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19)
신인인데 천만배우 319화
아이들의 연애
“자, 다음은 민재 군.”
“네, 네!”
감독의 말에 민재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그러자 대본에 시선을 집중하던 배우들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일어서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민재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 죄, 죄송합니다.”
“하하하. 우리 민재 군이 너무 긴장했네.”
“조금만 풀고 가자, 부담 갖지 말고.”
“네.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34번 씬, 김연홍 선배님이랑 민재 군 동시에 나오는 장면 해볼게요. 무영 씨 먼저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사락사락. 배우들의 대본 넘어가는 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
하지만 민재에게는 베일 것처럼 날카롭게만 들렸는데, 진짜 미칠 지경이다.
무영이는 옆에서 아이를 힐끔거린 다음 김연홍 배우와 눈이 마주쳤다.
‘긴장을 너무 많이 했네요.’
‘우짤꼬. 에구구.’
두 사람은 안타까운 신호를 주고받으며 민재에게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실 리딩장의 모두가 민재를 신경 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인도 신인이라면 이런 자리가 불편하게 마련인데, 하물며 갓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라면 더하겠지.
“들어가겠습니다. 레디, 액션.”
감독은 바로 사인을 내렸고, 무영이가 먼저 자연스럽게 치고 들어갔다.
“민재야, 민재야. 괜찮니?”
순간, 다시 화들짝 놀라는 민재.
다른 배우들 역시 고개를 들고 무영이를 쳐다봤다.
대본상에서 배역의 이름은 민재가 아니라 현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무영이의 의도를 알아채고서, 다들 웃음을 머금었다.
“김민재. 정신 차려봐.”
민재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
감독 역시 피식 웃기만 하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민재는 무영이와 눈을 마주치며 더듬더듬, 대사를 읽어갔다.
“제, 제 이름 어떻게 아세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엄마 어디 있어?”
“네?”
“엄마 어디 있냐고. 분명 저번에는 같이 있었잖아. 왜 지금은 따로야? 무슨 일 있었어?”
한껏 쥐어짜 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것이 연기인지 아니면 긴장감 때문에 생긴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민재 나름대로 감정 처리를 잘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바, 방화 셔터가 내려와서 갈렸어요. 엄마가 사람 불러온다고 했는데…….”
“방화 셔터?”
무영이는 이 대목에서 작품의 가치를 한 번 더 일깨울 수 있었다.
바로 평소에는 알 수 없었던 안전 수칙이나 상식 따위를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는 것.
대본의 ‘방화 셔터를 밀어서 연다’라는 지문이 그러했다.
실제로 화재 시 셔터가 내려오면 사람들은 길이 막혔다 여기고 돌아가거나 발이 묶여 참변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방화 셔터에는 비상구 표시로 밀어서 열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사고 시 연기로 인한 시야 차단, 패닉 등으로 그걸 놓치고 죽는 사람이 정말 많다며…… 정구소방서 소방관들이 알려줬다.
“민재 어머니!”
쾅! 쾅쾅!
무영이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절대, 이걸 몰라서 허망하게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거칠게 책상을 두드리며 지문을 대신하는 무영. 다들 집중하며 다음 대사를 기다리는데…….
“어, 엄마!”
‘헉.’
민재 삑사리가 제대로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들 굳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않았다.
본인이 제일 부끄러울 텐데, 봐서 무엇하겠나.
대신 상대하는 무영이와 김연홍만 손짓으로 천천히 가자는 신호를 줬다.
“민재야, 엄마 여기 있어.”
김선홍 역시 무영이처럼 민재의 이름을 불러줬다.
그리고 표정으로 괜찮다는 듯, 눈썹을 크게 올리며 대사를 이었다.
처음 리딩을 맞춰보는 거지만, 무영이는 김연홍 배우의 강점 중 하나가 대사 전달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 글자, 한 글자 뒤에 때려 박는 딕션이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톤이 튀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해 내는 실력이 일품이었다.
“아, 아래로 내려가서 구해달라고 하려 했는데, 문이 안 열려요. 방금 있던 사람들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갔어요.”
“엘리베이터를 탔다고요?”
“안 된다고 했는데…….”
