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77)
신인인데 천만배우 277화
분수를 알라
유사하는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시계를 확인했다.
빽빽하게 차 있는 일주일 일정 사이 겨우겨우 두 시간을 비워두었건만, 약속 상대는 벌써 오 분이나 늦고 말았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임민성의 필모를 머릿속으로 그려냈다.
‘확실히 잡고 있으면 돈이 되긴 하는데…….’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삼사 통틀어 신인상, 조연상, 주연상을 모두 받은 배우였다.
회사 입장에서는 계약금을 조금 쥐여주고 ‘일단’ 데리고 있는 것이 영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다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 그런 거지.
드르륵-
“아.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임민성 씨.”
“대표님 맞으시죠? 와, 진짜 사람들이 난리 치는 이유가 있네요. 정말 잘생기셨습니다. 하하.”
이어서 룸에 들어선 임민성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초행길이라 하하.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앉으시죠. 아직 식사 안 하셨죠?”
미팅에서 시간에 늦는 것만큼 자기 가치를 갉아먹는 일이 있을까?
유사하는 겉으로는 계속 미소를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다시 한번 임민성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보아하니, 촬영 시간도 안 지킬 확률이 높다. 스태프들에게 별로 좋은 소리 듣고 지내진 못하겠지.
그렇다면 잠깐 삐끗했을 때, 뜬소문을 가장한 폭로가 나타날 것도 역시 예상해야 했다.
“무영이가 진짜 소개해 줄 줄은 몰랐어요.”
“아, 무영 씨랑 친분이 좀 있으신가 보네요.”
“그렇죠. 뭐. 연예계 선후배니까.”
“아하. 그러면 차은성 씨랑도 친하세요?”
“……그쪽은 영 성격이 안 맞아서.”
차은성은 그를 등신으로, 그는 차은성을 개또라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유사하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며 ‘표면적인’ 계약 협상으로 넘어갔다.
“그럼 그 작품이 진짜 인생 작품이셨던 거네요.”
“그렇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요. 언제 또 그런 걸 만날까 싶어요. 하하. 대단했잖아요. 시청률 바로 30% 찍어버리고.”
연기 철학이라든지, 신념, 혹은 엔터테인먼트에 바라는 것 등등. 계약을 위해 일반적으로 나누는 대화.
보통은 이 대화를 통해 회사는 배우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어필하고, 배우는 자신의 가치를 어필했다.
“계약 종료가 언제라고 하셨죠?”
“얼마 안 남았어요. 5월 중순쯤?”
“많이 촉박하네요. 사실 몇 번 더 만나면서 조심스럽게 나눠야 하는 부분인데, 시간적 제약이 있으니 시원하게 가보죠. 원하는 계약금이 있을까요?”
올 것이 왔구나.
임민성이 목을 가다듬으며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그, 차은성이 말입니다. 계약금으로 20억 이상 받았다고 하던데요.”
정확히는 25억이다. 하지만 그걸 임민성이 알고 있다면, 가까운 누군가 정보를 흘렸다는 뜻이 되었다.
다행히 뜬구름처럼 오가는 소문을 들은 수준인 것 같다.
“저도 그 정도만 맞춰주시면 계약할 의향이 있습니다.”
“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유사하가 눈을 크게 떴다.
25억은 업계 최고 금액이었고, 그건 차은성이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이었다.
시청률 앞자리 숫자를 4로 끊은 메가 히트작 주인공이자, 커리어 하이를 연달아 냅다 찍어버린 배우였으니까.
물론, 그를 데리고 오면서 회사 자체를 인수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그리 큰 손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쟤는 뭔데?
“20억을 원하시는 건가요?”
“가능하다면 차은성과 같게 맞춰주세요. 솔직히 데뷔도 고만고만하게 했고, 필모로 따지면 제가 더 볼륨이 크거든요. 아시다시피, 제 타율도 어디 가서 꿇리지는 않으니까.”
유사하는 잠시 고민하는 듯 침묵했다.
그가 생각한 마지노선은 15억 안쪽이었다. 그것도 최대로 쳐서고, 어지간하면 10억 선에서 끊고 싶은 마음이다.
“회사 내부에서 검토를 해보겠습니다.”
“아. 검토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임민성을 데려가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살짝 감정이 상한 듯 눈썹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긍정적으로요.”
유사하는 그 낌새를 알아채고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사라락 녹아내리는 임민성의 표정.
큼큼대며 젠체하는 몸짓은 더욱 가관이다.
