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29)
신인인데 천만배우 229화
조심
“누나! 이게, 이게 어떻게…….”
무영은 처음으로 우리의 집을 찾았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우리의 화사한 얼굴. 몸이 안 좋다고 하더니만, 걱정보다는 아닌 모양이다. 우리는 문에서 비켜서며 무영을 반겼다.
“진짜 왔네? 요즘 바쁘잖아.”
“아니. 그래도 엄청난 일이니까요…….”
자못 심각한 표정과 달리 그의 손에는 꽃다발과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그걸 받아 든 다음 주방 테이블에 올려뒀다.
“엄청난 일 맞지!”
“음. 저기 누나, 제가 축하해도 되죠?”
무영이 쭈뼛거리며 묻자, 우리가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얘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그제서야 무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리의 손을 붙잡았다.
“우와아앙!”
“꺄아악! 나 임신했다아!”
“축하해요, 누나! 진짜 축하 축하! 그러면 결혼은요? 오늘은 수안 선배 없어요?”
우리는 소파에 누워 쿠션을 잡아끌었다. 한 치의 그늘도 없는, 완벽하게 행복한 표정이었다.
“잠깐 일 있어서 지방 갔어. 시골에 할머니 계시는데 인사 가기 전에 먼저 뵙고 온다더라고. 결혼은 배 불러오기 전에 할 예정. 두세 달 안에 조촐하게 할 것 같아. 근데 미안해서 어쩌지. 홍보 스케줄 다 취소하게 생겼네.”
“에이. 아니에요. 이게 더 중요하죠. 제가 더 열심히 뛸게요. 그리고 영화는 거의 막바지잖아요.”
해외 개봉이 남았지만, 그건 마케팅팀의 역할이 더욱 컸다. 인지도가 바닥에 가까운 배우들이 해외 행사장을 돌아봤자 뭐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무영이 과일을 꺼내 씻으려고 하자, 우리가 손을 내저었다.
“내가 할게. 나 그 정도는 아니야.”
“신혼집은요?”
“여기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수안 씨가 들어와 살기로 했어. 집이 좀 넓다 싶었는데 잘됐지 뭐. 가구도 거의 새거니까.”
눈까지 찡긋. 김우리가 싱크대에서 과일을 씻는 동안, 무영은 의자에 앉아 조잘댔다.
“놀라진 않으셨어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얘. 아하하하! 사실 난 결혼도 결혼인데, 아기를 진짜 좋아하거든. 뭐랄까.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인생 정말! 알다가도 몰라.”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나 보다. 김우리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근데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해. 하하하! 결혼 안 한 딸이 임신했다는데 말이야.”
“아마 누나가 행복해 보여서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그런가? 모르겠다. 참. 너 저번에 그런 얘기 했었잖아. 나보고 좋은 일 생길 거라고. 그게 혹시 이거였어?”
아니요. 결혼…… 인 줄 알았지, 임신일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는데요. 김우리는 체리를 우물거리며 신기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비밀인데, 임신 확인받자마자 수안 씨가 아니라 네 생각이 나더라. 얘가 어떻게 알았지? 혹시 신기가 있나? 아하하하!”
“촉이 좀 좋긴 해요.”
꽃가루 팔랑팔랑, 무영은 기분 좋게 턱을 괴고서 웃었다. 참으로 보기 좋다. 따스한 집과 행복한 가족이라니. 한껏 부러운 무영의 표정을 알아채고, 우리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고마워. 무영아. 다 네 덕이야.”
“제가 뭘요. 전 두 분이서 사귀는지도 몰랐는데!”
“그건 좀 그렇긴 했지! 그래도 네 덕이야. 그러니까 언젠가는 너도 내가 겪는 지금의 행복을 느끼길 바랄게.”
언젠가는 자신도 ‘가족’이라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니, 무영은 꽤 멋진 일이라 생각하며 과일을 먹었다. 우리는 그런 무영을 빤히 쳐다보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식 사회 부탁해도 될까?”
“제가요?”
“응응. [면죄부> 주인공이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배우인 데다, 수안 씨랑 나랑 공통 지인이 너뿐이거든. 간단하게 할 거라 부담은 안 느껴도 돼.”
