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04)
신인인데 천만배우 304화
사랑
땅땅땅!
“일어나세요! 기상!”
무영이는 냄비 바닥을 국자로 치며 거실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깨웠다.
흠칫 놀라며 일어나는 차은성과 오랜만에 잘 잤다는 듯 기분 좋아 보이는 유사하. 그리고 일어날 생각이 안 보이는 엔빈.
“으으…… 뭔데…….”
“좋은 아침이에요. 무영 씨.”
“헉. X바.”
차은성은 자신이 유사하와 이불을 같이 덮고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것 같아 보였다.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 거실 한가운데로 굴러갔다.
유사하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여기서 면허 있으신 분?”
“면허요?”
무영이의 질문에 유사하와 차은성이 손을 들었다.
엔빈이는 면허가 없는 것인지, 못 들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오늘 한가하신 분?”
“음. 저는 오후에 미팅이 있네요.”
유사하는 아쉽다는 듯 휴대폰을 흔들며 웃었다.
밤사이 비서에게 수많은 보고서가 문자화되어 들어와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한 명.
무영이가 국자를 휘두르며 결의에 찬 포즈를 취했다. 마치 ‘너로 정했다!’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처억!
“……나는 삼순이랑 놀아야 하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귀찮은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차마 없는 걸 지어낼 수는 없는 노릇.
차은성은 겨우겨우 변명을 쥐어짜 냈다.
“쓰, 쓰레기도 비워야 하고, 넵플도 봐야 해.”
“형. 우리 해장 좀 하고 드라이브 가요. 삼순이도 데리고 가면 좋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저녁도 밖에서 먹고요.”
“놀러? 어디?”
“아아. 부러워라. 무영 씨 꼭 오늘 가야 해요? 이번 주말이면 나도 시간 낼 수 있는데.”
놀러 간다는 말에 차은성의 눈이 댕그래졌다.
가만 듣던 유사하도 셔츠 소매를 정리하며 끼어들었다.
몸단장만 슥슥 했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는 비즈니스맨의 태가 살아났다.
“최대한 빨리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유 대표님은 다음에 가요. 그나저나, 다들 해장으로 뭐 하실래요? 시킬까요, 아니면 라면 끓일까요?”
“라면 끓이죠. 제가 할게요.”
“대표님 라면 끓일 줄 아세요?”
“아마도요?”
“……제가 하겠습니다. 땡초 팍팍! 계란 탁탁!”
“오오오. 기대할게요.”
유사하와 무영이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차은성은 냅다 다시 이불을 가져와 몸으로 돌돌 말았다.
그리고 삼순이를 껴안은 채 휴대폰을 찾았다.
전날의 [그 대로, 고양이> 여파로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가 수백 통이나 들어와 있었다.
차은성은 일부러 무시하며 무영이를 불렀다.
“하무! 그래서 어디 가는데? 맛집이라도 찾아보게!”
“강원도 봉읍리요!”
“봉읍리? 거기 뭐 있다고?”
차은성의 말에 무영이는 고개만 빼꼼 내밀고 웃었다.
잘은 몰라도 그곳에 무영이의 존재 의미가 있는 거라는 건 확실했다.
* * *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벗어던지고~”
앙앙!
차은성이 운전하는 동안, 무영이는 삼순이를 안고서 창밖의 바람을 맞았다.
평일의 오후라 그런지 도로도 한산해서 딱 좋았다.
“할머니 전화는?”
“계속 안 받으시는데요.”
무영이는 출발 전에 편지에 적힌 번호로 연락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무작정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
결국에는 봉읍리 마을 회관에 전화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아이고 연천댁 말하는갑네. 갑녀면 우리 마을에 한 명밖에 없지. 그집 손녀가 병원에 있어가 매일 그서 먹고 자고 하느라 집에는 거진 없다. 병원? 저기 읍내로 나가면 제일 큰 거, 군에서 제일 좋은 종합병원 하나 있다.
그리하여 두 사람과 삼순이가 향하는 곳은 깁갑순 할머니와 팬분이 있으실 것으로 추정되는 종합병원이었다.
차은성은 능숙하게 주차한 다음, 삼순이를 꼭 껴안았다.
