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67)
신인인데 천만배우 267화
퇴마
딸깍-
“……?”
현관으로 들어오던 차은성이 멈칫거렸다. 새벽이라 다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무영이가 거실 한가운데서 쪼그려 앉아 있었던 거다.
“뭐 해?”
“형 왔어요?”
“안 잤어? 촬영 있었다면서, 체력도 좋다. 엥?”
그리고 가까이 들어오자, 역시 그 옆에서 엉덩이를 딱 붙이고 있는 삼순이가 보였다.
평소라면 와다다 달려와 안겼을 터인데, 어째 삼순이는 기분이 나빠 보였다.
허공을 보며 눈을 부라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누군가랑 한판 뜰 기세다.
“삼순, 모 해~”
“삼순이 사주경계 중이니까 건들지 마세요.”
“경계할 게 뭐 있다고?”
“……벌레 나왔거든요.”
“벌레? 에스코 불러야겠네. 하여간 수십억짜리 집도 바 선생 앞에서는 부질없다. 쯧쯧.”
차라리 바 선생이면 고마울 지경이다.
고양이 귀신은 선반에 딱 자리 잡고 버텨서는 계속해서 삼순이와 기 싸움 중이었다.
처음에는 둘 다 아르르 거리더니만, 시간이 갈수록 지쳐서 쳐다만 보고 있다.
“나 먼저 잘게?”
“형 집에 가서 자요.”
“삼순, 같이 안 잘래?”
앙!
“이잉. 너무해. 그러지 말고~”
차은성은 삼순이가 쳐다도 안 보자 온갖 애교를 피워가며 끌어안았다.
술 냄새가 어렴풋이 나는 것으로 보아, 한잔 제대로 걸친 듯싶다.
애오옹-
삼순이가 차은성의 품에 쏙 들어가서 눈싸움이 끊어지자, 고양이가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슬금슬금, 꼬리로 물건들을 툭툭 쳐가며 협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거 떨어뜨린다? 아니면 저거?
애오오옭!
앙!
“에엥, 그, 그렇게 싫어?”
그러자 삼순이가 차은성의 품을 비집고 나와 경고를 날렸다.
거부당한 것이 꽤나 큰 충격이었는지, 차은성은 비틀비틀 안방으로 기어갔다.
“형! 형 집 가서 자요! 술 냄새 밴다구용!”
“하무도 그렇고 삼순이도 그렇고……. 이 집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구나…….”
말은 저렇게 하면서 기어코 안방을 차지했다.
말과 행동이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미쳐.
무영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결심했다는 듯 일어섰다.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애오옭-
에너지 소모는 여기까지.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다. 고된 하루였던 만큼, 눈이 저절로 감길 지경이다.
무영이 전투에 임하는 각오로 고무장갑을 끼자, 고양이의 눈이 대번에 가늘어졌다.
“미안하지만, 좀 나가줄래?”
앙앙!
애오옭!
“너, 계속 그러면 진짜 궁디 팡팡이야. 어?”
무영이 다가가자, 녀석은 털을 쭈뼛쭈뼛 세우고는 하악질을 심하게 해댔다.
사방으로 돌아가는 눈알, 길게 쭉 뻗은 치아.
귀신이라서 무섭다기보다, 진짜 해를 가할 것 같은 짐승의 모습이라 몸이 굳어졌다.
지이잉- 지이잉-
침을 꿀꺽 삼키던 무영이 멈칫거렸다.
소파에 던져두었던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새벽인지라 전화 올 곳이 없는데…….
“너, 너 딱 기다려.”
애옹!
“여보세요?”
-아. 무영 씨 연락처 됩니까?
“누구시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다.
무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스님께 얘기 들었습니다. 문제가 있었다고 하던데, 제가 산으로 올라가서 연락이 안 되었지요?
“아! 아아! 애기보살 선녀님!”
무영이는 그제야 상대방이 누군지 알아챘다.
[면죄부> 고사를 지낼 때 봐주셨던 무당님 아니신가?무당이 모시던 아기보살님이 굿판에 맞춰 춤추던 것이 눈에 선명했다.
그때 중고차와 관련된 사고를 예견해 줬었는데, 막상 귀신과 대면했을 때는 산으로 들어가셔서 도움을 받진 못했다.
어찌저찌, 잘 해결하긴 했지만 말이다.
“신녀님!”
-목소리 들으니 잘 지내신 것 같네요. 근데 왜 꿈에 악귀가 보이죠?
“네?”
-무영 씨 근처에 악귀가…….
“맞아요! 있어요!”
무영이는 냅다 옳다며 소리쳤다.
그리고 얌전히 무릎 꿇고서 비는 마음으로 부탁했다.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얘가 말이 안 통하는 애라서…….”
* * *
띵동-!
