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7)
신인인데 천만배우 27화
논의
끼익-
“안녕하세요.”
무영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인사했다. 여전히 텅 비어 있는 빅윈엔터 사무실. 고경민이 보던 종이를 내려놓고 그를 맞이했다.
“왔구나? 밥은?”
“대충 먹었어요. 근데 뭐 보고 계셨어요?”
소파 테이블에 널려 있는 여러 시안지. 무영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흥미로운 시선으로 훑었다. 유명 배우들의 프로필 컷이었으니.
“컨셉 좀 보려고.”
“근데 다들 비슷하네요?”
“배우가 주는 이미지란 게 있잖아.”
포털사이트에 이름을 검색했을 때 뜨는 사진. 그게 곧 아티스트의 색깔이자 정체성을 뜻했다. 가장 좋은 예시로 한국 최고 걸그룹 ‘소녀의 시대’가 있을 것이다.
“거기서도 연기자로 데뷔한 윤하, 서연 같은 경우는 프로필 사진이 수수한 무드를 베이스로 한 사진이거든. 근데 가수로만 활동하는 태언이나 디파니는 바로 무대 뛸 수 있을 만큼 화려하지.”
“오잉? 진짜 그렇네요?”
같은 그룹이라도 활동 범위에 따라 프로필 사진이 다르다니. 무영은 신기해하며 다른 아이돌도 찾아봤다.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이라도 연기했던 사람은 단아하고 깔끔한 매력을 강조하고 있었다.
“실제로 만나는 대중보다 포탈로 접하는 대중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정말 중요해. 어찌 보면 첫인사이자 마지막 인사가 될 거니까. 보자.”
고경민은 몇몇 사진을 무영의 얼굴 옆에 댔다. 배우들은 인물을 담아내야 하는 백지와도 같은 존재. 무대 위에서 대중을 휘어잡는 화려함보다는 무(無)가 낫다.
“웃지 말고.”
“자꾸 웃음이 나요.”
사실상 정형화되어 있긴 했다.
흔히들 떠올리는 흑백 사진, 맨발에 흰 티셔츠, 스툴에 앉아 아련한 시선 처리 등등. 하지만 무영은 그런 것과 어울리지 않았을뿐더러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제 결을 그대로 찾아내는 게 중요해. 빅윈에서 정말 오랜만에 나오는 신인 배우잖아.’
게다가 뭐랄까. 보다 반짝반짝?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햇살이 떠오르는 포근한 기운이 압도적이었다. 혹자가 말하는 흰 백지 같은 배우가 아니라, 온기가 남아 있는 솜뭉치 느낌.
“찍고 싶은 컨셉이 있어?”
“저는 일단 웃고 싶어요. 이렇게 멋진 표정을 지으려면 부끄러워서. 헤헤.”
그런 놈이 그런 연기를 보여줘?
반항과 청춘에 잔뜩 젖은 고등학생의 그 눈빛.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미지의 간극이 너무 컸다.
‘재능인 거겠지. 그려내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되는 거. 나이도 어리면서 정말…….’
고경민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컨셉 시안지를 자세히 살폈다. 무영은 그런 그를 멀뚱히 보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런데요. 매니저 형.”
“응? 왜?”
“배우 영입은 계속하시는 거죠?”
“그렇지. 인연만 있다면야.”
물론 실력과 열정을 보긴 보겠지만. 회사 입장에서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 무영은 조심스럽게 며칠 전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제 친구 중에 아역 배우 출신이 있는데요. 되게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데 회사가 없어서 힘들어하더라고요. 현재 들어간 작품은 MBV 미니시리즈에요.”
무영의 말에 고경민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 회사 추천해 주긴 했는데, 괜찮죠?”
……괜찮다마다. 아티스트 영입하는 게 본인들 일인데. 게다가 이런 만남은 업계에서 굉장히 흔한 상황이었다. 배우나 회사관계자들끼리의 인맥으로 서로를 소개시켜 주는 게 일반적이면서도 관례에 가까웠으니.
“그 친구는 관심 있대? 우리 회사?”
“생각해 본다고는 했어요.”
“근데 무영아. 내가 진짜 궁금한데, 너 대체 나, 아니, 우리의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드냐?”
식구가 된 뒤로 한거라곤 고기 회식 뿐이지 않은가. 기본 중의 기본인 프로필 사진 촬영도 안 들어간 시점에서, 무영이 뭘 보고 제 친구에게 회사를 추천한 건지 모르겠다.
“음. 그때 듣지 않으셨어요?”
“어떤? 내 인상이 환하고 좋다고? 그거 거의 도를 아십니까 수준이잖아.”
“사장님도 되게 잼 아저씨처럼 좋으시고. 태석이 형도 착하고. 안 좋은 게 없는데요?”
“재, 잼 뭐?”
“친구 답변은 오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혹시 본투리라고 아세요?”
