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73)
신인인데 천만배우 273화
살다보니 이런 일도
일을 마치고 들어온 유사하가 시끌벅적한 숙소 거실을 힐끔거렸다.
인기척을 느낀 차은성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은 소파를 두고서 시선이 딱 마주쳤다.
“어라. 아하하. 진짜 왔네.”
“어허라. 그래. 온다고 했잖아요.”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따라왔구나, 싶은 거다.
유사하의 중얼거림에 차은성이 와인 병을 흔들며 웃었다.
“냉장고 야무지게 털었거든요? 잘 먹을게요. 역시 뉴욕 한복판에 있는 스위트룸은 다르다잉. 안주는 룸서비스예요. 대표님. 나중에 영수증 받고 놀라지 마시라고.”
“무영 씨. 오늘 관광은 잘했어요?”
“어어? 사람 말 무시하네.”
둘이 별로 애틋한 사이는 아닌지라, 간단한 인사 후 바로 무영이에게 말을 건넸다.
무영이는 활짝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사하는 무영 옆에 앉아 있는 낯선 여자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그분은 누구?”
“아. 나금동 사장님 조카분이요!”
“조카분이요? 아아, 에리카 씨?”
유사하가 넥타이를 대충 풀려다가 놀라서 멈칫거렸다.
인수할 때만 해도 몇 없었던 원년 멤버 중 한 번도 못 봤던 배우였다.
그런데 일 보고 오니 호텔 방에 있네?
애리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참으로 어색하고 어이없는 첫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제 대표님이시라고.”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 그렇죠. 따지자면, 제가 에리카 씨 대표고, 에리카 씨는 제 배우님이죠.”
“처음 뵙겠습니다.”
“대체 어떻게 만났어요?”
유사하의 물음에 무영이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줬다.
우연이 겹치고 겹쳐 만들어낸 필연이라.
“해서, 여기서 2차 중인데 대표님도 끼세요!”
“제안은 고맙지만 바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잠시 옷만 갈아입으려고 들렀거든요.”
“허걱. 되게 바쁘시네요.”
“어쩌죠? 에리카 씨, 가능하다면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유사하가 아쉽다는 듯 눈짓하자, 에리카가 입가를 닦으며 손을 내저었다.
“저는 이제 남는 게 시간이라서요. 누구들 덕분에 극단에서 제대로 모가지라.”
“그런 데는 안 가는 게 낫다고. 연출 말하는 꼬라지 봐라, 사람이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그래야 발전이 있는 거지. 암암, 그치이? 하무?”
“음……. 들으니까 피켓 알바 시간이 너무 많은 것 같았어요. 그만두더라도 문제없지 않을까요? 어차피 에리카 씨 목표는 배우잖아요.”
비서가 넥타이를 갖고 나오자, 유사하는 어쩔 수 없이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버렸다.
애리는 와인만 머금으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뉴욕의 야경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전혀 몰랐다. 저 아래, 어둠 속에 있었기에.
“그렇긴 하죠.”
“한국 들어오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당연히, 언젠가는 돌아갈 거예요,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하겠다고 마음먹은 걸 제대로 해낸 게 없어요. 학교 휴학까지 해놓고 그냥 돌아가는 건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거든요.”
“하여간 자존심. 저것 때문에 배곯는 애들 내가 여럿 봤지.”
“형.”
무영이 눈을 크게 뜨며 차은성을 다그쳤다. 하지만 그는 히죽 웃으며 바로 말을 덧붙였다.
“근데 안 죽고 살아남으면 나중에는 그게 밥 먹여주더라. 유명해지면 이것도 못 하니까 옴팡지게 즐겨봐. 사는 게 좀 X같은 건 어쩔 수 없다. 다 그래.”
차은성의 위로에 애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국 최고의 스타 배우가 저리 얘기하니, 뭔가 괜히 더 믿음이 갔다.
달깍.
“애리 씨. 비서가 명함 줄 거니까, 괜찮다면 시간 좀 내주세요. 그리고 무영 씨랑 차은성 씨는 내일 저녁에 디너 파티 갈 준비 잘하시고요.”
“나도? 나도 가? 요?”
어느새 옷 갈아입은 유사하가 셔츠 윗단을 잠그며 일정을 전달했다.
차은성이 의외라는 듯 벌떡 일어서자, 유사하가 그의 옷차림을 스윽 훑었다.
“그럼 혼자 호텔 지키고 있을래요?”
“아니, 그건 좀.”
“저번에 내가 준 쓰리피스 연미복 입으면 더 좋을 것 같다만-”
“X! 장난 똥 때리세요?”
“-예상했던 반응이라 정장 따로 준비했어요.”
“그럼 그쪽도 후드 입던가.”
“애티튜드 문제라 그건 안 될 것 같네요. 제발 단추 잘 채워서 예쁘게 입어요. 알겠죠? 무영 씨. 잘 부탁해요.”