“미치겠네. 진짜. 팀장님! 팀장님!”
무영이와 김연홍 그리고 김민재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대본을 읽어갔고, 이내 감독의 컷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네.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 장면은 건너뛰고 가죠.”
“네네. 여기서 52번 씬까지는 쭉쭉 이어서 갈게요.”
점점 열기에 녹아드는 리딩장. 분명 시작할 때는 쌀쌀해서 옷을 껴입어야 했는데, 가면 갈수록 겉옷을 벗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난방의 영향도 있겠지만, 무영이는 그것이 모두가 만들어내는 에너지 때문인 걸 알 수 있었다.
완벽하게 대사를 쳐냈을 때의 희열감과 상대의 연기를 보며 느끼는 자극, 그리고 모든 게 맞물리며 극 내용이 진행될 때는 심장이 살 떨릴 정도로 재미있었다.
“자. 잠시 쉬었다 하겠습니다.”
“네. 아이고, 허리야.”
“커피 한잔하시죠?”
쉬는 시간이 되자, 다들 기지개를 켜며 긴장을 풀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무영이의 얼굴. 볼따구니에 홍조가 올라와서는 불그스름하게 익어 있었다.
“무영 씨, 괜찮아요? 터지는 거 아니에요?”
“네? 그 정도인가요?”
“하하하. 찬 바람 좀 쐬어요. 너무 힘 쏟았다.”
무영이 앞머리를 매만지며 웃자, 민재가 다가와 조곤조곤 감사 인사를 했다.
“형,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내가 뭘 했다고~ 민재 잘하더만! 긴장 괜히 했더라! 유나한테도 가서 자랑해. 칭찬 많이 받았다고.”
민재는 쑥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년이긴 하지만 아직 아이인 걸 감안하면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영이가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자, 밖에서 기다리던 어머님이 민재를 불렀다.
“민재야, 잠시 나와봐.”
“응. 잠시만요.”
무영이도 한숨 돌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문자 몇 개가 와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발신자가 유나였다.
[오빠, 리딩 중?] [사실 나 고백할 게 있어. 거기 들어가는 김민재 내 친구야. 그렇다고 너무 잘해주지 않아도 돼.] [애가 연기는 어느 정도 하는데 좀 어벙하거든?] [도와달라는 말은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걔가 영화는 처음이라 많이 떨릴 거야. 근데 긴장만 안 하면 진짜 괜찮아.]‘오잉? 모야모야. 유유나 모야.’
완전히 남자 친구 잘 봐달라고 부탁을 하는구먼? 무영이는 키득키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띠링!
[네 남자 친구는 내가 데리고 있다. 남자 친구에게 여름날 귀신 분장한 사진 보여주기 싫다면, 지금 당장 응원의 메시지가 적힌 셀카를 보내라.] [참고로 무보정이닷!! ٩(๑❛◡❛๑)۶] [후회와 상실>을 찍으며 여름날 얼마나 많은 사진을 남겼던가.그중 기억에 남는 건, 유나가 귀신 분장을 한 채로 차은성과 찍었던 엽사였다.
젓가락을 콧구멍에 넣고 스웩 자세를 취했던…….
차은성은 술에 취하고 유나는 여름날 밤에 취했던 그날 밤.
무영이가 문자를 보내자마자 답장이 바로 날아왔다.
걱정되는 마음에 휴대폰만 계속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 ༎ຶ‿༎ຶ 두고 보자…….] [(사진)]띠링!
포스트잇에 ‘김민재 잘해라ㅡㅡ’를 붙이고 무표정에 브이를 날리고 있는 유나의 셀카였다.
무영이 빵 터지며 웃자, 다른 배우가 의아하게 물었다.
“재밌는 일 있어요?”
“네? 아아. 네에. 요즘 애들 너무 귀여워요.”
“요즘 애들이래~ 세상에! 무영 씨도 요즘 사람이면서! 이러면 나는 세월이 야속해~”
“저어는 사람이고, 제가 말하는 건 애들이용.”
“아, 맞다. 사진 한 장 부탁해도 될까?”
“좋아요!”
처음 만났지만 다들 성격이나 분위기가 너무 밝고 좋았다.
