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2)
신인인데 천만배우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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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가만히 보고를 듣던 박문철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자기가 잘 못 들었냐는 듯. 하지만 이히준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진 역으로 오디션 본다고요.”
“오디션을 왜 봐? 루이로 픽스 됐잖아? 아니. 그것보다 제작사에서 다른 역은 안 구한다고 했는데?”
후우, 이히준은 손끝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미팅하다 보니까 의견이 좀 달라서요. 무엇보다 전 루이보다 진이 좋아요. 비중도 훨씬 크고, 중요하고. 순둥순둥한 이미지만 연달아 몇 년째인지. 이제 바꿀 때 됐어요.”
“그걸 왜 네 마음대로 정하지?”
“……그럼 누구 마음대로 정하는데요?”
“회사랑 조율을 했어야지. 다른 감독도 아니고 진경문인데 픽스된 걸 걷어차고 오디션을 보겠다? 떨어지면? 날아간 기회비용은 어떻게 메꾸게?”
박문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셔츠 단을 접어 올렸다. 위압적인 분위기. 이히준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그를 노려봤다. 중간에 낀 매니저만 죽을 맛이다.
“떨어질 것부터 생각하시네요?”
“이히준. 생각 똑바로 해. 데뷔 5년 차에 3년 동안 네가 주연해서 잘 된 게 있어? 한 번쯤 터트릴 때 됐잖아?”
주연도 주연 나름이지, 성적이 안 좋으면 이미지 소모만 심각해질 뿐이다. 이름은 있되 흥행이 안 된다는.
“점점 들어오는 대본 떨어지는 거 못 느껴?”
“아 진짜. 실장님.”
“너 젊으니까 이 정도지, 여기서 쐐기 못 박으면 어떻게 되는지 감이 안 오냐고.”
도태될 것이다.
몸값은 올리기도 어렵고 떨어트리기도 어렵다. 출연료 대비 성적 구린 배우를 어느 누가 쓰고 싶어 하겠는가. 조연이라도 차라리 빵빵 터지는 게, 장기적으로 회사나 아티스트 입장에서 훨씬 이득이었다.
“지금 자존심 안 구기면 나이 먹어서 더 힘들 거다.”
“그 정도면 악담인데요.”
“하아. 넌 가서 뭐 했어? 어?”
한숨을 내쉬면 박문철이 매니저를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움찔, 고개만 숙이며 입을 다무는 매니저. 이히준은 보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됐어요. 어쨌거나 그렇게 됐고. 제작사 쪽에서 진 역 협의 중이라니까 조만간 오디션 볼 거예요. 그렇게 아시면 돼요. 이거 못 하면 JTV 일일드라마 들어왔던 거 검토해 볼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아무리 회사라지만, 배우 본인이 하기 싫다는데! 뭐 어쩔? 매니저를 향해 나가자며 등을 떠미는 순간.
“넌 잠깐 남아.”
“저, 저요?”
“너 말고 누구 또 있어?”
박문철이 매니저를 붙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거든. 이히준은 매니저를 향해 입단속 잘하라는 뜻으로 눈썹을 찡긋거렸다.
타악-
이히준이 나가고, 박문철이 매니저를 향해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며.
“미팅 가서 무슨 일 있었지?”
“네? 무슨…….”
귀신이다. 촉 하나는 귀신이야.
“몽네뜨에서 분명 못 박았거든. 루이만 캐스팅할 거라고. 근데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꿨으며 미팅 가기 전까지만 해도 고분고분하던 쟤가 왜 저러냐 이 말이야.”
매니저는 눈을 질근 감았다. 이미 이히준과 입을 다 맞춘 상태이거늘, 저 귀신 앞에서는 방도가 없다.
‘미안하다. 히준아.’
회사에는 그냥 감독과 미팅 후 이견을 조율했다고 말해두려 했다. 좀 쪽팔리잖아. 아무리 루이 역을 쳐내려 했어도 그사이에 듣도보도 못한 신인이 끼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작사 쪽에서도 분위기상 말 잘 맞춰줄 것 같았는데. 젠장.’
“그게 말입니다.”
매니저는 어쩔 수 없이 몽네뜨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의 일을 상세히 보고했다. 안타깝지만, 그의 월급을 챙겨주는 건 히준이 아니라 박문철 실장이었으니까.
“-해서 좀 겸사겸사 적인 게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마침 히준이도 루이 하기 싫어하고, 몽네뜨에서는 다른 배우 물망에 올린 것 같고…….”
“으흠. 그래서 그런 거구먼?”
박문철은 이제 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사 쪽에서도 미안하니까 어느 정도 캐스팅 여지를 남겨준 것이다.
“이히준 이 새끼. 깜찍하기는.”
박문철이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비벼껐다. 대충 돌아가는 사정이 눈에 들어오니, 회사 직원으로서 그가 뭘 해야 하는지 알겠다.
“진 역에 누가 거론되는지 알아 와.”
