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35)
신인인데 천만배우 235화
꽃밭
“장학금이요?”
“네! 장학금!”
소파에 쪼르륵 앉은 직원분들. 다들 신기하다는 듯 무영이를 구경했다.
그 가운데 행정실장은 코를 긁적거리며 물었다.
“저기,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무영 씨 여기가 모교셨나요?”
“아니요. 저 오늘 여기 처음 왔는데요.”
“그런데 어째서……. 아! 당연히 장학금 전달해 주시면 감사한 일이죠. 단순히 궁금해서 여쭙는 거니까, 불편하시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지나치게 공손했다. 무영은 조금 난감한지 어색하게 웃으며 물을 마셨다.
“금액이 어느 정도일까요? 혹시 원하시는 전달 형식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회의가 이번 주 목요일에 잡혀 있거든요. 주중으로 결과 알려드리겠습니다.”
“음. 일단.”
김소운 학생을 지목하면 되려 난감해할 수도 있다. 집보다 더한 시간을 보내는 학교인데, 괜히 소문이라도 돌았다가는 더 힘들 것이다.
“제가 지원한다는 건 비밀로 해주세요.”
“아. 그, 왜죠?”
사진도 찍고 여러모로 떠들썩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실장이 조금 아쉽다는 듯 다시 물었다.
“부끄러워서요.”
“아이고, 그게 무슨! 좋은 일 하시는데!”
“그게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후원금 전달 대상은 선생님들이 추천서를 써주세요. 그럼 보고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으시죠?”
추천서. 일거리가 또 늘었나, 싶었지만 이어서 들리는 무영이의 말에 반색했다.
“학기당 천만 원씩 할 생각이에요. 학업 및 생활 보조금용으로 쓸 수 있게 도와주시면 됩니다. 중복되어도 상관없으니까 방학 중에 알려주세요.”
“그,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을 위해서 추천서 하나 못 쓸까 봐요. 네네. 괜찮을 겁니다. 아니지. 괜찮지요!”
일 년에 이천만 원. 당장 경제활동이 어려운 가정에는 그야말로 빛과 소금 같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든든히 뒤를 받쳐주는 힘이겠지.
‘이러면 소운이는 당연히 추천받겠지?’
성적이 좋고,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심성이 바른 착한 학생. 아마 추천서에 그렇게 쓰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전교생 중에 소운이만 힘들겠느냐마는, 그건 또 그때 가서 추천서로 확인하면 될 일이다.
“당장 이번 학기부터 시작할게요. 회의하시고 결과 말씀해 주세요. 비밀은 보장해 주시고요.”
간단하다 못해 눈물 날 정도로 착한 제안이었다. 재단에서 장학금이 들어오면 대외용 사진을 찍자느니, 식재료 납품을 하게 해달라느니 등등. 기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철저한 사업을 아래에 깔고 있었다.
“그뿐인가요?”
“아.”
실장의 말에 무영이 멈칫거렸다.
“영수증 처리해 주시는 거죠? 세금 신고.”
“……그거야 당연합니다. 혹시 장학금 이름도 상관없으세요?”
보통은 기부자 이름으로 전달되는데, 철저히 비밀에 부쳐달라고 하니. 무영은 고민하다가 정정했다.
“그러면 문화재단이라는 이름을 넣어주세요.”
따지고 보면 자신이 주는 게 아니라 무영문화재 지킴이분들이 주는 거니까.
무영은 진짜 볼일이 끝났다며 일어섰고, 직원들도 우르르 따라나섰다.
“그럼 수고하세요. 연락은 소속사로 주시면 됩니다.”
“저기!”
“넹?”
직원 한 명이 애절하게 무영이를 붙잡았다.
“싸인 좀…….”
“주말에는 저희가 출근을 안 해서, 하하.”
“저는 다이어리에 해주세요…….”
촬영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난리가 났는데, 이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무영은 방긋 웃으며 직원들에게 싸인을 해주었고, 누가 볼 새라 후다닥 학교를 빠져나왔다.
타악!
“늦었네?”
휴대폰을 하고 있던 고경민이 무영이를 반겨줬다.
“김소운 학생 기억나요?”
“[위대한 도전>이었나?”
“네. 이 학교 다니더라고요. 만나서 얘기하느라 늦었어요. 이제 집으로 가요. 그리고 금영고에서 회사로 연락 하나 올 거거든요. 저한테 전달해 주시면 돼요.”
