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296)
신인인데 천만배우 296화
XV 광고
“어?”
상쾌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몸이 가볍다.
안재경은 누운 채로 눈만 겨우 떴다.
천장이 낯설고 희다. 그리고 유독 축축한 얼굴…….
헥헥헥.
“어어?”
죽었나, 살았나?
삼순이는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있는 낯선 남자의 상태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꼼짝 않던 몸이 움직이자, 신나서 바로 달려들어 얼굴을 핥아댔다.
안재경이 부스스 일어나자, 차은성과 하무영의 뒷모습이 보였다.
플스 게임 중인 것 같은데…….
‘이것도 꿈인가?’
너무 졸려서 솔직히 브런치 카페에서의 일도 가물가물했다.
그때, 화장실에서 나오던 엔빈이가 안재경이 일어난 걸 알아챘다.
“깼어요?”
“뭐? 깼어?”
“와. 일어나셨네요.”
“징글징글하다. 허리 안 아프냐?”
무슨 상황인지 파악 불가.
안재경은 그나마 안면 있는 엔빈을 돌아보며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했다.
“화장실부터 가요. 24시간 동안 잤으니까. 밥 먹을 때까지 안 일어나면 구급차 부르려고 했는데.”
“제가요? 하루 동안 잤다고요?”
“안재경 씨 악몽 안 꿨죠?”
어리둥절한 그에게 무영이 확신하고서 물었다.
그러자 그제야 깨달았다. 보름 가까이 자신을 괴롭혔던 검은 남자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걸.
확실히 집터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안재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시시 웃었다.
“네. 진짜 오랜만에 잘 잤어요.”
“아! 드디어 큰 소리 좀 내겠네. 하필이면 거실에서 잠들어서, 엉? 불편해 죽는 줄 알았다고.”
“죄, 죄송합니다. 차은성 선배님. 그런데 여기 무영 씨네 집 아닌가요?”
“아닌데? 내 집인데?”
“제 집 맞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무!”
“형! 골! 골골! 공격!”
“으아아악! 받아! 받아!”
그러고선 다시 게임에 열중하는 두 사람.
재경이 화장실을 다녀오자, 엔빈이는 냉장고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챙겨주었다.
아무리 봐도 집주인이 여러 명인 것 같은 이 기분.
게임에서 이긴 무영이가 테이블로 와서는 생글거리며 물었다.
“컨디션은 괜찮으시고요?”
“네. 덕분에요. 잠 못 잤다고 한 게 민망할 정도로 잘 잤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안 꾸실 거예요. 원래 그런 거 한번 끊어지면 끝이거든요. 그래도 혹시나 또 꾸면 저희 집 와서 주무세요. 터가 잘 맞나 보다. 하하하.”
무영의 친절에 안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몸과 기분이 이전과 다르다.
무겁게 짓누르던 공기가 사라진 느낌. 숨이 좀 트인다고 해야 하나?
안재경은 토스트를 씹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진짜 하루가 지났네.”
“수면 내시경 한 기분이겠다. 아하하하. 매니저분한테 전화 왔길래 제가 사정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엔빈이도 같은 회사 식구니까 오라 했구요.”
“하무. 말은 똑바로 해. 게임하러 온 거잖아.”
“겸사겸사죠. 빈이네 매니저 형하고 재경 씨 매니저님하고 같은 팀이라 하니까.”
가만히 듣던 차은성이 컨트롤러를 눌러대며 소리쳤다.
무영이는 안재경에게 주스를 따라주며 전해줬다.
“재경 씨 다른 화보 미팅 있는 거 미뤄졌대요. 특별한 일은 아니고, 스튜디오 세트 공사 때문에.”
“아.”
“며칠 스케줄 빈다고 하니까, 푹 쉬면 될 것 같아요. 하룻밤 더 자고 내일 저랑 같이 나가실래요? 데려다드릴게요.”
앙앙!
삼순이도 꼬리를 흔들며 발치를 맴돌았다.
계속 누워 있던 사람이 일어서서 움직이니까 신기하고 재밌는 눈치였다.
안재경은 게임하는 차은성과 엔빈이의 뒷모습을 힐끔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아직 더 잘 수 있을 것 같다. 보름치의 불면을 해소하기에는 모자란 시간이었으니.
