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26)
신인인데 천만배우 326화
예언
“아, 여보세요? 네. 여기 아까 화재 신고했던 룬스튜디오인데요. 네네. 초기 진압해서 불 껐습니다. 출동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잔불 확인하러 오신다고요? 네네. 그러면 천천히 오세요. 감사합니다.”
겨울바람이 부는 밤. 스태프들은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는 놀란 가슴을 달래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영이도 마찬가지다. 귀신 멱살을 붙잡고 나온 그 상태 그대로 쭈그려 앉아서 안도의 숨을 뱉어냈다.
“다들 괜찮으세요? 다친 데 없으세요?”
무영이의 말에 스태프들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웃어 보였다. 망치 따위를 들고 온 게 신의 한 수였다. 근처에는 유리문을 깰 만한 도구가 없었으니.
“아, 진짜 십 년 감수했다.”
“달밤에 이게 무슨 일이래.”
“그러니까. 영화 초장부터 기사 탈 뻔했네. 소방관 영화 찍다가 진짜 불났다고.”
“왜, 그래도 그런 속설 있잖아요. 현장에서 불씨가 생기면 영화 대박 난다는.”
“CG 불도 쳐준단다. 진짜 이런 불 말고 파이어 불꽃 우당탕탕! 그런 게 더 먹혀.”
스태프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낄낄대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와중, 책임이 있는 경비원은 황망한 표정으로 초소 안쪽을 살폈다.
기름 난로가 책상 아래 있었던 터라, 컴퓨터를 비롯한 중앙제어장치가 새카맣게 타버렸다.
“아이고, 이걸 어째…….”
“이게 뭔데요? CCTV 같은 거예요?”
“그것도 그렇고, 여기 부지 조명이나 안내방송 출입제어, 그런 거 다 관리하는 기계인데, 아이고 대체 뭔…….”
몰래 담배 피우고 온 사이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기름 난로는 회사가 지급해 준 것이었지만, 주의 태만 등의 불이익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책임자한테 알려야겠어요. 휴대폰 없으시죠?”
무영이는 매니저를 비롯한 유사하에게 이 해프닝을 알렸다.
정신없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는데, 귀신이 다시 코앞까지 다가와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리 가요.”
무영이는 비키라는 뜻으로 이마 박치기를 해댔다.
아프지는 않지만, 기분은 이상한 모양이다. 귀신이 제 이마를 비비며 눈알을 사방으로 돌려댔다.
“진짜 위험해요. 큰 화재였다면, 그리고 혹시 귀신 씨 목소리 들을 수 있는 소방관님이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고요. 그런 장난 한 번만 더 치면 진짜, 진짜 엄청나게 화낼 거예요.”
이제 귀신은 웃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서 있다가 크게 소리쳤다. 높낮이 없이 단조로운 음으로, 담담한 표정으로, 하지만 누구보다 처절하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구해주세요! 소방관님! 저 여기에 있어요! 저를 구해주세요! 두고 가지 마세요! 두고 가면 죽일 거야! 나 두고 가지 마!
흠칫 놀란 무영이가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 순간, 귀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성불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취를 감춘 것 같았다.
스태프가 다가오더니 무영이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무영 씨? 괜찮아요?”
“네? 아아. 네. 괜찮아요. 어? 유 대표님 지금 출발한다고 문자 왔어요.”
무영이는 웃으며 스태프에게 보고 상황을 알렸고, 다시금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몇몇 영혼들이 세트장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으나, 그 귀신은 보이지 않았다.
* * *
사이렌이 울리면, 김신우는 백화점 1층에서 눈을 떴다. 솟구치는 불길 앞에서, 그는 멍하니 자신의 죽음을 되새겼다.
위이이잉.
첫 번째 죽음은 허망했다.
사수와 함께 3층 비상계단을 올라가다 콘크리트 잔해에 깔려 죽었다.
두 번째 죽음은 아쉬웠다.
남자아이와 옥상으로 뛰어오르다 함께 죽었다. 아이만큼은 살릴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세 번째 죽음은 화가 났다.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노인 때문에 불길에 갇혀 산 채로 타버렸다.
네 번째 죽음은 공포였다.
