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79)
신인인데 천만배우 279화
폭언
방송국으로 들어서는 무영이의 발걸음이 가볍다.
저번에는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방문한 거였다면, 이번에는 거의 주인공 배역에 낙점된 상태로 온 것이니까.
“오늘 미팅하고, 회사에서 세부 조율 들어갈 거야.”
고경민이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며 당부했다.
작품 내적인 미팅은 무영이가 담당하되, 출연료나 그 외 스케줄 따위는 회사의 담당이었으니 서로 말을 잘 맞추자는 뜻이다.
“스케줄 같은 건 제가 말해도 되는 거죠?”
“물어보시면 대답해도 돼. 근데 출연료 쪽은 조심해 줘. 회사에서 천장 한번 뚫어보려고 벼르는 중이니까.”
회당 1억. 어느 곳에서나 천만 원대와 억 사이는 상징적인 차이를 보였다.
특히 ‘몸값’이라는 이름으로 굴러가는 이 연예계 판에서는 그 천장을 뚫는 게 너무나 중요했다.
광고료는 이미 그걸 넘은 지 오래였지만, 드라마는 이제 겨우 세 번째.
“[칼날의 궤> 다음으로 하는 드라마니까 화제성도 좋을 거고, 작가님 네임 밸류가 주는 안정성도 확실하지. 1억 문제없다.”
이게 16부작이니까, 출연료로만 16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재방, 삼방료는 따로고 부가적인 수익까지 합치면…….
‘30억쯤 될까?’
우와. 아무리 생각해도 아득한 숫자다.
지금 사는 집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땅값 비싼 곳이라고 한들, 회사에서 마련해 준 것 아닌가.
그뿐만 아니다. [후회와 상실>도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러닝 개런티를 기대하자면 이번 연도는 진짜 돈을 쓸어 담는 해나 마찬가지다.
“근데 1억에 해주실까요?”
“하게 해야지.”
“오오오. 형 멋져용.”
“대표님 방침이시다.”
고경민이 머쓱하게 코를 훌쩍거렸다.
고양이 때문에 CG비가 좀 들어가겠지만, 전체적으로 달동네에서 일어나는 로맨틱 코미디인지라 제작비가 그리 부담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영이 출연료 정도는 아주 넉넉하게 뗄 여지가 충분했다.
“형, 저 이제 진짜 부자예요. 히히.”
“실없는 소리 하네. 그걸 이제 알았어?”
무영이 슬며시 웃자, 고경민은 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들은 이전에 왔던 사무실에 당도했고,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똑똑.
“안녕하세요.”
“어, 무영 씨.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오늘도 보틀 사 왔어요!”
“에구, 뭘 이런 걸 다…….”
무영이는 꾸벅꾸벅 인사하다가, 한 여자를 알아봤다.
여자 주인공으로 낙점된 솔예인이었다.
그녀도 무영이를 보고서 반갑다는 듯 표정이 변했다.
“안녕하세요, 솔예인입니다.”
“우앗.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처음 뵙네요.”
백설기처럼 흰 피부와 염색한 것 같은 까만 흑발.
확실히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조금 피폐해 보이는 분위기가 물씬 났다.
“작품 잘 보고 있습니다.”
“앗. 저도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깍듯하게 인사까지 하니, 피디와 작가가 흐뭇하게 두 사람의 투 샷을 뜯어봤다.
기본적으로 선남선녀인 것을 제외하더라도, 분위기가 밝고 어두워서 정반대의 매력을 뿜어냈다.
“오늘 솔예인 선배님도 오는 줄은 몰랐어요.”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아서, 완전히 픽스된 것은 아니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본격적인 미팅에, 무영이 당황스러운 듯 웃었다.
“어쩌다 보니까, 시간이 나서. 남주, 여주니까 둘 합도 봐야 하고요. 앞으로 작업 같이하려면 안면도 트는 게 좋잖아요.”
“그렇긴 하죠.”
“앉아요. 앉아. 그러고 보니, 무영 씨는 곧 영화 개봉 앞두고 있죠?”
“네네. 그래서 이번 달 말까지는 좀 바쁠 것 같습니다.”
“미국 간다는 얘기도 있던데?”
“네? 아니요. 그건 아직 논의된 게 없는데요. 정해지면 바로 회사 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참. 넵플렉스도 곧 나오잖아요. 무영 씨 진짜 열심히 일했다. 한 해에 작품을 몇 개나 하는 거예요?”
