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12)
신인인데 천만배우 312화
Firefighter_소방관
“……소방관 영화다.”
무영이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대본을 들었다.
다른 것들은 보지도 않고 바로 선택하는 게, 꼭 운명에 이끌리는 몸짓 같았다.
유사하가 나머지 대본을 차곡차곡 정리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전체적으로 드물긴 하죠? 어느 매체에서나.”
“네. 그러고 보니 딱 생각나는 영화가 없어요.”
“왜, 한 십 년 전인가? 재난 영화 한창 인기 많을 때 편승해서 하나 나왔었지. 그때는 신파가 무조건 섞여 있어서 상황만 다르고 다 똑같은 내용들이었어.”
“한번 봐야겠네. 흥행은 했어요?”
“사백만 넘겼지. 근데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어.”
“헉. 사백만이나 찍었는데…….”
무영이가 놀라서 대본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그러자 가만 듣고 있던 유사하가 슬쩍 손을 들었다. 민망한 웃음기를 머금은 채.
“네. 그때 투자 손실 난 사람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 십 년 전에도 대표였어요?”
“아니요. 그때는 개인적으로 투자했었죠.”
“와아. 그런데 그렇게 되셨구나.”
“망한 건 아니었고요, 아쉬운 정도? 오십 억 정도 넣었는데 원금 조금 못 되게 회수했었죠.”
그렇구나. 무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 듣고 있다가 멈칫거렸다.
십 년 전이면 대표님 몇 살 때지? 그때 개인적으로 오십억 투자를……?
“대표님은 정말 엄청나시네요.”
“네? 뭐가요?”
무영이 말없이 엄지를 치켜들어 주자, 유사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웃기만 했다.
차은성 역시 눈을 부라리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돈이 졸라리 많이 드는 장르라 이거임. NG 나면 말 그대로 곡소리 나는 거고.”
다시 촬영을 이어갈 수 있는 여타 촬영과 달리, 화재 현장은 무조건 한 번에 가야 하지 않나. 태워 먹은 걸 다시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그게 여의치 않으면 CG를 써야 하는데…….
“어설프게 할 거면 안 하는 게 나아.”
“오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차! 은성 씨.”
“……싸우자는 건가?”
“하하. 그럴 리가요. 사실 그때 영화 실패 요인 중 하나가 조잡한 CG였어요. 나름 돈 좀 발랐다고 생각했는데 개봉해 보니까 영 별로였었죠. 당시에는 기술력도 그렇고, 한국에서 작업하는 게 영 가성비가 안 맞았어요.”
게다가 재난 영화가 한창 인기 있던 장르인지라, 지진, 화재, 해일, 정전 등 상황만 달라지고 다 똑같은 내용에 똑같은 캐릭터, 똑같은 신파. 여러모로 망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잔뜩이었다.
“그런데 이 대본은 대표님이 직접 고르신 거예요?”
“네. 제작사에서 검토 좀 해달라고 올라왔는데 괜찮아 보여서 제가 채 왔어요. 무영 씨 먼저 보여주고, 아니면 다음으로 넘기려고요.”
“예전에 망한 거 생각나서 재도전 중인가?”
“맞아요. 차! 은성 씨는 역시 저를 잘 아시네요.”
한마디 던졌다가 본전도 못 건진 차은성.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제 머리만 쥐어뜯어 댔다.
하지만 무영이와 삼순이, 심지어는 가만히 듣고만 있는 고경민조차 개의치 않아 보였다.
“투자 결정은 이미 났어요.”
“캐스팅도 전인데요? 감독님이 누구시기에…….”
“아. 감독도 아직이에요.”
“네?”
무영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보통은 감독이 정해지고 배우가 캐스팅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일종의 기획 영화죠. 저 솔직히 놀랐어요. 무영 씨가 이걸 먼저 집어서.”
상업적인 흥행을 위해 제작사에서 프로듀싱하는 영화를 뜻했다.
특히 소설 원작인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형식이었는데, 제작사 측에서 영화화를 결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가 정해지곤 했다.
“지금 제안 넣은 곳은 우소영 감독님, 장권연 감독님 이렇게 두 분이에요. 우소영 감독님은 이전에 [패킹 시리즈 3>을 연출하셨고, 장권연 감독님은 [조선검사> 하셨던 분이에요.”
두 분의 개성이 확연히 달랐다.