그렇게 뜨거운 것과 내가 맞서 싸웠구나, 나약함을 깨닫고 도망쳤다. 하지만 백화점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김신우? 왜 그래? 너 미쳤어?”
위이이잉!
네 번째 죽음을 마치고 돌아온 김신우는 반사적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뒤에서 사수가 무어라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연기와 함께 더, 더 위쪽으로 달려갈 뿐이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저주가 걸렸는가?
사람을 살리겠노라, 분명히 숭고한 사명으로 시작한 일이 어째서 자신을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타닥타닥!
단숨에 9층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연기가 희미하게 깔려 있었지만, 아직 이곳까지는 화마가 닿지 않았다.
김신우는 시계를 확인했다. 불길이 3층을 넘어서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10분 뒤.
“하아.”
도망칠 방법이 없으니, 완전히 자포자기다.
그는 카페 의자에 앉아 이마만 감싸 쥐었다. 이제 아무도 구하지 않을 거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리라.
“저기요…….”
그때 들리는 한 목소리. 남자가 품에 포대기를 들고 있었다.
“지, 지금 나갈 수 있나요? 반대쪽 비상계단은 문이 안 열리던데요.”
“하.”
믿을 수 없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곤히 자는 게 아닌가.
김신우가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는 듯 쳐다보자, 그가 당황해서 멈칫거렸다.
“구해주러 오신 거 아니에요?”
“…….”
구해주러 온 거 아니냐는 말.
김신우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제 너무 지켰다. 인간이라면 딱 한 번 주어지는 죽음을, 그는 벌써 네 번이나 겪었다.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왜요?”
“제가…….”
김신우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네 번의 죽음이 그에게 줬던 것이 과연 무엇일까?
고통? 분노?
“제가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상실감이었다.
네 번이라는 삶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자기혐오가 미치도록 끔찍했다.
그리고 도망쳤지. 이곳을 버려두고 도망친 순간, 그는 신념이 박살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슬쩍 떨리는 목소리에 절박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구해주시면 안 돼요?”
“…….”
“살려주세요.”
남자 역시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긴장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손등의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다.
김신우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오열했다.
“진짜, 그렇게 말하면…….”
살려달라는 사람을 외면할 소방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몇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김신우는 결국 그들을 구하게 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갑시다.”
“아.”
김신우는 자신의 헬멧을 남자에게 씌워주고, 아이를 받아 들었다. 까맣고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잘 따라올 수 있겠어요?”
“네. 뛰, 뛰는 건 할 수 있어요.”
위이이잉!
어디선가 다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김신우는 그걸 신호로 힘껏 비상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여기서 6층까지는 문제없어. 분명 처음에 2팀에서 외측 비상계단으로 진입한다 했으니 5층부터는 그쪽으로 나가면 된다. 아, 아니지. 두 번째 죽었을 때 4층에서 가스폭발이 있었잖아.’
콰앙! 쾅!
떠올리기 무섭게 4층에서 가스가 터졌다.
김신우는 잠시 멈추기가 무섭게 바로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뛰어갔다.
‘X발 백화점은 창문이 없는 게 제일 X같아.’
창문이라도 많았더라면 일이 수월했을 터인데.
김신우가 불길을 계산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동안, 연기는 더욱 거세졌다.
콰앙!
그리고 마주한 마지막 탈출구. 벽 하나를 두고 외부의 소란이 고스란히 들려왔다. 신우가 소리쳤다.
“선배! 선배! 여기 사람 있어요!”
“뭐야, 김신우 이 미친 개새끼야! 혼자서 뭐 하는 거야! 무전도 안 받고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됐으니까 문이나 좀 열어봐요.”
“넌 이 새끼 뒤졌어. 나오기만 해. 진짜 죽인다.”
끼이익. 끼익.
콰아아앙!
건물 잔해가 입구를 막고 있어 한 사람이 빠져나가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김신우는 아기를 남자에게 맡기고 잔해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에 따라 휘날리는 잿더미들.
“기어서 나가요. 애기 잘 안고.”
그가 김신우를 돌아봤다. 그는 여기 남아서 어떻게 할지 걱정하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 지금은 사치였다.
“빨리!”
타악!