아마 양가 가족 외 진짜 친한 사람들만 모여서 식이 진행될 것 같았다. 공개 열애로 떠들썩한데 갑자기 결혼과 임신 기사까지 나면 더더욱 시끄러울 테니까. 무영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저,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고마워.”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는 것도 처음인데, 거기서 사회까지? 우와. 진짜 대박. 무영이는 꼭 가겠노라 약속하며 우리와 손가락을 걸었다.
“삼촌 되시겠어요. 하무영 씨.”
“조카 나오면 제가 진짜 잘해줄게요.”
“그래? 아, 촉 좋다고 했지? 한번 맞혀봐. 여자아이일까, 남자아이일까?”
우리의 말에 무영이 그녀의 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하지만 꽃가루 외에는 딱히 모르겠다. 무영은 포기한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여자든 남자든 정말 엄청난 아이가 될 거예요.”
* * *
찰칵!
“네. 좋습니다! 무영 씨! 초콜릿 한 번 더 들어주세요!”
그리고 며칠 후, 서울의 한 스튜디오. 무영의 광고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달만 들어 벌써 CF를 세 개나 계약했다. 특히나 지금 진행하고 있는 건, 역대 톱스타들이 모두 거쳐 갔다는 50년 전통의 고급 초콜릿 브랜드였다.
“아아. 좋아요! 멋져요!”
“제품을 얼굴 가까이 붙여주세요. 조명판은 위로!”
“잠깐만요. 아까 그거 스토리보드 다시 보여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화장 고칠게요!”
찰칵!
무영은 입을 벌리고서 먹을 듯 말 듯 한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를 쳐다봤다. 능청스럽게 웃기도 하고, 캐치프레이즈를 모델 귀에 속삭이기도 했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무영은 잠시 쉬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거 얼마나 더 걸려요?”
단내가 진동하는 것 같다. 처음에야 좋다고 와구와구 먹었지, 몇 시간 동안 입에 물고 있으려니 영 힘들다. 무영은 입을 헹구며 고경민에게 물었다.
“재킷 갈아입고 두 번 더 찍는다고 하니까, 세 시간 정도 걸리겠네. 근데 무영아. 여기 스튜디오 실장님이 너 소개해 주고 싶은 사장님 있다 하시거든.”
“네? 누구요?”
자주 있는 일이었다. 지나가다 가도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해오는데, 이렇게 일하다 보면 건너 건너 누구의 지인이라며 안면 트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물론, 무영이 성격상 그 뒤로 더 인연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스튜디오 들어와 있는 건물주가 여기 가로수 꽉 잡고 있는데, 거기 처남이라나 봐.”
“오오. 건물주~”
“굴레 제작사 투자 지분도 꽤 많고, 너랑 미팅 좀 하고 싶다는 의사를 계속 보였대. 근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면서.”
“오오. 대박~”
영혼이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돈 많고 건물주니 뭐니 어쩌고저쩌고 전혀 흥미가 일지 않았다. 차라리 팬이라는 말을 하셨으면 이러진 않았을 텐데.
“식사 어떻겠냐 하셔.”
무영은 뭉친 파운데이션을 슥슥 문지르며 대답했다.
“우웅. 근데 형이 이렇게 물어보는 거면 어쩔 수 없는 경우 아니에요? 평소에는 잘 잘라주셨잖아요.”
정곡을 콕 찌른 무영이의 말에 고경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지간하면 잘 거절했겠지만, 매니저가 이렇게 권할 정도면 여러 가지로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일적으로 연관이 있거나, 혹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엮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
“그래도 네가 싫다면 거절하지.”
“밥만 먹는 거면 좋아용.”
“술은 안 된다고 전해놓을게. 내일 스케줄 있다고.”
“영 거짓말은 아니죠. 뭐.”
새벽 댓바람부터 다시 강원도로 달려가야 하니까. 무영은 잠깐 쉬었다가 이어서 촬영을 재개했고, 만족스럽게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최종 확인본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무영은 스태프들에게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했어요.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대충 모자만 눌러쓰고서 가까운 일식집으로 향했다. 제일 가까운 룸 식당이었다. 문을 여니, 작업 전 잠깐 인사 나눴던 스튜디오 실장과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어어. 하무영 씨!”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오늘 일은 잘했고?”
“네. 덕분에요.”
“이쪽은 저기, 김경식 사장님. 무영 씨 만난다고 어찌나 기대하시던지. 앉아요. 앉아!”
“반갑습니다. 김경식이에요.”
