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76)
신인인데 천만배우 276화
야옹
무영이가 내레이션 처리된 고양이 대사를 읽는 동안, 피디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시각적인 것을 제외하고, 오롯이 그의 목소리와 감정만을 느끼기 위한 것이었다.
“밥도 같이 먹고, 재밌게 놀고, 옆에 있고 싶은데…….”
쫀쫀하다고 해야 할까? 피디는 짝짝 달라붙는 그의 대사 처리 능력에 감탄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리만으로 그 캐릭터의 상황과 성격 등을 표현하는 게 탁월했다.
앙칼지면서도 도도하고, 그러는 와중에도 좀 어벙한 면이 느껴지는 호흡이나 발음.
짧게 치고 빠진 간격의 흐름이 참 듣기 좋았다.
‘중독성 있네.’
일단 배우들은 목소리 좋은 걸 기본으로 깔고 가지만, 그걸 계속 듣게 하는 매력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음미하며 듣던 피디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대본을 보며 표정 연기하던 무영이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나, 저 인간 옆에 있고 싶다!”
한쪽 눈썹이 유려하게 올라가며 굉장히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천장에 달려 있는 조명이 달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눈동자는 빛을 받아 반짝였다.
누런 형광등이 그의 눈을 실로 호박빛 고양이 눈동자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내 목숨을 하나 줄 테니, 인간의 목숨을 다오.”
다른 사람이 봤다면 맡겨놓은 목숨 있냐고 되물을 정도로 당당하고 뻔뻔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고양이의 매력.
그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작가가 입술을 슬며시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회의실 밖,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매니저와 다른 직원들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속으로 환호를 질러댔다.
“와, 진짜. 와, 생긴 게…….”
“저런 고양이면 제가 모셔야죠. 암. 그렇습니다.”
“매니저님. 무영 씨 혹시 동물 키우나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SNS에 삼순이가 자주 올라가긴 했지만, 직원은 딱히 인터넷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무영이를 가리켰다.
“자세가…….”
“자세요?”
그저 대사만 치고 있는데, 어찌하여 고양이가 연상되는가 싶었던 차.
그는 무영이의 자세에 집중했다.
매니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찬찬히 무영이를 뜯어봤다.
“아.”
분명 정좌로 바르게 앉아 있었는데, 대사를 칠 때마다 어깨를 앞쪽으로 빼며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또한 손 역시 가만 놔두는 게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대사와 맞춰 쭉쭉 펴대며 고양이 특유의 발가락 펼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무영 씨, 대학은 일반대학 가지 않았나요?”
“서연대래요. 서연대.”
“보통 예대 연극 수업 들을 때 저런 거 많이 한다고 들었거든요. 동물 모습 흉내 내는 거. 잘하네. 딱히 의식하지 않으면 한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예요.”
티가 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와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포인트였다.
눈 깜빡임 하나하나 역시 느릿하고, 깊고, 진하게.
마치 바로 앞에서 고양이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애오오오옹-!
무영이는 입을 쩌억 벌리며 울어젖히는 고양이 귀신을 따라, 활짝 웃었다.
고양이가 입을 쩌억 벌릴 때 반쯤 접히는 눈꼬리며, 꺾이는 고개 각도를 무의식적으로 스캔했다.
“작가님? 피디님?”
마지막 장이 끝나자, 무영이는 자세를 바로 하고 작가와 피디를 불렀다.
고양이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피디의 뺨을 톡톡 쳐댔다.
“아. 네네. 이야, 무영 씨 연기 진짜 잘하는구나. 앉아서 말만 하는데 딱 고양이 느낌이 나네.”
“다음 장도 볼까요?”
“넵. 근데…….”
이제 인간의 몸을 얻은 고양이가 주인공인 수나의 집 앞에서 잠들어 있는 장면이었다.
현관문에 턱 하니 걸리는 그의 발.
수나가 놀라서 흠칫하는 것도 순간, 손을 뻗어오자 기분 좋게 골골거리며 비비는 장면이다.
“매니저 형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될까요?”
