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92)
신인인데 천만배우 292화
귀신의 귀신
“어!?”
왜 도망가!?
무영이는 반사적으로 그 뒤를 쫓았다.
하반신도 없으면서 팔로 기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었다.
도마뱀도 저리 빠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타닥타닥!
“도플 씨! 도플 씨!”
무영이 애타게 불렀으나, 도플갱어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상했다.
우리 서로 친하지 않나요? 왜 도망가나요?
막다른 곳에 다다르자 도플갱어는 벽을 통과해서 사라지려고 했으나, 무영이 몸을 내던져 옷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쿵!
“으아아아. 아파라.”
덕분에 앞으로 쭉 미끄러졌지만, 일단 붙잡는 건 성공이다.
무영이는 욱신거리는 무릎을 쓱쓱 비비며 도플갱어를 쳐다봤다.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봤던 안재경 씨의 모습.
맞다. 제일 잘생긴 사람만 따라 변하더니, 아주 부지런했다.
“으음. 이번에는 안재경 씨예요? 저번에 이안이가 집에 왔는데, 도플 씨 없어서 얼마나 놀랐다구요. 어디 갔나 했더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아마 방송국이나 행사장에서 오고 가다 만난 거겠지?
누가 귀신 아니랄까 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서는 이러고 있다.
도플갱어는 무표정으로 손을 싹싹 비비며 중얼거렸다.
-나…… 싫어요…….
“뭐가 싫어요?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예 바닥에 엎드려서는 싹싹 비는 모습이 처절했다. 표정만 덤덤할 뿐이지 아주 애절하다 못해 자지러질 수준으로 부탁하고 있었다.
-나…… 이렇게 살고 싶었어요……. 펴, 펴, 평생 못생기게 살았으니까 죽어서라도 이렇게…….
“도플 씨? 왜 그래요?”
무영이는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혹시 부적 만졌다고 그 기운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지. 그건 너무 비약이었다.
무영이 이해 못 하는 표정을 짓자, 도플갱어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그의 뒤쪽을 바라봤다.
“……?”
-데리러 온 거 아니에요?
“제가요? 아니요. 저 오늘 볼일 있어서 온 건데.”
-말고…….
무영이는 도플갱어의 시선을 따라 복도 끝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도플갱어는 더욱 거칠게 손을 싹싹 비비기 시작했다.
순간 소름이 확 올라오며 몸이 굳었다. 난생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공포를 느낀 것이다.
타악-!
“가요.”
무영이는 붙잡았던 도플갱어를 벽으로 밀며 소리쳤다.
두려움에 떨던 그가 멈칫거리는 것도 잠시.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듯 달달 떨며 사라졌다.
‘뭐지?’
조용했다. 위층으로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코너만 돌아도 안무 연습실이 있는데…… 마치 공간이 분리된 것처럼 적막만 느껴졌다.
무영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모퉁이 쪽으로 움직였다.
“하무!”
“헉! 형!”
“뭐 해? 어디갔나 했네.”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은성.
그사이 땀을 꽤 흘렸는지, 티셔츠가 젖어 있었다.
뒤쪽에서는 연습실 문을 열고 소리치는 엔빈이가 보였다.
“형! 어딜 도망가요!”
“도망은 무슨! 커피 사러 갈 건데?”
“커피 마실 시간이 어딨어요? 빨리 오세요. 한 시간 만에 땡땡이가 말입니까, 막걸립니까?”
“저게, 야! 땡땡이 아니라고!”
다시 순식간에 일상이 찾아온 기분이었다.
일상의 소음이 들려오고, 위층에서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사람들의 온기가 물밀듯 밀려왔다.
무영이 식은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자, 차은성이 걱정스레 물었다.
“뭐야? 너 왜 그래?”
“아니요. 좀…….”
“귀신이라도 봤어?”
“하하하. 네네. 아, 놀라라.”
차은성의 농담에 무영이는 진담으로 대꾸했다.
그는 이상한 기분을 떨쳐내며 차은성의 팔을 잡아끌었다.
“엔빈~ 은성이 형 내가 잡아 왔어!”
“이거 놔봐. 아니, 도망간 거 아니라니까?”
“자자. 이쪽으로 오세요. 안무도 못 외우면서 어딜 자꾸 나가시려고. 여기 군만두 배달 잘 되거든요?”
“미친 거 아니야? 경찰 불러?”
무영이는 웃으면서 차은성과 함께 연습실로 들어왔고, 엔빈의 매니저에게 은근슬쩍 카드를 내밀며 부탁했다.