“순이순이. 조금만 기다려.”
“창문 조금 열어놓고 가요.”
앙앙!
삼순이는 잘 다녀오라는 듯 뒷좌석에 엎드려 꼬리만 흔들어댔다.
한산한 종합병원. 확실히 시골이라 그런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무영이는 접수처로 가서 꾸벅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데요.”
“사람이요?”
“김갑순 할머니랑 손녀분이요. 열일곱 살인데 교통사고 당해서 장기 입원해 있다 들었어요.”
“환자 개인정보는……어?”
알려줄 수 없다며, 거절하려는 찰나. 직원은 남자가 하무영인 것을 알아챘다.
이내 뒤에서 선글라스를 벗는 남자는 차은성이다.
“어머!”
“제가 막 찾으려는 게 아니라요, 저를 부르셨는데 연락이 안 돼서 그렇거든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하무영이랑 차은성이네!”
“누구? 하무영이랑 차은성?”
“둘이 여긴 왜?”
직원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고 가던 환자들도 몰려들더니, 무영이와 은성이에게 아는 체를 해왔다.
“왐마야, 가네! 그 테레비에 나오는 머스마들.”
“사극 있다 아인교, 왕이랑 신하 기 싸움하는 거.”
“맞다. 칼의 궤다! 내가 그거 애청자다!”
“손 한번 잡아봅시다. 아이고야, 인물 훤하다.”
“이짝은 어제 티비에서 춤추더만? 가수 아니었어?”
“할매요. 배웁니다. 배우. 우리나라 최고 배우!”
왁자지껄, 순식간에 로비가 엉망이 될 정도였다.
무영이와 은성이는 몰려드는 환대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악수를 해드렸다.
“그나저나 무영 씨, 누구 찾아오셨다고요?”
“김갑녀 할머님이요. 손녀가 열일곱 교통사고…….”
“아아아. 그 애기, 7층 가면 된다!”
“702호! 안쪽에서 두 번째 침대!”
직원 대신 몰려든 어르신들이 병실을 알려주었다.
워낙에 오래들 계셨는지, 병원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짝 아도 참 딱하지. 왜, 학교 가는 길에 안 그랬다 아인교.”
“도로 만들어 준다드만 말만 말만 벌써 몇 년째.”
“아마 거기서 사고당한 애들이 꽤 있을 긴데?”
무영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어르신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듣자 하니, 워낙에 시골인지라 학교로 가려면 인도가 제대로 없는 도로를 걸어야 했던 모양이다.
가드레일도 뭐도 없이 그저 옆으로는 깎인 능선이니, 차와 함께 수 미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는 게 사고의 전말이었다.
띵동!
“절로 가면 된다. 절로.”
“감사합니다. 어르신들, 쾌차하세요.”
“아야. 참말로 예쁘네. 어여 가라.”
“넵.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가 7층에 도착하자, 어르신들이 몸을 반쯤 내밀며 길을 알려주었다.
간호사들 역시 놀라서 웅성거리기는 마찬가지.
무영이는 은성이를 돌아보며 웃었다.
“음료수 말고 딴걸 사 올 걸 그랬나 봐요. 다인실이라 사람이 많네요.”
“됐어. 제일 무난한 거 해.”
똑똑.
무영이는 심호흡하며 병실 문을 열었다.
간이침대에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눈만 깜빡거리더만, 이내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김갑녀 할머님?”
“세상에야, 왐마야…….”
“전화 안 받으시더라고요. 편지 주셨죠?”
할머니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차은성 역시 따라 들어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휴대폰이, 아이고, 소담이 드라마 틀어준다고 했더니만 전화 온 줄도 몰랐네.”
무영이는 침대에 눈 감고 누워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침대 발치에는 ‘김소담’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고 있는 건가요? 나중에 다시 올까요?”
“아니요. 얘가 종일 무영 씨 나오는 드라마만 들어요. 사고 나기 전에도 팬이었는데, 병원에 와서는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니 뭐 할 게 없지요. 움직이는 것도 성하길 하나…… 드라마만 백번 천번 듣고 있어요.”
