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5)
신인인데 천만배우 25화
SNS
오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목을 확인했다. 애가 슥슥 읽자마자 픽한 대본이라.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기분.
“역병? 설마 사극?”
“아니요. 현대극이에요.”
“다행이다. 처음부터 사극 한다 했으면 말리려고 했는데. 작가가 누구래?”
“으흠. 글쎄요.”
표지에는 그저 ‘아옥(雅?)’이란 글자만 적혀 있었다. 맑은 독수리? 아무래도 본명 같지는 않다. 매니저 역시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우리도 건너건너 받은 거라 잘 모르겠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언제였더라? 한 달 전인가. 몇몇 영화사 문 앞에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대. 연락처도 뭣도 없이 그저 이름만 딸랑. 작품이 괜찮아도 연락처니 뭐니 아무것도 없어서 공중에 붕 뜬 상태거든.”
“아. 그럼 이건…….”
“일단 몽네뜨에서 간 보는 것 같더라. 다른 쪽은 날렸는데, 거긴 계속 붙잡고 있어. 작가 수소문 중이라니까 곧 소식이 있을 거야. 엎어질지 이어질지.”
그 날린 대본이 여기저기를 거쳐 빅윈까지 오게 된 것이다. 무영은 대본을 팔랑거리며 꽃가루를 털어댔다. ……아무리 봐도 엎어질 것 같진 않은데?
“몽네뜨라 하면 [문샷> 만든 곳이죠?”
“[문샷>을 아는구나?”
“저 그 영화 진짜 좋아해요.”
달에 가고 싶은 자폐 환우의 도전기를 몽환적으로 그려낸 작품. 학교에서 보여줬는데, 와 세상에.
“진짜 머리 한 대 맞은 것 같더라고요. 새드엔딩을 처음 봤거든요. 근데 영화는 또 자체로 재밌고. 감독님이 뒤로 활동을 안 하셔서 아쉬워요.”
“개성이 워낙 확고한지라 상업적인 노림수가 안 들어간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인 곳이지.”
영화판에서는 단비 같은 존재이나 시장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목숨줄만 연명하는 중이었다. 신인 감독 기용을 원칙으로 하거든.
“이번에 영화사가 죄다 빠진 충무로로 사무실 옮겼다 할 정도니까.”
70, 80년대엔 충무로 거리마다 사무실이 넘쳐났지만, 지금은 전혀! 그때처럼 종이 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시대가 아니니 몰려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건물주가 영화사는 오랜만이라고 세를 싸게 줬대.”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들으셨어요?”
“귀가 있으면 다 수가 있지. 엣헴.”
나금동의 농담 어린 말에 무영은 그저 웃으며 대본을 정리했다. 착착 쌓인 다섯 권.
“아무튼, 아직 시간 많다는 거죠? 캐스팅 논의까지.”
“그렇지. 사실 주인을 찾아도 투자까지 이어질지는 또 모르는 일이야.”
“그러면 들고 가서 천천히 읽어봐도 돼요? 물론 다른 것들도요.”
매니저가 골라준 것들이니, 어떤지는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가 당연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캐비닛 쓰는 사람은 사장님밖에 없어. 다른 배우들은 각자 작품 진행 중인지라.”
“아 참. 두 분 더 계시다고?”
“한 명이 태석이. 올라올 때가 됐는데?”
그가 시계를 확인하며 중얼거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배우는 배우였다. 들어오는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게 쟀으니.
드르륵!
‘헉. 덩치 대박 크다.’
무영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거렸다. 본인도 어디 가서 빠지는 키가 아니건만, 저 사람 옆에 있으면 꼬꼬마처럼 보일 듯싶다.
“저 왔어요.”
“주차를 뭐 이렇게 오래 해? 태석이! 이리 와. 우리 새 식구 하무영 군.”
나금동의 손짓에 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우와.”
안 그래도 사채꾼 아지트 같았던 곳이, 태석의 등장으로 조폭 사무실로 바뀌는 것 같다. 다부진 외모와 구릿빛 피부. 엄청나다.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무영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태석은 그런 그를 잠깐 내려다보더니.
