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83)
신인인데 천만배우 283화
소송
저질렀다, 내지름과 동시에 솔예인의 머릿속에는 온갖 불행의 시나리오가 싹트기 시작했다.
이대로 매니저가 회사에 말을 전한다면, 드라마도 못 하게 되고, 분수도 모르는 건방진 애라 손가락질하는 건 아닐까?
평판도 엉망이 되면 다음 작품도 못 할거고, 그렇게 되면 영원히…….
“들었지? 취소해, 새꺄.”
하지만 너무 아무렇지 않은 차은성의 말에 솔예인은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하무영도 그렇고 엔빈이도 그렇고, 강이안 심지어는 어린 유나까지 이 상황을 특별하게 보는 것 같지 않았다.
감히, 감히, 스케줄을 안 가겠다고 선언했는데 말이다.
“선배. 저희랑 대기실로 들어가 있어요. 영화 상영 끝나면 다들 집 갈 거라 데려다줄게요.”
“언니언니. 저 알죠? 저, 유유나에요.”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 CCTV 있나?”
엔빈이는 혹시 몰라 매니저가 솔예인의 어깨를 때린 걸 증거로 남겨두고 싶어 했다. 아무래도 회사가 막장이라 꽤 질척거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은 거다.
“아.”
유나가 솔예인의 등을 떠밀자, 솔예인은 엉거주춤 뒤를 돌아보며 안으로 들어갔고 무영이와 차은성이 든든하게 막아주었다. 매니저는 황당하다 못해 경악스러운 표정이다.
“예인아! 그게 뭔 소리야!”
“시꺼. 경호원 부르기 전에 썩, 훠이훠이 꺼져.”
“꺼져주세요!”
솔예인이 매니저와 붙어 있기만 하면 스모그가 생겨났다. 무영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은성을 부추겼다. 난감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던 매니저가 대꾸도 못 한 채 휴대폰을 들고서 물러섰다.
“아니, 예예. 실장님. 전데요. 예인이가 갑자기 스케줄을 취소하라고……. 미친 거 아니에요? 진짜? 아니, 여기 차은성이랑 하무영이……. 예예.”
그가 힐끗거리며 통화를 이어갔으나 일행들은 볼일 없다는 듯 코너를 돌아 대기실로 들어갔다.
콰앙!
유나가 솔예인에게 차를 건네주며 눈썹을 치켜들었다. 마음 같았으면 차은성처럼 욕이라도 시원하게 쏘아주고 싶다는 눈치였다.
“그 아저씨 갔어요?”
“통화하면서 나가긴 하더라.”
“진짜 또라인가 봐. 어딜 손을 올려요. 그쵸?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데!”
하지만 솔예인은 웃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제 뒷수습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이제껏 스케줄 펑크는커녕 거부조차 한 적이 없다. 하기 싫은 것도 꾸역꾸역 삼키듯 지내온 세월이 벌써 몇 년인가?
“하아…….”
“뭘 그렇게 한숨을 쉰대?”
“네?”
솔예인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자, 차은성이 딸기라떼를 쪽쪽 마시며 물었다.
“계약해지 소송 걸어. 정신적 학대 및 신체적 학대로 아티스트 인권이 보호되지 않는다고. 꼴 보니까 상세 정산 내역서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차은성은 정산 투명성까지 의심하며 조언했다.
솔예인은 살짝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문제없어요. 아직 정산받은 게 없어서…….”
“뭐?”
“아이돌 연습생 기간이 좀 길었거든요. 그리고 데뷔 후에도 잘 안 됐고……. 엔빈 씨랑 강이안 씨는 잘 아시겠지만요.”
투자의 개념이 참 이상했다. 연습생을 데려다가 데뷔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회사의 판단이고 투자였으니, 실패하더라도 손해는 회사가 안고 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대부분 소속사는 그 빚을 개인 앞으로 달아두었으며, 데뷔하더라도 일정 기간은 정산하느라 손에 들어오는 돈이 없는 게 부지기수였다.
“예. 뭐, 알기는 잘 알죠.”
엔빈이와 이안이처럼 대형 소속사가 아닌 이상, 그 현실은 더욱 비참했다.
특히 솔예인은 빛 본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제대로 세상을 담지 못했다.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그녀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말이다.
사락-
무영이는 흩날리는 꽃가루를 손으로 가볍게 만진 다음 방긋 웃었다.
