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
신인인데 천만배우 3화
테스트
시멘트가 벗겨지고 먼지가 잔뜩 쌓인 상가. 창문이 열려 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망했다고 생각했을 거다.
무영은 긴장한 표정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임준호.”
“응?”
“넌 왜 따라오세요?”
신중한 무영과 달리 준호는 싱글벙글. 무영이 계단을 발로 막으며 묻자, 친구는 이내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쪽은 원래 사기꾼 많잖아. 건물 상태도 NG고. 어리바리한 하무영이 덜컥 도장이라도 찍을까 봐 걱정되신다. 그러니까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앞장서라. 에헴.”
“놀고 있네. 내가 모를 줄 아냐?”
“으히. 으히히.”
한창 여자에 관심이 많을 나이 아닌가. 배우 준비하는 애들이니 얼마나 예쁘겠냐며, 준호는 음흉하게 웃었다.
“솔직히 나도 마스크는 연예인 감인데.”
“그치. 인생은 원래 자신감이지.”
“어쭈? 인정 안 해?”
끼익.
무영은 준호를 무시하며 학원 문을 밀었다. 바깥과 마찬가지로, 안쪽 역시 허름하다. 해진 가죽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남자가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으허!”
낮잠이라도 자고 있던 모양.
“어, 어서 오세요.”
체격이 굉장히 좋은 남자였다. 키와 체격으로만 본다면 운동선수인가 싶을 정도.
하지만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와 앙증맞게 묶은 턱수염은 그가 범상치 않은 예술혼의 소유자란 걸 짐작게 했다.
“무슨 일이죠?”
“저기, 상담을 좀 받고 싶어서요.”
“상담! 연기?”
“여기 연기학원 아니에요?”
“맞죠. 맞죠. 이리 와서 앉아요.”
그는 테이블 위의 과자봉지 따위를 치우며 안내했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곳이 아니다. 무영과 준호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여차하면 튀자.’
‘그게 좋겠어.’
“반가워요. 원장 정오석입니다. 허헛.”
둘 앞에 코코아를 내놓는 남자. 정오석은 맞은편에 앉으며 무영과 준호를 훑었다.
“상담하실 분은…….”
원장 칠 년 경력의 그가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배우는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는 게 맞지만, 연기학원을 찾는 아이 대부분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
“하무영입니다.”
“아. 이쪽이시군!”
오석은 그런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한심스러웠다. 태양에 닿겠다며 달리는 옹고집을 보는 것 같았으니.
연기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애들은 가차 없이 쳐냈고, 그 대가로 거처는 지금의 허름한 건물까지 밀려왔다.
“아주 자알- 생겼네. 세진고? 몇 학년?”
눈에 확 들어오는 훤칠한 학생. 준호도 훈훈하니 인기 있을 법했지만, 태가 달랐다. 그리고 보통 그런 애가 헛바람 잔뜩 들어 학원을 찾곤 했다.
혹여 그런 경우라면 정중히 돌려보내겠노라.
……벌써 삼 일째 라면만 먹고 있었지만.
“3학년이요.”
“이제 3학년?”
“아니요. 졸업합니다.”
“으흠. 그래요?”
시기가 영 애매했다.
연영과 준비는 보통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시작했으니까. 지금은 그 결과 당락이 나오는 계절이었다. 오석은 턱을 매만지며 무영을 가늠했다.
‘재수하는 건가? 어떤 경우지?’
입시 실패 후, 반반한 얼굴만 믿고 연기로 도피?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오석은 웃음으로 속마음을 감추며 물었다.
“연영과 준비하려고요? 재수로는 연영과보다 모델과나 다른 쪽이 쉬울 텐데.”
“아니요. 그런 건 관심 없고요. 입시와 무관하게 연기 배우고 싶습니다.”
오. 예상외로 대답이 다부지군.
이런 경우라면 오히려 기대를 걸 만했다. 중요한 시기에 연기를 선택했다는 건, 그만큼 진지하게 임한다는 방증이지 않은가.
“연기는 해보셨고?”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성인반으로 상담을 드려야겠네.”
오석은 커리큘럼 책자를 내밀었다.
“반마다 가격 차이가 있나요?”
“수준 차이라 보면 되죠. 초급 중급 고급반이 있는데 초급이 제일 비쌉니다. 아무래도 가르칠 게 많아서. 아아. 그리고 모든 수업은 제가 진행해요.”
초급반 월 50만 원. 중급은 40만 원. 고급이 30만 원이었다. 무영은 티 나지 않게 속으로 경악했다.
‘뭐가 이렇게 비싸?’
형편으로는 도저히 무리인 금액. 도대체 꽃가루는 무슨 생각으로 여기서 터져 나온 건지 모르겠다. 다닐 엄두가 전혀 안 나는데.
