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18)
신인인데 천만배우 318화
팽상구 선생님
“어머. 둘이 구면이라고요?”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안녕~ 나는 김연홍~ 그렇게 말해주니 편하다. 고마워.”
김민재와 함께 들어온 김연홍 배우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무영이와 반갑게 악수한 다음, 아이를 돌아보며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제가 유나랑 친해서요. 학교 연극 공연 보러 갔다가 만난 적 있어요. 민재가 유나랑 무대도 같이 서고, 연기 학원도 같이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유유나? 그랬구나? 어쩜, 예쁘고 똑 부러지는 애들끼리 친하네. 어머, 선생님. 안녕하세요~”
김연홍은 아이를 아주,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초면인 민재를 마치 옆집 아이 대하듯 다정하게 다루고 있었으니까.
김연홍이 팽상구에게 인사하러 간 사이, 김민재가 부끄러워하며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김민재입니다. 저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어떻게 아는 척을 해야 하나 싶었거든요.”
“응? 당연히 기억하지!”
“벌써 2년 전 일인걸요.”
“헉. 시간이 그렇게 됐나?”
무영이는 손을 꼽으며 헤아렸다.
[칼날의 궤> 끝나고 갔던 거니까, 확실히 2년 전이 맞다.하긴, 초등학생이던 유나가 지금은 중학생이 되어 있으니…….
“시간 정말 빠르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뭘 고맙기까지. 춥지? 어서 앉자. 보호자는?”
“밖에서 잠시 스태프분이랑 말씀 나누고 있어요.”
말투 하나하나에서 묻어나오는 예의가 범상치 않았다. 고작 몇 마디밖에 안 나눠 봤지만, 유나와 성격이 정반대라는 게 확실했다.
유나가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이라면, 민재는 하늘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느낌.
“나랑 작품 한다니까 유나가 뭐라 안 해?”
“했어요. 그…….”
민재는 배시시, 난감하게 웃으며 말을 골랐다.
“무영이 형한테 많이 배워서 오라고. 방해되지 말라는 말도 했고, 배우답게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유나답네. 좋아. 그럼 오늘 리딩 잘 부탁해.”
“네. 잘 부탁드립니다.”
“가서 선생님이랑 다른 분들께도 인사드리자.”
무영이와 민재는 주먹을 가볍게 부딪치며 파이팅을 나눴다.
첫 만남을 반가워하는 사람들의 말이 오갔고, 이내 감독은 시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슬슬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무영이는 감독의 바로 왼쪽에 앉았고 이어서 김연홍과 팽상구, 김민재를 비롯한 나머지 조연들도 주르륵 제자리를 찾았다.
삼각대에 설치된 카메라 한 대가 조용히 작동되고, 우소영 감독은 목을 가다듬으며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가제 [소방관> 감독을 맡은 우소영입니다. 좋은 작품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인공 김신우 역을 맡은 하무영입니다. 많이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온몸을 불살라서라도!”
“하하하! 무영 씨, 안 그래도 살이 너무 빠졌어요.”
“불사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자세 좋다!”
짝짝짝!
형식적이지만 유쾌한 자기소개가 지나갔고, 이내 감독이 작품 브리핑을 이어나갔다.
예상되는 촬영 시기를 비롯한 캐릭터의 해석, 까다로운 장면의 연출 방법 등을 간단히 소개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김민재 군 중학생이에요?”
“응? 아마도?”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의아한 목소리.
대본을 넘기던 감독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주목받은 한 배우가 얼굴을 확 붉히며 손을 내저었다.
“질문 있으실까요?”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대본상으로는 초등학생인데 중학생이라고 들었던 것 같아서요. 그냥 궁금해서…….”
“민재 군이 청소년이긴 한데, 아직 어릴 때 그 느낌이 남아 있어서 문제없습니다.”
확실히 또래보다 키도 좀 작고, 앳된 티가 많이 나긴 했다. 요즘 성장 빠른 중학생은 어른이랑 구별도 안 될 정도긴 하니까 말이다.
