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30)
신인인데 천만배우 330화
까메오 갑니다
아버지는 꿈을 꿨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등등 수많은 가정으로 꿈꾸었던 환상이었다.
젊은 날의 소방관으로 돌아간 아버지는 거리낄 것 없이 건물 잔해를 헤치고, 초능력자처럼 불길을 막아냈다.
‘이리 오세요!’
누구를 구해야 할지, 망설일 것도 없다.
소방관은 힘 있게 구조자들을 들쳐 업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갑갑하고 매캐한 연기가 걷히고, 소방관의 코와 입으로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다.
‘괜찮으세요?’
소방관은 땀을 닦으며 구조자를 돌아봤다. 먼지 하나 묻은 것 없이 멀쩡하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소방관에게 인사했다.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옷을 탁탁 털며 뒤돌아 어디론가 걸어갔다. 점으로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소방관은 한참을 지켜봤다.
* * *
“앗싸. 원카드! 딱 대, 딱 대.”
“어어? 말도 안 돼. 보라 왜 이렇게 잘해?”
“자자, 지금부터 딱밤 카운트 들어갑니다!”
“흑기사 해주실 분? 하무영?”
“응~ 없어~”
왁자지껄한 소리에 차은성의 아버지가 눈을 떴다.
실로 오랜만에 숙면한 기분이었다. 열에 대여섯 번은 악몽에, 그중 또 두어 번은 화재 현장으로 불려 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렸는데 말이다.
‘처음으로 구했네.’
기분이 좋다. 마음 한편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흐릿해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 구하지 못했던 희생자와 어떤 얘기를 나눈 것 같기도 하다.
스윽.
“아빠, 일어났어?”
침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차은성이 카드를 착착 섞으며 뒤돌아봤다.
누워서 쉬어야 할 무영이는 테이블로 내려가 원카드를 즐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강보라예요.”
“아아. 반가워요. 이거, 어우, 민망하네.”
“저는 임준호요. 안녕하세요. 반찬 보내주신 거 잘 먹고 있어요. 무영이랑 같이 사는데, 어쩌다 보니 셋이서 사네요.”
보라와 준호가 일어나서 꾸벅 인사했다.
오고 가다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직접 차은성의 아버지를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첫인사를 자다 일어나서 하다니, 저놈의 아들놈은 진짜 정말이지…….
“은성아, 아빠 왜 여기 누워 있냐?”
“그러게. 요즘 밤마다 뭐 해? 어떻게 휴게실에서 잠이 들어? 깨워도 못 일어나고. 하무 보러 온 의사가 아빠 진찰하고 갔잖아. 원카드!!”
“아 뭐예요, 형. 말하는 도중에 그러면 어떡합니까원카드!!”
시계를 확인한 아버지가 어이없이 얼굴을 매만졌다.
거의 대여섯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렇게 기절하듯 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무영아. 내가 침대를 뺏었네.”
“잘 주무셨어요?”
“어어. 그래. 이상하게 푹 잤어. 하하.”
아버지의 너털웃음에 무영이가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와다다 달려와서 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푹 잤다는 의미가,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귀신 씨도 안 보여. 아마 꿈속에서 바로 가신 것 같아.’
난데없는 무영이의 포옹이었지만, 아버지는 당황하지 않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차은성이 심드렁하게 콧방귀를 껴댔다.
“아들은 머리통 때리기만 하면서, 하무는 새삼 귀하게 다루네.”
“네 머리통이랑 무영이 거랑 같냐?”
“참나, 친아들 대접 보소 진짜.”
드르륵.
그때였다. 의사가 검진표를 들고 들어서려다 멈칫거렸다.
침대에는 낯선 남자가 앉아 있고 한가운데서는 원카드 판이 펼쳐져 있었으니.
무영이가 꾸벅 인사했다.
“오셨어요? 의사 선생님?”
“검사 결과 나왔는데, 음. 확실히 문제없는 것 같네요. 컨디션 좋아 보이시니 며칠 중으로 퇴원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 같이 모여 카드 게임 할 정도의 몸 상태였으니까.
무영이가 손뼉 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통상적으로 ‘며칠’이라고 하면 사흘 정도 아니던가. 촬영 딜레이될 것 없이, 서두를 수 있을 것 같다.
“와아. 다행이다. 그럼 저 지금 과자 하나 먹어도 돼요? 배고파 죽겠어요오.”