“괜찮아요. 선배. 자부심 가지세요. 김순영 작가님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게 업계에서 얼마나 대단한지 아시잖아요.”
무영이의 말에 다들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차은성 제외. 그는 팔짱을 낀 채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만 짓고서 침묵했다.
지이잉-
“어? 무영아, 은성 씨. 감독님 오셨는데 슬슬 나가야 할 것 같거든요?”
매니저가 휴대폰 문자를 확인하며 그들에게 시간이 다 됐음을 알렸다. 그러자 엔빈과 이안이는 가방을 챙기며 나갈 준비를 했고 스태프들도 주인공들의 옷매무새를 마무리했다.
“저희 그럼 극장 가 있을게요.”
“은성이 형, 다시 한번 영화 개봉 축하드리고요. 무영아, 축하한다. 그리고 예인 선배님 좋은 일만 있으실 거예요. 다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오빠 잘 가요. 다음에 또 봐요. 제발.”
“네. 유유나 양도 파이팅!”
엔빈이 깍듯하게 인사를 남기자 유나가 서운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조용히 있던 임하늘도 꾸벅, 간단히 인사하며 일어서자 솔예인은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는 것처럼 불편함을 느꼈다.
다들 공식 스케줄인데, 여기서 저가 대체 무얼하는 걸까? 술이 깨는 것처럼 정신이 확 돌아왔다.
‘미쳤지, 미쳤어…….’
무영이 그런 그녀의 옆모습을 힐끔거린 다음, 매니저에게 부탁했다.
“형. 예인 선배 차에 좀 데려다주세요. 끝나고 집 바래다주려고요.”
“응 그래. 예인 씨. 이쪽으로.”
“아…….”
끼익-
솔예인이 매니저를 따라 움직이려는 순간. 대기실 문이 열리며 시원한 향수 냄새가 훅 들어왔다. 무영이와 은성이는 그 향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박에 인지했다.
“대표님!”
“……대표네.”
유사하였다. 싱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서던 그가 솔예인과 정면으로 딱 마주쳤다. 그는 단박에 그녀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했다.
“솔예인 씨군요. 반갑습니다. SJ엔터의 대표 유사하입니다. 이번에 무영 씨 들어가는 드라마 상대역 맞으시죠?”
“아, 안녕하세요. 솔예인입니다.”
“실물이 훨씬 멋지시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짧은 순간, 유사하는 매의 시선으로 솔예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딱히 의도가 있었다기보다, 직업병에 가까운 반사적 반응이었다.
“언제 식사라도 다 같이 하시죠.”
“아, 네네. 감사합니다.”
유사하가 눈매를 휘며 몸을 비켜주었고, 솔예인은 매니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걸 보던 무영이와 차은성이 시선을 맞췄다. 마치, 정답을 찾았다는 듯이.
“대표님!”
“대표.”
유사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둘을 쳐다봤다. 이렇게 보니까 형제처럼 똑 닮은 모습이다.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으나,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외쳤다.
“밥 언제 먹을 건데요?”
“밥 먹자고 말만 하는 거?”
“네?”
영문을 모르는 유사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칫거렸다.
“……글쎄요.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 마침 오늘 한가하긴 한데.”
* * *
“음, 그러니까, 회사랑 계약 해지를 하고 싶다?”
솔예인은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눈 깜짝하니 매니저를 떨구었고, 또 눈 깜짝하니 유명 엔터 대표님이랑 밥을 먹고 있었으니까.
“그, 예……. 말씀드리자면 그렇죠.”
“소송이라니까. 그런 새끼들은 법의 심판으로 대가리 좀 깨져봐야 정신 차린다고!”
“대표님. 말도 마세요. 매니저라는 분이 진짜 어찌나 못되게 하시던지, 막 이케이케 선배 어깨 팍팍 때리고!”
“세상에. 정말요? 밖에서? 여러분들 다 있는데?”
“주둥이에 걸레를 쳐 물었어.”
“은성 씨가 그렇게 느낄 정도면 엄청나겠군요.”
“눈도 막 이케 무섭게 뜨고 소리를 소리를 엄청 지르시는데!”
무영이와 차은성, 유사하는 솔예인을 두고서 저들끼리 바쁘게 떠들어댔다. 그녀는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초밥만 깨작거릴 뿐이다.
“계약 남은 건 1년이라고 했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 대로, 고양이>가 거의 마지막 활동이라 보면 되겠네요.”