“네네! 나갑니다!”
무당이 도착한 것은 그날 아침 아홉 시였다.
앉은 채로 선잠에 빠졌던 무영이는 삼순이와 함께 현관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문을 여니,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서 있었다.
단정하고 정갈한 개량 한복을 입은 채.
“신녀님!”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등에 매달려 있는 아기 신령님.
저번에 봤을 때는 머리에 얹혀 있었는데…….
“무영 씨가 저번에 그랬죠? 신령님이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럴 거면 차라리 업고 다니라고.”
“와. 산으로 들어간 보람이 있으셨네요.”
치성을 올린 덕분에 무영이가 보는 세상이 남달랐음을 알게 되었다.
동굴에서 영안이 트였을 때,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제일 먼저 봤던 것이 모시는 아기 신의 엉덩이였으니까.
“그런데 어쩌다 저런 걸 집까지 끌고 왔어요?”
“저 따라왔나 봐요. 현관문 여니까 확 따라 들어오더라고요.”
무당은 구석에서 몸을 말고 있는 고양이 귀신을 쳐다봤다.
털이 삐죽 솟다 못해 그을린 것처럼 사방으로 뻗치고 있었다.
“흰 개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나 보군요. 이런 애들이 저런 것들에 예민하거든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려고 왔죠.”
집 안을 한번 싹 돌아본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코를 가볍게 쥐었다.
어디서 악취라도 맡은 표정이었으나, 무영이는 딱히 모르겠다.
“냄새가 나나요? 이상하다, 청소는 열심히 하는데.
“……이건 나중에 얘기하고, 우선 저것부터 쫓아내죠.”
무당은 낡은 스포츠 백에서 붉은 천으로 묶인 나뭇가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벼락 맞은 대추나무 가지(벽조목霹棗木)였다.
가볍게 휘두르는 순간, 고양이가 뒤로 넘어갈 것처럼 몸을 부풀었다.
촤악-! 촤악!
애애애옹!
촤악!
“문 좀 열어두시겠어요? 현관부터 창문까지, 밖으로 연결된 건 다요.”
“앗. 넵넵.”
무당은 고양이를 겁주듯 나뭇가지를 흔들었고, 고양이는 기겁하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감히 덤빌 생각도 못 하고 저리 빌빌대는 꼴이라니.
밤새워 씨름했던 무영이와 삼순이가 서로를 껴안고 멍하니 구경했다.
촤악!
애오오옹!
고양이 귀신은 어쩔 수 없이 주방에 난 창문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무당이 경고하듯 창틀을 세차게, 여러 번 때려댔다.
차악! 차악!
“한 번만 더 들어오면 경을 칠게다!”
“오오오.”
짝짝짝.
무당의 카리스마 있는 일갈에 무영이 홀린 듯 손뼉 쳤다.
그녀는 문을 다 닫으라고 지시했고, 무영이는 서둘러 움직였다.
“쫓아내긴 했으나, 짐승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법입니다. 부적을 쓰든가, 아니면 굿을 해서 성불시켜야 할 것인데……. 부적은 지금부터 쓰더라도 한 달 이상이 걸릴 것이고, 굿은 짐승혼에 통하지 않습니다.”
“한 달이요?”
성격이 지랄맞은 것으로 보아, 이대로 물러날 고양이가 아니었다.
무영이 고민하듯 중얼거리자 무당이 벽조목을 가방에 넣으며 대답했다.
“하나 본디 짐승혼은 원한이 깊어 이승에 머무는 경우가 많으니, 그쪽만 잘 달래준다면 쉬이 떠날 수도 있을 겁니다. 짐작 가는 일이 있습니까?”
“아니요. 어제 처음 본 고양이라서.”
“그럼 어쩔 수 없군요. 부적을 써드리지요.”
“앗. 감사합니다. 가격은…….”
“됐습니다. 우리 신령님께서 무영 씨를 워낙 좋아하시기도 하고, 저번에 제가 못 도와드린 것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무영이 신을 모시고 있지 않을 뿐, 묘하게 동업자처럼 느껴지는 터라, 돈을 받기가 껄끄러웠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감사의 표현 정도는 하게 해주세요. 오고 가는 데 차비만 얼마예요. 잠시만요.”
무영이는 다급하게 지갑을 찾아 있는 현금을 모두 내주었다.
무당이 웃으며 돈을 받는 순간, 갑자기 무영의 손목을 낚아채서 코를 킁킁거렸다.
“아.”
“왜, 왜 그러세요?”
“이거……. 손목에서 귀신 썩은 피 냄새가 나는데요.”
“넹? 헐! 넹?”
말도 안 돼. 귀신 썩은 피 냄새라니?
무영이도 코를 박아봤지만, 살냄새 외에는 맡아지는 게 없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귀신 피…… 피가 왜…….”