가끔 간헐적으로 발작이 오기도 한다는데, 그럴 때면 더더욱 무영이의 영상을 찾는다고 했다.
무영이는 침대에 살포시 걸터앉아 소담이 왼쪽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을 뺐다.
움찔, 소담이가 힘겹게 손으로 침대를 더듬거렸다.
살짝 뜬 눈은 빛이 완전히 바래 있었다.
이어폰이 빠졌다고, 도음을 요청하듯 소리 내는 신음이 가슴 아팠다.
“소담아, 안녕.”
무영이는 그 손을 붙잡고 조용히 속삭였다.
순간, 굳어버린 소담이는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아무것도 없던 아이의 얼굴에 표정이라는 것이 살아났다.
놀라면서도 당황스럽고 이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안녕 소담아. 나 하무영이야.”
“…….”
“반가워. 소담이가 나 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갑자기 찾아오게 됐어. 놀랐지?”
“…….”
소담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무영이는 아이의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지게 했다.
반듯한 이마, 눈썹, 눈두덩이, 콧날, 입술 그리고 턱선까지.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무영이의 얼굴을 손끝으로나마 그릴 수 있게끔.
“소담아, 고마워. 소담이가 나를 보며 힘낸다고 하니까 나도 너무 힘이나. 정말정말 고마워.”
“…….”
“우리 같이 행복하자.”
무영이도 손으로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누군가의 버팀이 된다는 게, 이토록 가슴 아프고 고마운 일일 줄은 몰랐다.
지켜보던 할머니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이는 무영이의 손바닥에 볼을 비비며 계속 굵은 눈물을 흘려댔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환청을 듣는 건 아닐까.
무영이는 이어폰을 완전히 정리하고, 소담이의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 [칼날의 궤> 4화가 일시 정지되어 있었다.
“[칼날의 궤> 제일 좋아해? 은성이 형도 같이 왔어.”
“안녕, 차은성 여기 있다.”
그리고 차은성도 무영이처럼 얼굴을 기꺼이 내주었다.
소담이가 활짝 웃으며 두 손으로 차은성의 얼굴을 매만졌다.
머리카락까지 사락사락, 직접 보지 못해 너무 아쉽다는 듯 손길이 애틋했다.
“녹음할 테니까, 들으면서 언제나 즐거웠으면 좋겠어. 무슨 얘기 해줄까? 드라마 대사? 아니면 노래?”
“하무 음치라서 안 돼. 차라리 내가 노래할게.”
“참나, 형. 이제 아니거든요? 그거 다 과거거든요?”
“소담아, 믿으면 안 된다. 최애가 하는 말이라고 다 믿으면 안 돼.”
소담이를 두고 옆에 앉은 무영이와 차은성이 도란도란 수다를 떨어댔다.
소담이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 저으며 의사를 표현했고, 이내 사고 이후 처음으로 숨을 거칠게 들이마시며 웃었다.
목소리를 잃은 터라 깔깔깔 울리는 웃음은 아니었지만, 소담이가 즐거워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아이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가 눈시울을 붉히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병실 앞에서는 소문 듣고 온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차은성이랑 하무영이 왔다며?”
“대단하네, 여기까지.”
“손녀딸이 팬이라고 와서 만나는 겨?”
찰칵! 찰칵!
무영이는 바깥이 시끄러워지는 걸 알아채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차은성도 마찬가지. 뒤를 돌아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래 있고 싶지만, 계속 소란스러우면 자리를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환자들의 휴식 역시 중요하니까.
띡.
“소담아. 아픔 이겨내고 살아줘서 고마워. 많이 힘들겠지만, 그 이상의 행복이 있을 거라 생각하자. 내가 계속 응원할게. 우리 또 만나. 다음에는 같이 밖에 산책도 나가자.”
무영이의 말에 소담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금 무영이의 얼굴을 더듬으며 웃었다.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영이는 확실히 깨달았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그리고 의미를.
“우리를 위해서, 나 계속 열심히 할게. 앞으로도 지켜봐 줘. 고마워.”
소담이는 더듬더듬, 무영이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그렸다. 작은 하트였다.
무영이는 활짝 웃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너의 사랑에 보답하겠노라,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