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75)
신인인데 천만배우 275화
그 대로, 고양이
“어서 와요. 하무영 씨.”
“안녕하세요, 작가님. 처음 뵙겠습니다. 하무영입니다.”
사무실 안에 들어가니, 온갖 에이포 용지에 파묻힌 김순영 작가가 고개를 들었다.
며칠 밤/샌(새운)/ 것처럼 초췌한 모습이다.
그 옆의 보조 작가들 역시 죄다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아……. 커피 드릴까요?”
막내 작가가 주춤주춤 일어섰다.
임민성이 왔을 때도 커피를 타 왔는데, 컵을 씻자마자 또 손님이 오다니.
그러자 무영이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사 왔는데, 괜찮으시면 같이 드시죠.”
“이거 요즘 유행하는 보틀 카페 아니야?”
“방송국 뒤에 있는 거 맞죠? SNS에서 봤어요.”
“마침 오는 길이었는데, 보니까 줄이 없더라고요. 바로 들어가서 주문했죠. 이건 디카페인이고요, 이건 카페인 있는 거예요.”
무영이 음료수병을 나눠주자 작가들이 화색을 띠며 받아갔다.
김순영 역시 고맙다며 자리를 내주었다.
“여기 앉아요.”
“넵. 감사합니다.”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니 너무 고맙네. 이번 드라마는 백 퍼센트 사전 제작으로 할 거라 다들 대본 마감에 정신이 없어요.”
“저는 요즘 놀아서 시간 많아요. 헤헤. 괜찮습니다.”
무영이 넉살 좋게 얘기하자, 작가는 잠시 멈칫거리며 웃었다.
아무래도 [그 대로, 고양이>에 출연하고 싶어서 온 모양인데…….
“작품은 좀 어땠어요?”
“와. 말할 것도 없더라고요. 이번에도 대박 날 것 같아요. 진짜 재밌게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저기…….”
“임민성 선배님이 주연 예정이라 하시던데요.”
“으응. 맞아요. 내가 아무래도 호흡 맞았던 사람들이랑 하는 걸 선호하거든. 말 안 해도 딱딱 아니까.”
무영이는 이해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수록 김순영 작가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퍼졌다.
요즘 참 잘나가는 배우 아닌가. 젊었을 때 성공을 거머쥔 애 중 드물게 공손한 타입인 것 같다.
“나는 무영 씨가 작품 같이하고 싶다고 이리 찾아와 준 게 너무너무 진짜, 정말 고맙거든. 기특하고.”
“과찬이세요.”
“혹시, 다른 배역은 어떨까? 응?”
“말씀은 감사한데, 서브 배역은 저랑 이미지가 너무 안 맞던데요.”
메인 커플은 대학생(여)와 고양이였고, 서브 커플은 외래 교수(남)와 고양이였다.
아무래도 젊은 교수라고 한들, 나이대나 이미지가 무영이와는 영 맞지 않는 것이다.
“한다고 하면 수정을 조금 할 수는 있어요. 시간 강사로 낮춘다거나, 뭐.”
“우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저 때문에 작가님 대본이 바뀌는 건 원치 않아요. 지금 이 상태가 가장 완성도 있다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남은 배역은 여주의 친구들같이 비중 없는 역할인데, 무영이가 할 만한 급은 아니었다.
무영이는 간절하게 부탁했다.
“괜찮으시면, 오디션이라도 보게 해주세요. 작가님.”
“아. 음…… 그래요.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무영 씨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막내야. 가서 피디님 모셔와.”
“네. 알겠습니당.”
달깍.
잠깐 연기를 보는 것 정도는 큰일이 아니었다.
그걸로 마음 바꿀 여지가 거의 없어서 그렇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영 씨. 그런데 실물로 보니까 이미지가 훨씬 깨끗하고 좋네. 아니면 차라리 다음 작품 구상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걸 보여줄까요?”
“저야 작가님 작품이면 다 영광이죠.”
“왜 나랑 친한 김영옥 작가, 걔도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 주인공이 비슷한 느낌이더라고. 원한다면 소개해 줄게요.”
“넵.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여자 주인공은 정해졌나요?”
“솔예인 씨요.”
“아.”
솔예인은 무명 아이돌이었는데, 그때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연기자로 전향한 후 흐름을 타고 있는 라이징 스타였다.
사실 무영 시절이라 해봤자 10대였고, 지금은 이십 대 중후반 정도 됐을 것이다.
“무영 씨랑 동갑이던가?”
