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56)
신인인데 천만배우 외전 3화
메리 크리스마스
드넓고 황량한 사막. 다섯 명의 전사들이 흑색의 하늘 아래 제각각 빛을 내고 있었다.
인류의 추악함으로 파괴된 지구에 천사와 악마가 내려왔을 때와 같은 모습이다.
인류의 멸망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천사, 그리고 인류의 영속으로 완전한 파멸을 원하는 악마들의 싸움에서, 인류는 저주받았다.
-저기, 숲이 있다.
한 남자의 말에 다섯 전사가 고개를 돌렸다.
사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푸른 숲.
수천, 수만 구의 시체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모습이었다.
-몸에서 나무가 자라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 이봐, 저걸 보고도 선을 선이라 볼 수 있는가? 나는 더 이상, 초월적인 둘의 존재를 구분할 수가 없어.
악마이되 인류의 영원을 바라고 있고, 천사이되 인류의 멸망을 바라는 것들이다.
주인공은 천천히 날아올라 사막 한가운데 숲을 눈에 담았다.
저 이파리 하나는 누군가의 눈에서 나온 것이고, 저 나뭇가지 하나는 누군가의 귀에서 나온 것이고, 저 밑동 하나는 누군가의 시체를 발판 삼아 자란 것일 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둘 다 죽이자. 구분할 수 없다면, 둘 다.
천사와 악마를 죽일 수 있는 인간이라.
전사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시선을 나누었다.
그대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그저 생존 하나뿐이라고.
-이봐, 저기…….
사막을 기어가는 자가 하나 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인간이자, 움직임이다.
인근의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양인 남자, 베어니였다.
그는 어깻죽지에서 솟아난 나뭇가지에 짓눌려 모래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마지막 인간이다!
전사들이 동시에 소리치며 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하늘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천둥과 번개, 바람 따위의 무자비한 자연이 휘몰아치며 동양인 남자의 주위로 내리꽂혔다.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말이다.
악마든 천사든 초월적인 존재가 마지막 인간의 흔적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안 돼!
퍼엉! 펑!
전사들이 덤벼들었으나, 감히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더, 더, 더 위로, 저 진리의 너머 있을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쉬이이익! 퍼어엉!
하지만 그것 역시 저지당하고 말았다. 먹구름 사이로 흰빛을 감싼 천사 대군들이 천천히 내려왔다.
인류의 마지막을 앞두고서, 그들이 친히 마무리를 하겠노라는 뜻이다.
-아, 그들이다.
-저게 어딜 봐서 천사야? 얼굴은 악마인데.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천사의 첫 마디가 ‘두려워하지 말라’지. 생각보다 얼굴이 X같군.
-저 작은 남자를 구해라. 그러지 않으면 인류의 역사가 여기서 끊어질 테니까.
창공에서 천사 대군과 맞서는 다섯 명의 전사들.
그들에게 초능력이 깃든 시점 이후로, 그들은 인간도, 초월적인 존재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근본이 어디 가겠는가.
쿠우우웅! 쿠쿵!
메인 빌런인 대천사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이 앞으로 나서며 손짓했다.
[이제 끝났다. 저 작은 인간을 끝으로, 지구에는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이다. 사과나무를 아는가?]사과나무. 사내의 등에서 솟아난 나무가 바로 사과나무였다.
저것은 다음 에덴동산에서의 선악과가 될 것이요, 다시금 이어질 인류의 시작에서 악(惡)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는 천사들의 가르침이었다.
인간들아, 너희의 선악과는 이전 세대에서도 악이었다. 정확히는 마지막 악이었지. 그러니 보아라. 악의 결말이 어떠한지.
-입 닥쳐. 천사의 탈을 쓴 악마 새끼들아.
전사들은 이를 꽉 깨물며 천사들에게 덤벼들었고, 세상이 개벽할 것 같은 빛줄기에 모든 게 사라져갔다.
퍼엉!
사막에서 죽어가는 동양인 남자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짓눌리는 아픔에 정신이 혼미해졌으나, 은연중에 알 수 있었다. 그가 세계의 마지막 인간이자, 훗날 역사에 기록될 첫 번째 나무가 될 것이라고. 그가 죽어야만 태초가 있고, 다시금 에덴동산이 생겨날 것이라고.