‘하는 짓도 어리군.’
차은성이랑 비슷하지만, 확실히 결이 다르다.
왜 그가 임민성을 등신이라 부르는지 좀 알 것 같다. 배우로서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사람 자체의 매력이 영 꽝이다.
“아 참. 그리고 저도 집을 좀 얻었으면 하는데요.”
“어디로 말씀이세요? 참고로 차은성 씨는 자가예요.”
“아니, 하무영이가 회사 전세로 들어갔다 하던데.”
“아아…… 알겠습니다. 그것도 확인해 두지요.”
“역시! 소문은 다 근거가 있거든. 대표님 화끈하고 사업 수완 좋으신 분이라더니만 그게 맞네요. 진짜! 하하하. 고맙습니다. 대표님 같은 분이 케어해 주면 아, 든든하죠. 지금 우리 사장은 영 쪼잔해요. 사업하는 안 되는 양반이 그러고 앉아 있으니 쯧쯧. 나 말고는 뭐 돌아가는 배우가 없지.”
임민성은 거의 계약이 완료라도 된 것처럼 악수를 청했다.
유사하는 단 한 마디도 계약을 진행하겠노라 말하지 않았거늘.
혼자 단꿈에 빠져 계약금이 아른거리는 모양이다.
유사하는 손을 가볍게 맞잡은 다음, 음식을 권했다.
“어서 드시죠.”
“네네. 대표님도 드시죠!”
그리고 화기애애하게 자리를 파하고 식당을 나왔다.
임민성이 스포츠카를 끌며 창문으로 꾸벅 인사했고, 유사하는 피곤하다는 듯 넥타이를 가볍게 풀며 차에 올라탔다.
“소화가 안 되십니까?”
“네. 좀 그렇네요. 상대가 영, 어째 임원 영감님들보다 더 영양가가 없어요.”
“진행은 어떻게 알고 있으면 될까요?”
“차은성 씨랑 대충 맞춰달라고 하는데, 그건 좀 무리고. 휴대폰 좀 주시겠어요?”
유사하는 주소록을 주르륵 내리다가 HDW엔터 사장 연락처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진심으로 피곤했는지, 항상 번듯하게 앉아 있던 유사하가 몸을 뒤로 기댔다.
“아,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 SJ의 유사합니다.”
-뭐라캅니까? 그놈.
슬쩍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강한 억양의 사투리.
비서가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사장의 사이에서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임민성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계약하고 싶다 하시더군요.”
-하~ 마, 검은 머리 새끼, 진짜. 아, 죄송합니다. 대표님. 이게 제가 화가 너무 나지 않겠습니까?
“네. 알죠. 7년이었나요?”
-7년 동안 임민성이 그놈 앞에서나 뒤에서나 똥 다 닦아주고 수발들어 줬더니만, 이래 뒤통수를 치네요. 저한테는요, 어제도! 어제도 계약 연장할 거라꼬 하면서 법카 타갔거든요.
생활비로 쓰는 것은 약과였다.
그걸로 쇼핑하고, 맛있는 거 사 먹고, 여자 친구 선물도 샀다가, 심지어는 도박까지 한 것 같았다.
물론 그건 선을 넘은 터라, 자비로 메꿨다 하지만…….
-그래 놓고, 홀랑 다른 곳으로 토낄라고!
“그쪽 계약금이 얼맙니까?”
-저희는 저기, 초반에 할 때가 4억이었고 7년 동안 많이 올랐습니다. 재계약으로 10억 정도 생각해서 준다 했고, 금마도 오케이 했죠.
“그 정도면 괜찮은 수준인 것 같은데…….”
-왜요? 이것도 불만이라캅니까?
“제가 남 험담을 옮기는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그 말을 듣자마자 비서가 혀를 내둘렀다.
직접적인 대화 내용만 안 옮겼을 뿐이지, 임민성이 사장 욕을 했다고 전달한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역시 대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조곤조곤 갉아먹는 기술이 고품격이다.
-하아, 돌아버리겠네. 내가 그놈 계약한다 해서 이번에 사업도…… 아이, 됐습니다. 마, 다 때려치우고 하려는 대로 하이소.
“음. 저번에 서로 확인한 부분, 그대로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뭐 어차피 나가면 죽는 거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야지요. 결혼도 안 한 놈이 법카로 생활비는 왜 몇천씩 긁어대는지. 내가 애가 셋인데, 나도 그렇게는 안 쓰거든!