솔직히 방금 그 이상한 기운이 뭔지 몰라서 무섭다는 게 맞을 것이다.
“형. 죄송한데요, 이걸로 마실 거랑 먹을 거 좀 사다 주실 수 있을까요? 형 필요한 것도 사시고, 담배도 태우고 오세요. 여긴 제가 보고 있을게요.”
“그래도 될까?”
“그럼요.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내가 더 땡큐지. 다녀올게!”
매니저는 이게 웬 떡인가 싶은 표정으로 카드를 받았다.
그리고 싱글벙글 웃으며 연습실을 나섰다.
콧바람도 쐬고, 담배도 사고, 여러모로 서로에게 좋은 거래였다.
“하나! 둘! 셋! 돌아! 돌아!”
“으아아악!”
쿵!
무영이는 연신 삐걱대며 넘어지는 차은성을 통해 찝찝한 기분을 웃어넘겼다.
도플갱어 씨도 무사한 걸 봤으니, 일단은 문제 될 게 없지 않나. 일단은.
“원 투 차차차!”
“이런 X!”
“아하하. 형. 그래도 아까보다 나아요.”
쿠웅!
안무 연습실이 아니라 유도 연습장 같은 소리가 계속 울렸다.
차은성이 이리저리 구르는 동안, 모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차은성은 집에 돌아와서 온몸에 파스를 다섯 통이나 붙여야 했다.
* * *
그리고 며칠 후. 무영이는 오랜만에 재학 중인 서연대학교를 찾았다.
물론, 혼자서는 아니고 촬영 때문에. 휴학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학교 앞 풍경은 그새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무영아. 이쪽.”
“넵넵.”
축제 시 무대로 쓰는 대광장이 촬영장이었다.
공연장처럼 앉을 수 있는 돌담이 쭉 늘어져 있었고, 무영이는 세팅을 다 마친 다음 밴에서 내렸다.
무영이 나오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몰려들었다.
“하무영이다.”
“무영 오빠! 헐 쉬발! 존잘…….”
“아, 뭐 촬영한다고 하더니 그게 오늘이었어?”
“구경 가자, 대박.”
“안 돼. 나 강의 늦었어.”
“하무영!!”
스태프들이 줄을 쳤지만, 소리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무영이 인사만 꾸벅꾸벅하며 지나가려고 할 때, 인파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부과대!”
“야야! 하무영이!”
“대박. 너 왜 여기있어? 졸업 안 했어?”
동기이자 당시 부과대였던 친구였다.
그녀가 손을 불쑥 내밀며 흔들자, 무영이가 반갑게 맞잡았다.
“나 이번에 대학원 왔다이가. 교수한테 찍혀가.”
“헐. 미안하다. 비보네.”
“그나저나 촬영 협조문 있긴 있었는데, 그게 오늘인갑네? 야야. 우주대스타 되고 나니까 훨씬 신수가 훤하다이. 멀리서도 빛이 난다.”
너도 보기 좋아 보인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대학원생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말이었다.
무영이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고맙다. 고생해라. 다음에 연락하고, 동기들끼리 모일 일 있으면 나도 끼워줘.”
“애들 다 취뽀에 박살 났다. 함 모아볼게. 그나저나 오늘은 뭐 찍는데?”
“아. 새로 들어가는 드라마. 나오면 본방사수해 줘.”
“니랑 또 누구 나오나?”
“솔예인 씨랑 은성이 형.”
“차은성?”
그와 동시에 다시금 터지는 환호성.
무영이도 놀라서 돌아보니, 차은성이 선글라스를 낀 채 다가오고 있었다.
인파가 급격하게 출렁이자, 무영이는 친구에게 먼저 가보겠다고 인사했다.
“야! 하무, 나 두고 어디가?”
“형. 가요. 사람들 많다.”
“안녕하세요~ 예~ 제가 차은성입니다~”
스태프들이 낑낑대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무영이와 은성이는 어쩔 수 없이 광장으로 들어갔다.
보조 출연자들과 학생들이 이리저리 섞여 현장이 아수라장이었다.
“어! 다들 왔어?”
“안녕하세요, 피디님.”
“은성 씨! 오늘의 주인공!”
“아. 짜증 지대로. 빨리빨리 찍고 나 갈래요.”
“지금 앰프 연결 중이라서 조금만 기다려줘요.”
원래 공연 씬이나 클럽 씬 등 큰 음악 소리와 대사가 맞물릴 때는 배경음악 없이 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오디오만 따로 따서, 노래와 합치는 거지.