“고급반은 현장 오디션 도는 수준이라 보면 됩니다. 저희는 매 수업을 촬영해서 모니터로 피드백 주고받아요. 다섯 명을 넘지 않는 소수정예. 약력도 거기 적혀 있습니다.”
어느 연영과를 나와 어느 극단, 어느 드라마 출연 다수 등등.
물론 소수정예는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홍보라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오디션 합격률! BV아카데미 수강생 중 85%가-”
“고급반 수준까지는 보통 얼마나 걸리나요?”
무영은 형식적인 자료에는 관심 없었다. 제대로 배우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지.
즉, 돈이 얼마나 들어갈 것인지가 중요했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르지만, 재능 있다 싶으면 반년에서 일 년 정도 걸리죠. 보통은 입학하면서부터 준비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오석은 객관적으로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입학과 시작한다 해도 졸업 전에 윤곽이 보이는 거니까.
연예계가 비이상적으로 어린 애들을 데려다 쓰니 그것도 늦었다 취급될 뿐.
“흠.”
무영은 고심하며 턱을 괴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출혈이 너무 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끼익.
“저희 왔어요.”
“쌤쌤. 오늘 유찬이가 무슨 짓 했는지-”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너덧의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각양각색의 교복들. 꽤 먼 동네의 학교도 눈에 띄었다. 오석은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이렇게 됐냐?”
학원은 이전했지만, 오석의 수업을 받기 위해 멀리까지 오는 것이다.
무영은 그들의 교복 차림에서 그걸 알아챘다.
“먼저 들어가서 몸 풀고 있어.”
“네에. 어우, 추워서 굳었다. 굳었어.”
“오늘은 영상 수업이니까 세팅해 놓고.”
“빨리 오세요.”
격식 없이 가볍고 친근한 분위기. 오석은 무영에게 슬며시 제안했다.
“그, 아무래도 연기 수업은 실전이 중요하니까. 어찌, 한번 참관해 보겠어요?”
원장의 짬이라고 할까. 생활고에 찌든 감이라고 할까. 무영이 망설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당장 이번 달도 라면으로 버티지 않으려면 원생 등록이 간절했으니.
“그래도 되나요?”
“물론. 다른 곳에서도 다- 시범 강의 보여주고 합니다. 자자. 일어나 봐요. 시설 먼저 소개해 줄게요. 이래 봬도 있을 건 다 있으니까.”
오석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둘을 안내했다. 준호가 무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까 여자애 봤어?”
“진화여고?”
“예쁘더라.”
“좀 닥쳐. 제발.”
속닥속닥. 무영은 준호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이를 갈았다.
안쪽은 생각보다 넓었다. 있을 건 다 있다는 오석의 말이 허풍은 아니었다.
“연습실은 두 개. 수업하는 곳과 자율 연습하는 곳이고요. 탈의실과 샤워실도 있죠. 어지간한 조리도 가능. 대신 먹으려면 나도 한 입 줘야 해요. 하하.”
왜냐하면, 그의 집이 곧 여기였으니까! 보증금 싹 빼서 아카데미에 올인했거든.
“지금 들어갈 수업은 중급반인데, 다 연영과 지망생들이에요. 발표 난 애들도 있고, 아직 기다리는 애들도 있고.”
확실히 허름하지만, 관리 자체는 잘 된 시설. 오석이 연습실 문을 열었다.
딸깍-
“아아아아-”
“아에이오우아에!”
각자의 방식대로 몸과 입을 풀고 있는 학생들. 오석은 의자 두 개를 구석에 놓아주며 말했다.
“그럼 편하게 구경해 봐요.”
“감사합니다.”
“자자! 다들 몸 풀었지?”
“쌤! 너무 추워요. 보일러 좀 틀어줘요!”
“짜식이. 제대로 안 풀었으니까 춥지.”
무영과 준호는 가방을 끌어안은 채 뒤편에 자리 잡았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시작하는 수업.
“어떤 연기든 근육 쓰는 게 중요하니까, 스트레칭은 필수로 습관 들여놔.”
딸깍.
오석은 아이들이 마무리하는 동안 노트북과 TV를 연결했다.
마우스를 몇 번 움직이자, 화면에서 유명한 로맨스 영화 한 장면이 나왔다.
서로의 발등을 포개며, 사랑스럽게 꼼지락거리는 발가락들.
“이렇게 감정 연출 방식으로 신체 일부 클로즈업은 정말 많이 쓰인다. 보통은 눈을 제일 선호하지. 표정의 근간이고 직관적이니까. 물론 익스트림으로 눈동자만 잡으면 또 달라지겠지만. 어쨌거나!”
무영과 준호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살면서 연극 수업 듣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처음 접하는 신세계와 같았다.