유사하가 가벼운 손짓으로 차은성 좀 잘 챙기라는 신호를 보내고 호텔 방을 나가 버렸다.
걱정하지 말라는 무영이의 외침이 닿았는지 모르겠다.
“대표님 진짜 월클이다. 뉴욕에서 제일 바빠 보여요.”
“흥이다. 그 밑에 사람들이 더 바쁘지.”
그가 사라졌음에도, 차은성은 한참이나 유사하의 뒷담화를 씹어댔다.
애리가 조금 놀란 듯 무영이를 쳐다보자, 무영이는 눈만 찡긋거릴 뿐이었다.
“원래 저래요. 둘이.”
“여러 의미로 대단하네요…….”
“애리 씨 한국 돌아오면 매일 보게 될 걸요?”
“그런가요?”
무영이의 말에 애리가 잠깐 한국 생활을 그려내며 웃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으며 중얼거렸다.
창문 밖으로 빛나는 빛 한 점 한 점을 눈에 새긴 채.
“저 꼭 브로드웨이 무대에 설 거예요. 그리고 한국 가서 배우로 성공한 다음, 다음에는 내 힘으로 이런 곳에서 먹고, 자고, 웃으며 떠들래요.”
“그거 너무 좋아요. 진짜 최고!”
무영이 엄지를 척척 올려주자, 애리 역시 엄지를 척척 올리며 웃었다.
안주를 집어 먹던 차은성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오프오프 거기, 그쪽 사람들 만나게 되면 꼭 타임스퀘어 광장 나가보라고 해라. 아주 눈 뒤집힐 거니까.”
“거긴 안 갈 거지만…… 만나게 되면 꼭 얘기해 줄게요.”
아주 완벽한 대답이었다는 듯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짠.”
“짠!”
세 사람의 글라스가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 * *
그리고 다음 날 오후.
널찍하고 조용했던 호텔은 스태프들이 들이닥치면서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주역으로 들어가야 할 사람이 셋인 데다, 비서까지 준비해야 하니, 스타일리스트 열댓 명이 분주하게 방과 방 사이를 뛰어다녔다.
“여기 고데기! 예열 좀 해놔.”
“실장님. 은성 씨가 넥타이 안 매겠다고 하는데요.”
“나비라서 싫대. 어째?”
“뭘 어째요? 그냥 매버려. 여기 뒀던 옷 어디 갔어?”
“아아아! 진짜 싫다고!”
“왜요? 난 귀여운데.”
“너나 귀엽겠지. 그러면 네가 두 개 해라. 유사하, 이거 분명 먹이려고 일부러 이랬다. 유사하 어딨어어!”
“대표님 지금 옷 갈아입고 있어요! 으아앗!”
“아이고, 시끄러워. 둘 다 좀 가만히 좀!”
아주 난리 통도 이런 난리 통이 없다.
중간에서 중재해야 할 비서도 화장을 받느라 안절부절 뒤만 힐끔거릴 뿐이다.
겨우 세 남자의 세팅을 마친 후에는, 스태프들이 죄다 진이 빠져서는 소파에 널브러질 정도.
“자. 슬슬 내려갈까요?”
“아래 차 준비됐답니다.”
“가요! 와! 파티다!”
비공식 파티라 기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초호화 브랜드에 유명인사들이 죄다 몰려들 게 분명했다.
* * *
우스갯소리로 손님보다 경호원 수가 많을 거라 하더니, 진짜였다.
“헉. 대박.”
살면서 저 정도 덩치인 사람을…… 추수안 외에 본 적이 있나?
선글라스를 낀 엄청난 덩치의 경호원들이 일대일로 서로를 마크하며 차 문을 열어주었다.
“너무 오바 아니야?”
“그, 그러게요. 이거, 경호원분들이 더 무서운뎅.”
무영이 속닥거리자, 유사하가 시계를 확인하며 웃었다.
둘도 사생과 스토커, 혹은 정신 나간 것들에게 시달려 봤겠지만, ‘재벌’이 겪는 건 한 차원 위였다.
경영 방침, 사업 확장, 철수 등등 하나하나의 선택마다 누군가의 생업이 오고 가다 보니, 온갖 저질스러운 살해 협박은 익숙할 정도다.
그나마도 한국에서는 좀 나은데, 여기는 총기 소지가 가능한 곳이라 경호가 더욱 삼엄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주최 측에서 붙여준 거라 어쩔 수 없네요.”
“아니요. 불편하다는 건 아니에요.”
“조금만 가면 됩니다. 얼마 안 걸려요. 비서님?”
“이십 분 예상됩니다.”
무영이는 시원하게 깐 앞머리를 괜히 매만지며 창밖을 구경했다.
장소에 다 와 갈수록 뭔가 거리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았다.
“내리죠.”
끼익-
찰칵! 찰칵!
비공식이라 기자들은 없다더니만, 파파라치는 장난 아니게 모여 있었다.
