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01)
신인인데 천만배우 301화
합격과 불합격
“여기 맞아?”
“넹. 주소는 맞는데요.”
고경민이 차를 갓길에 세우고 의아하게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시장 어귀로 들어서는 골목. 안쪽에는 작은 식당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빛바랜 간판이 세월을 짐작하게 했다.
무영이는 안전벨트를 풀며 가방을 챙겼다.
“가방은 왜 들고 가? 뭐 챙겼어?”
“네. 이것저것이요. 회장님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요. 형도 식사하세요.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그래. 밥 맛있게 먹어라. 뭔지 모르겠지만,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근처에 차 댈 곳이 있었나? 흐음.”
무영이는 차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강언전자의 한대식 회장을 만나는 날이었다. 비서가 전하기로는 무영이 덕분에 XV 판매량이 급증해 음식 대접이라도 하고 싶다 하셨는데…….
약속 장소가 뜻밖인 건 사실이었다.
“아. 저긴가 보다.”
인기척이 거의 없는 조용한 골목. 검은 정장 입은 남자들이 국밥집 앞에 진을 치고 서 있었다.
무영이가 쪼르르 달려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무영이라고 합니다. 한 회장님이랑 식사 약속 있는데요.”
“어서 오십시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넵. 감사합니다.”
드르륵.
박스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유리문. 경호원이 문을 열어주자, 낡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회장이 모습을 보였다.
“하무영인가?”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노쇠하여 바짝 마른 몸이었지만, 아우라 하나만큼은 압도적이다.
호랑이라고 해야 할까. 희고 긴 눈썹과 달리 눈동자가 새까만 터라 비범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히 대한민국의 경제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앉게.”
“여기 진짜 오래됐나 봐요. 회장님 단골이세요?”
하지만 무영이는 그저 식당 안을 돌아보기에 바빴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쭈뼛대며 기죽을 줄 알았는데, 그는 넉살 좋게 식당 주인을 찾으며 인사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여기 맛집 맞죠?”
“으잉. 맞지. 50년 안 죽고 버텼으면 맛집이여.”
“와아. 대박. 회장님은 뭐 드세요?”
“한 회장님! 뭐 시킬 건데?”
막역한 사이인 식당 주인이 소리치자, 회장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무영이를 쳐다봤다.
“돼지 먹나?”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돼지 둘!”
무영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한 회장을 구경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사람을 실제로 보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반면, 한 회장은 무영이를 신제품 뜯어보듯 세밀하게 관찰했다.
‘달아가 쫓아다닐 만하구먼. 뻔지르르한 게.’
잘생겼다는 뜻이다.
엄한 놈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 터.
한 회장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물었다.
“이런 곳으로 불러서 불편한 건 아니겠지?”
“이런 곳이 뭐 어때서요? 분위기 있고, 전 너무 좋아요. 깍두기 덜어놔도 돼요?”
한 회장은 그제야 하무영의 캐릭터가 만만치 않음을 알아챘다.
대부분 재계 1위 회장인 그를 만나면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어려워 하거나 혹은 되지도 않는 알랑방귀를 뀌어대거나.
하지만 하무영은 그저 진짜 ‘할아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깍두기라니…….
“그래, 크흠. 그, 하무영이 자네 덕분에 XV12 매출이 아주 잘 나왔다고 하더군.”
“아니에요. 휴대폰이 워낙 잘 나와서 그래요. 광고가 좋아도 물건이 쭉정이면 팔리겠어요? 참. 회장님, 이것 좀 보세요. 요즘 유행하는 배경 화면인데요, XV랑 잘 어울리죠?”
“으잉? 어디?”
“이렇게 말풍선 배경 화면 해놓으면 진짜 AI가 지령 내려주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거 참나, 깜찍하네그려.”
“아하하. 그렇죠?”
무영이의 웃음에 한 회장은 정신을 번뜩 차렸다.
페이스에 말릴 뻔했다. ‘그’ 한대식이가! 맨몸으로 시장 바닥에서 출발해 대한민국 정점에 오른 그 한대식이!
‘만만치 않은 놈이군…….’
단순한 제 손녀 한달아를 구워삶는 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사람 보는 눈 만큼은 정확하다 자부하는 한 회장 아니던가.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했지?”
“네. 어릴 때 다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고생 좀 했겠어. 배우 일은 좀 맞고?”
