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16)
신인인데 천만배우 316화
민원 담당
“아아니, 대체 왜 눈 떴는데 내 눈앞에 유 대표가 있지?”
차은성은 거실로 나오자마자 인상을 팍 찡그렸다.
부스스한 차림의 차은성과 달리 유사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아침 아홉 시인데도 불구하고.
“왜냐하면, 여긴 무영 씨 집이니까요.”
“하무는 어디 가고 님이 왜 여기에?”
“무영 씨 옷 갈아입으러 2층 갔어요. 오늘 소방관 현장 체험하러 가는 날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니까 무슨 애 소풍 보내는 것 같네.”
“아, 그러면 음. 현장 조사? 인터뷰?”
차은성은 유사하의 말에 대꾸하기도 싫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우유에 시리얼, 딸기시럽까지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소파에서 그 모습을 보던 유사하가 웃으며 물었다.
“근데 은성 씨는 차기작 안 해요~? 돈 좀 벌어 오지? 계약금을 그렇게 받아놓고 너무 양심 없다. 이번에 영화 투자 10억이나 해서 지갑 비었을 거 아니에요?”
빠직.
아침부터 혈압 오르게 하는 재주가 엄청나다.
차은성은 잔뜩 구겨진 미간으로 유사하에게 숟가락질을 해댔다.
“나 차은성인데? 십억 정도는 개껌인데?”
“아, 그래요? 무영 씨네 집에 얹혀사는 것 같아서 오해했네요. 집 담보로 투자한 줄 알았어요. 하하하.”
“님 X발 아침부터 뭐 잘못 드셨어요? 왜 이렇게 시비지?”
그 말에 유사하가 대본 두어 개를 흔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 괜히 말을 많이 섞는다 했더니만, 무영이 말고 자신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것이다. 차기작 슬슬 들어가자고.
“고르고 고른 거예요. 차은성 씨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얼른 두고 썩 가세요. 집 비좁으니까.”
“우리 사이가 머니까 괜찮아요. 하하하.”
“아침부터 뭔…….”
우당탕! 쿵!
차은성은 위층에서 들리는 소란에 고개를 쳐들었다.
편한 옷차림인 무영이가 양쪽 종이백 한가득 뭔가를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넌 또 왜 그렇게 소란이냐?”
“늦었어요. 으앙.”
“소방서 간다고? 가서 언제 와?”
“오늘은 내내 거기 있을 것 같은데요? 삼순이 좀 잘 부탁해요. 앗, 대표님.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네. 가서 잘 배우고, 조심히 하고 와요.”
전문직 주인공이라 사전 현장 답사는 필수였다. 가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배우며 조금이나마 소방관들의 애환, 고충을 체득하는 것이다. 서울은 워낙 사건·사고가 잦고 바빠서 협조할 수 없었고, 경기도 외곽의 정구소방서가 오늘의 목적지였다.
“근데 대표님은 오늘 어쩐 일이시래요?”
“아아. 은성 씨 대본 전달.”
무영이는 운동화를 구겨 신으며 유사하가 들고 있는 대본을 쳐다봤다.
“뭐가 더 좋아 보여요?”
“여기서는 제목도 안 보이는데요?”
“그래도 감으로.”
유사하의 말에 무영이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했다. 둘 다 꽃가루 휘날리는 게 고만고만하지만, 그래도 굳이 고르라면…….
“대표님 왼손에 들고 있는 거요!”
“이거? 은성 씨. 이거래요. 이거.”
“미친, 하무가 무슨 월드컵 문어 선생이냐고.”
“저 진짜 갑니다! 두 분 수고하세용!”
콰앙!
무영이는 바쁘게 손을 흔들며 현관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다시 집안에는 어색한 정적만 감돌았다. 하필이면 삼순이도 어디서 자는 모양인지, 기척이 없다.
“그럼 나도 이만 다시…….”
차은성이 슬금슬금 시리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유사하가 생글생글 웃으며 오디오 음악을 트는 게 아닌가?
“님?”
“네?”
재킷까지 벗으며 아주 편하게, 제집 안방인 양 몸을 기댄다. 거기에 미리 준비한 서류 파일을 꺼내며 잡지 읽듯 천천히 넘겨대기까지.
“……님, 집 안 가세요?”
“은성 씨 차기작 확답 주기 전까지는 안 가려고요.”
“여기 하무 집인데?”
유사하가 어깨만 으쓱거리며 웃었다. 무슨 상관이냐는 의미다. 그러는 당신도 무영이네 집에 있는 객식구 아니냐면서.
타앗!
“자요. 여기 무영 씨가 추천한 대본, 나머지 하나도 읽어봐요. 오늘 스케줄 없이 노는 거 다 알고 왔으니까.”
유사하가 가볍게 대본을 던졌고, 차은성은 얼떨결에 그걸 잡아챘다.