“네네. 드십시오.”
무영이의 말에 차은성이 바로 서랍에서 과자와 빵 따위를 꺼내주었다.
우유에 빨대까지 야무지게 꽂아서.
“촬영할 생각하는 거 아니지?”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긴 하지만, 아니라고 할게요.”
무영이의 대답에 차은성이 눈을 부라리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보라와 준호도 마찬가지. 어디 헛소리 시원하게 한 번 더 해보라는 듯.
“와하하. 다들 표정 살벌해!”
“유 대표님이 못 박았으니까 뽑을 생각 하지 마. 현장 가면 또 이리저리 구를 건데. 엉?”
“맞아. 너 액션씬 풀로 찍는 날은 근육통 때문에 잠도 못 잤다며. 어설픈 몸 상태로 하면 퀄리티도 낮아져.”
보라의 말에 준호도 스리슬쩍 끼어서 말렸다.
단순히 하면 안 된다, 이것보다 훨씬 설득력 있지 않나.
무영이는 전혀 생각도 못 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맞네. 풀 컨디션 유지해서 찍어야 하니까.”
“그래. 정 심심하면, 저기. 은성이 형 드라마 들어가는 거나 먼저 따 놓던지.”
“형 드라마? 아아. 까메오?”
차은성은 음료수로 입을 축이고 있었다. 이내 고개를 연신 끄덕끄덕. 준호가 자신도 달라고 손을 내밀자, 페트병을 건네줬다.
“어어. 그래. 차라리 그래라. 대본 픽스 났거든. 촬영 일정도 곧 들어가니까, 피디한테 말해서 그 씬만 먼저 찍자고 하지 뭐.”
“역할 정해졌겠네요. 그때 분명…….”
무영이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중얼거렸다.
“경호원이랑 수상 구조원. 그리고-”
“호스트. 그걸로 정해짐.”
“푸훕!”
“아아. 맞다. 호스트.”
“아, 임준호. 더럽게 진짜.”
“죄, 죄송합니다.”
차은성이 짜증을 부리며 휴지를 던져줬다.
혹여 보라 역시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면 똑같은 반응이었으리라.
준호가 사레들린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호스트가 제가 아는 그거 맞죠? 그…….”
“법정 검사물 찍는데 홈쇼핑 호스트가 맞겠냐, 아니면 뽕쟁이 호스트가 맞겠냐?”
“뽀, 뽀옹쟁이.”
준호가 경악과 경탄 섞인 눈으로 무영이를 돌아봤다.
우걱우걱 양 볼에 빵 쑤셔가며 먹는 쟤가, 연애 한 번 못 해본 쟤가, 공사 치기는커녕 거짓말도 잘 못 하는 쟤가 호스트 역할이라니.
“믿을 수가 없겠는데.”
“뭐가? 호스트 연기? 왜? 재밌겠는데.”
“너는 재밌겠지. 나는 뭐랄까. 추레한 백수 형이 갑자기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느낌인데.”
“에에엥? 뭐래. 미쳤나 봐~”
“아무튼 시청률은 잘 나오겠다. 아니지. 클립이 더 터지려나?”
반면,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준호와 달리 보라는 팔짱을 끼며 곰곰이 되새겼다.
“좋겠는데?”
“뭐가?”
“아니, 무영이. 지금까지 멜로 연기도 다 문제없었고, 기억 안 나? BV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나 꼬시는 연기 했었잖아. 그런 거라면 끔뻑 죽지. 내가 봤을 때는 작가님이 너 한다고 하니까 호스트로 결정하신 것 같아.”
보라의 칭찬에 무영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보라는…… 옆에서 울상 짓는 준호가 안 보이는 걸까?
“보라야. 무영이가 꼬시는 연기 했을 때 끔뻑 죽었어?”
“어? 왜, 왜 말을 그렇게 해?”
“방금 그랬잖아. 끔뻑 죽었다고.”
준호의 투덜거림에 차은성이 볼 것도 없다는 듯 외투를 집어 던졌다.
퍼억!
“지랄들 하네. 아빠. 가자, 데려다줄게.”
“큼큼. 그럼 무영 씨. 자세한 퇴원 일정은 다시 조율합시다.”
날아간 외투는 준호의 머리 위에 얹어졌고, 보라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두 사람을 귀엽다는 시선으로 구경하다 짐을 챙겼다.
