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37)
신인인데 천만배우 237화
제일 잘생긴 얼굴
“어때? 맏형이 된 기분은?”
리딩장으로 향하는 차 안.
고경민의 물음에 무영이 한숨을 삼켰다.
“저는 동생 포지션이 맞는 것 같아요.”
“의젓하니 잘하고 있더만.”
넵플렉스에서 잡아준 폴의 숙소는 무영의 집과 꽤 가까웠다. 정확히는 금영고에서 가까운 거지만, 어쨌거나 그 덕에 시간이 났다 싶으면 찾아와서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녀야 했다.
“동생들이 너무 활기차서 그래.”
“그래도, 폴이 와서 재밌는 거 많이 봤어요. 경복궁이랑 남산도 처음 가보고, 청담동에도 뒷골목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거든요. 얘는 대체 미국에서 뭘 보고 배운 건지, 저보다 지리를 잘 알더라고요.”
사실상 가이드라 할 것도 없었다. 무영이는 그저 폴이 가자는 대로 따라다녔으니까. 덕분에 몰랐던 서울 명소들을 제대로 뚫었다.
“사진 찍힌 거 봤어?”
“어? 정말요?”
“잘 나왔더라.”
매니저의 말에 무영이 휴대폰으로 제 이름을 검색했다. 경복궁에서 한복 입고 찍힌 사진이었는데, 폴이 워낙 다람쥐 같아서 제대로 나온 것은 무영이뿐이었다.
“와. 사진으로 보니까 더 생생하다. 솔직히요, 저 얘가 약 한 줄 알았어요.”
“뭐? 아하하하!”
“발이 땅에 붙어 있질 않잖아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사진 밑에는 짤막한 후기 글도 적혀있었다.
[경복궁 갔는데ㅋㅋㅋ외국인이랑 같이 있는 하무영 목격함ㅋㅋㅋ무슨 다람쥐 산책시키는 줄ㅋㅋㅋ외국 배우 같던데 얼굴 제대로 찍힌 게 없어서 확인 불가ㅠㅠ]-이거 심령사진 아님?ㅋㅋㅋㅋ
-바람에 날아가는 것 같은데ㅋㅋㅋㅋ
-누구지? 일단 범상치 않은 건 알겠다
다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영은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휴대폰을 넣었다. 리딩장에 거의 다 도착한 탓이다.
회사 세미나실은 7층, 복도에 도착하자마자 벌써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달깍.
“안녕하세요.”
“아아아! 무영 씨! 어서 와요! 기다렸어요. 흑흑.”
“Bro! 아령! 하! 세요!”
“형, 왜 저한테는 연락 안 했어요? 저도 경복궁! 남산! 진짜 잘 아는 레스토랑 있는데!”
“레츠기릿! 한 번 더 가!”
오. 아침부터 진짜 대박이구먼.
무영은 그저 대답 없이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강이안의 얼굴을 꽃밭이었고, 폴은 약이라도 한 것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리딩 시작할까요?”
“네. 제발.”
차라리 리딩에 들어가면 대사 외에는 입을 다물 테니까. 이안과 폴을 제외한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빠른 리딩을 진행했다.
“자. 그럼 진짜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조용히. 쉿.”
“쉿!”
감독과 작가의 소개에 이어서 무영, 이안, 폴 순서였다. 각자 이름과 맡은 배역을 말하면서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비공식 리딩 현장인 터라 기자는 없었지만, 나중에 미튜브 클립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아, 참. 무영 씨는 양궁 언제 배우러 가나요?”
“다음 주부터요. 자세 위주로만 배우면 된다고 하셔서. 55번, 옥상에서 쏘는 씬 외에는 다 컷이 나뉘는 거 맞죠?”
“네네. 그때까지 시간 있으니까, 일단 자세만 먼저 잡아두시면 될 것 같아요. 이안 씨는 지금 배우고 있다 했나?”
“선생님이 저 소질 있다 하셨어요. 머리! 머리! 어깨! 스턴트 없이 어지간한 건 다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영이 이안을 힐끔 쳐다봤다. 분명 사진으로 봤을 때는 눈이 저 정도에 달린 것 같았으니까…….
“왜요오?”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하게 물었다. 사실 왜 그러냐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는데, 무영이 반응이 없었던 거다.
“아니, 대단해서요. 검도까지 잘한다고 하니까.”
“형도 양궁 잘할 것 같아요! 딱 보면 사이즈가 나와요!”
곤란했다. 일상생활에서도 통하질 않는데, 섬세한 연기가 가능할지 미지수였다. 적어도 이안이 무슨 표정인지는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지…….’
옆에서 누군가가 이안의 표정을 따라 해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매니저 형한테 해달라고 부탁할까? 아니면…….
‘아.’
그래. 귀신 한 명 잡아야겠다. 그게 낫겠어. 그러면 강이안에게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표정을 알려줄 수 있잖아.