“오케이. 가자. 집 가서 푹 쉬자!”
밴이 교문을 지나서 도로로 들어서자, 김소운과 음료수를 마셨던 벤치가 보였다. 아까는 여기서 울었지만, 나중에는 분명 친구들과 함께하는 하굣길이 되기를.
“참, 무영아. 아까 기사 봤는데… 강이안 말이야.”
고경민의 말에 무영이 시선을 돌렸다.
“보름 뒤에 투어 끝난다네.”
“한국 들어온다는 말이네용.”
“그렇지. 어떻게, 자리 한번 마련해 볼까?”
“그쪽도 캐스팅 픽스 났다 하면요. 흐음.”
18세의 월클 아이돌이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캐릭터라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무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엔빈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바빠?”
-괜찮아. 말해.
뒤로 운타 목소리와 음악 소리가 들렸다. 아마 연습실인 것 같다.
“혹시 강이안 씨 알아? RTUUY. 다음 작품 같이할 것 같은데 어떤 분인지 좀 궁금해서.”
-강이안이랑? 와우.
-왜왜? 무영이 형이야?
“어? 로운이다! 안녕!”
무영이랑 통화한다고 하니까 제로텀 멤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엔빈은 강이안을 잘 모르는지, 로운이에게 대신 물어보는 듯했다. 나이대가 그나마 비슷하니까.
-헐? 진짜?
“나도 좀 알려줘!”
-그, 강이안. 무대에서 더 쩐다는데? 실력이야 가타부타 우리가 말할 것도 아니지만. 음, 그리고 성격도 나쁘지는 않대. 실물 장난 아니시란다.
좋지 않다는 것과 나쁘지 않다는 것은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아. 대가리 꽃밭?
“엥? 그게 무슨 말이야?”
-몰라. 로운이가 그러네. 대가리 꽃밭이라고.
대가리가 꽃밭?
알쏭달쏭한 말에 무영이 말을 잃었다.
이내 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엔빈은 끊어야겠다며 목소리가 멀어졌다.
뚝.
“어이구.”
“엔빈이가 뭐래?”
“……모르겠어요. 사람 머리가 어떻게 꽃밭이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표현법이라며, 무영이 꿍얼거리는 동안 고경민은 백미러로 뒤쪽을 힐끔거렸다. 자신을 아주 잘 알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 * *
“감독님! 인간적으로 에어컨 좀 틉시다!”
“안 돼.”
“와아아. 이거 노동청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님? 인권위라든가. 다들 확! 앙? 뒤집어엎을까요?”
“은성 씨는 힘이 남아도네…….”
“난 지쳐서 움직일 수도 없다.”
그리고 보름하고 사흘이 지난날, 여느 때와 똑같은 촬영 현장.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도저히 현대문물의 도움을 안 받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차은성이 원하는 에어컨은 없었으나, 다행히 선풍기는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슛 들어가면 소리 때문에 꺼야 했지만.
“막내야. 시내 내려가서 커피 좀 대야에 받아와라.”
“얼음도 다 떨어졌거든. 새로 담아오고. 아이스박스 있지?”
마실 것을 사려면 차로 삼십 분은 나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막내가 가야지.
막내 스태프는 차 키를 찾으며 창문 밖을 쳐다봤다.
“차가……. 어? 오늘 커피차 와요?”
“뭐? 커피차?”
막내 스태프의 말에 다들 창문에 다닥다닥 붙었다. 입구 쪽으로 민트색 소형 푸드트럭이 들어오고 있었다.
“역시! 우리 팬들!”
“은성 씨 커피차야? 저번 주에 왔잖아.”
“하무 것도 저번 주에 왔었거든요?”
차는 그늘에 주차하고서 뚜껑을 열었다.
운전자가 주섬주섬 소품을 꺼내더니, 이내 작은 현수막까지 걸어 보였다.
“엥?”
그런데 거기에는 무영도, 차은성도 아닌 강이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하무영 님. 더위 이겨내세요! 우리 다음 주에 만나요!♡’라는 문자메시지 같은 문구와 함께.
스태프와 차은성의 시선이 자연스레 무영에게 집중됐다.
“강이안 아녀?”
“RTUUY? 다음 주에 왜 만나?”
“차기작 같이할 것 같다고 들었는데…….”
“됐다. 어이구, 살았다!”