“아니요. 솔예인 씨가 두 살 더 많아요.”
그래도 대학생 느낌 내는 데는 문제가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녀가 대중에게 주는 이미지가 아주 딱 맞았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미래를 감히 꿈꿀 수 없는 우울한 청춘의 모습.
아마 아이돌로 실패했던 과거사가 주는 효과일 것이다.
실제로는 어떨지 몰라도 살짝 우울, 서늘한 외관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작가님. 피디님 오셨어요.”
“어이고. 무영 씨.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피디님. 처음 뵙겠습니다.”
“안쪽 회의실로 자리를 옮길까요?”
“넵.”
무영이는 피디에게 꾸벅 인사하고서 커피 보틀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피디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고 무영이를 쓰고는 싶다만 자리가 없어서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음. 동물 연기는 좀 해봤어요?”
“아니요. 하지만 시켜만 주시면 잘할 자신 있습니다.”
고양이에서 인간으로 변했을 때, 그걸 알아채지 못한 남자 주인공이 동물처럼 행동하는 장면이 있었다.
무영이가 눈을 반짝이며 패기 있게 외치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귀신 고양이가 울어댔다.
애오오옭-
“아무래도 연기는 캐릭터에게 이입을 하고, 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서 시청자에게 전달해야 하거든요. 무영 씨 연기 잘하는 거 너무 잘 알지. 그런데 그걸 떠나서 난이도가 좀 있는 역할인 건 확실해요.”
“사람이 사람을 연기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하죠. 그런데 뭐, 고양이…… 그것도 들고양이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는 다 인간들이 감정을 주입해서 상상하는 거잖아요. 나는 이 괴리를 최대한으로 줄였으면 좋겠어요.”
“고양이는 실체화에 CG 덧붙일 건데, 목소리는 더빙이라 목소리 연기가, 특히 초반에는 중요해요. 이거 어설프면 이도 저도 아니니까.”
작가와 피디가 각각 원하는 연기의 가이드라인을 잡아주었다.
단순히 몸놀림이나 울음소리 따위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길고양이 그 자체을 ‘이해’하는 게 관건이라는 뜻이다.
애오오옹-
고양이가 앞발로 작가의 이마를 툭툭 쳐댔다.
그러는 인간, 너는 무엇을 알고 있냐는 듯.
무영이는 대본을 펼치며 물었다.
“어느 부분부터 해볼까요?”
아직, 그날의 꿈이 생생했다.
귀신 고양이가 겪었던, 새끼 시절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느낀 모든 감정과 기억 말이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좌절 혹은 어떤 충만함 따위가 눈만 감으면 생생하게 펼쳐졌다.
“내레이션 중요하니까, 첫 장부터 해보죠. 작가님, 안 바쁘죠?”
“나는 뭐…… 무영 씨가 이렇게 왔는데.”
성의를 봐서라도 최대한,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다 봐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서로에게 미련이 안 남을 것 같아서.
피디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본을 집었다.
“저도 마침 땡땡이 좀 치고 싶더라고요. 고마워요. 무영 씨.”
“하하. 다행이에요.”
“그럼 해봅시다. 한번 보고, 우리 좋은 방안을 찾아봐요. 그 유 대표님 통해서 가끔 안부 오는데, 내가 너무 미안해 죽겠어.”
유사하 대표가 배역 캐스팅에 관해서 뭔가 행동을 취하려 했던 모양이다.
자세히 말 안 하는 거로 봐서 불발된 것 같다.
무영이는 목을 가다듬으며 대본으로 시선을 내렸다.
‘여자 주인공, 수나 역은 솔예인 씨라…….’
그리고 대본 속 여자에게 그녀를 대입하며 상상하기 시작했다.
흐릿하게 재생되는 작품 속 세계.
그와 동시에 고양이 귀신이 맑은 눈동자로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나는 고양이다.
나는 위대한 고양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 역시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인간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그 어떤 인간도 고양이를 소유할 수 없다. 불완전한 인간들을 위로하기 위해, 신께서 내려주신 것이 고양이다. 고양이! 위대한 고양이! 슬픔은 잠깐이고, 영광은 영원하다.
애오옹-!
이것이 바로 고양이라고, 녀석은 소리높여 외치는 것 같았다.
* * *
세상에는 수많은 별이 있었다. 대부분 보이지 않을 뿐.
낮에는 햇빛에 가려진 채, 밤에는 달빛에 가려진 채.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사라지는 별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수나는 깨달았다.
그래. 나도 별이구나. 누군가에게 닿지도 못하고 언젠가 사라질 별.
