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93)
신인인데 천만배우 293화
찐 재벌
시끌벅적한 대학교 축제. 수나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자신을 고양이라 주장하는 미친 남자가 눈을 댕그랗게 뜨고 수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내 길쭉하게 찢어지는 눈매.
그래. 저런 거 보면 확실히 고양이 상이 맞거든.
“언제까지 쫓아올 건데!”
“도와준다니까?”
“됐다고. 저리 좀 가라고.”
“왜에. 난 네가 좋은데.”
“……너, 너, 나 공사 치니?”
“공사? 우닥닥쾅쾅?”
혹시 여자 등쳐먹는 그런 남자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언제 봤다고 자꾸 좋다면서 따라다니는 건지.
경찰에 신고도 해봤으나, 다음 날만 되면 어김없이 집 앞 현관에 쪼그리고 앉아 헤헤 웃고 있었다.
“미치겠네.”
“왜? 미쳐? 머리 아파?”
그리고 스스럼없이 이마를 부딪쳐 왔다.
수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이 자식은 저가 잘생긴 걸 분명 알고 있는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꼬리를 쳐댈 수가 없지.
“수나야. 아직도 아파?”
“안 아파. 그러니까 좀 떨어져.”
“시른데. 계속 이러고 있고 싶은데.”
“콱! 씨!”
“애옹!”
수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하늘도 참 공평하시다. 외모 빼고 다 가져갔잖아. 제 이름도 몰라, 나이도 몰라, 왜 이곳에 왔는지도 몰라.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고양이 울음소리까지.
“헉. 저 사람 좀 봐.”
“진짜 잘생겼다.”
시끄러운 축제의 소음 속에서도 고양이를 주목하는 말들이 계속 들려왔다.
수나는 조심스레 그의 이마를 떼어내며 물었다.
“너 진짜 내가 좋아?”
“응. 너무너무 좋아. 나랑 살자.”
“돌겠네. 미친.”
수나는 대답 없이 몸을 휙 돌려 걸어갔다.
연애는 무슨, 당장 집세에 등록금에 언제부터 눌어붙어 있는지도 모를 빚이 산더미였다.
그저 다들 한 번씩은 맞는다는 인생의 봄바람 같은 거 아닐까? 조금만 있으면 흔적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질 그런…….
“애옹?”
빠악!
고양이가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자, 수나가 날렵하게 돌며 이마를 쥐어 깠다.
충격받은 고양이가 눈을 깜빡이며 시무룩해지는 순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꺄아아아악!”
“차! 차아아은성!”
“차은성!”
퍼엉-! 펑!
“애오오옭!”
갑자기 폭죽과 함성이 터지며 조명이 반짝거렸다.
놀란 고양이가 수나의 뒤에 꼭 붙어 안기며 오들오들 떨어대는 게 아닌가.
수작 부리지 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멈칫거렸다.
바짝 선 솜털이 조명을 받아 보였기 때문이다.
수나는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허리에 둘린 팔을 토닥여 줬다.
“뭘 그리 놀라고 그래?”
“저 사람 누구야?”
“저기 서 있는 사람?”
두 사람은 서로를 꼭 안은 채 무대 위를 바라봤다.
빨간색 반짝이 재킷과 가죽 바지, 선글라스로 머리를 깐 차은성이 스탠드 마이크를 잡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안녕하쉐요! 월드 클래스 우주대스타 차! 은성입니다! 이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꺄아아악!”
“오늘 한번 제대로 놀아 봅시다!”
“가보자고~!”
“가보자고~!”
땅땅! 따라라라! 땅땅!
무대 아래로 모인 인파들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차은성은 스탠드 마이크를 옆으로 치운 다음 강한 비트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화려한 조명이 저를 감싸는 것처럼 물 흐르듯 움직이는 관절.
고양이와 수나가 멍하니 무대를 올려다봤다.
“저게 뭐래?”
“……차은성 몰라?”
“왜 저러는 거래?”
“먹고사는 게 다 저래요. 고양아.”
“으음.”
수나가 틱틱대며 말했지만, 고양이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여전히 백허그를 한 채 턱을 괴고 있을 뿐.
수나는 치울까 했지만, 이상하게 안정감이 느껴져서 가만히 서 있었다.
“원! 투! 가보자고~!”
“가보자고~!”
“좋습니다! 한 번 더!”
“와아아아아!”
“꺄아아악!”
차은성은 아주 무대를 뒤집어놓을 것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땀을 흘려댔다.
아래에서 환호하는 사람들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공연에 함께했는데…….
‘나는 땀이 왜 나냐.’