상대 쪽 사장은 흥분해서 그간 쌓아두었던 울분을 터뜨렸다.
별로…… 그것까진 궁금하지 않은데 말이다.
유사하는 휴대폰에서 살짝 거리를 두었고, 이내 비서를 향해 눈짓했다.
“대표님. 회의 들어가셔야 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이만 끊어야겠습니다.”
-예예. 알겠습니다. 또 연락드리지예!
뚝.
비서가 눈치껏 옆에서 말해주자, 통화 끊는 것이 수월했다.
그녀는 태블릿을 탁탁 두드리더니 유사하에게 일정을 확인받았다.
“임민성 계약 종료가 한 달도 안 남았으니, 시간 좀 끌었다가 기사 내겠습니다.”
“저기, 엔터 쪽에도 소문 흘려요. SJ랑 임민성이 협상 중이라고.”
“네. 알겠습니다.”
SJ와 협상을 했다 하면, 어지간해서는 계약으로 이어진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었다.
아마 다른 엔터는 쉽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한다 하더라도, SJ와는 자금력으로 비빌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FA 떨어지면 바로 협상 결렬 기사 내겠습니다.”
“네에. 좋습니다.”
SJ 갈 줄 알았는데, 계약 만료 후 협상이 결렬되면 소속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때는 뭐, HDW 사장이 알아서 하겠지. 보아하니 성격이 좀 거친 것 같은데, 예상하기로는 관련 추문 몇 개 터뜨리고 빠른 수습과 더불어 적당한 계약금 후려치기로 임민성을 묶어둘 것 같다.
‘우리는 계약 거절해 주는 조건으로 [그 대로, 고양이> 자리 얻는 거니 나쁘지 않지.’
그때 되면 임민성은 작품에 참여할 여건이 안 될 것이다.
매니저도 없고, 코디, 메이크업 등등 스태프 하나도 없을 텐데 어찌 이어나갈 수 있겠는가. 게다가 여러 스캔들로 정신이 없을 터인데.
“근데, 은성 씨요. 가만 보면 자잘한 능력치가 꽤 좋단 말이죠.”
“음…… 작품 보는 눈도 좋으시고요.”
“그래요. 눈. 그게 좋아.”
유사하는 의외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끔가다 보면 저 배우는 연기 안 했으면 뭐 먹고 살았으려나 싶은 부류가 있고, 저 배우는 뭘 해도 성공했겠다 싶은 부류가 있었다.
‘차은성은 후자 쪽이지.’
임민성은 전자고.
그렇다면 하무영은?
하무영은…… 글쎄. 감히 상상조차 잘 되지 않는다. 연기가 아니었다면 그의 인생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
지이잉- 지이잉-
“대표님. 하무영 씨 전화입니다.”
“오. 그래요. 여보세요?”
-대표님! 오늘 임민성 선배 만났다면서요? 어떠셨어요?
그가 소개해 준 것이니까,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하도 차은성이 그놈은 등신이고 머저리에 뭐 머리에 든 게 없다고 해대니, 걱정스러운 것이다.
유사하에게 괜히 소개해 줬다 하고.
“네. 아주 좋은 자리였어요. 고마워요. 무영 씨.”
-와. 다행이다……. 아오, 형. 잠깐만 저리 가봐요!
-대표! 나 그 등신 새끼랑 한솥밥 처먹으면 걍 나갈 거야!
-나가긴 어딜 나가요!
-나갈 거라고! X발 대가리 빡빡 밀고 절로 들어갈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물어보면 대표 때문에 속세에서 졸라게 실망했다고, 미튜브랑 SNS 라이브로 싹 다 까발릴 거야! 12개국 언어로 준비해서 나 보러 오는 사람마다 유사하 대표는 X발 잘 때도 정장 입는 변태 새끼라고…… 읍! 읍읍!
-죄송해요! 대표님! 형이 술 먹었어요!
-앙앙!
아무리 차은성이 개차반이라 해도 점심부터 만취하지는 않았겠지.
유사하는 희미하게 들리는 삼순이가 짖는 소리를 확인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와. 은성 씨 살벌하네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절대 안 돼애애애!
-앙!
반응이 재밌어서 계약 안 할 거라는 얘기는 안 했다.
몇 번 더 버둥거리는 차은성의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고, 이내 무영이가 장문의 사과 문자와 머리를 벽에 박는 이모티콘을 함께 보냈다.
차은성의 발광은 그렇게, 임민성이 FA 시장에 나올 때까지 근 삼 주 가깝게 계속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