대표는 이내 상관 안 한다는 듯 서류에 시선을 고정했다.
‘……역시 쓰리피스, X발 정상이 아니다.’
차은성은 뒷걸음질 치며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유사하는 가볍게 웃으며 파일을 넘겨댔다.
* * *
“무영아, 왜 이렇게 늦었어?”
“으아앙. 죄송해요. 늦잠 잤어요.”
“이리 주라, 소방관분들 드릴 선물 맞지?”
“네네. 트렁크에 실어주세요.”
한편,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한 무영이는 매니저에게 종이백을 건넸다.
날이 점점 추워져서 방한 장갑을 준비한 것이다.
선물까지 단단히 챙기고, 무영이는 안전띠를 맸다.
“근데 차가 들어와 있더라? 은성 씨 새로 뽑았어?”
“차요? 아아. 대표님 차인가 보다.”
“대표님?”
빌라 동과 호수에 맞춰 지정 주차 구역이 정해져 있었다.
무영이는 맞은편에 있는 세단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부터 대본 들고 오셨던데요. 은성이 형 일 시킬 거라고.”
“당분간 외근이라 들었던 것 같은데…….”
“아하하. 우리 집 외근인가 보다. 하긴, 은성이 형 작품 하나 들어가면 그게 얼마예요.”
무영이는 조잘대면서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살면서 소방관이랑 만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차는 쭉쭉 내달려 금방 경기도 외곽까지 도착했다.
“저기다.”
“와, 생각보다 신식이네요.”
“새로 증축했대. 여기서 담당하는 관할이 넓어지는 바람에. 일단 내리자.”
끼익.
무영이는 차에서 내려 소방서를 올려다봤다.
엄청나게 큰 소방차 대여섯 대가 근엄하게 주차되어 있고, 뒤쪽으로는 소방 도구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사무실로 올라가려는데,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소방행정과 직원이 무영이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무영 씨?”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하무영입니다.”
“아이고, 반가워요. 저는 행정담당자 김영광이고요, 오늘 무영 씨 답사 책임질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뭘 엄청 들고 오셨네요?”
“작은 감사 선물이요. 헤헤.”
무영이는 매니저와 함께 소방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바쁜 와중에도 무영이를 반겼다.
“와아. 세상에.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선 간단히 소개할게요. 정구소방서에는 청문감사과, 소방행정과, 예방안전과, 구조구급과, 현장대응단, 구조대가 있고요. 아래로 안전 센터 네 개가 소속되어 있습니다.”
무영이는 작은 노트를 꺼내서 열심히 펜을 끼적거렸다.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디테일을 잡으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먹던 주인이 어디 갔는지 모를 테이블 위의 삼각 김밥. 소매에 때가 잔뜩 탄 작업복. 손잡이만 칠이 벗겨진 방호복 캐비닛 등등.
당사자들의 호흡과 습관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했다.
“이쪽은 배기철 서장님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잘 보고 가시고, 좋은 작품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물이 훨 낫네. 얼굴이 환해서 밤에도 잘 보이겠다. 하하하!”
“아, 그리고 방한 장갑을 준비했는데요. 괜찮으시면 요긴하게 써주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김 주임!”
무영이는 그렇게 가볍게 한 바퀴 돌면서 각 부서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구조대분들과 만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드르륵.
“어? 아무도 안 계시네요.”
“1팀, 2팀은 현장 출동 나갔고 3팀은 숙직실에 있을 거예요. 4팀은 어제 철야 근무라 새벽에 들어갔고요. 숙직실으로 가시죠.”
“가도 괜찮나요? 쉬시는데 방해하는 것 같아서.”
“잠자는 곳은 방이 따로 되어 있어서 괜찮습니다.”
“아, 그러면 잠시 먹을거리 좀 사 와도 될까요?”
“그러시죠. 바로 앞에 편의점 있어요.”
무영이가 편의점에서 봉투를 빵빵하게 채워 숙직실로 향할 때였다.
민원담당실에서 유독 큰 소란이 들려왔다. 유리창으로 빼꼼, 구경하니 한 할머니께서 핏대를 올리는 중이었다.
“야잇! 그러니까, 나는 문만 따달라고 했는데 왜 손잡이를 잡아 부수냐고! 그리고, 누가 신발 신고 들어오래? 장판에 발자국 다 찍히고, 지워지지도 않잖아!”
“할머님, 일단 진정하시고요. 구급 출동 및 내부 진입 시 외부화 착용은 나라에서 정해준 거예요. 급한 상황에서 언제 신발 벗고 들어갑니까? 그리고 신발 벗었다가 대원들 발 다칠 수도 있고요. 그렇죠?”
“너, 지금 우리 집 더럽다고 욕하는 거냐?”