드르륵.
“사랑싸움 계속해라. 아버지 데려다주고 올랑께.”
“저도 같이 가요, 형.”
“그럼, 또 봅시다. 보라 씨. 준호 씨.”
타악!
무영이가 웃으며 아버지의 짐을 들려고 하자, 차은성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장난스럽게 눌렀다.
“으악!”
“까불지 마세요. 환자가.”
“그래. 은성아, 네가 다 들어라.”
아버지는 차은성에게 짐을 다 넘겨주며 룰루랄라 무영이와 병원 1층으로 내려왔다.
대형병원 로비인지라, 사람들이 꽤 많다.
“무영이는 어서 돌아가. 사람들 알아보겠다.”
“그래. 나 아빠 데려다주고 올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문자 하고. 아참. 폰도 없지? 폰부터 사야겠네.”
“준호 걸로 연락할게요. 아버지, 조심히 들어가세요. 삼순이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집이 너무 좋아서, 놀러 온 기분이었어. 푹 쉬고, 쾌차하자. 또 보고.”
“네넵. 들어가세요! 형! 잘 다녀와용!”
무영이가 손을 붕붕 흔들며 정문으로 나가는 두 사람을 배웅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이만하면 둘이 화해하고 있겠지? 헉. 또 뽀뽀하고 있음 어째. 그러면 쫓아내야겠다.’
무영이가 추위에 떨며 총총거리며 로비를 돌아갈 때였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영 씨.”
“헉! 신녀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신녀님이었다. 머리에는 여전히 애기동자 신을 얹고 계신.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네요.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어요. 휴대폰을 너무 늦게 확인해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거든요.”
돌팔이가 고사 때 개판을 쳐놓았노라고, 무영이를 비롯해 유사하가 돌아가며 연락을 취해봤지만 닿지 않았다.
무영이는 일단 신녀님과 함께 로비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어, 네넵. 근데 어떻게 잘 처리했어요. 제가 밤마다 음식 조금씩 떼서 먹였거든요. 헉. 이렇게 말하니까 소년가장 같다. 하하.”
“그래도 사고가 크게 있었죠?”
“화재 두 번이요.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어요. 신녀님은 여기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유사하 대표라는 분이 일러주셨죠.”
“아아. 그렇구나.”
“액땜 겸 제사 다시 올려달라 하셔서 수락했습니다. 제가 그때 꿨던 꿈이 화재였던 것 같아요. 그밖에 다른 일은 없죠?”
무영이는 고민하다가 춤추는 귀신의 얘기와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인 척했던 귀신의 얘기를 전했다.
신녀님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렷다.
“아까 차은성 씨랑 같이 나갔던 중년 남자분 속으로 들어간 뒤 안 보인다?”
“네넵.”
“저도 아무것도 못 느꼈어요. 성불한 것 같네요.”
“휴우. 다행이다.”
짐작은 했지만, 신녀님이 직접 저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되었다. 정말 잘되었구나! 아버지에게도, 귀신 씨에게도.
“화재 현장에서 그 귀신은 제가 한번 확인해 볼게요. 어차피 고사를 다시 지내야 하니까, 인근이라면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돌팔이께서 불렀던 잡귀일 가능성이 크지만요.”
“잘 부탁드릴게용.”
신녀님은 걱정하지 말라 덧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밥이라도 한 끼 하시지!”
“아닙니다. 무영 씨도 어서 몸조리 마저 하세요. 곧 뵙지요. 아, 그리고…….”
아기신이 무영이에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 꼼지락꼼지락, 작은 손가락이 움직이며 무영이를 매만졌다.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아기신께서 좋아하십니다.”
“아!”
무영이는 활짝 웃으며 아기신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가벼운 악수를 나누자, 아기신이 꺄르륵 뒤로 넘어갔다.
“그럼, 이만.”
“네. 또 뵐게요!”
무영이는 진짜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VIP실로 올라가는 전용이라, 한적해서 좋다.
‘원카드 마저 하자고 해야지~ 그리고 은성이 형보고 까메오 대본 갖고 오라 해야겠당~’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실로 간 무영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컴백!”
“헉!”
당황해하며 훌쩍 멀어지는 보라와 준호. 얼굴이 시뻘겠다. 무영이는 눈만 깜빡거리다 이내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못 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