할 얘기가 있다고 하더니, 진짜 뭐가 많구나. 경민은 볼펜을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들어본다는 뜻이었다.
“고등학교 친구가 사촌 형이랑 일하는 의류 브랜드인데 이번에 엔빈을 모델로 포털 런칭했어요. 그때 인연으로 SNS 모델 제안이 들어왔는데, 회사 쪽이랑 얘기해야 하는 거죠?”
“모델? 진짜?”
“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까먹을 뻔했어요.”
“그, 그래.”
이거 고마우면서도 미안한데.
첫 일거리는 회사가 잡아주는 게 일반적인데, 무영이 직접 잡아 오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군. 경민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본투리 쪽에 회사 연락처 드릴게요.”
무영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자, 그 역시 휴대폰을 찾았다. 포털 메인 검색창에 ‘본투리’를 입력 후 검색. 연관검색어로 엔빈공항패션, 엔빈패션, 남자 의류 브랜드, 한국패션스토어 따위가 떴다.
“나만 몰랐니? 이 브랜드?”
기사부터 시작해서 일반 블로그 리뷰, 카페 추천의 글 수가 수만에 달했다. 한국패션스토어는 여러 패션 업체를 모아둔 쇼핑 앱인데, 거기서 월간 1위를 찍은 모양이다.
“저도 몰랐는데요? 런칭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한국패션스토어에서 1등 할 정도면, 대단한데…….”
“그게 뭔데요?”
“있어. 열 명 중 셋은 옷을 거기서 산다더라.”
“오호라. 그럼 전 그 일곱 명 중 한 명이었네요.”
엔빈의 공항 출국 사진이 크게 화제 된 모양. 기사고 찍덕이고 사진이 정말 잘 찍혔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가슴팍에 새겨진 본투리 로고를 가리키는 모습은 제목 뽑기 딱 좋지.
[이것이 협찬이다, 엔빈 빛나는 출근길 모델처럼.] [뒷광고 아웃! 앞광고 하세요? 엔빈 웃으며 활짝!]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런데 이 옷 예쁘죠?]등등등. 거의 밈처럼 이어져 끝도 없다. 게다가 미튜브에서 대박 터뜨린 ‘한밤포차’의 영향으로 주목도가 올라간 상태였다.
‘1화만 나온 무영도 이렇게 난리인데, 주인공인 엔빈은 말도 못 하지. 그나저나…….’
“친구 사촌 형네 회사면 엔빈이도 네가 소개해 준 거야?”
중간 연결 지점이라 하면 무영이밖에 없잖아. 계열사 없이 갓 단독 런칭한 의류 업체가 엔빈을 쓸 수 있을 리도 없고.
“네. 다 친구거든요. 엔빈이도 친구, 준호도 친구. 서로 도우면 좋으니까. 아 그리고-”
슈퍼스타를 거리낌 없이 친구라 말하는 무영. 다른 녀석이었다면 허세나 허풍 따위로 치부되었을 말인데, 어찌 쟤가 하니 믿음이 간다?
“대본 다 읽어봤는데요.”
무영은 가방을 뒤적거리며 대본 다섯 권을 쏟아냈다. 며칠 동안 시간을 쪼개가며 분석한 것들. 물론 메인인 [역병>에 쏟은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확실히 결정했어요. 역병 오디션 공고 나면 지원할래요. 그리고 나머지도 순위를 꼽으라면 이렇게요.”
순서대로 착착착. 고경민이 그걸 보며 살짝 놀라고 말았다. 본인이 생각하던 순서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는 대본을 스르륵 넘기며 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대로 읽었는지 중간중간 포스트잇이 붙어져 있었다.
“그건 다 좋은데 인물 나잇대가 저랑 안 맞아서 아쉽더라고요. 사실 열린 결말도 선호하지 않아요.”
무영의 말에 고경민이 후다닥 수첩을 꺼내 들었다. 아티스트의 취향이 듬뿍 담긴 정보 아닌가. 이런 걸 잘 기억해 둬야 작품 추천할 때 유용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내용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요?”
“아. 그건 김창 감독 후속작인데 혹시 [집시의 비밀> 봤어? 그 주인공 아들이랑 세계관 공유라 그런 걸 거야.”
“아하라! 어쩐지! 그렇구나.”
회사 외적인 진행 방식도 좋지만 이렇게 작품 얘기가 잘 통하는 것도 중요했다. 어쨌거나 예술 행위니까. 파트너와 정신적인 교류가 이뤄진다는 건 행운이었다.
“-해서 결론은 역시 이거.”
무영은 방긋 웃으며 역병 대본을 집어 들었다.
“다 좋은데, 주인공이 아역이잖아. 너는 어떤 역을 하고 싶은데? 진?”
FG제약회사의 직원이자, 구역이 폐쇄되면서 살아남기 위해 마약 운반책이 된 진. 주인공이 그 안에서 겪는 사건의 모든 원흉이었다. 말하자면, 거의 주조연 급.
