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4)
신인인데 천만배우 24화
보는 눈
빅윈엔터, 낡은 당구장이었던 곳을 개조해 만든 작은 사무실. 무영은 소파에 앉아 주위를 신기하게 둘러봤다.
‘사채꾼들 아지트 같다.’
그게 바로 본인 소속사가 될 곳의 첫인상이었으니. 함께 따라온 오석 역시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에 무영의 눈치를 슬그머니 봤다. 혹시 후회하나 싶어서.
‘대박!’
물론 무영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독특한 분위기에 감탄할 뿐. 경민이 둘에게 물었다.
“녹차, 커피. 뭐 드실래요?”
“저는 녹차요.”
“커피. 여기가 사장실이고 저기가 연습실인 거?”
사무실 한가운데 깔린 붉은 카펫. 공간을 구분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모든 가구는 벽에 붙여 놓고, 그곳에선 연기 연습이 가능하게끔.
“연습실 겸 식당 겸 숙직실이죠. 창고에 간이침대가 있거든요.”
경민이 그들 앞에 차를 놔주며 농담했다. 그러면서 무영의 안색을 힐끔 살폈다. 이토록 보잘것없은 회사라, 마음이 돌아서는 건 아닐까?
“무영 군. 미안해요. 우리가 직원 둘에 배우 둘이다 보니 일손이 빠듯해서요. 사장님 곧 도착하실 거예요.”
“괜찮아요. 제가 일찍 온 걸요 뭘.”
“그래. 한 십 분 남았네. 천천히 오시라 그래.”
직함만 사장이지, 하는 일은 매니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무영은 녹차를 홀짝이며 책상 뒤쪽 캐비닛을 주시했다.
“그런데요. 저기엔 뭐가 들어있어요?”
“저기? 캐비닛이요?”
틈 사이로 예쁜 꽃가루 부스러기가 흘러내렸다. 혹시 계약서 쌓아두는 곳인가? 서류가 든 무영의 가방 안쪽 역시 반짝이로 가득했으니.
끼익.
경민은 별거 아니라는 듯 문을 열어주었다. 사람 키만 한 높이로 빼곡한 대본집과 종이 뭉치들.
“작품 보관하는 곳이에요. 충무로에 떠도는 영화 시나리오부터 드라마 공모전 입선작까지 다양하게 있죠. 사장님이 손에 한 번 들어왔다 싶으면 무조건 보관하는 버릇이 있어서, 집도 난리에요. 난리.”
“캐릭터 분석 때문에?”
연기 연습할 때 이만큼 좋은 게 또 없으니까. 완성된 대본의 활용도는 어마무시하게 넓었다.
인물 분석뿐이랴? 작품 전체를 꿰뚫어 습득하는 연습 역시 완성본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훈련이었다.
“그것도 그런데, 사실 사장님이 대본 덕후예요.”
벌컥-!
“늦어서 미안합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우렁찬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숨을 헐떡이며 땀을 훔쳐내는 남자. 바로 빅윈엔터의 사장이자 매니저, 온갖 잡일 담당인 나금동.
“미안해요!”
그는 후다닥 달려오며 연신 인사했다. 이름처럼 인상이 참 후덕해 보였다. 시골에서 만나면 사과 한 보따리 챙겨줄 것 같은 이미지.
“사장님. 태석이는요?”
“주차 좀 하고 오라 했어. 늦을까 봐. 허허.”
가족 같은 분위기가 뭔지 알 것 같다. 사장이 전혀 사장 같지 않아.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무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헉! 어이고! 나금동입니다.”
영상보다 실물이 훨-씬 낫구먼! 평면적인 화면으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아우라가 훌륭했다. 키도 키지만 뭐랄까, 저 눈망울. 별을 박은 것 같은 눈빛이 여간 매력적인 게 아니다.
“앉으시죠. 앉아요.”
둘은 가볍게 악수하며 자리에 앉았다.
“반가워요. 미튜브 영상 잘 봤습니다. 고 실장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어요. 연기한 지 얼마 안 됐다던데, 아 거참! 아주 인상 깊었어요.”
하하하, 웃지도 않았는데 왜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걸까. 말투가 특이하니 참 개성 있는 사람이다. 무영은 오석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좋은 선생님 만나서 그런 것 같아요.”
크흑, 짜식.
오석은 씰룩거리는 광대를 헛기침으로 겨우 눌러댔다. 참으로 보람차지 않은가.
그동안 대학입시에 보낸 애들은 많았어도 이런 가시적인 결과를 내놓은 건 무영이 처음이었다.
“자. 그럼.”
나금동은 잠시 숨을 고르며 본론을 꺼냈다.
“계약 조건은 서류를 검토해 봤으니 아실 거고, 우리 회사에 대해 정식으로 말씀드릴까 합니다.”
무영도 오석이 흘리듯이 말해줘서 알고 있었다. 나금동과 고경민은 극단에서 선후배 사이로 인연을 맺었다지. 연기에 인생 건 두 사람이 이곳을 떠날 수 없어서 차린 회사.
“제가 못 갔던 길을 누군가는 갔으면 싶어서, 그걸 옆에서 보고자 만들었지요. 아직은 작은 회사지만 제 모든 걸 걸고 소속 배우의 연기 인생을 응원, 지원할 것입니다.”
간절하고 애틋했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정말 이쪽 세계와는 무관한 삶을 살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치열하게 뜨거웠다.
‘대단해.’
그의 진심을 느낀 무영의 짧은 감탄. 연기를 정말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나금동은 나긋한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원하거나 추구하는 방향성이 있나요? 예를 들면 영화보다 드라마 쪽을 선호한다거나. 아니면 장르나 색깔 등등. 이런 걸 알아야지 저희도 그쪽으로 맞출 수 있거든요.”