민재가 어색하게 미소만 짓고 있자, 무영이가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본 읽겠습니다. 액션씬이 많다 보니, 그쪽은 빼두고 주인공과 조연의 대화 위주로 진행하려 합니다. 여기 자리에 없는 분들은 저와 조연출이 돌아가면서 칠게요. 갑시다, 무영 씨.”
“네. 준비됐습니다.”
“그리고 팽상구 선생님.”
“으이. 그래요.”
선생님은 물로 목을 축인 다음 손을 들어 올렸다. 언제든지 가도 된다는 뜻이었다.
“레디, 액션.”
타임 루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김신우. 그는 수십, 아니, 수백 번이나 화재 현장을 뛰어들었어도 결국에는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했고, 죽음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모든 타임 루프 현장의 시작은 바로.
“살려줘어어!!”
새되게 찢어지는 노인의 목소리.
팽상구 선생님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순식간에 소리를 내질렀다.
노쇠한 몸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쨍하고 우렁찬 소리다.
정신을 살짝 놓고 있던 민재가 움찔거리며 침을 잘 못 삼킬 정도였으니.
‘무슨 성량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노인을 보고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만 생각했지, 그 시간 동안 엄청난 내공 역시 쌓였음을 간과한 것이었다.
“애미야, 애비야! 나, 나 여기 있다!”
“아버지! 아버지!”
“여보, 여기서 뭐 해? 빨리 나가야지!”
“아니, 안쪽에서 아버지 소리가…….”
“아까 직원이 안에 아무도 없다 했어. 허튼소리 말고 빨리 나와! 불났다잖아! 어서!”
“나 여기 있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차마 화장실 일마저 아들에게 맡길 순 없었다.
저층이다 보니, 연기는 빠르게 밀려 올라왔고 사이렌 소리에 노인의 구조 요청은 묻혔다.
그는 나뭇가지처럼 바싹 마른 손을 들어 올리며 처절하게 빌었다. 살려만 달라고, 제발 살려만 달라고.
제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목숨 아까운 건 다 똑같지 않나.
“살려줘. 살려줘……. 여기 사람 있어! 살려줘어어! 제발! 제발!”
온몸으로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가 노인의 혼을 쏙 빼놓는 것 같다.
그의 호흡이 대사를 따라 떨려올 때마다, 리딩장의 모두는 숨 쉬는 것도 까먹은 채 팽상구를 지켜봤다.
“와, 선생님…….”
“쉿! 조용히.”
대사 하나로, 사람의 몰입을 확 잡아채는 솜씨가 가히 일품이었으니. 강렬하고, 진득했으며, 의외로 거칠었다.
여든인 노인이 내는 에너지라고는 감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콰앙! 쾅쾅! 쾅!
팽상구는 책상을 화장실 문 삼아 두드리며 연신 목 놓아 소리 질렀다.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화장실 문 바닥을 기어가듯 뉘었다.
앉아서 하는 연기지만, 저절로 하나의 장면이 떠오를 만큼 생동감 있는 몸짓이다.
“…….”
쿵.
그때였다. 무영이가 마찬가지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팽상구는 듣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고개를 처박고 울고 있었다.
쿵쿵.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가까워졌다.
노인은 이명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쿵.
“물러서요.”
마지막 노크. 누군가 안에 있다는 걸 확신한 경고였다.
물기를 머금은 노인의 눈이 느리게 깜빡거렸다.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렸다.
한쪽은 희망에 젖어 있었고, 한쪽은 절망에 말라버린 게 여실히 달랐지만.
“할아버지.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사, 사, 살았-”
“아직이에요. 아직 모른다고요. 내가 지금 X발…….”
주인공은 답답하고 한탄스러운 한숨과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
눈물이 새어 나올 것 같았지만, 현장에서는 그것마저 사치니.
그는 울음과 함께 겨우 한마디 뱉었다.
“내가 지금 X발 할아버지 때문에 다섯 번이나 죽었어요. 알아요?”
“그게 무슨…….”
화장실 들어올 때도 수십 번 고민했다.
과연 저 노인을 살리는 게 맞을까? 생명에는 경중이 없다지만 화재 현장에서는 경중이 있지 않나.
‘그래도…….’