“음. [후회와 상실>은 작년에 끝난 작품인데 개봉을 여름으로 맞추다 보니…… 공포 영화라 어쩔 수가 없네요. 하하.”
자연스럽게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들은 빙 둘러앉아 차를 나눠 마시며 스케줄을 확인했다.
가끔 가다 대본 얘기도 하고,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사람끼리 하는 작업인지라 이런 식으로 유대를 나누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단을 꾸리신 걸지도.’
김순영 작가는 한번 연을 맺은 사람이라면 그게 배우가 되었든, 스태프가 되었든 어지간해서는 계속 같이 가는 것으로 유명했다.
“[좀비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생 역이죠? 무영 씨 나이에 동안이라는 말 쓰는 것도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소화력이 좋아요.”
피디와 작가의 칭찬에 솔예인이 머뭇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솔직히 어려운 연기인데. 아, 죄송해요. 잘하셨을 것 같다는 뜻이었어요.”
“네? 아, 네. 칭찬 감사합니다.”
그닥 죄송할 일도 아닌데, 되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무영이 간단히 대꾸했음에도, 그녀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연신 테이블만 쳐다봤다.
“솔예인 선배님은 활동 예정 없으세요?”
“저는…….”
무영이 넌지시 묻자, 솔예인이 화들짝 놀라며 어설프게 웃었다.
그리고 밖의 매니저 쪽을 힐끔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드라마에만 집중하려고요. 당분간 없을 것 같아요.”
“그러시구나. 아무래도 그게 좋죠. 저도 영화 개봉 스케줄만 끝나면 여유 있어서요.”
서로 으쌰으쌰 잘해보자는 뜻으로 무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솔예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짤막한 카메라 테스트가 이어졌다.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화면으로 통하는 느낌은 또 다르니까, 먼저 확인 후 설정을 점검하려는 것이다.
“자자. 보자…….”
“조금만 붙어볼까요?”
“넵.”
무영이 솔예인 쪽으로 의자를 붙인 후, 가볍게 브이 표시를 했다.
솔예인도 마찬가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음. 무영 씨 혹시 쿨톤인가?”
“헉. 잘 모르겠는데용. 코디 누나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에이. 됐어요. 잘생겼는데 쿨인지 웜인지 뭐가 중요해. 머리 색을…… 고양이랑 맞춰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둘 다 검은색으로 가는 게 낫겠어요.”
“스타일은요?”
“내추럴하게 내릴 생각이거든요.”
무영이와 솔예인은 정면, 후면, 측면까지 꼼꼼하게 사진을 찍고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사진에서는 무영이가 넉살 좋게 몸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누가 봐도 똥꼬발랄한 고양이와 낯설어 하는 주인처럼 보였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오늘은 그만 일어나고, 조만간 리딩 잡읍시다.”
“네. 감사합니다. 작가님, 피디님!”
“감사합니다.”
사무실의 스태프들에게도 인사 후 나서려고 하는데, 피디가 은근슬쩍 그를 붙잡았다.
“저기, 무영 씨.”
“네?”
“유사하 대표님이나, 뭐 임민성 씨한테 들은 거 없어요?”
“어떤…….”
“어. 아닌가 보네. 아니에요. 아닙니다.”
업계에선 속된 말로 임민성이 SJ와 HDW에 ‘작업’당한 것 같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가운데 껴 있는 무영이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건데, 눈치로 보아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니…….
“그럼, 또 봅시다.”
“넵. 안녕히 계세요! 솔예인 선배님도 들어가세요.”
“네. 다음에 볼게요. 감사합니다.”
무영이는 기다리고 있던 고경민과 합류하여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솔예인 역시 마찬가지. 매니저가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고, 그녀는 담담하게 뒤를 쫓았다.
“미팅은 잘했어?”
“네. 다들 친절하시고 좋았어요.”
“밖에서 보니까 네 쪽만 분위기 축 처져 있더라. 활기차게 좀 해봐. 아무리 배역이 그래도 웃고 떠드는 맛이 있어야지.”
“……죄송합니다.”
“이번에 너 꽂느라고 회사에서 엄청 고생한 거 알지? 솔직히 네가 하무영이랑 맞붙을 짬이나 되냐?”
매니저의 폭언에 솔예인이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김순영 작가님 작품의 여주인공은 모든 배우들의 꿈 같은 자리니까.
“얼굴도 오늘따라 더 칙칙해 보이네. 잠 못 잤어?”
“아니요. 푹 잤는데…….”
“나이 먹어갈수록 관리 잘해야지. 안 그러면 바로 꺾인다. 스케줄 가기 전에 병원 가서 비타민 좀 맞자.”