가만히 서 있는 수나는 왜 손에 땀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그녀는 소매를 비비며 손바닥을 훔쳐냈고, 이내 고양이를 올려다봤다.
폭죽 때문일까? 금빛 눈동자가 화사하게 빛나며 수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 *
“오케이! 컷!”
“컷!”
“잠시만요. 그대로 계세요.”
“반장님! 여기 보조 출연자분들 통솔 좀 해주세요.”
감독님의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무영이와 솔예인 역시 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동시에 차은성이 바닥에 쭈그리고 엎어지며 욕을 꿍얼거렸다.
“X발 세상에 이게 X발…….”
“형! 완전 잘 추던데요? 최고!”
“무영아…… 빨리 나 좀 안아줘 봐.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 X발 저 멀리 사라졌어.”
“왜요? 진짜 잘 췄는데? 하나도 안 이상했는데.”
무영이가 다가가자, 차은성은 누운 채로 꾸물거리며 무영이의 무릎을 벴다.
얼굴이 시뻘게서 곧 터질 것 같다.
그가 쳐다본 것은 관중석 1열에 위치한 유사하와 그 비서.
화면에 잡혀도 상관없다며 보조 출연자들 사이로 섞여든 것이었다.
“오우! 월드 클래스 차은성 씨. 공연 잘 봤습니다. 대단하시던데요?”
“입 다물어! 젠장!”
“싸인~ 해주세요~! 하하하!”
“……오늘 저거 치고 빵 들어간다.”
“안 돼요! 형! 안 돼요! 대표님이라고요.”
차은성이 아르르거리며 달려들자 무영이가 그의 허리를 잡아끌었고, 유사하는 더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비서가 건네준 카메라를 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음. 잘 찍혔네. 은성 씨 배우 말고 가수 할 생각은 없어요? 내가 잘 키워줄게요.”
“죽어어어!”
“으아아! 안 돼요! 형! 참아요!”
“하하하! 장난이에요. 장난. 월클 차은성~ 가보자고~”
유사하가 공연에 호응하듯 휴대폰 든 손을 좌우로 흔들며 놀려댔다.
어지간히 즐거우신 모양이다.
이제껏 저렇게 장난기 있는 대표님은 처음 본다.
그러자 차은성은 혈압이 오르는지 뚝 하고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억!”
“혀, 형. 괜찮아요?”
“오늘은 내가 저 새끼 이길 수 없다는 게 제일 X같고 분하다…….”
평소에도 이긴 적은 없었으면서.
무영이가 말문까지 올라온 말을 꾹 참으며 그의 머리를 토닥여 줬다.
어쨌거나 자신의 드라마 까메오로 인한 수난이었으니, 무영이가 최선을 다해서 달래줄 의무가 있었다.
“형. 오늘 정말 감사해요. 제가 당분간 설거지도 하고 집 청소 다 할게요. 그리고 형 작품 때 까메오 두 번! 두 번 나갈게요!”
“……진짜?”
“진짜진짜. 약속약속.”
무영이가 손가락까지 걸어주며 위로해 주자, 그제야 차은성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피디 역시 영상을 확인하고서 무대로 다가왔다.
“은성 씨. 아주 좋아요. 두 번 안 가도 되겠어.”
“미쳤어요? 그걸 두 번 어떻게 가?”
“진짜 잘 나왔어요. 고마워요. 이거 방송 타면 난리 나겠어. 거의 방송 역사상 첫 자료 화면 아닐까요? 은성 씨 춤추는 거.”
“아 몰라요. 난 오늘 끝이에요.”
“그럼 그럼. 수고했어요. 회식 같이 가죠? 맛난 거 먹고 힘내.”
“……소고기.”
“……돼지는?”
차은성의 눈이 번뜩거리자, 피디가 항복했다.
“소, 소고기 좋은 집으로 갑시다.”
“진작 그럴 것이지…….”
차은성은 바로 재수 없는 재킷을 벗어 던지고서 선글라스까지 빼냈다.
그걸 빠짐없이 영상으로 담고 있는 유사하.
차은성이 이를 보이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유사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 다 저 좀 보세요. 아이구. 예쁘다.”
“카메라 안 꺼?”
“네. 안 끌래요.”
우당탕탕!
차은성이 무대 아래로 날렵하게 뛰어 내려갔고, 유사하도 민첩하게 관중석 계단을 사뿐사뿐 올라갔다.
뛰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차은성이 잡질 못했다. 뭐지?
“대표님도 저럴 때 보면 참 캐릭터 특이하십니다.”
“아. 비서님. 고생이 많으셔요.”
“무영 씨도 고생 많으십니다.”
에효오.