하지만 그 말은 차은성보고 무반주로 춤추고 노래하라는 것과 같은 말이었기에, 절대 불가능이다.
“[가보자고> 가보자고~”
“자신있나 보네? 은성 씨?”
“아, 엔빈이 그놈. 스파르타더만요. 아주, 성격은 지랄 맞아도 실력은 확실해. 완벽하게 배워왔으니까 걱정 말아요.”
차은성은 자신있게 외쳤고, 피디는 별 감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화제성으로 치자면 그가 못 추는 게 더 이득이었다.
빠앙- 빵빵!
그때, 현장으로 들어오는 고급 세단 한 대.
스태프들이 몸으로 길을 터주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세팅을 마친 솔예인과…….
“유 대표님?”
“뭐? 유 대표?”
유사하였다.
싱글벙글, 손까지 흔들며 어찌나 화사하게 웃어대는지. 반가워하는 무영이와 달리 차은성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와아. 다행이다. 늦는 줄 알았는데 시간 딱 맞춰서 왔네요.”
“뭐야! 네가, 아니, 대표가 여길 왜 와!?”
“당연히, 우리 배우님들이 현장에서 고생하는데 대표가 와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차은성, 하무영, 솔예인.
그러고 보니 오늘 모인 주연 배우들이 모두 SJ 소속이었다.
차은성은 지랄 발광을 해대며 피디와 스태프들에게 소리쳤다.
“아, 대표 쫓아내요. 빨리!”
“대표님을 어떻게 쫓아내요? 미쳤나?”
“그러니까. 상석에 모셔야지.”
“대표 있으면 나 안 해!”
“안 하면~ 이대로 펑크 내요?”
피디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며 대본을 뒤적거렸다.
대표가 말했던 그대로였다. 자신이 나타나면 차은성이 온갖 성질 부려댈 터인데, 그냥 무시하면 된다는.
“아니! 내가! 유 대표 앞에서 재롱떨게 생겼다고!”
“자자. 어서 준비합시다. 실장님. 은성 씨 옷 좀.”
“네네. 이쪽으로 오세요.”
“으아아악!”
그리고 코디를 부르며 어서 차은성 옷 좀 갈아입히고 오라는 손짓을 해댔다.
코디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절규하는 차은성.
유사하는 연신 화사하게 웃으며 즐거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철컥.
“그건 뭐예요?”
“이거요? 동영상 찍으려고 카메라 사 왔습니다.”
비서가 백화점 매대에 가서 아묻따 제일 화질 좋고 음질 짱짱한 것으로 골라온 참이었다.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건 여기에 차은성의 재롱 잔치가 담길 거라는 거지.
“살다 살다 이렇게 좋은 날도 있네요.”
“오. 은성이 형은 이런 날도 있나 싶을 거예요.”
“하하하! 그러니까 진짜 좋은 날이죠.”
유사하 대표님도 가만 보면 성격이 참…….
무영이는 스태프가 마련해 준 의자에 앉아 솔예인과 대본을 체크했다.
이미 완벽하게 준비되었으나, 현장이 현장인지라 무조건 NG 없이 가는 게 목표였다.
“아 참. 무영 씨. 얘기 들었어요?”
“네? 어떤 거요?”
유사하의 말에 무영이 고개를 돌리자, 카메라 렌즈와 눈이 마주쳤다.
유사하는 카메라 테스트라도 하는지 동영상을 찍는 모양이었다.
“강언전자에서 휴대폰 새로 나오는 거.”
“아아. 들었어요. 근데 저 아직 약정 남아서.”
“광고 안 해볼래요?”
“네?”
띠링!
유사하는 동영상 종료 버튼을 누르며 웃었다.
“무영 씨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계속 들어와서요.”
“강언전자 휴대폰이면 진짜 대박 아니에요?”
솔예인도 놀라서 저도 모르게 끼어들 정도였다.
대한민국의 휴대폰 시장 최대 점유율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부동의 재계 1위 강언전자. 그런 곳 모델을 무영이가?
“지, 진짜요?”
“네. 미팅 좀 잡자고 성화네요.”
“미팅 좋죠! 미팅 좋아요! 시켜주세요!”
어 다르고 아 다른 미팅임을 알까?
유사하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알겠노라 대답하는 순간이었다.
“XXX! XX! 뭐야! 이게 뭐야!”
차은성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반짝이 재킷과 바지. 누가 봐도 행사용 의상이었으니.
유사하는 반사적으로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