무영이는 문득 꽃가루가 의미하는 게 이런 환경도 들어 있지 않나 싶었다.
결과도 결과지만, 어쨌거나 과정 역시 행복한 게 진정한 행복이니까.
“아, 민재야. 잠깐 이리 와봐.”
동료들과 사진을 찍던 무영이 민재를 불렀다.
그리고 유나가 보내준 걸 보여주며 속닥거렸다.
“이거 보내줄게. 유나가 민재 생각 많이 하나 보다.”
“…….”
민재는 눈이 초롱초롱해져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무영이처럼 홍조 띤 볼에 우물이 쏙 파일 정도다.
“유나 진짜 예쁘죠?”
“헐. 세상에.”
“사진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세상에, 세상에…….”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무영이는 이마를 짚으며 장난스럽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민재는 야무지게 사진을 받아 갔다.
이내, 리딩을 개시하는 감독의 안내 말이 들려왔다.
“2차전 가겠습니다! 배우님들, 모두 힘내시고 다시 달려봅시다!”
“가봅시다! 드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네.”
“이거 하고 회식 어때요?”
“저는 좋아요! 스케줄 되시는 분들끼리 모여서 식사라도 해요.”
타악!
다시 리딩장 문이 닫혔고, 그들은 대본을 펼쳤다.
일심동체란 이런 것일까. 다들 하나라도 된 것처럼 작품에 집중하는 힘이 대단했다.
‘느낌 좋네.’
감독을 비롯한 영화 관계자들이 배우의 힘을 느끼고서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들이 단단하면 현장이 단단해지고, 결국 단단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이건 어느 작업 현장에서나 통용되는 기본이었다.
“레디, 액션!”
감독의 말에 무영이가 다시금 목소리를 내었다.
* * *
“뭐? 유나 남친?”
집에 돌아온 무영이는 차은성에게 리딩장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김민재라는 친구와 함께하게 되었는데, 그가 유나와 각별한 사이라고.
차은성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리며 삼순이만 미친 듯이 쓰다듬었다.
“어린 것들이 말이야!”
“오오. 꼰대~”
“인생 제대로 살고 있네! 그래. 한창 좋을 때다!”
“꼰대 취소~”
“나도 교복 입었을 때 연애 좀 했어야 하는 건데.”
“헐. 형 학생 때 연애 안 해봤어요?”
“그때는 그, 이상한 분위기가 있었어. 남자들의 우정.”
차은성은 객관적으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생긴 것도 잘생겼고, 워낙 노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같이 다닌 친구들이 이상해서 기회가 없었다.
“새끼들이 여친 사귀려고만 하면 자꾸 방해를 해대잖아. 나 혼자 가면 안 된다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지들이 못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에이, 핑계 아니에요?”
“지는? 지는 아직까지 모쏠이면서.”
“서른 살까지 모쏠이면 마법사 된다고 해서 도전해 보려고요.”
무영이 장난스레 말하자 차은성은 질색이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늦바람 나면 그것도 힘들다.”
“형이 그래서 그랬구나.”
“나? 소문났어?”
“……아닌데 형 반응 보니까 곧 날 것 같네요.”
무영이는 가방을 정리하며 거실을 비롯해 이 층까지 둘러봤다.
며칠 붙박이장처럼 박혀 있던 유사하 대표가 보이질 않았다.
“대표님은 가셨어요?”
“어? 앙. 드디어 쫓아냈다. 지긋지긋한 놈.”
“대본 고르셨나 보네요.”
“네가 골라준 거. 그거 솔예인이랑 할 것 같은데?”
“오. 진짜요?”
괜찮네.
차은성도 차은성이지만 솔예인의 차기작으로도 성공적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무영이는 삼순이를 어루만져 주며 달력을 확인했다.
“그래서, 너 촬영 언제 들어가는데?”
“다음 달부터요. 이번 달 메인 이벤트는 다 끝났고, 음. 연기대상 남았네.”
연말의 연기대상. [그 대로, 고양이>의 주역이었으니 당연히 참석해야 했다.
차은성은 놀리듯 물었다.
“대상 예상하십니까요?”
무영이는 대답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