“첫 장면부터 시작할게요. 넘길 부분은 저랑 작가님이 돌아가면서 읽겠습니다.”
“네에. 파이팅!”
“파이팅!”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무영이도 주먹을 쥐어 보이며 소리쳤다. 그렇게, [좀비고등학교>의 리딩이 시작되었다.
* *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냐.”
“오늘따라 더 우락부락하시네요.”
“칭찬 고맙다.”
화창한 금요일 아침.
야구방망이를 든 채 교문 지도를 하고 있는 학주가 학생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서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정문 닫는다! 1분!”
문이 닫히고 들어오면 지각 처리다. 학생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고, 이내 거대한 교문이 무자비하게 닫히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뛰어!”
“나 이번에도 걸리면 벌점임.”
“쌤! 잠깐만요!”
끼익-
쿵!
“자. 여기까지. 문 앞에서 걸린 놈들은 일렬로 서.”
“아아. 쌤! 한 번만 봐주세요.”
“바로 한 걸음인데!”
“시꺼. 너는 임마, 내가 담임인데 이럴 거야?”
정문 앞이 한껏 소란스럽다. 그걸 저 멀리서 지켜보는 삼인방. 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조졌네.”
“그러니까 내가 빨리 가자고 했지?”
“아침부터 라면 처먹자는 게 누구였더라?”
“……지각, 하. 나는 안 돼. 지각 세 번째.”
양궁부 강치연. 검도부 한민기. 태권도부 폴이였다.
집도 서로 가깝고, 중학교도 같이 나왔으며 무엇보다 벌써 2년째 같은 반이었다.
“개구멍 가자.”
강치연의 말에 한민기가 발작하듯 방방 뛰었다.
“아아아! 옷 더러워지는 거 싫은데!”
“그러면 학주 꿀밤 야무지게 처드세요.”
“……가자. 음. 가야지.”
셋은 학교 철창을 따라 쭉 걷다가, 풀숲으로 가려진 안쪽까지 향했다. 그리고 반쯤 찢어진 구멍에 몸을 밀어 넣었다.
“악! 긁혔다!”
“좀 닥쳐. 시끄러워.”
“민기. 아가리. Shut up.”
두 친구에게 한마디씩 들으니, 어쩔 수 없다. 민기는 조용히 꿍얼대면서 철창을 빠져나왔다. 남은 둘도 가뿐하게 성공했고, 이제 남은 것은 운동장을 빙 둘러서 교실까지 가는 것뿐이다.
“가자. 조회까지 십 분 남았어.”
“그만하면 기어가도 됨.”
운동장에는 육상부가 훈련 중이었다. 치연과 민기는 별생각 없이 지나가는데, 폴이 이상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저기. 이상해.”
“뭐가?”
“비틀비틀.”
줄지어 뛰는 무리에서 떨어진 한 명. 뛰는 게 아니라 겨우겨우 걷는 것처럼 보였다. 민기는 폴의 가방을 잡아당기며 대꾸했다.
“야. 아침부터 저 지랄하면서 땀 빼는데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 애들도 많구만. 육상이 오기 전에 빨리 가자.”
육상부 담당 선생님한테 걸리면 지각 더하기 개구멍 벌점까지 먹을 것이다. 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등을 돌렸다.
한편, 앞서 뛰던 육상부 주장이 애들에게 먼저 가라는 신호를 주고서 뒤쪽으로 달려왔다.
“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어어…….”
“어디가? 아침부터 왜?”
“으어어…….”
뛰는 둥 마는 둥 해서 와봤더니, 상태가 더 심각했다. 중심을 못 잡겠다는 듯 휘청이는 몸은 둘째치고, 침을 너무 흘린다. 눈도 붉게 충혈되어 있고.
“보건실 가. 쌤한테는 내가 말할게.”
“우우…….”
“뭐라는 거야. 야. 너 진짜 왜 그래?”
주장이 학생의 어깨를 붙잡자, 그는 재빨리 팔을 잡아끌어 뛰어들었다.
“하나! 둘!”
“하나! 둘!”
주장 대신 앞을 이끌던 부주장이 멀리 두 사람을 보며 코를 훌쩍였다. 평소에도 티격태격하더니만…….
“처놀고 자빠졌네.”
“하나! 둘!”
“구령 계속 붙여!”
부원들이 줄지어 운동장 반 바퀴쯤 뛰었을 때. 주장과 학생도 다시금 비척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드르륵!
“강치연! 한민기! 폴!”
“네?”
그리고 이내 아침 조회 시간.
정문을 지키고 있던 학주이자 담임이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셋의 이름을 불렀다.
“언제 왔어? 교문 지나가는 거 못 봤는데.”
“어. 저희는 봤는데요. 쌤 너무해요.”
학주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민기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강치연은 무시하듯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고, 폴은 딱딱하게 굳어서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하여튼 간에, 한 번 걸려. 아주.”
셋은 모른 척 웃기만 했고, 평화로운 금요일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운 좋네.’