“어떻게 하시려고요?”
“상대를 알아야 패를 까던지 던지든지 할 거 아니야. 넌 히준이 쟤가 오디션에서 먹히는 애라고 보냐?”
혀를 끌끌 차면서 매니저를 질책하는 박문철. 이미 벌어진 일. 좋으나 싫으나 밀어줘야 할 것 아닌가. 게다가 조연에서 주연으로 올라가면 나쁠 것 하나 없고.
“자아- 보자. 내일까지 알아 와.”
“아…… 네. 알겠습니다.”
단기간에 히준의 능력치를 올릴 수 없다면 상대를 깎아내리는 수밖에. 소속사나 배우나 찔러서 피 안 나오는 곳 없다. 박문철은 나가보라며 등을 돌리다가 멈칫거렸다.
“참.”
그러고 보니 제일 중요한 걸 못 들었네.
“그 신인이 누군데?”
“신인이요? 중간에 인사하러 왔다는?”
“그래. 아는 애야?”
“전 처음 봤습니다. 이름이 하, 하……무영이라 했던가?”
매니저가 더듬더듬 이름을 되뇌자 박문철이 인상을 찡그렸다. 방금 뭐라?
“하무영? 내가 아는 그 하무영?”
“……실장님이 아는 하무영이 누군데요?”
“됐다. 나가봐.”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매니저는 꾸벅 인사 후 후다닥 뛰쳐나갔다. 호랑이 굴에서 벗어나는 사람처럼.
“아나. 진짜.”
방금 한 대 피웠건만, 또 담배 땡기게 하네.
박문철은 다시금 라이터를 딸깍거리며 중얼거렸다.
“……자꾸 신경 긁어.”
* * *
“경사 났네-! 아, 경사 났어!”
나금동이 어깨를 들썩이며 사무실을 휘저었다.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는 무영. 벌써 다섯 바퀴째인데 지치지도 않으시나?
“무영이 대박이네! 대박!”
“사장님. 정신 사나우니까 좀 앉아 계시면 안 됩니까?”
참다못한 고경민이 한 소리 뱉었다.
평소에는 계단 오고 가는 것도 힘들어하는 양반이, 왜 저렇게 힘이 넘치냐고.
“어허. 고 실장님! 당장 저 따라서 한 바퀴 도세요. 이렇게 좋은 날 가만히 있고 배깁니까?”
“계약서 읽고 있잖아요. 계약서.”
“천천히 해! 다음 주까지 검토 기간이잖아!”
고경민은 한번 흘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반응이 없자, 나금동이 소파에 철퍼덕 쓰러졌다.
“오. 이제 좀 힘드세요?”
“무영이가 원한다면 한 바퀴 더 도마.”
“하하. 아니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무영아. 너 정말 운 좋다. 데뷔작을 진경문 감독님 작품으로 하게 되다니. 그것도 단역이 아니라 조연으로!”
무영은 두 볼을 감싸며 히죽히죽 웃었다.
사실 실감이 안 난다. 좋아했던 제작사와 거장 감독, 그리고 원하던 배역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게다가 상대 아역 배우는 또 어떻고?
“유나랑 연기 호흡도 기대돼요. 벌써부터.”
“암암. 그 친구가 성인 못지않거든. [옆집 아저씨> 봤어? 떡잎이 아주 파릇파릇해. 아역 중에서는 독보적인 천재로 불리지.”
고경민은 나금동의 얘기를 들으며 무영을 힐끗거렸다. 독보적인 천재라면 무영도 빠지지 않을 것 같은데.
‘시너지 효과가 장난 아니겠구먼.’
천재와 천재의 만남이라.
사무실에서 보여줬던 둘의 만남은 관객으로서도 고대할만한 것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캐미가 장난 아니었잖아.
“사장님. 앞쪽 좀 확인해주세요.”
“응? 응응. 그려.”
고경민은 계약서 검토를 나금동에게 넘기며 설명했다. 신인배우의 영화 출연료는 어느 정도 선이 정해져 있기 마련.
“무영아. 네가 지금 이걸로 데뷔하는 거잖아?”
“네. 그렇죠.”
“보통 신인이면 적게는 200에서 300. 많으면 1000까지가 일반적이거든. 아무래도 경력을 따지는 판이라서 생짜면 잘 받기가 힘들어.”
무영은 녹차를 홀짝이며 고개만 끄덕였다.
“근데 감독님이랑 제작사가 널 굉장히 좋게 봐준 것도 있고, 루이 역이 단순 조연이 아니니까. 일단은 이렇게 책정되었다.”
900만 원.
적다면 적은 비용이었다. 드라마처럼 회당으로 치는 것도 아니고, 반년에서 일 년 가까이 촬영 기간이 잡히는 거니까. 하지만,
“전 너무 좋아요.”
무영은 진심으로 감사한 목소리였다.
“이게 어디에요?”
계약금 200 받을 때도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좋았는데, 이번에는 자그마치 900만 원이다. 뗄 거 떼고 7대 3으로 가른다 해도 수백만 원!
