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69)
신인인데 천만배우 269화
뉴욕 타임스퀘어
거실 한복판에서 커다란 캐리어를 펼친 채 짐을 싸고 있는 무영. 옷가지며 잡동사니가 널브러져서는 아주 번잡스럽다.
무영이는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옷 챙겼고, 여권 챙겼고, 음음. 달러도 이만하면 됐고…… 또 뭐 챙겨야 하지?”
앙앙!
그러자 삼순이가 홀라당 캐리어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도 데리고 가라는 듯한 행동에 무영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에구, 예뻐라. 근데 삼순이는 안 돼. 집 잘 지키고 있어.”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대표님이 알아서 사주시겠지. 내 생각에는 너 그냥 맨몸으로 가도 될 듯.”
준호는 커피를 홀짝이며 시계를 확인했다.
곧 출국할 녀석이 아직 짐을 싸대고 있으니, 쯧쯧. 빨리 썩 가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질러진 집도 집이지만 소파에 엎드려 꿍얼거리는 차은성이 제일 신경 쓰였다.
“아. 진짜 죽여 버려, 유사하…….”
“그러니까, 비행기 표 예매는 미리미리 했어야죠.”
“재계약했으면 당연히 지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님?”
“그런 게 어딨어요? 계약 조항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쳐 버리겠네, 증말.”
유사하는 미국 일정이 정해진 순간부터 무영이의 항공권과 일정을 확인해 두었다.
그리고 농담 식으로 차은성은 따로 오라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되었다.
“내일 바로 출발하니까 크게 차이 없을걸요?”
“비행시간만 14시간이다. 그냥 이코노미 타?”
“와, 좀 힘들 것 같은데용.”
오늘 같은 비행기를 타려면 이코노미, 비즈니스 이상으로 타려면 내일 비행기를 선택해야 했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도 알아보는 건데, 키가 장신이다 보니 이코노미는 불편해서 엄두가 안 났다.
무영이마저 말릴 지경이니, 말 다 한 거지.
“죽여 버려, 유사하…….”
“아하하. 그건 좀 곤란하네요. 은성 씨.”
“대표님!”
집이 넓으면 이게 좀 아쉽다니까. 어느새 고경민과 유사하가 현관에 들어서 있었다.
매니저는 차은성의 욕설에 당황한 듯 대표를 돌아봤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은 듯 휴대폰만 흔들었다.
“무영 씨. 문자 못 봤어요?”
“헉! 짐 싼다고 정신없었어요.”
“아래에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슬슬 출발해야 해서요.”
“네넵. 준호야, 삼순이 잘 부탁할게.”
무영이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속닥거렸다.
“그리고 말했던 것도.”
“꼭 기도까지 해야 해?”
“그냥 잘 먹으라고만 해도 돼.”
하루 한 번, 뒤뜰에 츄르를 놔달라는 부탁이었다.
준호는 별로 내키지 않아 했지만,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었기에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삼순이를 껴안은 채 앞발을 흔들었다.
“올 때 선물~”
앙앙!
“알았어. 형도 조심히 오시고요. 그럼, 다녀올게!”
무영이는 소파에 널브러진 채 꿍해 있는 차은성에게 손을 흔들었고, 바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고급 세단에 양복을 갖춰 입은 운전사가 무영이의 캐리어를 건네받았다.
“타시지요.”
“감사합니다~”
달칵-
힐끗, 유사하의 트렁크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훔쳐보는데 놀랍게도 뭐 들어 있는 게 없었다.
“대표님은 짐 없어요?”
“네? 저는 뭐, 하하. 참, 이번에는 준호 씨가 뭐라 안 하던가요? 화장실 갈 때 열쇠 받아야 한다거나, 뭐 그런 거요.”
“……대표님도 아시네요.”
실수하기를 조금 기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영이의 눈매가 슬며시 새초롬해지자, 유사하가 크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몰라요.”
“방금 다 말씀하셨잖아요.”
“아, 맞다. 차기작으로 드라마 고민하고 있다면서요?”
말 돌리는 솜씨가 아주 능구렁이 열 마리는 삶아 먹은 것 같다.
무영이는 작은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보여주었다.