“루이요.”
“……아. 맞네. 루이가 있었네.”
무영의 말에 경민이 아차 싶었다.
역할 중요도만 생각하느라 완전 찰떡같은 인물을 놓치고 있었으니.
“뭔가 저랑 성격도 잘 맞을 것 같고, 주인공 옆에서 계속 지켜주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굳이 말하자면 아역 주인공의 대형견…… 이라 해야겠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천재 캐릭터로 주인공의 길잡이를 해주는 인물이었다.
“괜찮겠어? 처음 하는 영화인데. 따지고 보면 이게 네 데뷔작이 될 거야. 물론 된다는 가정하에서.”
웹드라마 역시 성공적이었지만 플랫폼의 특성상 데뷔작으로 보기에는 애매했다. 게다가 1화에 한번 나오는 단발성 조연.
‘조금 까다로운데.’
우울증인지라 대사도 거의 없이 몸짓과 눈빛만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았다. 게다가 중후반엔 아역을 노리는 괴인들에 맞서 처참하게 죽기까지.
“전 좋아요. 물론 제작사랑 감독님이 정하셔야 하겠지만, 지원을 해야 한다면 루이로 부탁드릴게요.”
“뭐.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경민은 수첩에 무영의 전달 사항을 끼적이며 입을 앙다물었다. 사실 이렇게 말한다 한들, 시나리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 물거품이거늘.
“이거 불발되면? 그 다음 작 오디션 알아보는거지?”
“네. 근데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요?”
“……혹시 모르니까 이 작품들 제작사에 연락 넣어볼게.”
오디션 진행 일정이 있거나 캐스팅 논의 여지가 있으면 약속을 잡는 것이다. 첫 일감, 본투리 모델을 무영이 물어왔으니 이것만큼은 꼭 성사시키리라!
‘음! 꼭!’
경민이 두 주먹을 불끈쥐며 열의를 다졌다. 미팅에서 역량을 보여주는 건 무영의 능력이지만, 거기까지 가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었다.
끼익.
“어라. 무영이 왔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 반가워요- 반가워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오는 나금동. 고경민이 그에게 수첩을 내밀며 보고했다.
“사장님. 이것 좀.”
“응? 뭔데? 오오! 본투리!”
“본투리를 아세요?”
“나 이번에 거기서 카드 좀 긁었잖아. 옷이 참 예쁘더라고. 근데 거기 SNS모델 제의가 들어왔다는 거야? 이야. 무영이!”
친구의 사촌 형 회사라는 걸 말하기도 전에, 나금동이 무영의 어깨를 다부지게 두드려댔다. 그리고 이어서 읽은 글자에 눈썹이 꿈틀.
“응? [역병> 몽네뜨 그거 맞지?”
“네. 아무리 봐도 그게 제일 좋겠대요.”
한껏 기대에 부푼 채 세로로 끄덕이는 무영. 그런 그와 달리 나금동이 가로로 고개를 저었다. 마치 함께 춤추는 것 같다.
“힘들 것 같은데?”
“네? 왜요?”
“몽네뜨에서 작가를 찾긴 찾은 모양이야.”
“와. 진짜요? 어떻게?”
“몰라. 뭐 잃어버렸다면서 경찰에 신고하고, CCTV 돌려 보고 그랬다는데. 하여간 엄청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근데 문제는!”
두둥!
“작가가 글 쓸 때 염두에 둔 배우들이 있대. 그 배우들 아니면 영화 안 만들어도 된다고. 배짱이 대단하지?”
이름 없이 대본만 던지고 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고경민이 작은 탄성을 내지르며 무영의 표정을 살폈다.
“내정 배우가 있다는 말이네요?”
“몰라. 몽네뜨에서 그걸 감수하고 진행을 할지, 아니면 컷할지. 나 같으면 컷할 것 같은데 하필이면 진경문 감독이 끼었다는 소문이 있어.”
진경문 감독! 벌써 이십 년 동안이나 영화계의 한 주축으로 지낸 거장. 판이 생각보다 크게 벌어지는 기분이었다.
“진경문 감독이면 투자받기도 쉬울 거고, 몽네뜨에서는 각본 마음에 들겠다, 돈 벌 기회 생겼겠다. 고민 좀 많을 거다.”
그런 상황이니, 오디션을 본다 한들 가망이 있겠냐 이 말이었다. 모든 걸 천천히 음미하듯, 가만히 듣던 무영이 웃었다.
“그래도 한번 알아봐 주세요.”
“할 수 있겠어?”
“네. 해보고 싶어요. 아니. 꼭 해볼래요.”
배우를 보고 인물을 그려냈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본인이 직접 인물이 되면 될 텐데.
무영은 기대감에 부푼 눈으로 바닥에 흩뿌려진 꽃가루를 쳐다봤다. [역병>이란 이름의 꽃가루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