기억을 더듬어보자, 파편 하나가 휙 하고 튀어나왔다.
중고차 사건 때, 피해자였던 귀신이 떠나가면서 피를 손목에 남겨주지 않았던가.
분명 호의성 대가처럼 느껴졌는데!
“썩은 피면 나쁜 거예요? 나, 나 뒤통수 맞았나?”
“아니…… 좋다 나쁘다 말할 게 아니죠. 식칼 두고서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나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른 거니까.”
“이걸 어떻게 쓰는데요?”
“저도 모르죠. 귀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남겼는지는.”
그러자 무당 뒤에 업혀 있던 동자신이 그녀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무당은 짐을 챙기며 말을 전해주었다.
“신령님이 걱정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걸로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아무튼, 부적은 완성되는 대로 연락드리죠. 당분간 몸조심하세요.”
“아. 넹…….”
무당은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내 서둘러서 현관을 나가 버렸다.
갑자기 조용해진 집안. 소파에는 새벽 내내 기 싸움을 벌였던 삼순이가 배를 뒤집어 깐 채 곯아떨어져 있었다.
무영이 역시 그 옆에 비집고 누워 제 손을 올려다봤다.
‘목숨을 구할 거라고?’
그 말인즉, 목숨을 잃을 만한 일이 있을 거라는 뜻이잖아.
무영이는 손가락 틈으로 새어 나오는 아침 햇살을 보며 눈을 감았다.
일단은, 집 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바로 잠든 무영이는 꿈을 꿨다.
* * *
고양이.
어른 손바닥만큼 아주 작은 고양이는 어미의 보살핌 아래 형제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때맞춰 나오는 우유와 형형색색의 장난감들.
어미 고양이의 주인들은 새끼를 정성껏 돌봐주었고, 작은 고양이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행복을 먹고 자라났다.
‘얘로 할게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누군가 찾아왔다.
제 턱을 간질이는 손길에 기분 좋아 몇 번 갸릉갸릉 했더니, 인간은 자신을 품에 넣고 놓아주질 않았다.
외투 속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자, 어미와 형제들이 없었다.
낯선 곳이었다.
조금 놀라고 당황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저를 만지는 손길은 따뜻했고, 언제나 배가 불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는 듣기 좋았으니까.
고양이는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제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얘가 또 왜 이래!?’
‘이거 뜯지 말라니까.’
‘얌전히 좀 있어라. 응?’
‘너 이리 와!!’
새로운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버럭 내지르는 큰소리에 움찔거리기를 여러 번, 하지만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털이 날리는 것은 자신에게 털이 있어서였고, 시끄러운 것으로 따지면 인간들 목소리가 제일 시끄럽지 않은가?
철컥-
고양이는 병원에 갈 때나 쓰는 이동장에 넣어졌다.
이번에는 또 어떤 주사를 맞을지, 긴장되던 찰나.
문이 열리자 펼쳐진 것은 풀과 나무가 가득한 공터였다.
에오오옹-
난생처음 밟아보는 바깥 땅에, 고양이는 정신없이 뛰쳐나갔다.
새와 쥐도 쫓아보고 괜히 나무도 한번 긁어봤다.
노느라 정신없던 고양이는 문득 배고픈 것을 느꼈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인간을 불렀지만, 반응이 없다.
고양이는 그날 밤 처음으로 굶주림을 배웠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까치의 공격이 매섭다는 걸 배웠다.
다음 날에는 구정물은 맛이 없다는 것과 또 다음 날에는 바람이 차다는 것도.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그렇게 수많은 달을 보았다.
웬 인간 하나가 친한 척, 고양이에게 참치 캔을 건넸다.
경계하는 것도 잠시, 고양이는 천상의 맛에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더 먹을래?’
인간은, 뚜껑을 딴 캔을 보여주더니 도로 한가운데로 던져 버렸다.
어서 가서 먹어보라는 듯. 웃는 미소가 주인 인간들과 닮아 있었다.
애오옹-
고양이는 천천히 도로 가운데로 걸어갔다.
참치 냄새에 이끌린 자석처럼, 저도 모르게, 아주 천천히.
코를 박고 참치를 먹는데, 귓가로 엄청나게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빠아앙-!
그리고 끝.
제 몸이 제 몸이 아닌 것 같았다.
팔과 다리가 아파서 울부짖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고양이는…… 고양이는…….
“무영아!”
“하무! 정신 좀 차려봐.”
무영이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차은성과 준호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흔들고 있었다.
“허억…… 허억…….”
“괜찮아? 너 왜 그래?”
“악몽이라도 꾼 거야?”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무영이는 저가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굵다.
무영이는 아직 해가 떠 있는 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나 가야겠다.”
“어딜?”
“고양이, 고양이 만나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