“몰입되겠어요? 나 같으면 혼자 하겠는데.”
피디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무영이 매니저를 불렀다.
그러자 문에 붙어 있던 직원들이 더욱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형. 여기 좀 쳐주세요.”
“내가?”
다시 한번 되묻고 싶다.
몰입이 되겠니?
무영은 눈을 감고 서두르라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고경민은 어쩔 수 없이 대본을 들었다.
그나마 이 중에서는 연기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대사 처리 자체는 문제가 없다. 비주얼이 문제지.
“이건 뭐…….”
고경민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여자 주인공의 대사를 쳤다.
현관 앞에 쓰러져 있는 남주를 보고 당황한 듯 침묵.
그리고 이내 옆집 사람인가 싶어서 그쪽도 힐끔.
그런데 가만히 뜯어보니까, 놀랍도록 잘생겼단 말이지…….
“저기요?”
여주가 조심스럽게 그의 볼을 콕 찔렀다.
그러자 눈을 감고 있던 무영이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틀어 볼로 손가락을 훑고, 손등을 타고 올라와 팔까지 쭈우욱- 기분 좋게 비볐다.
놀란 상대가 살짝 뒤로 물러서자, 고양이는 바로 잡아당겨 목덜미까지 올라와 귓가에 속삭였다.
“야옹.”
“……!!”
“……!!”
울음소리가 간드러지다 못해 요염했다.
고경민은 당황해서 얼굴이 시뻘게졌고, 앞에서 지켜보던 피디와 작가 역시 입을 틀어막았다.
무영이 코를 킁킁거리며 눈을 반짝 떴다.
드디어, 드디어 만났다는 듯 반가운 표정이었다.
“이런 식으로 연기를 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몸짓 연기는 아무래도…… 작가님? 피디님?”
무영이 고경민의 손을 놓고 다시 돌아왔으나, 둘은 너무 놀라서 딱 굳어버리고 말았다.
임팩트, 그래. 뒤통수를 그대로 후려친 것 같은 ‘야옹’이었다.
남자의 고양이 울음소리가 저토록 섹시하게 느껴지다니.
“어우. 그게, 어우…….”
두 사람은 서로 헛헛거리며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이거 테스트용 카메라 설치하고 할 걸 그랬네요. 방금 거 진짜, 남겨둬야 하는데.”
“아. 맞다. 아쉽다. 두 번 보면 그 느낌 안 살죠?”
“안 본 눈 삽니다, 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네.”
확실했다. 수많은 히트작을 내왔던 두 사람이 오감과 그 이상을 넘어서는 육감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첫 방부터 아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했다.
여심 저격이란 말로도 모자라, 그냥 여심 와장창 날려 버리는 수준이다.
“이거…….”
작가가 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피디를 힐끔거렸다.
하무영, 욕심나는데 임민성이 떡하니 걸려 버리지 않나.
마음 같아서는 둘 다 정식으로 경쟁을 붙여 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그려낸 주인공 고양이를, 두 사람이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니까.
“너무 잘 봤어요. 무영 씨.”
“감사합니다. 곤란하셨을 텐데 시간 내서 기회까지 주시니 감사해요. 피디님도요.”
“아니, 이런 걸 공짜로 보니, 나는 계 탔지.”
무영이 웃으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자, 피디가 살짝 낮은 목소리로 전했다.
“연기 너무, 진짜 너무 잘 봤고 다시 한번 내부 회의를 검토해 볼 테니까. 예, 응. 고마워요.”
“네. 감사합니다.”
무영이는 속이 후련했다. 그나마 오디션도 못 보고 넘어갈 뻔했던걸, 이렇게 칭찬과 함께 작은 희망을 틔웠지 않은가.
무영이는 꾸벅 인사하며 일어섰고, 이내 회의실을 나서며 직원들에게도 허리 숙여 인사했다.
“집필 중에 죄송했습니다.”
“아니요. 아니, 무슨. 커피도 먹고 고마워요.”
“그럼 가볼게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조심히 가요. 아아아! 저기, 무영 씨!”
직원 몇이 달려 나와 그에게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우리 조카가 진짜 팬이라서. 하하.”