“그러면 신세 좀 지겠습니다.”
“오예. 좋아요. 편한 옷 내드릴게요. 일단 좀 씻으세요. 화장실에 칫솔이랑 새것 있어요.”
무영이는 신나서 옷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차은성, 엔빈은 신경도 안 쓰며 연신 게임에 집중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맛있다.’
안재경은 그들을 구경하며 토스트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낯선 남자가 배를 긁적거리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어? 일어나셨네? 임준호라 함다.”
“예? 아, 네네. 안녕하세요.”
“하아암. 하무영!”
“왜에!”
“내 옷 네가 입었냐?”
“그거 나 아닌뎅!”
“뭔지 말 안 했거든? 이 시끼 너 맞네. 네가 입었네.”
사실 준호뿐만 아니라, 하루 동안 강이안과 폴도 왔다 간 참이었다.
안재경이 소파에서 자는 모습을 꽤 많은 사람이 구경한 셈.
‘하무영 씨가 친화력이 진짜 좋구나.’
안재경은 지금껏 봐온 연예인 중, 하무영처럼 인싸 재질이 있었나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다.
이게 대체 가정집인지, 하숙집인지 모를 정도니까.
“재경 씨. 여기요. 이걸로 갈아입으세용!”
무영이는 헤실헤실 웃으며 안재경에게 편한 옷을 건네주었다.
* * *
보름 후, 강언전자 신제품 XV12의 광고 촬영 현장.
대리석 바닥과 고급스러운 가구들. 대기업 임원의 사무실로 보이는 세트장이 세워져 있었다.
창문 뒤쪽으로는 크로마키 천이 세워져 있었는데, 송출할 각 나라의 시티 뷰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무영 씨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하무영 씨 오셨어요! 1팀 준비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넵넵. 안녕하세요.”
체중을 살짝 감량한 무영이가 스태프들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했다.
직원들과 얘기하던 한달아가 단번에 달려가서 그를 맞이했다.
“무영 씨.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팀장님. 잘 지내셨나요?”
“세상에. 살 빠진 것 좀 봐.”
“2㎏밖에 안 뺐는데용. 슈트 라인 잘 살 것 같죠?”
“안재경 씨도 도착했습니다!”
“오. 재경 씨.”
핼쑥했던 안재경은 체력 회복이 되었는지 반대로 살이 조금 올라와 있었다.
그래도 모델인지라 날렵한 편에 속했지만 말이다.
“오늘 스케줄 말씀드리면, 본촬영 있고요. 중간에 세트 교체할 건데 그때 비는 시간에는 개인 사진 촬영 있습니다. 옷 갈아입고 분장 받으세요!”
“김 실장님! 하무영 씨랑 안재경 씨 안내 좀!”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된 촬영이었다.
최대한 오늘 안에 끝내야 했기 때문에 모두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움직였다.
무영이와 안재경도 마찬가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분장을 받았다.
“모델 세팅 끝났어요!”
스타일리스트의 외침에 모든 스태프가 분장실 입구를 쳐다봤다.
길쭉하고 시원하게 뻗은 남정네 둘이 올백 머리를 하고서 안경을 손에 들고 있었다.
부드럽던 무영이의 인상이 한껏 날카롭게 찢어져 있었다.
아마 머리를 고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효과 같다.
한달아 팀장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흡!”
미쳤다, 미쳤어.
이제부터 ‘섹시’의 국어사전 뜻은 하무영이다.
저런 비서 있으면 회사에 뼈를 묻지, 아니, 자신이 비서의 비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좀 괜찮은가요?”
“괜찮다마다요. 이게 휴대폰 광고에 무영 씨를 얹은 건지 무영 씨 광고에 휴대폰을 얹은 건지…….”
한달아의 주접과 동시에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
그런데, 그냥 셔터 소리가 아니다.
찰칵.
타다다다다다. 찰칵.
찰칵. 다다다.
“……?”
연사로 수백 장을 찍어내는 소리다.
한달아가 의아하게 뒤를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이 대포 카메라를 든 채 서 있었다.
분명 [후회와 상실>에 나왔던…….