[패킹 시리즈 3>는 화려한 액션과 신선한 연출 등으로 호평을 받았던 오락 영화고 [조선검사>는 감각적이고 섬세한 연출로 인상 깊은 작품이다.“두 분 다 무영 씨한테 대본 간 거 알고 있어요.”
“아. 정말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유사하는 슬쩍 다리를 꼬며 웃었다.
“이건 무영 씨를 위한 영화라고 볼 수 있죠.”
“개똥이. 하무 위한 거면 좀 적당히 할 만할 걸 갖고 오든가. 애 쌔가 빠지게 구르게 생겼구먼, 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소방관! CG가 있다 한들 진짜 말도 안 되게 힘들 것은 자명했다.
현직 소방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할 정도로 구르고 또 굴러야 하겠지. 작품 준비 기간에는 몸을 만들거나 체력을 단련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한마디로, 개고생 확정이라는 거다.
“그럼 은성 씨가 할래요? 주인공은 한 자리뿐이라 무영 씨 밀어내야 하는데.”
“말이 왜 그렇게 돼? 미쳤어? 난 안 해.”
“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이거 작품 진짜 괜찮은데.”
“어느 부분이요?”
무영이도 대본에서 나오는 꽃가루를 봤으니, 결과론적으로 그것이 좋은 작품임은 안다.
하지만 유사하가 느낀 포인트를 따로 알고 싶었다.
“일단 러브 라인이 없다는 것.”
“아, 그래요? 조연도요?”
“조연도 없어요. 신입 소방관인 주인공 한 명이 이끌어가는 내용이에요. 러브 라인이 빠지니까 자연적으로 신파가 중화되더라고요. 상황적인 감동보다는 주인공 한 명에게 맞춰진 감동이라고 보면 돼요. 내가 설명을 잘하고 있나 모르겠네.”
“……어떻게요?”
“저희 가면 편하게 집중해서 읽어보세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집필 마음가짐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오락 영화긴 하지만,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굉장한 존경심을 가진 게 느껴져서.”
스윽.
유사하는 그렇게 말하며 대본 맨 앞장을 넘겨줬다.
감독이 자필로 쓴 메모가 적혀 있었다. 아마 유사하에게 보내는 인사말 같은데, 가지런한 글씨체가 단정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시나리오를 쓴 배이입니다. 저는 오늘날, 영웅을 위한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희생만큼 숭고한 정신이 있을까요? 조금이나마 영웅들의 존재가 가까이 있음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신인 작가님이세요?”
“그런 것 같아요. 배이는 가명이라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무영이는 대본 겉을 톡톡 두드리며 웃었다.
“읽을게요.”
“음. 좋아요. 재미있을 거예요.”
“무영아, 다른 건 어떻게 할까?”
“다른 건 다시 들고 가주세요.”
다른 작품은 보지 않겠다고 하니, 단호하게 결정을 내린 거나 마찬가지다.
고경민은 한숨을 스리슬쩍 삼키며 가방을 집어 들었다.
‘고생 어지간히 하겠구나. 무영아.’
[좀비고등학교> 할 때도 액션씬 때문에 온몸이 멍투성이였는데, 이번에는 어느 정도까지 갈지 감도 안 왔다.무영이는 대본을 소중하게 껴안으며 웃기만 했다.
“몸도 만들어야겠죠?”
“음. 굳이 안 만들더라도 체력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될 것 같은데요?”
“긴장되네요. 아직 대본도 안 읽었는데.”
“원래 다 짝이 있는 거니까요. 제가 봤을 때, 그거 무영 씨 거예요.”
유사하 역시 정장 재킷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삼순이가 가지 말라며 그의 바짓단을 물고 늘어지자, 차은성이 화들짝 놀라며 강아지를 껴안았다.
“삼순! 미쳤어? 빨리 가라고 앙앙대도 모자랄 판에 뭐 하는 거야? 나 실망할 뻔했어. 응?”
앙앙!
“아참. 그리고 무영 씨.”
“네?”
유사하는 삼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 뭔가 생각난 듯 멈칫거렸다.
그리고 무영이를 똑바로 바라본 채 선언했다.
“이거 천만 가게 할 거예요.”
‘천만 가봅시다’도 아닌 ‘천만 가게 할 거다’라는 말. 엄청난 확신이자 자신이었다.
그는 무영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무영 씨도 천만 타이틀 가져봐야죠.”
“우와. 대표님 멋있어용.”