“그러니까, 제발 제 말을 잘 따르세요. 저 소방관이에요. 할아버지. 제발 저 믿고, 저 좀 믿고…….”
무영이 역시 솟구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먹였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 불구덩이도 지옥이지만, 더한 지옥은 그들의 울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소방관이라서, 누군가를 구하는 게 소명인지라.
계속되는 절규와 비명만큼 그의 심장을 찢어놓는 게 없었다.
신우는 두 손을 모으며 기도했다.
“제발 사람들 구하게 해주세요. 살아서, 다들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부디 제가 봤던 모든 죽음이 허상으로 머무르게만 해주세요.”
마음속에 새겨 인생의 나침판이 된 ‘어느 소방관의 기도’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는 과연 노인에게 애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을 신에게 기도하는 것일까.
신우는 손등으로 눈가를 닦으며 코를 훌쩍였다.
“이번에는 진짜 끝낼 거니까. 아무도, 아무도 죽게 안 할 거니까.”
“…….”
“갑시다. 할아버지.”
신우는 씩씩하게 손을 내밀었다.
노인은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맞잡았고, 이내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
방금까지만 해도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기분이었는데 말이다.
“오케이. 좋습니다.”
“노인 첫 등장 씬 여기서 한번 자르고 뒤에 또 있거든요? 근데 그건 앞으로 이어 붙이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아, 스케줄은 한 번에 찍고 편집을 뒤로 뺀다고요.”
감독은 만족스럽게 컷 사인을 내리며 팽상구와 무영이의 첫 연기 합을 축하해 줬다.
무영이는 휴지를 쏙쏙 뽑으며 눈가를 두드렸다.
연기 하다 보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인지라…….
“무영이. 연기, 잘하네.”
팽상구 선생님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볼펜으로 뭔가를 끄적였다.
대가이신 분에게 그런 칭찬을 듣다니, 무영이는 쑥스러워서 얼굴이 확 붉어졌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진짜 영광이에요.”
“다 좋아. 다 너무 좋은데 ‘아무도’가 들어가는 부분에서 울음이 새서 그런가? 힘을 더 넣어주었으면 개인적으로 좋겠는데.”
“오오. 저도 그 부분이 조금 고민됐어요. 세게 누르고 가는 거랑 흘리듯 가는 걸 연습해 봤거든요.”
“감독님. 무영이. 대사 두 가지 버전 봐봐요.”
“아, 네. 선생님. 어디 말씀이시죠?”
팽상구 선생님은 무영이의 연기를 모두 머리에 담아두고는, 피드백을 상세히 해주었다.
확실히 베테랑이라 그런지 무영이가 고민하던 부분도 단번에 캐치하여 조언을 얹어주었다.
‘으아…….’
그걸 보며 민재는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음 연기가 자신이라니. 도저히 잘해낼 자신이 없다.
“민재야?”
무영이는 휴지로 눈가를 콕콕 찍다가 의아하게 아이를 돌아봤다.
표정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은 것이다.
“괜찮아? 어디 아파?”
“아니요. 긴장을 좀 해서.”
“조금 편안하게 해도 돼. 리딩장보다 현장에서 잘하는 배우분들도 많거든. 말 그대로 연습이니까, 천천히. 심호흡하고.”
“유나는…… 이럴 때 잘하는 것 같던데.”
뜻밖의 말에 무영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고 한들, 둘 다 배우다 보니 은연중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무영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민재에게 속삭였다.
“유나도 가끔 실수해. 물론 나도 그렇고.”
“……정말요?”
“응. 그런데 그걸 얼마나 잘 커버하느냐가 실력이야. 내가 도와줄게. 떨지 말고 해봐. 그리고 나중에 갈 때, 내가 선물 줄까?”
“어, 어떤 거요?”
“유나 사진인데, 넌 없을걸?”
“……무슨 사진인데요?”
무영이의 말에 민재가 새초롬하게 눈을 떴다.
진짜 여동생 남자 친구를 보는 것 같다. 왜 자꾸 놀려주고 싶은 건지 원.
무영이는 긴장 좀 풀라는 뜻으로 민재에게 윙크를 날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