자에게 주어졌던 마이크가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무영은 김우리와 추수안 쪽을 힐끔거렸고, 김우리는 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이 굳었다.
질문이 감동도 없고, 매너도 없고, 경우도 없어서.
“네. 안녕하세요. WED연예기자입니다.”
현장은 다시금 원래 페이스를 찾았다. 빠르게 돌아가는 카메라와 마이크. 정신없이 터지는 셔터 소리. 기자의 언행은 잠깐의 해프닝으로 치부되고, 무사히 기자간담회는 마무리되었다.
“그럼 오늘 [면죄부> 기자간담회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참석해 주신 분들게 감사한 마음 전하며, 곧 개봉할 [면죄부>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의 말에 출연진들이 동시에 허리 숙여 인사했다. 스태프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모두 복도를 빠져나와 대기실로 돌아왔다.
감독이 식은땀을 닦아내며 배우들을 토닥였다.
“오늘 수고하셨어요. 다음 주 시사회 때 봅시다.”
“네. 감독님. 저희는 계속 홍보 잡혀 있지만요.”
“조금만 힘내줘요. 수고수고!”
“수고수고! 파이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파이팅을 외쳤다. 손익분기점 넘는 것을 목표로, 흥행 돌풍까지! 모두 의욕이 넘쳤다.
“와아앙!”
무영이 역시 그사이에 끼어 방방 뛰며 소리쳤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무영은 스케줄 이동하는 와중, 밴 안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여느 때와 같이 휴대폰으로 기사를 확인하던 중. 뭔가 이상한 헤드라인을 발견했다.
“어라?”
“왜? 도시락 맛없어?”
[영화 [후회와 상실> 리딩 현장, 하무영, ‘오늘 기분 안 좋아요.’]한껏 찡그린 채 서 있는 무영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다. 아주 절묘해서, 제대로 짜증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기사 이상한 거 떴어요.”
그리고 이어서 연관기사로 오늘자 기자간담회가 떠올랐다.
[영화 [면죄부> 기자간담회, 셋이 사이좋냐는 물음에…… 하무영, 어색한 미소? ‘누가 말 좀 해줘요~’]사진은 무영이 김우리와 추수안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나와 있었다.
열애설 터질까 봐 걱정하는 거였는데 말이다. 무영은 먹던 것을 꿀꺽 넘기며 휴대폰을 흔들어 봤다.
“보자보자…….”
아무리 흔들어 재낀들, 다행스럽게도 스모그는 보이지 않았다. 무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경민에게 말했다.
“형. 차 좀 세워봐요.”
“왜?”
“이거 좀 보게.”
갓길에 멈춰선 밴. 고경민이 무영의 휴대폰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뭔 개소리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