“반갑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
사투리와 표준어가 엉성하게 섞인 데다 전혀 어울리지 않게 가냘픈 목소리. 나금동이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얘가 부산 출신이라 사투리가 심한데, 요즘 작품 들어간다고 교정 중이거든.”
“아 그러시구나.”
“그리고 보시다시피 액션 전문 배우. 지금 SBC 드라마 ‘조선 한량’에서 주인공 호위 무사로 들어가 있어. 100% 사전제작이라 아마…… 가을쯤 방영될 거다.”
입만 열면 깨는지라 현장에선 주로 몸으로 때워야 했다. 언제쯤이면 대사를 잘 칠 수 있을까. 매일같이 연습하지만, 어찌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끈기가 대단한 친구지. 나이는 딱 서른이었나?”
사장의 말에 그저 고개만 까닥거리는 태석. 너무도 큰 체격과 독특한 외모. 그리고 반전의 목소리까지. 배우가 되기엔 참으로 열악한 조건 아닌가.
“고등학생 때, 오! 그러니까 무영이 너 나이쯤 시작했을 거다.”
그런 조건으로 십 년을 버틴 사람. 무영은 그의 손을 잡으며 살갑게 웃었다.
“형이라고 부를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내도!”
“그러면 우리 식구도 들어왔는데 환영식 한번 갈까? 배고프지? 오늘은 고기 어때?”
고기! 무영과 오석은 눈을 마주치며 히죽 웃었다. 절대 놓칠 수 없는 찬스죠? 암암!
“좋아요!”
무영은 대본으로 빵빵해진 가방을 짊어지며 외쳤다. 앞서 걸어가려던 나금동이 아차, 하며 빙글 뒤돌았다.
“계약금은 이번 주 내로 입금될 거야.”
200만 원!
대부분 빚 갚는 데 써야 하지만, 난생처음 만져보는 백 단위 돈이었다. 무영은 한껏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엄청 빠른 속도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소속이니까 홈페이지에 프로필 올릴게. 사진은 있어?”
고경민 역시 테이블을 정리하며 무영을 돌아봤다. 배우가 작품을 고르는 동안, 그들은 그들만의 작업을 진행해야 했으니.
“사진이요? 졸업사진?”
“……하나 찍어야겠군. 혹시 SNS는?”
“없습니다!”
“……일단 고깃집 가자.”
할 게 많구나. 경민은 머릿속으로 무엇을 순차적으로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도 얼마 만이냐.’
태석과 미래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말고는 참 오랜만이다. 누군가의 첫 시작을 함께 한다는 것.
“가서 SNS도 만들고, 앞으로 할 일 체크해 볼게. 오케이?”
“좋아요.”
처억!
고경민의 말에 한껏 쌍 엄지를 치켜드는 무영. 할 일이 뭐가 있나 싶지만, 아무렴 어떤가. 고기 사준다는데.
* * *
[역병>근미래의 디스토피아.
하늘은 언제나 잿빛이며 도시는 먼지 속에 가라앉았다. 모든 자연이 제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실업난은 사람들을 광폭하게 만들었으며, 곳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모든 게 파괴된 세상.
하지만 여전히 굴러가는 사회.
그 어느 날, 서울 북동 3번 구역에 신고가 들어왔다. FG제약회사 생산공장 단지 안에서 가스가 샌다는 것.
그저 작은 소동인가 싶었지만, 이후 주민들의 삶은 끔찍하게 변했다.
눈에서는 진물이. 입에서는 구토가. 귀에서 피가 흘렀다. 피부는 문드러져 마치 살아 있는 시체와 같다.
분명 FG제약회사의 가스 누출 사고가 원인이리라.
모두 의심의 여지 없이 그리 생각했다.
정부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
[당국 자체 조사 결과, 북동 3번 구역의 집단 현상은 사고가 아닌 ‘역병’입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3번 구역을 전면 봉쇄하겠습니다.]무영은 기숙사 침대에 누워 대본 앞에 붙어져 있는 시놉시스를 찬찬히 읽어내렸다. 몽네뜨가 왜 이 작품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된다.
‘디스토피아 서울이라.’