“학생.”
낯선 저음의 목소리가 수나를 부른다.
수나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낭패였다. 시곗바늘이 새벽을 가로지르는 시간. 그리고 여기는 번잡한 번화가의 뒷길.
“학생. 여기서 뭐 해?”
얼굴이 불콰하게 물든 남자의 옷차림은 흐트러져 있었다. 그 잘난 정신머리와 함께.
정장으로 봐서는 인근의 회사원인 듯싶은데…….
“응?”
수나는 대꾸 없이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이렇게 대놓고 주접을 부려대는 사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야이! 지금 어른 말 무시하냐?”
“……지랄하네. 미친 새끼.”
“아이고. 부장님! 한잔 더 하시죠!”
“아니야. 아니야.”
“오늘 기획안 진짜 괜찮았지?”
“그럼요. 이게 다 차장님 덕분입니다!”
수나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재빨리 골목을 빠져나왔다.
월세 오만 원을 아끼고자 수나가 선택한 동네의 풍경이었다.
매일같이, 특히 금요일만 되면 그 화려함과 더러움이 하늘을 찔렀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대체 언제 집 빼주는지……. 다시 학교 쪽으로 가고 싶은데.’
힘차게 언덕을 오를 때마다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가파르니 체력도 좋아지겠지.
바로 앞이 번화가니까 식당도 가깝고, 사람들도 많아서 안전하겠다…… 따위의 생각은 이사 후, 딱 일주일 가더라.
끼익.
집에 도착한 수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조용한 적막 속에서 핑핑 도는 머리를 누일 순간.
‘피곤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강의가 꽉꽉 차 있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 대타까지 나갔으니. 평소보다 무리한 것은 확실했다.
‘별, 오늘은 잘 보이네.’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린다.
낡고 더러운 주택이지만, 침대에 누웠을 때 보이는 하늘만큼은 썩 보기 좋았다.
콕콕콕, 찍혀 있는 점 세 개를 손끝으로 이어본다.
저 뒤에 숨겨진 수많은 별이 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보리라.
버티며 살아가는 수나가 품은 유일한 목표였다.
에옹.
창문 밖으로 울리는 고양이 소리.
동네를 떠돌며 수많은 집사를 거느리는 고순이였다.
누군가는 야옹이, 누군가는 괭이, 누군가는 그냥 걔로 부르는.
“또 왔네. 고순이.”
간식 한번 준 적이 없는데, 고양이는 자주 그녀의 집 창가를 찾았다.
그리고 노란 호박색 눈으로 밤새워 지켜봤다.
처음에는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었는데, 이제는 룸메이트 같고…… 무엇보다 조금 외롭지 않았다.
‘씻기 귀찮은데, 그냥 자야겠다.’
수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걸 지켜보는 고양이가 눈을 깜빡였다.
-쯧. 더러운 인간. 안 씻고 자는군.
고양이는 소리쳐서 깨울까 하다가 말았다.
어쩐지 오늘따라 그녀가 굉장히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순이? 나는 엄연히 수컷이다.
애오오옹!
고양이는 조용히 울며 꿍얼거렸다.
여자는 밤에만 저가 오는 줄 알겠지만, 아니다.
고양이는 하루 종일 그녀의 집 주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보증금이란 걸 받으면 여길 떠난다 했지?
흥.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이 고양이님이 열심히 쥐도 잡아주고, 밤새워 경계해 주는데!
인간은 역시 욕심쟁이인 것 같다. 고양이는 앞발로 방충망을 살짝 긁었다.
저 품에서 몸을 말고 자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사락-
저 번들번들한 얼굴 역시 내가 좀 씻겨주고 싶은데…….
같이 밥도 먹고, 재밌게 놀고, 옆에 있고 싶은데…….
고양이는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봤다.
순식간에 반짝이던 별들이 숨고, 거대한 보름달이 빛을 발했다.
-나, 저 인간 옆에 있고 싶다!
달빛이 더욱, 더욱 환해졌다.
-내 목숨 하나를 줄 테니, 인간의 목숨을 다오.
감히, 아홉 개의 목숨 중 하나를 저 인간에게 쓰기로 했다.
뭔지 모를 이 감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인간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만, 고양이가 그걸 어찌 알겠는가?
사아아악-
온 세상이 빛으로 물들고, 이내 고양이는 눈을 감았다. 고양이, 나는 고양이! 그 자체만으로 굉장한 고양이! 인간, 내가 널 돌봐주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