“오, 김순영 작가님 작품이군요. 작가님 작품은 거의 흥행 보증수표나 마찬가지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선순위가 있다고 하시는데, 미팅 요청하니까 받아주셨어요. 일정 끝나고 오자마자 뵈려고요.”
“우선순위요? 누구?”
“임민성 선배님이랑 김창운 선배님이요.”
“아아, 걱정 없겠네요. 무영 씨가 더 나아요.”
영향력으로 보나, 연기력으로 보나, 그리고 다른 어떤 외적인 능력을 비교한다고 하더라도 무영이가 꿇릴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양이? 주인공이 고양이네요?”
“그래서 연습실을 나가보려고요. 고양이 행동을 정확하게 묘사해야 해서, 그 부분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당당하고, 귀엽고, 독립적이며, 세상에서 제일 반짝이는 고양이를 연기할 것이다.
무영이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응원할게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 저 혹시 미국 스케줄 확인 가능할까요?”
“비서님?”
“네. 대표님.”
유사하의 부름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비서가 태블릿을 건네주었다.
반쯤 놀러 가는 무영이와 달리 유사하는 사업차 가는 것인지라 시간 단위로 일정이 촘촘했다.
“헉. 되게 바쁘시네요.”
“그래도 저녁 시간들은 다 비어 있어요. 타임스퀘어 봐야 하니까.”
“혹시 햄버거 좋아하시나요?”
“햄…… 버거요?”
“광고 나올 전광판 근처에 진짜진짜 유명한 수제 햄버거집이 있대요. 아, 유명해져서 프랜차이즈화됐지만요. 여행 후기 보니까 그거 진짜 맛있다고 해서.”
“무영 씨는 여행 스타일이 식도락파네요. 저번에 일본 갔을 때도 맛집 가지 않았나요?”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SNS 염탐하는 게 취미라서.”
타닥-
유사하는 그렇게 말하며 태블릿으로 스케줄을 조정했다.
원한다면 비서에게 부탁해서 픽업할 수도 있겠지만, 무영이의 행동으로 보아 직접 사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으니까.
태블릿을 돌려받은 비서가 난감하다는 듯 뒤를 돌아봤지만, 이내 어쩔 수 없이 단념했다.
“공항 도착했습니다.”
“무영 씨. 짐은 기사님께 부탁하고, 우리는 라운지 들어가 있죠.”
“와. 좋아요!”
유사하의 스케줄로 둔갑해서 그런지, 몰려든 기자도 없는 쾌적한 환경이었다.
이내 곧 탑승 시간이 되었고, 제일 먼저 안내받은 두 사람은 일등석으로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좌석,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와, 장거리 비행기는 또 일등석이 다르네요.”
“일본 갈 때는 어땠는데요?”
“좌석이 좀 넓다, 그 정도였는데 이건 뭐 호텔 같네요. 대박.”
칸막이는 물론이고, 침대로 변하는 좌석, 게다가 앞에는 커다란 화면까지 완벽했다. 여기서 14시간 동안 먹고 자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희야말로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비싼 좌석이니까 빈틈없이 완벽하게 누리고 가리라, 굳게 결심했던 무영이는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잠들고 말았다.
* * *
“하…… 세상에…….”
무영이는 비행기를 빠져나가면서도 한탄을 금치 못했다.
장장 천만 원이 훌쩍 넘는 일등석을 타고서 내리 자는 바람에 서비스를 하나도 만끽하지 못한 것이다.
유사하가 시계를 확인하며 웃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요. 돌아가는 비행기도 있으니까.”
“기내식 두 번에 간식 한 번, 그리고 와인 시음까지 다 놓쳐 버렸어요. VOD도 하나도 못 보고, 어메니티도 그대로…… 하물며 물 한잔도…….”
미쳤지. 차라리 눈이라도 뜨고 있었으면 추억이라도 할 텐데, 이륙하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어서 착륙할 때 깨는 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무영이는 난생처음 뉴욕 땅을 밟았지만, 상심이 커 만끽할 기분이 아니었다.
“미안해요. 너무 곤히 자서, 깨울 걸 그랬나?”
“아니요. 제 잘못이죠. 14시간 동안 잘 정도였으니 깨웠어도 못 일어났을 거예요.”
“귀국 비행기에선 꼭 깨울게요.”