‘그렇다면, 나의 죽음이 곧 새로운 세계.’
동양인 사내는 제 어깻죽지를 매만지며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 제 목을 찔렀다.
피가 모래에 스며들자, 인근에서 그들을 찾던 악마들이 흔적을 알아챘다.
푸욱!
천사들과 맞서던 악마들이 전사들을 감싸며 사악하게 웃었다.
또한, 제 목을 찔러 넣은 마지막 인간의 숨 역시 멈췄다.
이대로 죽게 할 수는 없지. 새로운 에덴동산의 시작은 곧 악마들의 자리 역시 지하로 떨어진다는 뜻이니까.
-헤에이.
-마지막 인간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일곱 악마들은 천사들에게 검은색 검을 겨누었다. 놀란 천사들이 다시금 폭발적인 기운을 뿜어냈고, 세상은 그렇게 사라졌다.
아니, 멸망과 시작 그 어느 사이의 암흑기로 접어든 것이다.
훗날의 인류들은 그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겠지.
‘혼돈.’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전, 모든 만물의 시작이 되는 시기. 그곳에서 다시금 두 번째 전쟁이 일어날 터였다.
* * *
“오케이! 컷!”
무영이는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모래를 뱉어내며 얼굴을 털어댔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거대한 세트장.
아무리 분장이라고는 하나, 나무를 등에 통으로 박아댔으니, 무겁고 힘들다.
매니저가 다가와 마른 수건으로 무영이의 얼굴을 털어주었다.
“괜찮아요? 무영 씨?”
“네네. 아이구, 모래 코로 들어갔다.”
“흥, 해요. 흥!”
CG 작업이 대부분을 이루는지라, 하늘이 크로마키의 녹색이다.
베릭이 무영이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좋다!”
“좋았나요?”
“좋아!”
무영이 배시시 웃자, 감독이 그를 불러댔다.
이제는 현장에서도 매니저의 도움 없이 적극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각종 어려운 영화 용어가 장벽이었는데, 이것도 역시 부딪히니까 서서히 익숙해진 것이다.
“근데 이게 이렇게 끝나는 거 맞아? 뭐 이렇게 어중간하게 끝나?”
“2편을 예고하는 거죠. 이제 혼돈에서 다시금 악마와 천사가 싸우는 게 주된 메인 스토리겠죠? 에덴을 만들려는 천사와 맞서기 위해 악마와 손잡은 인류의 마지막 전사들. 이게 메인 스토리 될 것 같은데요.”
“나는 이래서 시리즈가 싫어. 영화 하나를 딱 봐도 깔끔하게 끝났다는 느낌이 안 들잖아. 아, X발 그런데 이러면 2편도 여기서 찍겠네.”
“모르죠. 그건. 세트장 상황 봐야 하니까. 다른 곳은 직접 사막 가서 찍는 경우도 있어서, 잘하면 남미로 갈 수도 있어요. 거기가 단가가 싸니까.”
“오고 가는 비용이 더 들겠는데 무슨.”
무영이는 자꾸 한쪽에서 들리는 차은성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웃었다.
[캘리포니아의 푸른 햇살>을 로케로 찍고 있는 차은성은 시간만 났다 하면 무영이네 촬영장으로 와서 구경을 해댔다.말로는 데리러 온 거라고 하는데, 그 역시 배우로서 헐리우드 촬영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게 분명했다.
“은성이 형, 저 곧 끝나니까 좀만 조용히 해줘요.”
“와, 하무 많이 컸네. 저거저거, 나한테 입 닥치래.”
“은성 씨 목소리가 좀 크긴 했어요.”
로케 매니저도 은근히 차은성이랑 잘 맞는 것 같고…….
미국 생활이 벌써 오 개월 훌쩍 넘어가는데, 전혀 불편함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Moo. what are you doing on christmas eve? (무, 크리스마스이브에 뭐해?)”
그때, 베릭이 무영이의 어깨를 톡톡 치면서 물었다.
세계적인 이벤트이자 연말의 대명사 크리스마스!
무영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었다.