“임하늘 씨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한달아의 말에 고경민이 멋쩍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하늘은 나만의 길을 간다는 듯이 계속해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아니, 셔터에서 손을 안 뗀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이번에 임하늘 씨가 하무영 씨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거의 밀착 촬영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계약서에 명시가 되어 있을 텐데요?”
“아. 그게 이거였어요?”
한달아의 말에도 임하늘은 대꾸하지 않았다.
저 정도면 사진작가가 아니라 그냥 찍덕 아닌가?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스탠바이해 주세요!”
“하무영 씨 포커싱 먼저요! 1씬!”
“무영 씨. 대사 숙지 되셨죠?”
한달아 팀장이 임하늘을 지그시 노려보는 동안에도, 현장은 바쁘게 움직였다.
감독의 지시에 무영이 사무실 세트장 한가운데 섰다.
“아. 진짜 멋있다.”
동시에 중얼거리는 한달아와 임하늘.
두 사람의 시선이 가볍게 맞물렸고, 이내 한달아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조심스럽게 그에게 접근했다.
“저기 임하늘 씨?”
찰칵.
“혹시 [후회와 상실> 사진집 남는 거 있어요? 제가 추첨에 탈락해서 못 받았는데, 가능하다면 구입하고 싶어서요. 없다면 사진 원본이라도…….”
“사진집 남는 건 없고요, 원본 못 드립니다.”
“왜요? 돈 주고 산다니까?”
“돈 필요 없어요.”
찰칵.
“어이가 없네. 그러면 교환해요.”
“저 어지간한 건 다 있어서요.”
“WEA 런칭 행사 파티.”
“있어요.”
“서울시 홍보대사 웹 촬영 뒤풀이, R백화점 VIP 한정 패션쇼 시크릿 컷, 미국에서 입국할 때 입국 심사 대기.”
“다 있어요.”
“아니, 미친. 그게 어떻게 있어요?”
한달아가 말도 안 된다며 소리쳤지만, 임하늘은 평온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거든. 괜히 8테라겠냐고.
초 단위를 열 번으로 쪼개서 소장하고 있는 임하늘이었다.
한달아가 계속해서 임하늘 주위만 얼쩡거리자, 감독은 한숨을 내쉬며 직원을 불렀다.
“슛 들어가도 되겠어요? 팀장님 왜 저래?”
“몰라요. 하무영 씨 얘기인 것 같은데, 그냥 가시죠.”
“임하늘 씨도 유명하죠? 하무영 씨 팬인 걸로.”
“둘이 잘 맞나 봐요.”
“저러다 정들겠어.”
“네에에? 하하하. 농담도.”
직원들과 스태프들은 아등바등 애쓰는 한달아와 무시하는 임하늘을 힐끔거린 다음, 다시 집중했다.
세트에 선 무영이가 마지막으로 콘티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번 가볼까요?”
“네. 첫 컷이니까 편하게~”
“알겠습니다.”
안재경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무영이에게 응원을 날렸다.
방긋 웃는 것도 잠시. 무영이는 안경을 쓰며 비서로 변신했다.
* * *
흑백의 화면, 리드미컬한 음악과 함께 오피스 룩을 입은 여자가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서류를 뒤적이며 명령했다.
-캘리퍼. 보고.
그러자 그녀의 옆에 서 있던 하무영이 허리를 천천히 숙였다.
이어서 클로즈업되는 그의 하관.
모델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담담하면서도 여유 있었다.
-디자인 미팅 일주일 연기되었습니다. 시간은 미정입니다. 클라이언트의 회신이 늦어지고 있어 확인 메일이 필요합니다.
-시간 조율. 확인 메일 보내.
상사의 명령에 무영이 씨익 웃었다.
그는 손으로 모델의 눈을 가린 다음 다시금 속삭였다.
-이미, 완료했습니다.
하무영의 손을 따라 돌아가는 화면.
여자의 귀에는 무선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이내 하무영이 손을 짚었던 책상에는 XV12가 놓여 있었다.
모델은 만족스럽게 휴대폰 화면을 터치했다.
동시에 떠오르는 강언전자의 로고.
그리고 하나의 캐치프레이즈.
-당신의 완벽한 커리어를 위해. 그것이 곧 XV 존재의 이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