“근데 저 배고파요. 대표님. 14시간 동안 아무것도…… 아무것도…… 흐윽.”
다시금 일등석 서비스를 날려 버렸다는 것을 상기하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비서가 재빨리 일등석 전용 입국 심사대로 그들을 안내했고, 간단히 샌드위치를 사서 무영이 손에 쥐여주었다.
“이거라도 드세요. 호텔 레스토랑이 괜찮아서 저녁을 거기서 하려고 했는데.”
“차, 참겠습니다.”
“조금만 드세요. 조금만.”
차은성과 했던 일본 여행이 친구들끼리 하는 청춘 여행 느낌이었다면, 유사하와 온 뉴욕은 그야말로 럭셔리의 향연이었다.
무영이는 준비된 밴에 올라타고 바로 호텔로 직행했다.
“와…….”
그리고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이국적인 풍경.
뉴욕의 상징인 노란 택시가 오가고, 가히 웅장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드높은 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다양한 인종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제 갈 길을 바쁘게 걷는 뉴욕의 거리.
이상하게 담배 냄새와 커피 냄새가 계속 나는 것 같다.
차 안이라 그럴 리가 없는데.
“미쳤다.”
“볼만한가요?”
“서울이 빌딩 숲이면요, 여기는 정글이에요. 미쳤다. 너무 멋있다.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예요. 진짜.”
무영이는 저들 사이를 걷는 자신을 상상했다.
한국에서는 조금 힘들어졌지만, 여기서는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겠지.
“오늘부터 시작인가요? 광고?”
“네. 저녁 7시에요. 그걸 시작으로 일주일 동안 시각마다 나올 겁니다.”
“저 매일매일 갈래요. 여기 너무 멋있어요.”
식사하고 슬슬 걸어가면 되는 거리다.
무영이는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이 아는 세상보다 훨씬 넓은 이 현실이 미치도록 멋지고 감격스러웠다.
시작은 반지하의 작은 방이었지만 지금은 세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지점까지 온 것이다.
“무영 씨. 이쪽으로.”
“와! 와와아!”
유사하와 만날 때마다 갔던 레스토랑과 비슷한 곳이었으나, 바로 눈앞에 세워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진짜, 진짜…….
“흐윽, 너무 맛있어요.”
“우는 거 아니죠?”
유사하와 비서가 무영이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반응이 워낙 격렬하고 귀여워서 데리고 다니는 재미가 확실했다.
“천천히 먹어요. 가까우니까.”
“진짜요?”
“걸어서 15분?”
“헉, 진짜네요. 다행이다.”
뉴욕에서의 첫 식사는 완벽하게 노을 지는 하늘 덕분에 환상적이었다.
이후, 광고가 나오는 전광판으로 걸어가는 동안, 유사하는 무영이에게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었고 무영이는 연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시끌벅적하고 번잡한 분위기에 정신을 못 차릴 것 같다.
[PM 6:56]“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죠.”
“저건가요? 제일 큰 거? 정면에 달린 저거?”
“맞아요. 오늘은 사진 대신 눈으로 담아요.”
무영이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전광판을 계속 쳐다봤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광고가 짧고 빠르게 이어졌으며, 주변의 네온사인은 어둠이 내려앉자 더욱 밝게 빛을 발하였다.
“무영 씨, 곧 나옵니다. 10, 9, 8…….”
이상하게 주위의 소음이 오프되는 기분이었다.
6시대의 마지막 광고가 끝나고, 드디어 7시였다.
“아.”
화면에 무영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칼날의 궤>에서 보여주었던 날카롭고 위엄 있는 왕의 눈빛.그는 정면으로 세계를 노려보았다.
이내 차은성 역시 옆모습으로 나타나고, 그와 함께했던 곶감 다과, 한식 등이 차례로 빠르게 지나갔다.
고운 색감의 한복 빛이 화려하게 화면 가득 차올랐다.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날의 기억들이 재생되면서 자동으로 대사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떠오르는 글자.
[THE HISTORY OF KOREA.-Korea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한국의 역사, 한국문화재청.
무영이는 주위의 여행객들이 멈춰서 광고를 보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내 이를 꽉 깨물며 기쁨의 환호성을 삼켜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