“너무 좋아요. 천직이라 생각될 정도로요. 회장님 어렸을 때 처음 나물 팔아서 돈 벌었을 때요. 그때, 동전만 봐도 배불러서 며칠 동안 밥 안 드셨다면서요.”
물을 마시려던 한 회장이 멈칫거렸다.
쟤가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달아가 말했나?
“저도 그래요. 작품만 봐도 시간 쭉쭉 가고 배부르고 행복해서 막 뒹굴고 싶고. 하하. 이만하면 운 좋게 좋아하는 걸 찾았죠.”
“자네, 그 얘기는 달아한테 들었나?”
“어라? 회장님, 자서전에 나와 있던데요?”
무영이는 그 말과 함께 가방을 뒤적거려 책 한 권을 꺼냈다.
[단군 이래 대한민국 최고 부자>라는 거창한 제목. 바로 한 회장의 유일한 자서전이었다.“저 이걸로 도움 많이 받았어요.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중요하다’랑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제일 쉬운 일이다’ 그리고 ‘의미 있는 일 앞에서는 돈을 낙엽처럼 태울 수 있어야 한다’. 아 물론, 마지막 말은 한창기 선생님이 하신 말이지만 회장님의 경영 철학에 큰 영향을 줬으니까요.”
한 회장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자서전에 놀란 눈치였다.
사내 배포용으로 제작해서 전국에 딱 천 부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수십 년 전 일이라 본인도 없는 책이었다.
“자네 이거 어디서 났나?”
“중고 서점에서요.”
“허허. 참말로…….”
“아차차. 저자 만났으니 싸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무영이 마카펜을 건네며 웃자, 한 회장은 멀뚱히 그의 얼굴만 쳐다봤다.
그러곤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치며 외치는 한마디.
콰앙!
“합격!!”
“넹?”
비서실장이 무슨 일인가 하고 안쪽을 살필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상기된 얼굴로 책에 싸인하고 있는 한 회장을 보고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래. 이런 거지. 알랑방귀를 뀔 거면 성의라도 있게 하는 게 맞지!”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래에 날짜도 적어주세요.”
“그래그래. 이름도 적고, 다 적어주…… 아니지. 이거 나한테 팔면 안 되겠나?”
한 회장이 싸인하던 것을 멈추었다.
자서전이라고는 인생에 딱 한 번밖에 안 냈는데, 정작 본인은 없었으니까.
“이거 나 주게.”
“안 돼요. 회장님. 저도 하나밖에 없어요.”
“나는 하나도 없어!”
“어어어? 돌려주세요. 헉. 진짜 안 되는데!”
“그러면 나도 싸인 못 해주이!”
“괜찮아요. 이미 반쯤 하셨네.”
“자네, 정말 이럴 거야?”
콰앙!
노닥거리는 두 사람 앞에 돼지국밥 두 개가 놓였다.
식당 사장님은 무영이를 힐끔 본 다음, 음료수 한 병을 서비스로 내주었다.
“가기 전에 싸인 한 장 해주고 가.”
“넵. 서비스 감사합니다.”
“아니, 자네. 나 50년 단골인데 소주 한 병 서비스로 안 주더만, 너무한 거 아니여?”
“돈도 많으신 양반이 서비스 받아가 어따 쓰실라고?”
무영이는 따끈하게 올라오는 국밥 냄새를 맡으며 배를 부여잡았다. 안 봐도 뻔했다.
이거, 인생 국밥이겠구나!
“잘 먹겠습니다! 회장님, 어서 먼저 뜨세요.”
“책 준다고 하면…….”
드르륵!
그때였다. 문이 갑자기 열리며 한달아가 나타났다.
“할아버지!”
“어이구, 깜짝이야. 심장 떨어지겠다, 욘석아!”
“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원.
한 회장은 숟가락으로 비서실장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쯧쯧. 이리 보안이 엉망이어서야.”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니이이! 무영 씨랑 밥 먹을 거면 나도 불렀어야지! 왜 할아버지랑 둘이서만 쏙 먹냐고요!”
“시꺼! 돼지국밥 먹지도 않음서.”
“딴 거 먹으면 되죠. 하늘 씨 빨리 들어와요.”
한달아는 가방을 벗으며 뒤를 쳐다봤다.
임하늘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쟈는 또 누군데?”