“저는 연기만 할 수 있으면 다 좋아요.”
그 무엇이든, 좋은 작품이라면!
사장은 무영의 대답에 탄성 어린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사실 어떤 인재든 적극 환영이지만, 저런 자세는 더더욱 반가웠다.
“대단하군요! 젊은 분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가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나금동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가 무영 군과 같은 생각으로 인생을 먼저 살았지 않습니까?”
여기서 계약이 불발되면 앞으로 만날 인연이 없을 거다. 그래서 더더욱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배우라는 게 관객이 꼭 있어야 하는 직업인지라,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필요하더라고요. 찾아주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올 겁니다. 그래서 배우 자체의 파워가 중요해요. 좋은 작품 만나면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으니까.”
“인지도 말씀이시죠?”
“그렇죠.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선 필수 불가결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무영 군은 스펙트럼을 넓히세요. 연극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모델, 영화, 드라마…… 기회는 많습니다.”
무영은 그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무엇하나 틀린 게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뭐, 웹드라마 한 걸 보니 이미 잘하고 있는 것 같지만요. 하하하!”
호쾌한 나금동의 웃음에 무영 역시 덩달아 웃었다. 그리고 이내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그런 걸 도맡아서 매니지해 주시는 거 맞죠?”
이미 도장이 떡하니 찍혀 있는 서류. 나금동이 입을 살짝 벌리며 종이를 받아들었다.
오석과 고경민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이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하다니!
“주, 준비성이 철저하네. 무영이.”
오석의 말에 무영은 그저 어깨만 으쓱거렸다.
“도장 찍으면 귀찮은 게 없잖아요.”
“암. 그럼요! 배우는 연기만 생각하도록, 그 융통성은 바로 저희가 발휘합니다요!”
무영에게 귀찮은 것이란 실링의 박문철이었지만, 나금동은 조금 다르게 이해한 것 같았다. 굳이 정정할 필요가 없으니, 무영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
“저기, 고 실장. 도장!”
“아. 네네. 잠시만요.”
나금동과 고경민은 허둥지둥 도장을 찾았다. 그때, 문밖에서 아른거리는 그림자 하나. 무영이 돌아보자 후다닥 사라졌다.
‘방금 뭐지?’
3년 만에 들어온 신입이 누구인지 훔쳐보러 온 소속 배우 태석이었다. 주차는 다 했는데, 혹시 방해될까 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던 것.
[신입 와부렸어!]거구에 근육질인 남자는 건물 복도에 쪼그려 앉아 동료 배우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엉덩이가 시리지만 그게 대수랴! 그는 안쪽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으며 들어갈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자자. 그럼 찍습니다?”
“꼭 해야 합니까? 사장님?”
“에이. 기념이잖아. 고 실장.”
계약서를 든 무영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고경민과 나금동이 섰다. 오석은 휴대폰 카메라로 그들을 담았다.
“웃으세요!”
“김치!”
“아, 치이-즈!”
선명하게 찍힌 무영과 빅윈엔터의 도장. 무영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빼꼼 내밀었다.
찰칵! 찰칵!
“됐습니다! 무영아, 축하한다!”
“쌤. 감사해요.”
“으이구. 기특한 것.”
무영은 고경민과 나금동을 향해 부탁했다.
“이제 식구 됐으니 말 편하게 하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럴까? 그래! 우리도 잘 부탁한다. 거의 고 실장이 전담할 거고, 언제든지 의견 있으면 편하게 말해줘.”
“편하게 불러. 매니저나 실장이나, 입에 붙는 거로.”
고 실장과 무영이 손을 맞잡았다.
“그럼 매니저 형이라 부를게요. 저 다음 작품은 어떻게 할까요? 웹드라마 한 번 찍고서는 제대로 하질 못했거든요. 빨리 연기하고 싶어요!”
오. 저기서 눈이 더 반짝일 수도 있구나! 나금동은 감탄하며 뒤쪽 캐비닛을 소개했다. 이미 안에 뭐가 있는지 봤건만, 그는 그 사실을 모르는 듯싶다.
“따라다다 따-”
추억의 예능, 러브하우스 노래까지 부르며 캐비닛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중 오른쪽에 쌓인 단을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골라! 왼쪽은 이미 완성되거나 엎어진 것들이지만 얘들은 아직 캐스팅 중인 것들이거든.”
배우 찾아 떠도는 대본들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을 거다. 무영의 시선은 꽃가루를 흘리는 한 대본집에 고정되어 있었다.
‘음.’
그리고 그냥, 괜히,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매니저 형에게 물었다.
“형은 저기 있는 거 다 봤어요?”
“나? 그렇지. 거의.”
“그럼 추천 좀 해주세요. 너무 많아서요.”
“아. 그래그래.”
두근두근, 무영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매니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이것저것 뒤적거리더니 총 다섯 권의 대본집을 빼 들었다.
“내가 봤을 땐 이것들이 좀 괜찮더라고.”
‘와우.’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그 대본. 꽃가루가 폴폴 흩날리는 그 대본!
‘보는 눈이 있으시구나.’
역시 반짝반짝한 이유가 있었어.
무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섯 권 모두 받았다. 그리고 대충 훑어보는 척, 종이를 넘겼다. 앞장에 정리된 대략적인 줄거리.
“저는요-”
잠깐 뜸을 들인 후, 무영이 대본 제목을 가리켰다.
“이거 할래요.”
[역병>고경민은 내심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만 끄덕였다. 제목으로는 그다지 시선이 안 가지만 조금만 읽어보면 안다.
‘보는 눈이 있네.’
근래에 보기 드물 만큼 멋진 대본이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