남자가 아기를 안고 포복 자세로 기어나갔다. 뒤에서 점점 더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 김신우는 위태롭게 흔들리는 천장의 샹들리에 장식품을 올려다봤다.
끼이이익.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백화점은 진짜 개 X발 X같은 장소였다. 빠르게 그를 덮치는 샹들리에의 날카로운 단면. 눈앞이 번쩍이며 다시 암전이다.
위이이잉!
“얘가 왜 이래? 정신 차려!”
“김신우!”
돌아왔다.
백화점 1층에 발을 들였던 그 순간으로.
김신우는 헬멧을 벗으며 이를 깍 깨물었다.
‘제일 가까운 화장실에 X 같은 노인네 하나. 초딩 하나, 애 엄마 하나, 꼭대기에 아기랑 남자, 또…….’
머릿속에서 구해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휙휙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저를 수없이 죽였던 폭발과 추락, 불길 역시 시뮬레이션으로 돌아갔다. 숨이 턱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김신우는 심장이 뛰는 기분이었다.
타임 루프는 저주이면서 동시에 축복이구나.
죽지 않으니 어떻게 해서든 기회는 계속 주어지고, 결국에는 모두를 살려야만 끝이 나는구나.
……모두를 살릴 수 있다는 뜻이구나.
* * *
“오케이. 컷. 좋습니다.”
우소영 감독이 헤드셋을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겨울이지만 실내인데다 방호복까지 입고 있으니, 무영이의 얼굴과 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잿더미는 딱히 분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을 정도로, 현장을 떠다니는 먼지가 엄청났다.
“잠깐 쉬었다 가겠습니다.”
“무영 씨. 옷 살짝 벗고 있어요.”
“물 드세요. 물.”
“우에에엑.”
“괘, 괜찮아요?”
계단 뛰어다니는 장면만 벌써 서른 테이크 째. 한 번에 가는 경우가 없어 속이 뒤집혔다. 무영이는 바닥에 벌러덩 누우며 숨만 거칠게 내쉬었다.
“와, 이거 장난 아니다.”
“무영아, 괜찮아?”
“네. 대신 저 이러고 좀 누워 있을게요.”
고경민이 다가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그가 찬물 적신 수건을 무영이 이마에 얹어주었다.
“매니저님, 잠시만요.”
“네네. 무영아 잠깐 있어. 이온 음료 가져올게.”
쩝. 대답할 힘도 없다. 무영이는 그대로 누운 채 눈을 감았다. 자신의 주위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살려달라 하면 다 살려주나? 아하하! 거짓말!
“아. 왔네.”
무영이는 귀신의 목소리에 눈을 살짝 떴다. 여느 때와 같이 활짝 웃으며 무영이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요새 안 보이던데, 또 왔네요.”
작은 화재 사고가 난 이후, 첫 촬영이 개시될 때까지 귀신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솔직히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터라, 무영이는 귀신을 만나보고 싶었다.
나는 살려달라고 했는데 못 살았어.
“누구한테요? 소방관님이요?”
구해달라고 했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을 구했어. 내가 그렇게 싹싹 빌었는데, 나를 선택하지 않았어.
“……아.”
무영이는 탄식을 내뱉었다. 얼추 짐작이 갔다. 사고 현장에서 동시 구조가 어려웠던 소방관은 순차적으로 누군가를 먼저 선택해야 했겠지. 그 결과가 저 귀신일 터.
“……그거 안타깝네요.”
소방관님! 살려주세요! 저를 구해주세요! 아하하하!
귀신이 뱅글뱅글 돌며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무영이는 몸을 일으키고는 진정하라는 듯이 귀신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런데요, 너무 소방관님 미워하지 마세요. 그분은 아마 죽을 때까지 그쪽 생각하며 괴로워하실 거니까. 동시에 구할 수 없었던 무력감으로 평생을…… 그러실 거예요. 돌아가신 다음 그쪽을 만나면 다시 사과하시겠죠.”
거짓말.
“정말이에요. 정말, 그분들은 그런 분들이니까요.”
그럼 나는 누가 구해줘?
“제가 구해줬잖아요.”
무영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귀신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너도 곧 죽을 거잖아.
“네?”
너 죽을 것 같은데. 조만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