“임하늘 씨라고, 무영 씨 동료고 배우예요. 요즘 제 선생님. 하늘 씨. 이쪽으로 앉아요.”
한달아가 임하늘의 팔을 잡아끌며 의자를 챙겼다.
순간, 한 회장의 눈빛이 다시금 형형히 빛났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것이다.
“임하늘이라고?”
“네. 처음 뵙겠습니다.”
“…….”
서글서글해 보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이상하게 ‘그냥’ 마음에 안 들었다.
아마 제 손녀의 어깨가 아주 자연스럽게 임하늘과 맞닿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회장이 눈이 희번득 빛나자, 임하늘이 무표정으로 맞대응했다.
“왜 그렇게 보시죠?”
“넌 불합격!!”
콰앙!
느닷없이 불합격 딱지를 받은 임하늘.
임하늘은 그러거나 말거나 덤덤하게 한달아의 앞에 수저를 놓아주었다.
“그거 아쉽습니다.”
“에잉, 쯧쯧! 땡이야, 땡!”
촉이라는 게 제대로 섰다.
손녀 한달아의 인생에 있어서 하무영보다 임하늘, 저놈이 뭔가 걸리적거릴 것이라는 게.
하지만 그 자리의 누구도 한 회장의 꼬장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달아 씨도 국밥 먹습니까?”
“전 안 먹어요. 싸장님! 저는 국수요!”
“어이고, 달아 오랜만에 오네. 잘 지냈어?”
“회장님, 그만 책 돌려주세요오…….”
“아니,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물건 욕심이 많아!?”
“그거 제 거니까융…….”
왁자지껄, 사람 없는 시장 바닥에서 유일하게 사람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다.
앞에서 대기하던 경호원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장님이 임자 제대로 만나신 것 같네.”
“쉿. 들으실라.”
“저희 목소리 들리지도 않으실 겁니다.”
경호원의 말에 비서실장 역시 동의한다는 뜻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회장의 스케줄과 회사 업무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아. 벌써 날짜가 이렇게 됐네.”
하무영의 새 작품 [그 대로, 고양이> 방영에 맞춰 XV12 새 컨셉 광고가 공개되는 게 다음 날이었다.
* * *
-왔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그날이 왔어요ㅠㅠㅠ
-[그 대로, 고양이> 첫 방 10분 남았음 너무 떨려…….
-진짜 주야장천 XV 광고만 나오네ㅋㅋㅋ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게 바로 저런 건가?ㅋㅋㅋㅋ
-님들 그나저나 서연대 후기 올라온 거 보심?ㅋㅋㅋ
-무대 위에서 춤추는 거 차은성이라며? 화질구지라 제대로 안 보이던데 몇 화쯤 돼서 나올까?
-글쎄다 중반은 가야 할 것 같은데
-사전 제작 했으니까 기냥 다이렉트 16시간 풀로 갈기면 안 되냐?ㅅㅂ 일주일에 2시간씩 감질나서 어떻게 살라고ㅅㅂㅅㅂ
└아직 첫 방도 안 했는디요?
└웹툰처럼 미리보기 있었으면ㅋㅋㅋ 테잌 마이 머니!!
-믿고 본다 하무영 기대한다 솔예인[3
-(기다리다 죽은 자의 댓글입니다 종방하면 알려주세요).
-세상이 말세다 대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다 큰 어른이 티비에서 애옹애옹 이러는 것이냐옹
└ㅋㅋㅋㅋㅋ돌았냐옹
└예고편 야옹 듣자마자 네발로 걸었음;
└난 그루밍까지 했는데?;
└다들 제정신 아니시네요 동물 병원 가세요
-하무영 보고 제정신인 사람 나오라 그래 정신 나가게 해줄라니까
-이제 진짜 한다! 마지막 광고다!
[그 대로, 고양이> 방송 직전까지 계속 올라오던 댓글이 순식간에 멈췄다. 마치 오류라도 난 것처럼 말이다.그 시각, 방송국에서 시청률 집계를 진행하던 직원이 커피를 홀짝이며 눈을 비볐다.
“어? 이거 뭐야?”
“왜 그래?”
“오류 난 거 아니죠?”
“……?”
근무한 지 6년 만에 처음 보는 1화 시청률.
직원 둘은 안경을 고쳐 쓴 채 화면에 코를 갖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