그들이 있는 교실에서는 운동장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지. 꽤 괜찮은 하루가 될 것 같다며, 강치연과 한민기, 폴이 시선을 나누었다.
* * *
오케이. 좋습니다.”
“폴 씨 생각보다 한국어 연기 괜찮네요.”
“난이도가 낮긴 하지만, 예상 밖이에요. 자연스럽고 대사 처리가 짝짝 달라붙어요. 굿! 아주 좋습니다.”
도입부의 짤막한 부분이었지만, 서로의 연기를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강이안 역시 생활 연기파였다. 예전에 나왔던 정극 드라마에서는 혹평을 받았는데, 캐릭터가 제 옷에 딱 맞는 듯싶다.
“아가리. 너무 좋아. Ahgari. 동부 시골 마을 이름 같아요.”
“근데 그거 욕이라서, 조심해야 해요.”
“오케이. No Problem!”
뜻밖의 단어에 꽂혔는지, 폴은 연신 단어에 밑줄 치며 즐거워했다.
대부분 액션씬인지라 리딩은 다른 작품보다 일찍 끝났고 상세한 건 액션스쿨에서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형. 이제 끝났는데 일 있어요?”
“맥주. 클럽. 한국 클럽 세계 1등.”
“앗. 안 돼요. 내가 못 가잖아!”
강이안과 폴은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쩌나. 아주 다행스럽게도 스케줄이 있는데.
“강원도 가야 해요. 촬영 마무리 있어서.”
“아쉽당. 그러면 다음 주에 액션스쿨에서 보겠네요.”
“그러지 않을까요? 오늘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이안. 나랑 같이 한강 가자. 오리배 보트.”
“먼저 갈게요. 다음에 봐요.”
무영은 한창 떠들어대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다들 연기는 곧잘 하는 데다 호흡이 괜찮아서 만족스러웠다. 슛 들어갈 때는 조용해진다는 게 제일 좋았지만.
타악-
“출발하면 돼?”
“네네. 가요.”
“어디 들를 곳은 없고?”
무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경민은 차 시동을 켰다.
“오늘이 강원도에서 하는 마지막 촬영이고, 다음부터는 서울 스튜디오에서 보면 돼. 참. 오디오 작업도 있다 하시네. 효과음 넣으니까 묻히는 부분 있다고.”
“어디요?”
“잠시만. 거기 뒤에 적어놓은 메모 있어.”
무영은 강원도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전달사항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러다 문득, 무영의 도플갱어를 떠올렸다.
이왕 귀신 도움을 받을 거라면, 강이안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형. 오늘 이후로는 촬영팀 모두 철수하는 거죠?”
“그럴걸? 아마.”
“아아. 오케이. 알겠습니다.”
서울에서 두어 시간을 달려 도착한 폐병원 세트장. 무영은 내리자마자 스태프들과 인사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끼익!
“무영이 왔어요. 준비해 주세요.”
“안녕! 오늘은 일찍 왔네.”
“감독님! 무영 씨 도착했습니다!”
“뭐 찾아요? 두고 간 거 있었어요?”
스태프들의 질문에 무영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잠시만요. 멀미가 좀 있어서 걷고 올게요.”
“아아. 그래요. 일찍 와서 시간 있으니까.”
무영은 지하실부터 옥상까지 쭉 훑고 병원 곳곳을 수색했다. 무영이 모습을 한 도플갱어가 어디 있는지.
“어!”
그리고 그를 발견한 건 2층 창고 비품실 안쪽. 귀신은 무영이의 얼굴을 하고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놀라서 도망치려는 걸, 무영이가 팔을 붙잡았다.
“잠깐, 잠깐!”
-으어어어…….
“있죠. 혹시 자꾸 카메라에 나오는 거 외로워서 그런 거였죠? 사람들 오니까 막 반갑고 그러지 않았어요?”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다.
무영이는 제 얼굴이 저런 표정을 짓자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근데 우리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이제 여기서 촬영 안 하거든요. 혹시 따라 나갈 생각 있어요? 원한다면 제삿밥이랑 좋은 음기 터 찾아서 풀어줄게요.”
대신 조건이 있지.
“혹시 다른 사람 얼굴도 가능해요?”
스태프들은 물론이고 차은성, 임하늘 얼굴도 본 적이 없다. 오직 무영이만 따라 했지.
“이 사람인데…….”
무영이는 휴대폰으로 강이안의 얼굴을 보여줬다. 그러자 귀신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강이안의 얼굴로 변했다. 무영이 역시 이렇게 쉽게 바뀔 줄은 예상 못 한 바다.
“엥? 강이안 씨는 바로 되네. 기준이 뭔데요?”
무영이는 강이안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고민했다. 임하늘이 그런 말을 하긴 했지…….
“혹시 제일 잘생긴 얼굴을……?”
침묵은 긍정이요, 귀신은 무반응으로 답했다. 무영은 괜한 패배감을 느끼며 턱을 긁적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