“그래. 이게 어디냐. 사실 신인은 데뷔하는 것 자체가 중요해서 돈을 안 받는 경우도 허다해.”
안 받으면 양반이지.
소속사에서 오히려 돈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마이너스인 걸 감수해서라도 일단 얼굴을 알려야 하니까. 발판 삼아 나아가기 위해 투자로 삼는 일이 빈번했다.
“제작사에서 거마비 명목으로 한 200 찔러주면 그거 그대로- 돌려주는 거지.”
“근데 무영이 너는 진경문 감독님 작품이면서 출연료까지 제대로 다 받았으니. 시작이 굉장히 좋다. 이건 진심이야.”
특히 진경문 감독 같은 경우는 현장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에 앞장서는 거로 유명했다. 줄건 다 주고, 좋게좋게 작업하자는 태도.
“그래서 아마 유유나 쪽에서도 오케이 한 걸 수도 있어.”
아역이라 근로법에 걸리는 제약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거칠고 잔혹한 내용이니 보호자로선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지.
진경문 감독을 보고 맡긴다는 말이 소문으로 들릴 정도다.
“자자. 어쨌거나 검토는 우리가 하고 마지막으로 너한테 확인받는 거로 할게. 아마 확정 캐스팅은 유나 다음이 바로 너일걸?”
“그런가요?”
“몽네뜨 쪽에서 말하길 여름, 아마 6월 말이나 7월 초쯤부터 작업 들어갈 것 같다 하니까. 스케줄 미리 정리해두자.”
“앗. 근데 저 정리할 스케줄이 없어요.”
헤헤, 머쓱하게 웃는 무영. 약 한 달 정도 남은 시간이었다. 지금도 널널한데 그때도 뭐,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자 고경민이 보드에 붙은 포스트잇을 확인했다.
“본투리 모델 촬영 날짜 받고 프로필 준비도 해야지. 그리고 너 그때면 기말고사, 종강이랑 겹칠 거 아니야? 다른 일 잡히면 정신없을 테니 미리미리 대비해둬. 원래 스케줄은 몰려서 오는 법이거든. 한 달 생각보다 짧다.”
“아하. 그렇군요.”
무영이 손뼉을 치며 알겠노라 대답했다.
그래그래. 다음 학기에도 학교 다니려면 학점 관리 잘해야지. 그는 해야 할 일을 적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오잉.”
과대에게서 문자가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오늘대학 모델 신청 오늘부터라는데 생각 없어? 교내에서도 따로 장학금 준대.]“오늘대학?”
그게 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보기는 했다만? 무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고경민은 프로필사진 포트폴리오를 가져와 쌓았다.
“매니저 형. 혹시 오늘대학이라고 알아요?”
“응? 그거? 전국대학잡지잖아. 학교 홍보하는. 근데 무영아. 이게 내가 고른 작가들인데-”
프로필 전문으로 하는 사진작가들의 작업물이었다. 일반적인 사진이 아닌, 무영의 색을 살려줄 만한 작가를 찾다 보니…… 선택지가 좀 한정적이다. 물론 비용의 한계도 있고.
“적정선에 괜찮은 분들은 스케줄 때문에 좀 기다려야 한다네. 이쪽은 바로 들어갈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작업물이 좀 아쉬워서. 어떻게 생각해?”
주르륵. 가격 순서대로 늘어진 사진들. 비용과 결과물 그리고 작업 속도 등등, 모든 면에서 적절한 합의가 필요했다.
“음음.”
무영은 한 장 한 장 유심히 봤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고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고경민은 테이블 밑을 뒤적거렸다.
“오늘대학이……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소속사라면 안 볼수가 없지.
전국의 젊고 멋진 청춘들이 매달 쏟아지는 잡지인데. 그는 구석에 박혀있던 작년 호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런 거. 대학교 소개부터 학과, 인근 상점, 뭐 대학 생활 관련된 건 다 싣는다고 보면 돼. 근데 왜? 나가보게?”
“친구가 신청받는다고 알려줘서요. 장학금도 준다네요오……?”
“좋지. 그걸로 데뷔한 사람도 꽤 있어. 왜 송준기랑 황오슬도 오늘대학 출신이잖아.”
무영은 경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잡지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반짝반짝. 혹시 화장품 반짝이인가 싶어 손으로 쓸어보지만-
“먼지가 좀 심하지?”
“아니요. 괜찮아요.”
맞다. 바로 그 꽃가루!
하지만 이 잡지가 왜? 뭘 어쩌란 말이야? 무영은 쭉 나열된 포트폴리오와 잡지, 그리고 과대의 문자를 보며 고심했다.
“저기 매니저 형.”
“응? 왜?”
“프로필 사진작가님 꼭 따로 모셔야 해요?”
“그럼 어떡하게?”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
“오늘대학에서 촬영하게 되면, 그걸 프로필로 걸면 안 되나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