“잘 먹을게. 무영 씨. 감독님, 잠깐 쉬었다 가시죠.”
“그래. 다들 커피 한 잔씩 받고 와.”
“어어…….”
오아시스에서 단비라도 만난 것처럼 스태프들이 후다닥 뛰어갔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고맙기는 하다만 상당히 당황스럽네?
“강이안이랑 알았어?”
“아니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데요.”
친분이랄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무영이 당황해하자 차은성이 그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어서 자신들도 시원한 얼음 땡기러 가자는 신호였다.
“괜찮아. 가끔 저런 경우 있어. 친분 없어도 팬심으로 보내는 거. 싹싹하네. 아직 애라며?”
“그러게요. 역시 월클인가…….”
“합격이다. 합격. 더운 날 커피차는 무조건 합격이지.”
이렇게 되면 무영이도 질 수 없다.
강이안 스케줄 확인해서 커피차든 뭐든 되는대로 보내리라.
밖으로 나가니 스태프들이 이미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무영이는 뭐 줄까?”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그리고 고경민에게 부탁해서 인증샷까지 야무지게 찍어두었다.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는데, 병원 정문으로 다시금 차가 한 대 들어왔다.
“또 뭔데?”
밴이다. 유나인가 싶다가도 자세히 보니 번호가 낯설다. 차는 시원하게 잔디밭을 가르고 커피차 앞까지 달려들었다.
끼익!
“안녕하세여~!”
“푸흡!”
창문이 내려가자 나타난 것은 강이안이었다. 바로 알아본 스태프들이 커피를 뿜으며 뒤로 물러섰다. 혼자 온 게 아닌지, 차 안에는 사람 네 명이 더 타고 있었다. 그룹 멤버는 아닌 듯싶다.
“아니, 강이안 씨가 여긴 어쩐 일로…….”
“커피 맛있게 드세요오~ 하무영 님은요?”
“저기 뒤에 있네요.”
스태프의 말에 강이안은 반대쪽 창문을 열고서 손을 흔들었다.
“오오! 차은성 선배님까지!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계곡에 놀러 왔어요! SNS 뜨는 거 보니까 아우, 물 좋고 공기 좋고 대박이던데요! 겸사겸사 인사도 하고! 안녕하세요! 무영이…….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아하하! 형! 저 출연하기로 했어요. 축구 하고 싶었는데, 어찌저찌 검도로! 검도! 생각보다 멋있더라고요.”
강이안은 창문으로 손을 쭉 뻗어 무영과 악수했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팔. 무영은 거의 정신이 반쯤 빠지는 걸 느꼈다. 부산스러운 건 차치하고서, 이게…….
‘꽃가루 미쳤당.’
어깨 위쪽으로는 꽃가루 때문에 얼굴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마치 실링액터스의 박문철을 보는 것 같다. 그자는 스모그였다는 게 다르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마주 보고 있어도 눈코입이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로 엄청난 꽃가루다.
“월클. 와우.”
“넹? 아하하! 그럼! 고생들 하세용~! 저는 놀러 가려고요! 계곡에서 놀다가 저녁에는 내려갑니당!”
“네엡. 커피 잘 마실게요. 고마워요.”
“다음에 봐요! 무영이 형! 가즈아! 빵빵! 아하하하!”
부아아앙-!
태풍처럼 와서 태풍처럼 사라지는 자동차. 이내 계곡 쪽 뒷길로 사라졌다. 차은성은 진짜 엄청난 걸 봤다는 듯 팔짱을 끼고서 중얼거렸다.
“……또라이인가?”
“형. 실례예요.”
“아니. 뭐, 욕은 아님.”
욕이 아니면 뭔데, 칭찬인가?
“어려서 그런지 에너지 엄청나다. 어후.”
“그러게요. 투어 끝난 지 얼마 안 된 거로 아는데.”
“또라이가 아니면 저런 걸 뭐라고 하지?”
대, 대, 대가리 꽃밭!
무영은 불현듯 그 말을 떠올리고 탄성을 내질렀다. 이제야 진정한 의미를 알아챘다! 확실히 꽃밭은 꽃밭이었어. 음음.
“와. 그런데 저런 식이면 연기할 때 괜찮으려나.”
“난 못 해. 기 빨려.”
표정이 안 보여서 상대역으로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시선을 맞추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무영의 마음도 모르고, 차은성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