사생들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
유사하가 먼저 내려 무영이와 차은성의 차 문을 열어주었다.
“우와. 안녕하세요.”
그리고 모여 있는 구경꾼들.
하지만 대부분 무영이와 차은성이 누구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갑자기 나타난 아시아인이 비공식 파티장으로 들어서니, 수군거리는 분위기다.
“됐어. 빨리 와.”
“앗. 네넹.”
일본이랑 확실히 좀 다르네.
마치 미개척지를 앞지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환호까지 바란 건 아니지만, 조금 싸늘한 시선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무영 씨. 여기.”
입구에는 포토월이 준비되어 있었다.
빼곡하게 적혀 있는 [맥앤해나> 브랜드 로고.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명품 중에서는 부동의 1순위를 놓치지 않는 패션 브랜드였다.
주최 측에서 고용한 포토그래퍼들이 네 사람의 사진을 찍었다.
정면의 거대한 유리 거울로 무영과 차은성, 유사하의 모습이 비쳤다.
찰칵! 찰칵!
“이렇게 보니까 와꾸 합이 좀 괜찮네.”
“당연하죠. 제가 회사만 아니었으면 차은성 씨는 뭐, 아하하.”
“아니었으면 내 후배였겠네. X나 아쉬워라.”
“갑시다, 무영 씨. 안쪽은 볼만할 거예요. 이번 컬렉션이 [우주>라고 했거든요.”
“Welcome to the McNHannah Party. (맥앤해나 파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직원은 격식 있게 인사하며 안쪽으로 안내했다.
길고 어두운 복도,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별이 터지는 것처럼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우와.”
그리고 이내 펼쳐지는 별세상.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사방은 벽과 바닥을 구분할 수 없는 어둠 속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테이블과 런웨이 등지에는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와 시야가 화사하게 트였다.
“My God, Saha! How are you? (사하! 잘 지냈어?)”
“Mr Kenello. These are my great actors. Moo-Young Ha, Eun-Sung Cha. (케넬로 사장님. 이쪽은 저의 배우들입니다. 하무영, 차은성이지요.) 두 분도 인사하세요. 케넬로 사장님이라고, 퀸로프 아세요?”
“헉. 알죠.”
세계에서 제일 큰 화장품 회사라 불리는 곳.
무영이 오늘 입에 바르고 온 것도 퀸로프 제품이었다.
돌아가며 악수를 한 그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갔다.
비즈니스 얘기로 넘어간 탓이다.
“형. 어떡하죠? 저 너무 긴장돼서 못 살겠어용.”
“걍 웃어. 웨이터! 와인! 오, 땡큐! 저기 고기 있네. 일단 먹고 보자. 런웨이 보다가 배고파 뒤지겠다.”
“가, 같이 가요!”
유사하가 최대한 신경을 써주긴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초대장은 그에게 온 것이고, 무영이와 차은성은 새로운 경험을 할 겸 따라 나온 것이니.
무영이 차은성은 놓치지 않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Mr Ha? (하 씨?)”
“넹?”
누군가 무영이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헐리우드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베릭 베로시가 그를 보며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수십 년간 헐리우드에서 정상의 자리에 서 있는, 전설적인 배우.
“……헐.”
오죽하면 무영이도 그가 몇 번 결혼했고, 누구와 사귀었으며, 자식은 몇인지 알 정도였다.
무영이 놀라서 뻐끔거리자, 베릭이 호쾌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먼저 청했다.
“Nice to meet you. Mr. Ha, right? (만나서 반가워요. 미스터 하, 맞죠?)”
“네네. 아임 하, 하, 하…….”
그러자 순식간에 주위 모두가 무영이를 쳐다봤다. 베릭의 효과였다.
어둠 속 그림자처럼, 누군지 모를 아시아인이구나 싶었는데…… 베릭이 저리 먼저 인사를 건넬 정도라니. 대체 뭐 하는 남자지? 어느 나라의 왕자라도 되나?
“My daughter is a huge fan. She recommended your movie to me. (내 딸이 엄청난 팬입니다. 그녀가 영화를 제게 추천해 주더군요.)”
웅성웅성, 무영의 귓가에는 사람들의 소란이 음악과 다를 바 없이 들렸다.
뒤에서 잔을 들고 다가온 차은성 역시 베릭을 알아보고 입을 떡 벌렸다.
“Ohh! Are you Mr. Cha? (오, 당신은 미스터 차?)”
“이, 이게 무슨 일이래? 베 형이 나를 어떻게 알아?”
“모, 모, 모르겠는데요. 형.”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한류 만세. 케이팝, 케이드라마, 케이무비 만세.
무영이는 한국에 있는 동료들에게 이 영광을 바치고 싶다며, 속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베릭의 손을 맞잡았다.
굉장히 달달달 떨리는 목소리다.
“I‘m your fan. Huge fan. (저는 당신의 팬이에요. 엄청난 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