“성함이요?”
무영이는 흔쾌히 웃으며 싸인을 해주었고, 이내 그 틈에 고양이 귀신이 그의 어깨에 올라탔다.
애오오옹-
“응?”
그리고 우렁차게 우는 순간. 작가가 귀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무영 씨 연기 때문에 그런가?’
훌륭한 고양이 연기의 여파인 것 같다며, 작가는 희미하게 웃으며 싸인하는 무영이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상하게, 어째서, 자꾸 하무영이 고양이처럼 보였다.
“그럼, 진짜 갈게요! 감사합니다!”
끼익.
무영이는 방송국을 나오며, 유사하 대표에게 문자를 날렸다.
오디션 상황 보고와 함께 임민성을 만난 얘기를 전했다.
[대표님: 누구요? 임민성?] [하무영: 넵. 재계약 때문에 대표님 소개 좀 해달라고 하더라구용. 번호 드릴까요?] [대표님: 네. 보내주세요^^]무영이는 대표에게 임민성의 연락처를 알려주었고, 제 할 일 다 했다는 듯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 * *
“임민성?”
“왜 그러십니까? 대표님.”
“임민성 배우, 곧 있으면 FA에 나오나요?”
“아. 그렇습니다.”
대표의 물음에 비서가 즉각 대답했다.
거물은 거물인데, 어찌하여 유사하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나 하니…….
“영입하시려고요?”
“그쪽에서 먼저 컨택이 오네요.”
유사하의 말에 비서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말씀 없으셔서 생각 없으신 줄 알았어요.”
“아니요. 생각 없었던 거 맞아요. 위험부담이 너무 크잖아요.”
뒤로 소문이 아주 난잡한 남자였다.
더럽고 어이없는 염문설은 물론이고 어디서 도박을 했다더라, 어디 술집에서 갑질 문제를 일으켰다더라……. 나아가 본인 회사 뒷담화까지 하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다.
사실 확인은 안 했지만, 관심이 없으니 딱히 할 이유도 없다. 인기도 솔직히 실력보다 운이 좋았던 편이고.
“약속 시간을 비워둘까요?”
“네. 그래도 비즈니스인데, 손님을 문전 박대 할 수는 없죠.”
유사하의 말에 비서가 태블릿 화면을 툭툭 두드렸다.
“그런데 임민성, [그 대로, 고양이>에 출연한다 하지 않았나요? FA면 계약이 어떻게 되는 거죠?”
“아마 회사랑은 재계약 연장으로 진행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무영 씨 캐스팅 건으로 그쪽 피디랑 연락해 봤는데, 문제없다는 듯 말하더군요.”
“그래요? 그러면 임민성 회사에서는 뒤에서 이러고 다니는 걸 모르는 거네?”
“짐작은 하지 않을까 싶지만,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네네. 그건 좀 빨리 해주세요. 무영 씨가 그 드라마 들어가고 싶어 하는 눈치라. 에이전시는 어디죠?”
“HDW엔터입니다.”
“그쪽 사장이…… 아아. 알겠다.”
유사하는 기억을 더듬어 회사의 정보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태블릿을 가져왔다.
하무영 탭으로 들어가 잡힌 그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보자, 곧 있으면 [후회와 상실> 한국 정식 개봉 들어갈 거고, [좀비 고등학교>도 마무리 작업 들어가서 넵플렉스 공개되겠네요. 이거 오프 행사 있지 않나요?”
“네. 있습니다.”
“어우. 무영 씨 바쁘겠네. [그 대로, 고양이>까지 하려면.”
유사하의 중얼거림에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그 자리는 임민성이 잡고 있어서 불발되지 않았나?
회사 차원에서 피디에게 접촉을 해봤으나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유사하는 마치 자리를 따놓은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으니…….
“비서님? 스케줄 확인 부탁합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대표님.”
비서는 정신을 퍼뜩 차리고, 대표와 임민성이 만날 날짜를 조율했다.
창밖을 바라보는 유사하의 흥얼거림이 기분 좋게 울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