“오빠. 저 오늘은 부모님 집에 가는 날인데요.”
“쯧. 너는 애가 이렇게 중요한 일 앞두고 자꾸 본가 내려가고 싶니? 저번 주에도 갔잖아. 가면 또 어머님이 이것저것 챙겨주시겠지. 사이즈 조금 늘었다며? 지금 회사는 너 하나 보고 사활을 거는데 쉴 생각이 나? 참 여러모로 대단하다.”
무명 시절부터 그녀에게 투자된 회삿돈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전향을 잘해서 연기자로 두각을 나타내곤 있지만, 그래도 아직 회사에 빚을 지고 있는 상태.
솔예인은 한숨을 내쉬며 제 배 쪽을 매만졌다.
‘그렇게 살이 쪘나?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스케줄 하고 트레이닝까지 받고 가. 그때 집에 데려다줄게.”
“네. 알겠어요.”
“가자. 쯧쯧. 저거 저거, 얼굴 울상인 거 봐라. 배역 잘 만나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어디에다 써? 근데 너 진짜 코 협찬 들어온 거 안 할 거야? 이제 드라마 들어가면 당분간 못 하는데.”
“저는…… 할 생각 없어요.”
“그래? 네가 코만 딱 고치면 진짜 예쁜 얼굴이긴 하거든. 싫다고 하니까 뭐…….”
매니저가 보란 듯이 혀를 끌끌 차며 앞장섰고, 솔예인은 익숙하게 한숨을 삼키며 무시했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숨이 턱턱 막혔다. 하나부터 열까지 지적에 지적.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네가 잘돼야 우리도 잘되는 거니까. 알지?”
“네. 알아요.”
“그래. 가면서 커피라도 좀 사 가자.”
솔예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매니저와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
로비에서 주차장으로 향하던 무영은 뭔가 이상한 기운에 멈칫거렸다.
“왜 그래?”
그리고 고개를 들어 스산한 기운이 드는 쪽을 쳐다봤다. 한 칸, 두 칸, 세 칸, 네 칸…….
‘8층?’
방금 김순영 작가를 만나고 온 사무실 층이었다.
그곳에서 물이 새듯 뚝뚝 떨어지는 검은 스모그.
분명 대본에서 꽃가루가 보였기에, 작품에 대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뭐지?’
매니저와 함께한 솔예인에게서 나오는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무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의실에서 앉아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으니까.
무영이는 그저 지나가는 누군가의 불행인가 보다, 하고 몸을 돌렸다.
“아니에요. 가요.”
“실없기는. 미팅 얘기 좀 자세히 해봐. 뭐라셔?”
“그게요…….”
무영이는 작가와 피디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매니저에게 쫑알댔다.
* * *
그리고 며칠 후, 무영이의 [그 대로, 고양이> 합류 소식이 정식으로 기사화되었다.
[하무영 X 김순영 작가가 만난다, [그 대로, 고양이> 합류! 하반기 기대작 1순위 등극!] [[칼날의 궤> 이후 첫 드라마, 하무영 ‘동물 연기 도전, 새로운 경험이 될 것’ ……여주인공은 솔예인.] [김순영 작가가 돌아왔다! 하무영♡솔예인 미친 케미 기대! [그 대로, 고양이>는 무슨 내용?]-드라마 기다리고 있었어요 무영 씨^^
-김순영 작가에 하무영 얹기라니…… 이거 달달해서 녹아내리는 거 아닙니까? 대가리에 털 나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입니다……. 두근두근.
-소식 듣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훔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여기…… 티비 나오죠? ⚲_⚲
-하무영 이걸로 쐐기 박겠네ㅋ 출연료도 회당 1억 받는다던데ㅋ 젊은 게 좋겠다~ㅋㅋ
└니가 몰 알아
└나? 광고계 종사자인데?ㅋ 이거 확정되고 몸값 갱신 한 번 더 했음ㅋ
└뭘 좀 아시는 분이군요 ㅅㄱㅇ
-솔예인 이미지랑 찰떡이다! 기대합니다~!
-근데 의외네ㅋㅋㅋㅋ 하무영이랑 솔예인이라니ㅋㅋ 솔직히 솔예인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줄거리만 대충 들었을 때는 완전 솔예인 염두에 두고 쓴 거 아님?
-김순영 작가 페르소나 따로 있음
-아…… 솔예인~ 난 별로인 듯……. 연기 구멍 생기면 몰입 안 되는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