유사하는 물로 입을 적시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이번 드라마가 기대작인 것은 저도 알고 그들도 알며 심지어는 방송국 말단 직원까지 아는 내용이었다.
순순히 솔예인을 놔줄 리가 없고, 무엇보다 소송에 들어간다 한들 판결까지 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아마 드라마 다 끝나고 해외 판권 돌릴 때쯤 되리라.
“대표니임. 어떻게, 도와주실 방법이 없을까요?”
유사하는 무영이의 초롱초롱한 눈과 마주했다. 영화 속 고양이처럼 별을 잔뜩 때려 박은 눈망울이다.
그가 희미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눈이 제대로 박혀 있으면 그 누구도 저 부탁을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하리라.
“도와줄 방법은 많죠. 무엇이 예인 씨와 SJ에 이득일지는 고민을 해봐야 하고요.”
일단 긍정적인 대답!
무영이는 기뻐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차은성은 의심의 눈초리를 걷지 않았는데, 유사하가 뼛속까지 사업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솔예인이 가치가 있는 배우라 할지라도, 손해까지 보며 그녀를 도우려 하지는 않을 터. 어떤 식으로든 이득을 위해 움직일 게 분명했다.
“솔예인 씨. 그런데요, 그 전에 직접 듣고 싶은 게 있어요. 이건 일을 진전시키기 전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해요. 아니면 우리만 우스운 꼴 되는거라.”
“말씀하세요.”
“회사, 나오고 싶은 거 맞죠? 본의 의지로.”
유사하의 질문에 솔예인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금기시되는 말을 사람들 앞에서 내뱉는 것처럼 부끄럽고 버겁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는 이게 기회임을 알았다.
이전의 끔찍했던 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보다 숨통 트인 삶을 위한 선택.
“네. 도와주신다면 은혜 꼭 갚겠습니다.”
사아악-!
결심을 내린 순간, 솔예인에게서 꽃가루가 떨어졌다. 무영이는 그걸 보고 다시 한번 강하게 유사하를 푸시했다.
“예인 선배, 앞으로 정말 잘하실 거예요. 대표님 놓치면 배 아파서 데굴데굴 구를 거라구요.”
“으. 유사하가 데굴데굴? 좀 그런데…….”
“아차차. 그리고 은성이 형도 예인 선배 실력 엄청 칭찬했어요. 그만큼 실력도 최고! 입니다!”
무영이 쌍엄지를 치켜들자, 유사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네. 무영 씨. 저도 예인 씨 능력 있는 거 압니다. 근데 궁금하네요. 무영 씨가 이렇게 누굴 추천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혹시 둘이 많이 친해요?”
“넹? 그건 아닌데요.”
“그러면?”
“음…….”
무영이의 대답을 모두가 기다렸다. 솔예인도 은근히 궁금하던 차였다.
무영이는, 특히 차은성은 어찌하여 낯선 그녀를 이렇게까지 도와준단 말인가?
무영이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저랑 예인 선배는 이미 한배를 탔거든요. 그리고 은성이 형은 저랑 한배를 탔고! 대표님도 타셨어요!”
“이런. 그럼 저도 은성 씨랑 탄 건가요?”
“윽. 내리고 싶은데.”
“아하하하. 뛰어내리면 죽어요. 은성 씨.”
유사하의 말에 차은성이 다시 고래고래 뭐라 지르기 시작했다. 장난스러운 분위기였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무영 씨가 보는 눈은 참 좋지. 사람이든 작품이든.’
유사하도 솔예인의 작품을 본 적은 있었다. 그저 ‘나쁘지 않은 배우’ 혹은 ‘가능성이 있는 배우’에서 무영이가 저렇게까지 싸고도니 이상한 신뢰가 생겨나는 기분이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줄건데? 대표‘님’?”
차은성의 말에 유사하가 눈썹을 치켜들며 ‘글쎄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돈으로 해결하는 게 제일 쉬우니까……. 남은 계약 기간의 예상 수익을 넘겨주고 받아오거나, 아니면 그냥…….”
그냥?
유사하가 화사하게 웃었다.
혹시 분쟁으로 번지면 다른 누구도 아닌 솔예인에게 치명적이다. 한창 치고 올라갈 시기에 제 목을 꺾어 비트는 행동이 될 터. 최악이라면 드라마 불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뒤에 케어해 줄 회사가 없고 재판에서 질 때의 일이다.
“그냥 소송 때리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