사장이라고 하기에는 차은성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듯했다. 무영은 깍듯하게 인사하고 앉은 다음 그를 찬찬히 뜯어 살폈다. 목과 팔에는 꽤 굵직한 금목걸이, 그리고 구릿빛 피부. 상당히 걸걸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저녁이 첫 끼라면서요? 아침부터 촬영 들어가서.”
“네. 초콜릿은 중간에 뱉기도 좀 그래서, 거의 다 먹거든요. 사실 살살 녹아서 그냥 넘어간다는 게 맞는 말이지만요.”
“고생이 많아요. 어우. 실제로 보니 화면보다 훨씬 어려 보이네. 동생이라고 불러도 되지?”
“……?”
남자는 자연스럽게 술을 잔에 따르며 웃었다. 무영이 고경민은 돌아보자, 그는 미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술 안 먹겠다고 전했다는 신호였다.
“저 술은 안 먹습니다.”
“응? 왜? 어제 먹었어요?”
아주 애매한 존댓말과 반말. 무영은 방긋 웃으며 반찬을 집어 먹었다. 어차피 오늘 밥 저쪽이서 사기로 한 거니까, 그냥 무시하고 맛있는 거나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새벽부터 일이라서요.”
“에이. 그래도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내 손이 무안해지려고 하네.”
“아니요. 안 마실게요.”
무영이 딱 잘라서 얘기하자, 김경식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스튜디오 실장이 하하하 웃으며 어색한 자리를 풀었다.
“아니. 근데 우리 사장님이 진짜 [면죄부> 엄청 팬이라고 하시대.”
“진짜요? 감사합니다.”
“연기 잘하시더라고. 반했잖아요.”
“어우. 앞에서 그런 말 들으려니까 민망하네요.”
의례적인 미소를 지으며 끊임없이 고기를 주워 먹었다. 사장은 술 외에는 거의 입도 안 대고 그에게 질문했다. 보통은 일상적인 물음이었는데, 영 관심 없는 무영의 시선을 한 번에 잡아채는 말이 나왔다.
“그나저나 [면죄부> 해외 반응이 좋아서 돈 좀 짭짤하게 벌겠어요.”
“글쎄요. 제가 그쪽으로는 잘.”
“에이. 그래도 본인 수익 관련된 건데, 본인이 모르면 안 되지.”
돈 얘기를 꺼낸 것이다. 고경민이 잠깐 전화를 받으러 나가자, 김경식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은밀히 말했다.
“연예인 생활 그거, 요즘은 무영 씨가 잘나가서 별걱정 없겠지만 진짜 불안하지 않아요? 돈이 매달 꽂히는 게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혼자 먹고살기에는 충분해요.”
“아차차. 가족이 없다고 했나?”
김경식이 미안하다는 듯 술잔 든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바닥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스모그. 무영은 고기 욱여넣던 것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저게, 세상에, 갑자기 저러네…….
“혼자서 살기 힘들어. 음음. 그렇고말고.”
“…….”
그는 방긋 웃으며 술잔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요즘 연예인들 건물 많이 사는 거 알고 있죠?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빼놓고 논할 수 없잖아. 일 없을 때도 안정적으로 살려면 건물 하나 딱 잡고 있어야 해. 무영 씨도 생각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좋은 사람 소개해 줄게. 이쪽 일대는 우리가 꽉 잡고 있거든.”
오오오. 더더, 더 짙어진다.
무영은 팔짱을 낀 채 입을 꾹 다물고서 김경식을 쳐다봤다. 스튜디오 실장에게서는 스모그가 안 나는 것으로 보아, 딱히 연관 있는 자는 아닌 것 같다.
“아니면 사업 같은 것도 좋지. 작게 하나 굴려놓으면 이게 초반에만 좀 신경 쓰이지 나중에는 꼬박꼬박 통장에 돈 때려 박거든.”
“그런 데 관심 없어요.”
“무영 씨가 아직 젊어서 그런가 보다! 하하하! 돈은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데. 연예인이 사업하면 홍보비가 싹 빠지니까 진짜 좋아. 생각 한번 해봐요. 내 주위에 사업하는 친구들 많거든. 무영 씨라면 내가 아무것도 안 따지고 소개해 주지!”
무영은 볼 가득 고기를 욱여넣었다. 빨리 나갈 거니까 그전에 잔뜩 먹어두려고. 그리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생각했다.
‘신기하네. 사기꾼을 다 만나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