“well. I think I will go to Korea after resting at home.(글쎄요. 좀 쉬다가 한국 갈 것 같은데요.)”
이미 11월에 영화제 참석으로 인해 갔다 왔으나, 진짜 스케줄 이행을 위해 딱 그것만 하고 돌아온 참이라 고향의 향수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이번에 돌아가면 새해까지 푹 쉬다 올 생각이었다.
베릭은 조금 아쉬운지 과장되게 인상을 찡그렸다.
“우리 딸, 데이트! 치킨치킨!”
“아, 따님이랑 같이 고기 먹자고요?”
“Did I say well?(나 잘 말했어?)”
“굿굿. 할수록 느네요.”
무영이는 엄지를 들어 올려주며 웃었다.
대체 어느 촬영장에서 이렇게 동양인을, 그것도 조연을 배려해 준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영화의 주연인 베릭이!
무영이는 촬영을 이어 나가면 나갈수록 영화가 보여줬던 꽃가루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흥행은 둘째 치고, 진짜 환경이 최고다.’
직장 다니시는 분들도 사람이 좋으면 최고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무영이는 그 말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베릭, 감독과 함께 다시금 영상을 확인하고, 이내 스케줄을 끝냈다.
“Merry Christmas!(메리 크리스마스!)”
“수고하셨습니다! 땡큐, 땡큐!”
“무영, 안녕! 잘 가!”
“안녕히 계세요! 다들 연휴 잘 보내세요!”
“See you next week!(다음 주에 보자!)”
무영이는 여기저기, 스태프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고서 본인의 트레일러로 돌아왔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배우마다 트레일러를 하나씩 지급하여, 이곳을 대기실 겸 분장실로 쓸 수 있게 했다.
무영이는 들어서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모래를 털어냈다.
“하무! 얼렁 가자! 집 근처 거기 치킨 픽업해 오라고, 다들 난리여.”
보라와 준호는 한국에서 즐거운 데이트 중일 것이고, 엔빈이와 다른 친구들은 연말 특집 방송 뛰느라 정신이 없다.
아마 집 가서 티비 틀면 공연하는 걸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차은성이 말하는 사람들이란, 유사하를 포함한 에이전시 사람들이었다. 물론, [캘리포니아의 푸른 햇살> 팀도 포함.
“네넹. 치킨 몇 개 사면 된다고요?”
“열 개.”
“와우. 다들 1인 1닭 하실 생각이신가 보네. 트렁크에 다 들어갈지 모르겠어요.”
“미리미리 사두지, 하여간 어찌 들어가는 사람보고 사오래. 진짜.”
녹색 지붕 집은 차은성 혼자 사는 곳이 아니었다.
감독님을 비롯하여 현지의 몇몇 스태프들까지 함께 방을 나눠 쓰다 보니, 식구 아닌 식구들이 아주 거나하게 늘었다.
덕분에 차은성은 다시금 무영이네 집에서 다시 살다시피 하는 중이었으니.
지이잉. 지잉.
“아놔, 이 쓰리피스 진짜. 자꾸 전화질이네. 월클 차은성 받았는데, 왜? 피자도 사 오라고? 미친, 아니, 재벌이면 배달비 좀 내시고 하세요. 비싼 인력 써먹으려 하지 말고. 비싼 인력이 누구냐고? 지금 당신이랑 통화하는 나! 나 말이야!”
멈춰 서서 길길이 날뛰는 차은성을 두고서, 무영이와 매니저들은 주차된 차로 향했다.
그리고 서둘러 출발하려는 듯이 시동을 걸자, 주차 경비원이 다가와 무영이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Moo! It‘s a gift from your fans. (무! 이거 네 팬들이 주는 거야.)”
“Wow, thank you!(감사합니다!)”
“Merry Christmas!(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메리 크리스마스!)”
무영이는 경비에게 인사하며, 차은성을 불렀다.
“형! 두고 가요? 빨리 와요!”
“어? 눈 온다.”
“눈 온다아아! 형아, 빨리! 집 가자!”
무영이의 닦달에 차은성이 전화를 끊으며 차에 올라탔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작은 눈송이. 무영이는 싱긋 웃으며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이번 해도 참 완벽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오