무영이와 비서는 동시에 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 끝난 학생들이 더욱 몰려들었다.
스태프들이 재빨리 현장을 정리했고, 무영이와 솔예인은 안내를 받으며 먼저 밴으로 돌아갔다.
“대표님! 가셔야죠!”
“아아. 그래요.”
“우쒸! 거기 안 서?”
“서면 때릴 거잖아요. 은성 씨.”
“으아아악!”
유사하 역시 세단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차은성만 덩그러니 남아 씩씩거렸다. 그러다 문득 무영이가 없는 걸 알아채고 주위를 허둥지둥 살폈다.
지이잉-
“형. 여기요!”
“야아! 하무! 나 두고 가면 어떡해?”
“안 두고 갔어요. 형이 간 거라고요.”
“유사하 저거 정장 입고 도망치는 꼴 봤어? 미친, 축지법도 아니고 왤케 안 잡혀?”
“어서 가요. 저희가 가야 현장이 정리된대요.”
무영이는 어서 타라는 듯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었다.
후다닥 달려오는 차은성.
솔예인은 그걸 가만히 보다가 진정한 고양이는 차은성이 아닐까 생각했다.
* * *
그리고 며칠 후.
강언전자 대표 휴대폰 모델 XV의 12번째 시리즈 광고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이런저런 광고를 많이 찍어봤지만, 아무래도 가전제품은 처음이었다.
대부분 해외 시장을 겨냥한 터라, 외국 모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무영아. 이쪽.”
“앗. 넵넵.”
“대표님 먼저 올라가 계실 거야.”
“대표님이랑 담당자님이 친구라고 하셨나요?”
“친구인가? 하긴, 그쪽 세계 좁잖아.”
고경민이 차 문을 열어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가 보고 있는 것도 XV모델 7시리즈였다.
대한민국 절반 가까이 쓰고 있는 라인이라 생각하면 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먹혀들어 가는 제품이었다.
“아, 그러면 그분은 뭐라고 불러야 해요?”
“홍보팀 팀장님이라고 부르면 돼. 사실 팀장님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좀…….”
“좀?”
“어려.”
회장 따님이시니까.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한들, 숨길 수 없는 부분이었다.
잘나가는 인재들만 모아둔 대기업에서 팀장급 되는 사람이 고작 서른이라면 믿어지겠는가?
좋게 말하면 고속 승진, 나쁘게 말하면 낙하산이지.
“광고 미팅에 대표님이 참관하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아요.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그럼. 근데 긴장할 건 없고.”
“넵넵. 알겠습니다.”
무영이는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며 마지막으로 옷과 머리를 점검했다.
반질반질한 통로를 지나 회의실로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유사하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왔어요? 무영 씨?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인사드려요. 이쪽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가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오피스룩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하늘하늘한 의상이었지만, 뭐 어떤가.
무영이 활짝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세요. 한달아 팀장입니다.”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만나서 반갑…… 습니다.”
괜찮으신가? 얼굴이 곧 터질 것처럼 붉었다.
게다가 맞잡은 손도 부들부들. 유사하가 그걸 보더니 살포시 이마를 짚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요?”
넓은 회의실에 고작 세 사람, 아니지, 고경민까지 포함해서 네 명이 다라니.
한달아는 바깥을 힐끔거리며 대답했다.
“옆 회의실에서 미팅 준비 중입니다. 갑자기 시스템 오류가 나서요. 조금 지체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하무영 씨…….”
입만 꿈뻑꿈뻑. 한달아가 뭔가를 말하려는 듯 뜸 들이자, 유사하가 재빨리 선수 쳤다.
“달아 씨. 지금 공식 미팅 중인거 기억하세요.”
“네. 그런데요. 어쨌거나 미팅은 미팅이잖아요.”
“미치겠다. 진짜.”
유사하는 한숨을 옅게 내쉬고는 다시 정정해서 소개했다.
“무영 씨. 한달아 씨는 강언전자 홍보팀 팀장이고요, 제 동생 유라민 친구입니다.”
“아. 라민 씨.”
그렇구나. 하긴, 비슷한 나이대라면 친구일 수밖에 없겠다.
무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달아가 눈을 반짝이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유사하가 저지했지만 소용없었다.
“……달아야. 자리가 자리니까 제발 격식 좀.”
“무영 씨 저랑 사귀실래요?”
“넹? 싫어요.”
달아가 순식간에 핵폭탄급 발언을 던졌지만, 무영이는 방긋 웃으며 즉각 대답했다.
쩌억- 하고 달아의 심장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무영이 유사하를 돌아보자, 그가 손짓으로 작게 관자놀이를 돌려댔다. 적당히 미친 애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