“기획 영화니까, 제 능력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대본 읽고 빠른 시일 내로 말씀 드릴게요.”
“그렇게 하세요. 이번에도 은성 씨 까메오 하면 좋고.”
유사하의 말에 차은성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려고 했고, 매니저와 무영이가 바로 달려들어 저지했다.
“이런 미친-!”
“으아악! 형! 형! 안 돼용!”
“은성 씨! 제발 그것만은!”
앙앙!
유사하는 연신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현관 밖으로 쏙!
대표가 나가자 차은성의 허리춤을 붙잡고 있던 고경민도 냅다 도망치듯 사라졌다.
콰앙!
문이 닫히자,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고요해진 집안.
무영이 소파로 스르륵 쓰러지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형. 대표님이랑 그만 좀 싸우세요.”
“이게 싸우는 거냐? 일방적으로 내가 개털리고 있는데?”
앙앙!
차은성은 꿍얼거리며 부모님이 싸준 반찬을 정리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무영이는 대본을 한 장 넘기며 물었다.
“형, 근데 형네 아버님 소방관이셨더라고요.”
“아아. 내가 말 안 했나?”
“네. 완전 깜짝 놀랐어요. 진짜 대단하시네요.”
“……뭐, 그렇지.”
차은성은 반찬 뚜껑을 열어보며 뒷목을 매만졌다.
그리고 뭔가 개의치 않은 목소리로 무영이를 불렀다.
“근데 너 진짜 그거 할 거야?”
“뭐요? 이 영화요?”
“졸라 힘들걸? 막 촬영하다 토하고 그럴걸? 팔다리 달달달 떨려서 집 올 때 업혀서 올걸?”
“그렇겠죠? 그래도 의미만 있다면야.”
무영이의 대답에 차은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마음에 안 들 때 나오는 표정이다.
무영이 그걸 알아채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하고 싶어서 그래요? 오디션 볼까요?”
“아니라고. 나 절대 안 한다고.”
“그런데 왜 그러실까아.”
“……시꺼.”
차은성은 대충 얼버무린 채 삼순이를 안고 방으로 도망갔다.
무영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정독을 위해 자세를 바르게 하려는데…….
띠링!
[무영이 반찬 냉장고에 넣어놨지?]은성이네 어머니의 문자였다.
[넵! 은성이 형이 차곡차곡 잘 정리해서 넣어놨어요^0^ 그리고 저 방금 회사 분들이랑 얘기했는데, 차기작 소방관 역할 할 것 같아요. 조만간 또 뵈러 갈게요. 아버지한테 얘기 듣고 싶어요.]띠링!
[축하해. 좋은 작품이 될 거야. 아저씨도 축하한다고 전해달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은성이 형이 좀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소방관이었으니까, 형이 하고 싶어 하는 걸까요?] [은성이가? 아닐걸?]무영이가 왜냐고 묻기 전, 문자가 하나 더 들어왔다.
[은성이 아빠가 구조 작업하다가 크게 다쳤었거든. 그것 때문에 일 관뒀잖아. 당시에 집안이 발칵 뒤집혔는데 은성이가 제일 심했어. 유치원 다니던 애가 자꾸 까무러쳐서 병원도 가고 그랬으니까. 아마 무영이 다칠까 봐 걱정하는 걸 거야. 애가 좀 그래.]아. 그렇구나.
현장에서는 영웅이지만, 또 누군가의 가족이다. 그 일 때문에 크게 다쳤다면, 굉장히 복잡미묘한 감정이 있을 터.
무영이는 닫힌 방문을 보며 쿠션을 끌어안았다.
사락.
그리고 본격적인 시나리오에 들어가기에 앞서, 작가가 소개한 짧은 소개 글을 읽어내렸다.
[소방서에 부임한 지 다섯 달째인 주인공 김신우. 백화점 화재 사건에 출동하여 구조 작업에 투입되지만 화마를 막지 못하고 결국 순직한다.]“어? 주인공이 죽고 시작하나?”
무영은 의외의 단어에 잠시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겪게 되는 타임 루프. 몇 번이나 죽어도 끝나지 않는 재난 현장. 결국에는 지쳐서 도망도 쳐보지만, 언젠가는 죽어 다시 그날의 그곳, 그 시간으로 돌아오게 됐다. 김신우는 문득 생존자를 모두 구해야만 시간의 반복이 멈추리란 걸 깨닫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