“제가 할머님 집이 어떤지 어떻게 알아요. 매뉴얼이 그렇다는 말씀이에요.”
“손잡이 부순 거는 어떡할 건데!”
“하아. 신고 내용이 문 고장으로 갇히셨던 건데 손잡이 파손까지는 저희 책임이 아닙니다.”
“구청에서는 여기 가라 하고, 여기서는 책임 못 진다 하고! 그럼 우리 집 문은 누가 책임져!”
담당하는 직원의 영혼이 거의 탈탈 털리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동료들은 익숙한지 한숨만 푹푹 내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빨리 좀 끝났으면 싶은데 영 그럴 기미가 없다.
“여기 서장 나오라고 그래! 네 위에 있는 놈!”
콰앙!
할머니가 창구 테이블을 내려치며 소리치자,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무영이의 안내를 보시던 분이 혀를 끌끌 차댔다.
“오늘도 저러네.”
“오늘도요?”
“희한하게, 사람은 바뀌어도 풍경은 비슷해요. 현장 대원들이 몸 갈아서 일하면 저쪽은 정신 갈아서 일하는 거죠. 세금을 냈는데 너희가 어쩌구저쩌구. 정작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에 세금 많이 내는 사람 못 봤어요.”
생각보다 엄청나구나.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하고 막히는 지경인데, 저분들은 저걸 매일 겪어야 한다니.
무영이는 슬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오-”
“어?”
다들 기력이 쭉 빨려 있던 상태였으나, 무영이를 보자마자 표정이 확 바뀌었다.
무영이는 사람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주며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오늘 현장 답사 온 하무영입니다.”
“아, 그게 오늘이었구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세요~”
순식간에 왁자지껄, 분위기가 전환되는 민원담당실.
소리치던 할머니도 눈을 댕그랗게 뜨고는 무영이에게 다가왔다.
“그, 칼날 나왔던 아이네.”
“안녕하세요, 할머님. 할머님도 음료수 드세요.”
“여긴 어쩐 일이래~”
“저 공부할 게 있어서요. 잠시 답사왔어요. 할머님은 어쩐 일이세요?”
“아아니! 나는 그, 말도 말아. 얼마 전에 집에 있다가 갇혔는데-!”
“헉! 괜찮으셨어요? 그런데 소방관분들이 구해주신 거예요? 대박 대박. 완전 다행이다. 큰일 나실 뻔했네요!”
“어엉? 응……. 그렇긴 하지…….”
무영이는 호들갑을 떨며 할머니의 어깨를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할머니는 저도 모르게 고개만 끄덕이며 멈칫거렸다.
이게 아닌데? 싶은 표정이 여실했으나, 이상하게 무영이의 말에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아아아! 알겠다! 그래서 감사 인사하러 오셨구나? ‘칭찬합니다’ 카드가 있다고 하던데요? 그렇죠?”
“네? 아아. 네. 저쪽 벽에…….”
무영이의 물음에 직원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민원실 구석에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는 ‘칭찬합니다’ 코너.
그간 아무도 안 쓴 것처럼 낡았고 먼지가 쌓여 있었다.
“할머님 제가 글씨 진짜 진짜 잘 쓰거든요. 사극에서 붓글씨 쓰는 거 보셨죠? 그거 대역 없이 제가 한 거예요. 보여 드릴까요?”
“아니, 저기…….”
“이쪽으로 와보세요. 담당하신 분 성함이요?”
“허, 허민영이요.”
“넵넵. 허민영 담당자님.”
무영이는 할머니를 끌고 가서 꼼지락꼼지락 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다들 멍하니 그걸 구경했고, 고경민은 익숙하다는 듯 음료수를 돌려댔다.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영 씨는…….”
“몸 관리한다고 못 먹거든요. 많이많이 드세요.”
직원들은 이게 무슨 일이람, 하는 표정으로 과자를 와작거렸다. 카드를 한참 쓰던 할머니가 문득 소리쳤다.
“이런 거 말고 사진이나 찍어줘!”
“그럴까요? 매니저 형, 우리 사진 찍어줘용!”
“오냐. 알았다.”
“할머니. 자세는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할까요?”
매니저는 할머니의 휴대폰을 받아 카메라를 켰다.
두 사람은 카드를 ‘칭찬통’에 넣는 자세를 취하며 환하게 웃었다.
직원들이 웃기고 슬픈 표정으로 속닥거렸다.
종일 달래도 꿈쩍 않던 노인이 저리 유들유들하게 변하다니.
“이래서 하무영, 하무영 하나 봐요. 성격 미쳤네.”
“그러니까, 연예인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하아. 무영 씨 공무원으로 전향해서 이쪽으로 부임 받았으면 좋겠다.”
찰칵!
어정쩡하게 브이를 치켜드는 할머니.
무영이는 그 옆에서 어깨를 감싸고 더욱 활짝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