“이어서 다음.”
오석은 계속해서 다양한 클로즈업과 그걸 통한 감정 연기 사례를 보여줬다.
“오늘 우리가 연습할 부분은 손이다. 손으로 사랑 혹은 분노 둘 중 하나를 표현해 봐. 시간 제한은 없음. 소품 사용 가능. 대사 가능. 하지만 대사는 감정선을 이끄는 도구로만 쓸 것. 앵글은 손만 잡는다. 그 말의 뜻이 뭐겠어?”
“소리 없이 봐도 감정이 느껴져야 한다고요.”
“빙고. 말 나온 김에 유찬이 먼저 해볼까?”
대답한 남자아이의 이름은 기유찬. 서글서글하고 시원한 눈매를 갖고 있었다. 웃는 모습이 참 청량하다.
“어떤 거 할래?”
그가 낡은 카메라 앞에 섰다. 모든 수업 과정은 영상으로 남기고 당일 피드백이 필수. 무영은 모니터 속 기유찬을 지켜봤다.
‘화면빨이 잘 받네.’
“분노요.”
아무래도 더 격렬하고 자극적인 감정이라 표현하기 쉬울 것이다.
원장은 예상했다는 듯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눌렀다.
“액션!”
기유찬은 두 손을 맞잡았다. 앵글에는 손만 찍히고 있지만,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얼굴에도 서서히 분노가 서렸다.
아드득-
시원하게 울리는 뼈 소리. 그는 책상 위에 손을 올렸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에서, 차마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콰앙!
그리고 힘차게 내려치기까지.
“오케이. 컷.”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적당한 연기. 칭찬할만한 점이라면 대사 없이 해냈다는 정도겠지.
“다음은 강보라.”
진화여고 걔다. 긴 생머리에 도회적인 외모. 부잣집 딸처럼 귀티가 줄줄 흐른다. 준호가 주접떨려는 시동을 걸자, 무영이 허벅지를 꼬집었다.
처억.
보라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옷깃을 잡아 쥐었다.
기유찬이 거칠고 폭발하는 느낌의 분노였다면, 강보라는 신경질적인 부아를 중점으로 표현했다.
“오케이. 컷. 다음.”
학생들은 대부분 분노를 선택했고, 거의 비슷한 모션을 취했다. 뭔가를 부수고, 때리며, 흔드는.
화면으로 그걸 지켜보던 오석이 문득 뒤를 돌아봤다. 신기한 듯 집중한 무영의 눈이 반짝이다 못해 빛나고 있었으니.
“하무영 학생이라 했나요?”
“네?”
“혹시 지금 카메라 테스트해 보겠어요?”
낯선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용기. 그것 자체가 이미 테스트의 한 관문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연기를 한 번도 안 해봤다 하니, 기대하지는 않지만.
“초급반 수업은 내일 있어서.”
초급반에서는 발성과 간단한 대사 읊기 따위의 정말 기초적인 걸 확인했다. 무영은 머뭇거리며 카메라 앞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와아- 잘 생겼다!”
“훤칠하다!”
무영이 꾸벅 인사하자, 학생들이 환호해줬다. 본인들의 시작도 다 저랬으니까. 오석은 팔짱을 끼며 모니터를 지켜봤다.
‘화면빨이 안 받네.’
실물이 훨씬 괜찮다. 아직 카메라 앞에 서는 법을 몰라서 그럴 것이다.
“뭐 해볼래요?”
분명 분노겠지, 라고 오석이 생각한 순간.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랑을 해보겠습니다.”
“오오오-”
다들 또래다 보니 반응 하나는 좋다.
“도구 써도 된다 하셨죠?”
“편한 대로.”
말 그대로 테스트니까.
무영은 가만히 서 있던 준호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봐.”
“나? 싫어.”
“아 빨리.”
“뭐래. 싫다니까.”
그저 시선이 몰리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준호는 벌게진 얼굴로 극구 거부했다. 그걸 보던 보라가 자신해서 일어섰다.
“사람 필요한 거면 제가 할게요.”
빨리빨리 해야 피드백을 받을 거 아닌가. 무영은 준호를 한번 노려본 다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액션!”
모니터에 집중하던 오석의 눈이 점점 커졌다. 연기에 집중한 무영의 옆 태가 아까와 달리 훨씬 살아났기 때문이다.
‘뭐지?’
무영은 보라와 마주했다.
몇 초간, 계속해서.
그리고 이내 미소를 띠며 보라의 입가에 엄지를 가져다 댔다. 세상 소중하다는 듯 아주 조심스럽게.
‘어쭈? 저것 봐라?’
‘얘 뭐야?’
어떤 대사도 없이.
그 손이 보라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묘한 적막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곤, 열렬한 사랑의 구애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