미래적이면서도 할렘 느낌이 가미되어 있는 한국 현대 배경은 흔치 않으니까. 아마 넷블락스의 ‘사냥의 시각’ 정도가 그나마 대중적으로 알려졌을 거다.
‘그런데 이 작품은-’
특이했다.
주인공이 아역이었거든. 북동 3번 구역에 갇힌 아이가 비참한 현실에서 살아남는 내용이 주된 줄거리. 순수한 어린이의 시각 연출이 그 비극을 더 극대화할 것이다.
“일관성이 있긴 있네.”
[문샷>부터 시작해서 작중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했다. 아역이 주인공인 것,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배경, 그리고 비극.끼익-
“무슨 일관성? 대본집이네?”
씻고 온 봉군이 머리를 탈탈 털며 물었다. 무영은 이층 침대에서 고개만 내밀며 인사했다.
“오셨어요?”
“응. 근데 무영아. 너 휴대폰 불났다.”
“네?”
그의 말에 깜짝 놀란 무영이 박쥐처럼 침대 아래로 머리를 내밀었다. 책상 위에서 충전 중인 휴대폰. 근데 화면이 이상하다?
“뭐지?”
“DM 오는 거잖아.”
“DM이요?”
“SNS 안 한다더니 만들었나 봐?”
“고, 고깃집에서…… 앗 잠깐만요.”
분명 충전기를 꽂았는데 배터리가 닳아 있다. 끝도 없이 올라오는 피드들. 무음으로 해놔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고막이 터졌을 것이다.
“헐랭. 이거 어떻게 해?”
자꾸 뜨는 알람에 뭔가를 터치할 수도 없다. 무영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것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봉군이 휴대폰을 들었다.
“오호. 빅윈엔터테인먼트의 신인배우 하무영 계정이라. 아이디 HAmoo_zero? 누가 지었어? 좀 구리다?”
“진짜요? 그게 트렌드라고 했는데!”
“팔로워가 사천 칠십. 언제 만든 거야?”
“아까요.”
아까. 진짜 아까.
고기가 소화되기도 전인 몇 시간 전. 무영은 닳아가는 배터리를 보며 대답했다.
‘대박.’
그사이 사천 명이나 붙었단 말이야? 빅윈과 무영의 요청으로 미튜브 더 보기란에 SNS 주소가 추가된 걸 몰랐으니. 봉군은 기함할 수밖에.
지이잉. 지이잉.
그때 울리는 전화. 준호 아닌가!
안 그래도 배터리 나가는데 전화까지 오면 곤란했다. 무영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누른 다음 소리쳤다.
“끊어-!”
알림 소리로 통화음이 묻힐까 봐. 하지만 통화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나 보다. 준호가 별다른 말 없이 가볍게 무시했다.
-싫은데?
“왜? 그나저나 내 목소리 잘 들려?”
-응. 잘 들려. 근데 넌 궁금하지도 않냐? 이 친구가 연락이 없었는데.
무영도 무영 나름대로 바빠서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날짜를 세는 무영.
“그래 봤자 이 주?”
-엔빈이 그날 공항에서 결국 우리 옷 입었더라.
“아. 진짜? 잘됐네.”
-덕분에 회사엔 아주 즐거운 비명만 터지고 있다. 좀 쉬고 싶어서 부탁했는데, 전보다 더 바빠졌어.
“으흥. 그렇게 바쁜데 나한테 연락한 걸 보니, 뭔가 할 말이 있구먼?”
어서 말하라는 뜻으로 묻자, 준호가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보라랑 연락이 안 돼.
뜻밖의 말. 아니, 어이없는 말이라 하는 게 맞겠지.
“원래 보라는 네 연락 안 받잖아?”
-야이씨. 그래도 조금씩 주고받았거든?
스무 번 보내면 한 번의 단답 정도. 물론, 무영에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근데? 걔 요즘 드라마 들어간다고 바쁠걸?”
-그러니까, 네가 한번 해봐. 사실 우리 형이 너 보고 SNS 계정 모델로 쓰고 싶다 했어. 그 틈에 내가 보라도 끼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